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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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날들, 경험하지 못한 역사 속 많은 사건들을 종종 문학을 통해 접하게 된다. 시나, 소설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누가 그랬던가, 역사는 강자의 편에서 기록된다고. 우연찮게 오늘은 새로운 정권이 구도를 잡으려 용트림한지 꼭 1년을 맞는 날이다. 작년 한 해, 조금이나마 나아질 꺼라는 기대를 품었던 수많은 이들의 가슴, 그 가슴에 지금은 분노와 냉대로 가득하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다. 그러나 올 해, 세상은 모두를 정치에 참여하는 자로 이끌어냈다. 촛불을 손에 든 유모차 부대,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 넥타이 부대, 어느 하나 자신의 이익을 염두해두고 거리로 달려나가지 않았다. 스스로의 판단하에 자발적인 동참이었다. 그들의 뜨거운 밤의 노래가, 그들의 흥겨운 춤사위의 진심을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세상은 알아줄까.

 편향적인 사고로 내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내게, 부끄럽지만 역사는 지나간 날들의 기록일 뿐이다.  1930년대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 이념은 어떤 것이며, 혁명을 위해 무참히 죽은 이들의 영혼, 그들은 진정 무엇을 위해 청춘을 바쳤는가. 그들의 무수한 밤들, 두려움에 떨던 날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불렀던 노래들. 

 북간도, 1932년 9월의 용정, 내게는  윤동주의 생가로 기억되는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 삶을 내던졌는가. 그저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 김해연, 그 남자를 사랑했지만, 혁명을 위해 죽는 그 순간에서야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 이정희. 중국, 일본, 조선의 젊은이 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스파이로 이용하여 그들은 <민생단 사건>의 중심에 선다. 이념이 중요했던, 민족이 중요했던 그 시대는 피끓는 청춘의 죽음을 요구한 시대였다. 

 사랑에 배신당했다고, 연인을 이해하기까지 김해연은 입과 귀는 닫히고, 눈은 멀고 만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봄 날의 기억임을 알기에 그의 침묵이 그의 모부림이 가슴 아프다. 그를 꼭 안아주고 잠들게 할 사랑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봄날 아스라한 아지랑이 같은 사랑, 그 눈과 입을 열리게 한 이, 역시 혁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여옥이라는 청춘이었다.  새로운 사랑은 새로운 혁명으로 이어지나, 시대는 그들에게 사랑 보다 혁명을 요구한다. 그들이 바람과 맞서며 지새운 밤들, 정의라 믿고 그것을 위해 총을 겨누는 그 밤의 공포를, 포근한 침대 속에서 그들의 밤과 마주한 나는 머리 속으로도 느낄 수 없다.

 진실은 언제나 힘겹게 얻어지는 것일까. 여옥이 불러대던 노래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처연함이 이 시대, 시청 앞에 모인 시민들의 노래와 같다는 것을 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이 이야기를 쓰고자 고민했다는 김연수식 밤의 노래는 이제 세상의 낮과 밤에 울려 퍼진다. 길고 깊은 밤, 아침이 혹여 오지 않을까 두려운 내게 김연수의 노래는 말을 건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는 것을 알지 않느냐고.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이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중략)
우리가 영국더기 언덕에서 찍었던 그 사진이 생각나요. 그러니까 멀리서 몸을 뒤척이며 흘러가던 강물들. 눈송이들처럼 떨어져 내리던 봄의 하얀 꽃잎들. 십자가를 향해구불구불 이어지던 영국더기 언덕길. 사진 속에 찍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더없이 아끼던 보물들이었고, 내게 필요한 건 오직 그게 보물이라는 걸 알아보는 단 한 사람뿐이었어요. 내가 원할 때마다 지치지 않고 함께 그 보물들을 봐줄 사람이었죠. 한때는 이 세상 전부를 원했지만. 이젠, 겨우 그 정도. 이제 내가 아는 세계의, 그러니까 거의 전부. 323~324쪽 정희가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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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일기
이승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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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적절한 때,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면 의도하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만다. 그 후로 많은 불편함으로 지속된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타이밍을 맞춘다는 것은 맘 먹기에 따른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때로 평생을 묻어둔 그 타이밍을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기억해 내곤 한다. 그 때,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랬어야 했는데. 후회 아닌 후회는 비밀인 양, 숨겨둔 일기장에 기록되고 만다.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속 단편들은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기장의 기록한 간질 간질한 불편함들이다. 가려운 곳은 긁어주어야 한다. 바로 긁어주지 못하면 부스럼이 되고,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소설들은 지워버렸다고, 잊어버렸다고 치부했던 불편함들이 사실은 마음 한 구석에서 부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소설 속 화자들은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결코 소설가가 될 꺼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어했던 사촌 대신 소설가가 된 나의 오래된 일기장을 가직한 ‘오래된 일기’,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 속 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정신적 질환을 앓고, 가족들에게 철처하게 무시당하는 동생 상규를 돌본다. 아니, 사실은 그를 떠나보내고 싶어한다. 집안의 십자가라고 말하면서도 그 십자가를 돌보지 않은 가족들.

 ‘타인의 집’ 과방’ 을 통해 공간이 주는 위안을 말한다. 사소함으로 시작된 부부싸움은 끝내 별거가 되고, 나는 집에서 쫓겨난다. 삶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집이라는 공간은 방으로 이어진다. 사실, 우리는 집보다는 나만의 방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우연이지만, 옛 애인의 집에 머물게 된 타인의 집 화자는 그 공간 자체에 위안을 받는다. 같으면서도 다른 그 공간에서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자신을 돌봐주었던 치매 걸린 큰어머니의 등장으로 가족을 헤체된다. 아내와 아이는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큰어머니는 죽고 만다. 이혼을 종용하는 아내, 그는 집을 팔고 자신만의 방을 찾아 헤맨다. 과거의 따뜻했던 공간,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존재감의 실체를 느낀다.  언제 떠나야 할 지 모르는 방, 그 안에 나는 새로운 존재를 각인시킨다. 

 추억이 아닌, 과거의 기억들이 소설을 통해 드러난다. 3년 전 헤어진 여자로의 전화는 지난 과거는 현재로 흡입된다. ‘정남진행’, ‘풍장- 정남긴행2’는 그 과거로의 여행이다.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위치한 정남진이라는 곳은 과거의 이야기의 시작점이며 귀착점이다. 그 여로를 동행하며 독자는 그들의 과거를 떠올린다. 내게 있어 그곳은 어디인가. 고향, 사랑이 머물렀던 곳, 기억이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인 우리들의 정남진은 어디인가.

 담아둔 말은 그 시간이 오래되면 진정성이 사라질지 모른다.  누군가에 의해 말해지지 않으면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길고 어둡고 놀랍고 뜨거운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의 지표면 아래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 128쪽  현 시대에 부활한 과거의 이야기꾼 전기수라는 직업을 통해 나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게 아니라 말을 나누고 싶어한다. 말을 통해, 당신을 알고 나를 보이고 그렇게 살아야 함을 알면서도 입을 열지 못한다.  현대인의 고독감, 온전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말들, 일기장에 담아두지 않아야 한다. 일기장이라는 말은 비밀스럽다. 작가 이승우가 오랫동안 담아둔 마음의 고백 아닌 고백은 다소 어려웠고 먼 메아리로 남는다.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떼어내서 하루씩 삶을 연명하는 거랍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내놓아야 하는 거지요. 그것이 인생이예요.”91쪽

 하루를 살기 위해 우리는 딱 하루만큼의 삶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걸까. 내일을 만나기 전에, 지난간 오늘을 기록한다. 주저함과 머뭇거림을 쌓아둔 일기장, 그 일기장 속에 회환과 슬픔도 있을 터, 그러나 그 기록들은 나에 속한 것들. 또 다른 일기장을 펼친다. 이제 나는 어떤 말들을 비밀스런 이곳에 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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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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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나라는 그 나라만의 역사를 갖는다. 그 역사가 환희로만 쓰여졌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역사는 슬픔, 고통을 동반한다. 우리나라에게 일본강점기, 6.25가 그랬고, 많은 아시아들은 유럽의 강국들의 식민지로 살아온 시절이 그러하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우리는 그 역사로 인해 아직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상실의 상속』이라는 절망이 가득한 제목의 소설은 인도의 칼림퐁이라는 마을, 1986년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1980대의 인도를 나는 알지 못한다. 히말라야 등반을 위한, 셀파, 티벳, 네팔이 자동으로 검색되는 곳, 칼림퐁. 그곳에 어떤 상실이 가득했을까. 

 칼림퐁에 ‘초오유’라는 저택에 퇴역 판사, 외손녀 사이, 요리사, 그리고 판사의 애견 무트가 살고 있다. 판사는 냉소함으로 일관하며 오직 무트에게만 애정을 쏟는다. 요리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아들 비주의 편지만이 즐거움이며 십대 소녀 사이는 가정 교사 지안을 만나기 전까지 건조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칼림퐁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비주가 살고 있는 미국의 뉴욕의 풍경이 교차하며 소설은 전개된다. 

 어느 날, 초오유에 지안에게 정보를 얻은 무장한 소년병들이 판사의 총과 음식을 빼앗아버린다. 이 사건은 모두에게 크나큰 상실을 주는 시작이 된다. 경찰은 엉뚱한 사람을 잡아 고문한고 그의 가족들은 판사에게 선처를 구하지만 판사는 냉담하다. 결국, 가족들은 판사에게 가장 소중한 무트를 훔쳐간다. 소설은 판사, 요리사, 사이의 과거로 거슬러 간다. 

 판사는 인도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간 엘리트였지만, 영국인이 되려 애쓰는 인도인을 경멸했다. 사실, 그 역시 인도인이 아닌 영국인으로 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 욕망은 아내를 구타하고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판사 역시 결국은 모든 것을 버리고 칼림퐁에 안주하고 만다. 고아가 된 외손녀 사이와 대면하고 만다.  단란했던 요리사의 가정, 아내의 죽음은 그에게 가장 큰 상실이었고 미국이라는 곳에서 비주가 성공하기만을 바란다. 부모를 사고로 잃고 고아가 된 사이에게 지안을 사랑하지만, 극심한 빈부, 환경, 사고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1980년대 미국에서 인도인들의 생활은 희망이었을까. 불법체류자, 뒷골목, 사람들의 천대, 여기 저기 일터를 옮겨다니는 것이 실상이었다. 그린카드를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불법체류자들의 모습, 자신이 크게 성공한 줄 아는 가족들의 청탁 편지. 그 안에서 비주는 깊은 상실감에 빠지고 만다.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 현실은 유색인종,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소설은 칼림퐁이라는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의 세밀한 묘사, 해설처럼 그들의 일상을 기록한다. 소설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대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 인도, 그곳에는 다양한 인도인의 삶이 있었다. 영국을 흠모하고 문화를 받아들이는 삶, 인도의 전통적인 삶을 고수하고자 하는 이들, 카스트 제도에 억눌린 삶.

 역사는 이런 식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세워진 것이 순식간에 불타버리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 속에서 앞뒤로 도약하고, 젊은이들은 해묵은 증오에 휩쓸렸다.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은 결국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 작았다. 493쪽

 1980년대 인도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인도 자체가 절망에 휩싸였을 때, 칼림퐁의 초오유의 사람들도 절망속에 있다. 판사에게 사라진 무트, 사이에게서 멀어진 지안, 요리사에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 아들 비주. 그들은 절대적인 절망에서 희망의 씨앗을 볼 수 있을까.

 복잡하고 모호한 소설이다. 끝내 소설은 어떤 희망도 보여주지 않는다. 1980년대를 지났지만, 인도를 비롯하여 미국, 영국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도는 영국이라는 역사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운명이라는 것으로 이어진 상실은 그렇게 상속되는지 모른다. 우리가 일본과의 해결되지 않는 관계를 상속받은 것 처럼.  크거나 작거나 우리는 상실감을 느낀다. 그 상실을 이겨내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애쓰는 과정이 삶이다. 『상실의 상속』, 소설 제목으로는 정말 멋지지만 결코 삶을 통해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상실의 상속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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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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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훈은 내게 무서운 인상이었다. 버럭 소리라도 지를 듯한 모습이었다. 앵커와 마주하며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은 그랬다. 그의 글이 처음이기에 기대도 많았지만, 딱딱한 글 일꺼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나를 만나는 글은 여린 글이었다. 산문 <바다의 기별>은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거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 부른다.본문 13쪽 아, 어쩌랴. 사랑은 이렇게 슬픈 노래인 것을, 김훈에게도 사랑은 그러하니. 그 짧은 글은 가만 눈을 감게 했다. 내게 지나간 사랑은 과연 그리했나. 잡고 싶은 사랑,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가 알리고 싶은 기별은 사랑이었나.
 
 치열한 삶의 현장,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곳을 기록하던 연필, 그 연필이 사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생경한 느낌이 든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딸아이에 대한 애잔함을 연필로 써내려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린 시절, 부산에서 미군에게 쪼꼬렛을 얻어 먹던 시절, 그 후로 다시는 허쉬 조꼬렛을 먹지 않는다는 작가 김훈. 추억속에서 그의 단호함, 그가 아버지로 부터 받았을 강직함이 설핏 스친다.  그의 글 중 나는 이 글에 밑줄을 긋고 그 글을 이해하고 싶다. 나의 고통은 나의 생명 속에서만 유효한 실존적 고통이다. 인간의 존엄은 그 개별성에 있을 것이다. 소설이 인간의 개별성 위에 언어의 구조물을 쌓아가듯이, 의학고 인간의 개별성을 구성함으로써, 문학과 의학은 만날 수 있다.본문 42쪽 실존적 고통, 개별성, 그리고 문학, 언젠가 나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그것들과의 소통하는 시간이 멀더라도 오기만 한다면 좋으렸만.
 
 그가 기자로써 밥벌이를 할 때, 김지하의 출감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던 시간, 그가 만난 고 박경리에 대한 글. 읽는 내내 분명 특종기사를 실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의 마음엔 무엇으로 가득차 있었을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오치균과의 만남의 글에서 자신이 연필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연필로 쓰기는 몸으로 쓰기다. 연필로 글을 쓸 때,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작동되는 내 몸의 힘이 원고지 위에 펼쳐지면서 문장은 하나씩 태어난다. 살아 있는 몸의 육체감, 육체의 현재성이 없이는 나는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 글은 육체가 아니지만, 글쓰기는 온전한 육체노동인 것이다. 111쪽
 
최근 강연 내용을 원고로 쓴 글과 부록으로 그간의 서문 모음과 수상 모음을 만나는 것은 김훈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특별한 배려다. 또한 그 글을 통해, 김훈이라는 작가와의 거리는 좁혀진다. 오치균의 그림을 보며 그와의 만남을 기록한 부분을 자연스레 다시 읽어보니 글은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13편의 산문은 그의 고백과 같다. 그는 시를 쓸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긴 서사시를 쓰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단단할 것만 같았던, 심연에서 흐르는 글은  마치 두부처럼 부드럽다고 할까. 고즈넉하게 해가 지는 모습이 떠오르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어린 시절이 생각나게 했다. 감정이 배어있는 편지글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함은 당연한 것이라 위안을 삼는다.
 
 김훈, 강철같은 느낌은 아직 남아 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 과 같은 남성적이고 전투적인 글로도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화장>, <언니의 폐경>속에 녹아든 소통으로의 언어가 궁금하다. 이제 곧 그와의 소통이 시작된다. 우선 <화장>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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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샀어
조경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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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롯이 글을 쓰는 작가, 당연 모든 작품이 같을 수는 없다. 같아서도 안 될 것이다. 조경란을 떠올리면, 아무말 없이 곁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를 만나는 듯한 느낌, 가만 마주 앉아 켜켜히 쌓아둔 슬픔을 가져갈 것 같은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글 때문이리라.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소설, ‘나의 자줏빛 소파’, ‘불란서 안경원’을 참 좋아한다. 장편도 만났지만, 단편에서 느껴지는 조경란의 글이 더 좋다. 

 풍선을 꼭 사야할 것만 같았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유독 떠나는 이, 남겨진 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나를 지켜주는 이들은 언젠가 모두 나를 떠나고 만다.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부재이거나, 사랑의 이별, 그래도 남겨진 이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어김없이 하루를 맞이하고 살아내야 한다. 

 매번 그녀의 소설에는 요리가 등장하고, 나이가 등장한다. ‘풍선을 샀어’ 에서 독일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어린 조카와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여성 화자가 많았던 기존의 소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두 소설, ‘달팽이에게’ 와 ‘달걀’ 이 갖는 변화는 크다. 예상할 수 없는 아니, 치유할 길이 없는 알츠아이머, 파킨슨, 치매라는 질병을 안고 사는 소설 속, 고모, 엄마, 이모.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죽음, 부모를 대신해 나를 키워주고 지켜주던 고모, 이모의 죽음을 말하지만, 결국 남성 화자를 통해 여자를 이야기한다. 고모라는 여자, 이모라는 여자, 그들이 사랑한 여자들에 대한 초상이다.  

 남편을 찾아 낯선 도시에 지도 한 장을 의지하며 길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형란의 첫번째 책’. 형란에게 지도는 남편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할머니가 손녀인 나를 떠나보내는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손녀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작가의 전작에서도 항상 결핍은 있었다. 다만, 그 전작들에서는 결핍, 그대로로 남았다. 이 소설집에서는 부재를 채울 수 있는 긍정, 희망을 보여준다.  부드러워지고, 느슨한 느낌을 받는다. 어쩜 작가 역시 삶에 대해 떠남에 대해 좀 자유로운게 아닐까 싶다. 

 
쓴다는 건 종이 위에 나를, 나의 표상 하나를 거기에 내려놓는다는 게 아닐까요. 이것은 보잘것없는 지도 한 장에 불과하지만 이 얇고, 가벼운 한 장 종이 위에 나는 나의 첫번째 표상을 내려놓았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첫번째 책입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단 한 권의 책과 조우할 수 있듯이 이 지도 또한 누군가와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1월의 편서풍과 7월의 무역풍 속에서 우리는 간은 바람과 같은 기후로 살고 있듯. 우리의 은밀한 의식은 이 한 페이지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119~120 쪽

 인간의 고독, 우울함, 내면의 출렁임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밤이 깊었네’, ‘마흔에 대한 추측’은 가끔씩 소리 내어 웃거나 울고 싶은 우리네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소설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독일에서 니체를 공부하고 돌아온 이도 독일로 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도 홀로 남겨졌지만 우울을 이겨내려는 몸짓들도 다르지만 하나의 모습이다. 고립되지 않고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려 애쓰는 흔적들이 조경란의 변화인지 모른다.  서른을 노래했던 작가, 이제 그녀는 마흔을 노래한다. 치열한 삶, 둔탁하면서도 날카롭던 그녀의 글을 떠올리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떻게 할까.

 그녀의 책을 만나면서 나 역시 내게 올 마흔이라는 초상을 그려본다. 모나지 않기를, 혹여 두려움이 닥쳐오더라도 나만의 풍선을 기억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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