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
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
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
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
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
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
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
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
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
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
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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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1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이 나려고 해요.

자목련 2009-04-10 22:05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이 시를 만나면서 그랬는데, 님도 그러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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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가 지켜요 - 성폭력 예방을 위한 지침서 인성교육 보물창고 1
코넬리아 스펠만 지음, 테리 와이드너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엄마가 되고 나니 사소한 것들 하나 하나가 아이에게 집중된다. 영아기에는 그저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지만 유아기에 접어들면서 엄마들은 알게 모르게 교육에 열을 쏟는다.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막상 엄마가 되면 이성적 사고는 사라지는 듯 하다. 친구들과의 전화통화도 주용 내용은 아이들의 교육과 안전이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왜 이리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은지.

 예방해야 할 가장 먼저가 바로 성폭력이라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딸을 둔 친구들은 걱정이 더 크다. 그러나 유아 성폭력은 남녀를 떠나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스스로를 잘 지켜낼 수 있는 교육은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몸은 내가 지켜요>라는 제목이 참 맘에 든다.  아이나 조카에게 성교육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기에 쉽게 설명되어 있다. 유아인 경우가 더 좋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도 괜찮은 듯 하다.

 그림책이라서 표지에 아이는 무척 행복한 표정이지만, 아이들의 싫다는 표정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직접 상황을 연습시켜도 좋다.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 ”  통계를 보면 성폭력은 주변 친척이나 이웃 등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에 책에서는 그런 점도 잊지 않고 짚어주고 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해야 한다. 또한 반대로 좋아하는 친구의 몸도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인지시켜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예전과 다르게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 신체 변화에 따른 이야기를 함께 해줘도 좋겠다.

                                 
                                 

 내 아이가 소중하듯 세상의 모든 아이는 소중하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호기심이라도 친구들이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은 하는게 아니라고 꼭 말해줘야 한다. 그림책을 보면서 아이에게 궁금한 점을 스스로 질문하게 해도 좋을 책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더이상 유아 성폭력에 관한 뉴스를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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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리뷰해주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화제의 중심에 이 책이 있다. 브래드 피트의 연기가 돋보이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 영화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자연스레 출판계로 이어져 여러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책들이 다투어 출간됐다.  원작을 뛰어넘은 영화인지, 역시 원작이다일지 둘 중에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줘야 할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그 평은 나중에 해야겠다.
 
 이미 다 알아버린 줄거리,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내내 브래드 피트의 얼굴이 겹쳐진다. 자글자글한 주름을 한 얼굴로 유모차에 앉아있던 그 모습이 책속에 꽉 찬다. 동안 열풍이 생각난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남들과 다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벤자민 버튼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런 욕망을 가진 자라고 말하지만, 과연 벤자민은 행복했을까? 

 영화에선 젊어지는 벤지민과 반대로 늙어가는 그의 연인 힐더가드의 애틋한 사랑을 담았지만, 원작에서 사랑은 아주 작다.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렸지만 그가 격었을 삶의 상실감의 무게가 크게 느껴진다. 할아버지가 유일한 친구였던 어린시절 마찬가지로 할아버지가 된 벤자민에게도 손자만이 유일한 친구가 된다. 마치 알몸으로 태어나 알몸으로 생을 마감하는 인생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놀라운 것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발상이다. 이런 기막힌 상상이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단편과 중편의 11편의 소설들은 개성이 뚜렷하다. 가장 무도회에서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작가의 코멘트를 읽고 나니<낙타 엉덩이>를 쓰고 있었을 신사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참아내기 어렵다. 당돌한 처녀의 나신의 등장하는 <도자기와 분홍>도 흥미롭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젊은이들의 문란한 습은 화려한 파티와 술집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1920년대 화려한 파티와 당당한 여성들의 등장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실적 묘사와 환상이 넘나드는 그의 소설은 좀 어지럽기도 하다.
 
 표제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제외하고는 단연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가 최고였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전개 방식과 반전이 즐거운 단편이었다. 주인공 멀린이 한평생 가슴에 품고 사랑한 도도하고 아름다운 숙녀 캐럴라인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진정 그녀가 마녀였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화려했던 젊은 날이 지나고 늙어버린 날, 그제서야 알아버진 진실. 사랑도 삶도 물거품처럼 허무한 것인가.
 
<그는 이제 정말 노인이었다. 너무 늙어서 젊었던 시절을 꿈꿀 수도 없을 지경이었고, 세상의 휘황찬란함이 사라지고, 자식들의 얼굴과 따뜻함과 인생이주는 편안함에 기대기는커녕 시력과 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늙어버렸다. 봄날의 저녁 무렵, 아이들이더 어두워지기 전에 나와서 놀아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도, 그는 이제 미소를 짓거나 오랜 몽상에 잠길 수 없으리라. 이제는 너무 늙어 추억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 p 332  

 F. 스콧 피츠제럴드는 11편의 소설 모두를 친절하게도 설명을 해줬다. 그의 코멘트를 읽으면 단편에 대한 배경이나 그의 의도를 만날 수 있다. 1920년대 전쟁은 끝났고 전쟁을 겪은 젊은이들은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즐기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모습은  어느 시대나 존재하는 법. 극과 극의 소설들은 스콧 피츠제럴드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닐까. 시대를 감싸고 흐르는 재즈에 몸을 맡기는 청춘을 그대로, 감정을 그대로.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다양한 소설을 만날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다른 출판사(펭귄클래식, 북스토리, 노블마인)에서 나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를 즐겁게 만난 사람,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그는 이제 정말 노인이었다. 너무 늙어서 젊었던 시절을 꿈꿀 수도 없을 지경이었고, 세상의 휘황찬란함이 사라지고, 자식들의 얼굴과 따뜻함과 인생이주는 편안함에 기대기는커녕 시력과 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늙어버렸다. 봄날의 저녁 무렵, 아이들이더 어두워지기 전에 나와서 놀아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도, 그는 이제 미소를 짓거나 오랜 몽상에 잠길 수 없으리라. 이제는 너무 늙어 추억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 p 332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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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탄생 - 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의
이희재 지음 / 교양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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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사한 표지다.  경쾌한 타이핑이 문장으로 피어날 것 같다. 지금 내가 자판을 두드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리라. 영어를 비롯하여 어떤 외국어를 못한다. 다만 그들의 문학을 좋아할 뿐. 번역을 잘못하면 반역이라는 말이 있다. 우스개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원문의 뜻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할 경우,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현재 출판계는 영미문학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문학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고 있다. 20여년 번역을 해온 저자 이희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번역의 탄생>(교양인, 2009)을 출간해 출판, 번역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 나는 한국어에 눈떴다. 작가가 되어 한국어 자체만을 놓고 씨름했더라면 한국어의 개성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 일본어, 독일어 같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다 보니 한국어의 남다른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던 한국어답다는 개념이 차츰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 그러니까 이 책은 번역을 업으로 삼으면서 20년 동안 잡다한 번역을 해온 사람이 내놓는 한국어 임상보고서인 셈이다. > 서문

 책은 번역가라면 누구나 겪는 직역과 의역의 딜레마(1장 들이밀까, 길들일까) 시작으로  시를 번역하는 (20장 셰익스피어와 황진이가 만나려면)강의까지 총 20장의 강으로 구성되었다. 고교시절 영어시간을 떠오리며 대명사, 수동태, 접두사와 접미사, 등 문법에 대한 강의를 비롯하여 살빼기, 좁히기, 덧붙이기, 짝짓기, 등 맛나는 번역에 대해 썼다. 그리하여 번역을 시작하는 이를 위한 교과서임과 동시에 한국어에 대한 바른 이해서라고 하겠다. 저자는 번역은 읽을 대상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한국어가 가진 개성을 더욱 풍부하게 창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번역은 번역가를 위함이 아니라, 독자를 위한 것을 강조한다.
 
 현재 많이 사용되는 영한사전에 대해서도 많은 아쉬움을 드러낸다. 약 120여 년전 언어우드 목사가 만든 영한사전이 발전하지 못하고 일제시대를 넘어서며 일본식으로 사전을 따라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것은 번역 문학이 일본을 통해서 들어오면서 일본화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언어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사전이 좋은 사전입니다. p349(18장 말의 지도, 사전 편)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하고 있다)가 전형적인 일본어 문체인 것 처럼 이미 우리의 언어는 개성이 사라진 것이다. 

<17장 맞춤법도 법이다>라는 강의에서 보면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오류를 집어낸다. ‘데’와 ‘대’를 살펴보면 “그 남자 참 웃기더라”를 줄여서 “그 남자 참 웃기데”하고 써야 할 것을 “그 남자 참 웃기대”라고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어에 대한 저자의 강한 애정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가령 이런 부분들이다. ability (깜냥). anger(부아). cutting(마름질). joint(뼈마디). quarrel(실랑이). short(바투). sole(애오라지). 영한사전에 없는 토박이말 소개(p298~p305)

 분명 이 책은 번역에 종사하는 이들과 편집자들 위한 책이지만, 외국소설의 번역본과 동시에 원작을 만나고자 하는 독자가 점점 늘고 있기에 그들에게도 충분한 인기가 있을 것을 기대한다.  번역에 관심이 있다면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잉크, 2008)를 읽어도 좋다.

 ** 이 책은 번역뿐 아니라 외국어에도 문외한인 내게도 유익한 책이었다. 한국어에 대한 나의 무지를 시작으로 것, 적, 들, 등 잘못쓰고 있는 우리말를 재확인시켜주었다.  다만, 그 방대한 유익함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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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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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탯줄을 잘라낸 잠재적 기억때문인지 마음속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 잡는 것 처럼 내게 바다는 그러하다. 지척에 바다를 두었지만 바다를 만나기는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바다를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EBS<책으로 만나는 세상>에서 작가와의 만남를 듣던 중 목소리가 커지고 호들갑스럽게 환호성을 지르는 나. 바로  <나는 여기가 좋다>였다. 한창훈은 분명 생경한 작가임에도 이 책은 묘한 끌림이 있었다. 그리하여 한창훈과의 설레는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계절마다 다른 빛으로 물드는 바다, 그 바다를 분신처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비릿한 바다 냄새를 가득 담은 소설, 파도 소리를 듣는 듯 책 장을 넘긴다.  

 바다와 배밖에 모르던 늙은 어부, 그에게 세상은 바다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배를 처분해야 할 때가 오고, 아내는 뭍에서 살자한다. 마지막 만찬인 듯 늙은 어부는 아내를 배에 태우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다. 배 위에서 눈부신던 바다와 함께 젊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며 아내의 진심을 듣는다. 운전 하나 제대로 못하고 육지가 무서운 그는 섬을 떠날 수 있을까.  늙은 어부의 독백처럼 느껴지는 <나는 여기가 좋다>라는 말이 슬프게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잘 모르겄어.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지.”
 “습관이요.”
 “그렇겄지. 배 타는거 말고는 하나도 안 해봤으니까.”
 “그랬소. 당신은. 늘 바다와 배만 보고 살았소. 그러다 이렇게 된 거요. 그러니 인자 여기서 뭘 어떻게 하겄소?”p23

 시종일관 투박하지만 경겨운 사투리로의 술집 여주인이 낯선 손님에게 쏟아내는 사랑이야기 <밤눈>. 이혼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자와 어촌으로 전근 온 남자와의 사랑. 샌님처럼 조용한 도시 남자가 들려주는 말이 거칠고 촌스러운 여자에게는 마냥 좋았다.  남자에게 작은 어촌에서의 만남은 잠시 스쳐가는 것일지 모르나 순수한 그녀의 순애보는 눈처럼 하얗게 묘사된다.

 쓸쓸한 섬에서 남편을 잃고 자식들은 뭍으로 내 보낸 노인들의 삶의 회한을 그린 <바람이 전하는 말>. 섬 떠난 여행의 웃지 못한 에피소드를 그린 <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 두 편을 통해 젊은이는 거의 없는 섬의 현실을 만나게 되니 씁쓸하다.

 자살을 하기 위해 섬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섬은 삶의 현장이라고 화를 내는 듯한 <섬에서 자건거 타기>와 자식만은 바다를 떠나게 하고 싶은 부모의 바람과는 반대로 바다에서 살고자 뭍에서 돌아오는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버지와 아들>은 <나는 이곳이 좋다>의 어부가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표제작 <나는 여기가 좋다>를 시작으로 바다를 품고 사는 어촌, 섬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향연. 책 속에 빠져들며 연신 ‘아, 어쩌면 좋을런지.. 이 책이 정말 좋다’ 중얼거리며 행복해했다. 그것은 너른 갯벌에서 바지락을 잡던 엄마에 대한 그리운 추억에서 시작해 기름 유출로 검게 물든 바다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 때문이었으리라.

 “왜 그냥 있지 않고 멀리 흘러갈까요. 바다는”
 “흐르지 않으면, 바다는, 아무것도 안 돼요. 어장도 안 살아나고.”
 “그런가봐요. 흘러야 하는 것이겠죠. 눈물처럼 말이죠.” p172 

 바다는 커다란 눈물은 아닐까. 섬 사람들에게 삶의 시작이고 끝인 바다. 하루 하루 그물을 걷어올리고 노를 젓고, 때론 고립되기도 하고 파도가 휩쓸고 간 곳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흘린 눈물들. 외롭고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듯 한창훈은 재치스러운 말투로 그들을 표현한다. 섬을 그려내는 작가, 그 역시 섬사람으로 바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바다를 품고 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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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1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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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7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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