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의 도시들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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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의 끝에서 살아남은 부자의 긴 여정을 통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졌던 소설 <로드>로 코맥 매카시를 처음 만났다. 무척 힘들게 읽었고, 난해했기에  타자의 호평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여운이 남았던 터라 후에 <핏빛 자오선>에 이어 <평원의 도시들>까지 만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의 마지막인 이 소설은 힘들지 않게 읽었다. 

 멕시코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미국 서부 국경지대. 국경 3부작 전작의 주인공 존과 빌은 목장에서 카우보이로 일한다. 동생을 잃은 빌리는 존을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다 존은 강을 건너 창녀촌에서 막달레나라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첫 눈에 반한다. 존은 소녀를 창녀촌에서 탈출시켜 결혼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빌리를 비롯해 목장의 동료들은 모두 극구 반대한다. 창녀촌에서 막달레나를 빼내 국경을 건너는 일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강을 건너 소녀를 만나러 가는 존의 행복한 표정을 생각한다.  막달레나가 어떤 여자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둘이 함께 살 집을 손보고,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할아버지가 남겨준 총을 전당포에 맡기고,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말을 팔아 돈을 구해  오직 소녀를 데려오는 일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막달레나 역시 존을 사랑했고, 결혼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존이 세운 계획에 동의한다. 그러나 존을 향한 막달레나의 사랑은 창년촌의 포주로 인해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종이 인형처럼 누워있는 막달레나의 영혼을 확인하자 존은 포주 앞에 선다. 광기보다 더 지독한 존의 분노는 포주를 향해 칼를 던지고, 칼에 찔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존은 빌리를 찾고,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은 존과 막달레나의 애절한 사랑을 중심으로 목장에서의 일상이 크게 그려진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 가족을 잃고 그리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며 살고 있다. 말을 타고 소를 몰며 달리는 카우보이들의 끈끈한 우정과 삶.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벌판, 그 위를 달리는 카우보이의 함성이 들리는 듯 편의 서부 영화를 만나는 기분이다.  존이 죽고, 여기 저기 떠도는 빌리. 에필로그에서 빌리는 한 여행자를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마지막 그 부분은 마치 신과 인간 삶과 죽음에 대해 나누는 대화와 같았다.  

 ‘우리는 그저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를 불러올 뿐입니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우리 인생 역시 마찬가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애초에 무에서 빚어지고, 우리 모두는 달라졌을 수도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은 없기에 헛소리에 지나지 않죠. 삶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요? 어디에 감추어져 있을까요? 혹은 어떻게 생겨날까요? 현실은 확률은 100퍼센트죠. 우리가 삶을 미리 추측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확실합니다. 다른 역사를 상상하는 것은 무의미하죠.’ p 397

 존이 막달레나와 자신의 죽음을 추측할 수 없었기에 결혼과 행복한 삶을 꿈꾸었듯 빌리도 자신의 앞 날을 모른 채 넓은 서부를 가로지르며 계속 말을 달리는 것이 아닐까. 긴 밤을 지나 새벽이 오고,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과 마주하는 그 벅찬 감동이랄까. 점점 더 코맥 매카시의 매력에 빠져든다. 기회가 되면 다른 책들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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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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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백 년 또는 이천 년의 세월을 견녀내는가 하면 모래 속에서도 살아남는 저 내구성 있느 물체와 인간의 관계는 결코 무해無害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옳다. 저 부드럽고 쉽게 소멸되지 않는 책이라는 사물은 인간과 숙명적으로 맺어져 있다고.’  p83

 ‘위험하다란 말은 유혹과 같다. 그리하여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하고 싶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도 제목처럼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기에   <위험한 책>에 대한 기대도 컸다.  얼굴은 사라지고 책이 대신한 한 남자의 모습인 표지도 독특하다.  과연, 책은 얼마나 위험할까? 

 블루마 레논이라는 대학 강사가  차에 치여 죽었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문제는 그녀가 ‘에밀리 디킨슨’의 구판본 시집의 두 번째 시를 읽으려다 사고가 났다는 점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지만, 한 편에선 블루마는 문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책에 의한 희생자였다. 

 블루마의 동거인이자 화자인 나는 그녀를 대신해 강의를 맡게 되었고, 그녀에게 배달된 한 권의 책과 마주한다. 시멘트가 묻어 있고, 책엔 내가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쓴 블루마의 메모가 있다. 그 남자는 누구이며, 이미 죽은 사람에게 왜 배달이 되었을까?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녀의 지난 행적을 찾다가 책의 주인격인 남자의 소식을 접하고 긴 여정을 시작한다.

 책의 주인을 찾아 가는 과정은 서고와의 만남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단순한 애서가들이 아니었다. 책에 중독이 되고, 책에 미친 사람들의 서고는 마치 거대한 성과 같다. 책을 배열하는 순서, 고전을 읽을 때는 촛불을 켜고 고전 음악을 듣고,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그 책과 관련된 책을 20여권을 함께 읽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책 속에 묻혀 책외엔 어떤 것도 의미가 없는 사람들. 심지어 배달된 책의 주인은 벽돌이 아닌 책으로 집을 지었다. 
 
 블루마를 사랑했던 남자, 그녀가 책을 보내 달라고 부탁으로 집을 부셔가며 그 책을 찾아 보낸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다른 책들은 찢기고 사라졌다. 책을 사랑했지만 그에겐 블루마에 대한 사랑이 더 컸나 보다. 하여 남자에게도 그 책은 위험한 책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책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만이 책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말이 맞다.

나도 책을 좋아하는데,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침대 구석에 쌓인, 상자에 담겨있는 내 책들. 책으로 지어진 집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공간이 적다는 이유로 책을 소유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여전하게 당장 읽지 않을 책 주문을 하고 다시 쌓인 책을 보며 고민한다. 내 일상을 잠식하는 책, 위험한 존재일까? 그래도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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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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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랑의 시작은 모든 허물을 덮을 수 있는 마음을 키우지만, 정작 헤어짐에 다다르면 티끌만한 잘못도 거대한 들보처럼 보이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주변까지도 환하게 밝혀준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도 흐뭇함으로 미소 짓고, 당사자들도 행복 그 이상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아름다운 밤을 보내야 할 그들, 왜 서로를 힐난하며 이별을 맞이했을까. 매번 사랑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선보이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체실 비치에서>는 사랑을 시작하는,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 줄 책이 분명했다. 

 ‘그들은 젊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둘 다 첫날밤인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소설의 첫 문장, 독자는 첫날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지켜보게 된다.  모든 것이 두렵고 떨리기만 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그들은 오랜 시간 만나왔고,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자유 연애 시대가 아닌 1960년대, 첫날밤은 떨림 그 이상이었다. 

 연인시절, 에드워드폴로렌스를 모든 면에서 배려해주었다고 믿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그녀 위해 난해한 고전음악을 이해하려 했고, 육체적 욕망도 절재했다고 믿었다. 플로렌스도 원하지 않았지만 에드워드가 하는 키스를 참아주었고, 아버지의 직장에 취직까지 시켜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의 진심을 모른 채 그들은 무겁고 지루한 첫날밤을 견뎌내고 있었다. 성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그들은 서로 혼란스럽다. 의지와 상관없이 흥분하는 자신의 육체와 다가오는 상대의 손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댄다.  결국 플로렌스는 방을 뛰쳐나가고 에드워드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모멸감을 느낀다. 

 잔잔한 은빛 물결이 보이는 자갈밭, 서로의 미래를 이야기 할 곳이었던 장소에서 젊은 신혼부부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마음과는 다르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다. 아내에게 불감증이며 석녀라는 표현을, 남편에서 자유롭게 사랑해도 된다니, 이제 갓 결혼한 부부라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을 쏟아놓고 말았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p 197 

 이십대 초반인 그들은 너무 어렸다.그들은 결혼을 통해 독립을 꿈꿨던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가 있는 집, 엄격한 통제가 있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했다. 둘은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서로에게 가는 길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더 가졌다면, 아름다운 체실 비치에서 플로렌스가 연주하는 모짜트르를 들었을 텐데, 하는 엉뚱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언 매큐언은 언제나 달랐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런 사랑>처럼 그의 소설은 생각지 못한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어 좋다. 사랑으로 기인되는 모든 감정 변화와 내면의 갈등을 묘사하는데 탁월한다. 과감하고 적나라한 묘사도 그의 손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핀다.  그래서 나는 이언 매큐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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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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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w: 새벽 세시예요. 북풍이 부나요? 굿나잇.

15분 뒤
세시 십칠분이예요. 서풍이예요. 쌀쌀하고요. 굿나잇.

 깊은 밤 깨어 있을 때가 있다. 적막하기까지 한 시각, 그럴 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오직 온라인뿐이다. 카페에 접속하거나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라도 하면 같은 시각 깨어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 반가움이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닉네임도 여전하게 타인이다. 타인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몇 번의 만남, 몇 번의 통화, 몇 번의 메일로 가능할까. 운명처럼 첫 눈에 반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공통된 주제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구나 영화처럼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한 통의 잘못된 메일로 사랑이 시작되다? 무엇이 그들을 사랑하게 했을까? 매일 아침 메일함을 확인하면서 스팸 메일로 분류된 낯선 메일을 확인하지 않는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메일로 이뤄진 그들의 사랑은 설렘을 안겨주었다. 잠에서 깨어 메일을 확인하기 전 기대와 설렘은 메일의 존재 여부로 가능하며,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  설렘의 유지와 절망으로 나뉘게 된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작은 변화를 원했는지 모른다. 상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이름뿐, 점점 상대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사람은 어떤 음악을 좋아할까, 체크 무늬 셔츠가 잘 어울릴까, 목소리는 어떨까. 은밀한 일탈이 아니라고, 그저 메일로 나누는 우정이라고 선을 긋기도 하지만, 레오와 에미는 서로의 메일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이었다. 사람의 감정은 사소한 것에서도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 사소함에서 다시 위로받기도 한다.  나는 이미 소설 속 에미가 되고 말았다. 


 <당신에게 메일을 쓰고 당신의 메일을 읽는 시간이 저에게는 일종의 ‘가족타임아웃’이에요. 이 시간이 일상 밖에 있는 작은 섬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그 섬에 당신과 단 둘이서만 머물고 싶어요. 당신만 괜찮다면요. p 149 에미의 메일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관없어요. 나는 당신의 글과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돼요. 얼마든지 딱딱하게 써도 돼요. 나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요. p 153 레오의 메일 중에서>

 글에 감정이 있을까? 있다 해도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감정이 있어야 한다.  각자만의 공간은 이제 두 사람의 공간이 되버렸고, 레오와 에미는 서로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연인과 이별을 했고, 어머니를 잃은 레오와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에미는 사실, 모두 외로웠던 것이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잠들지 못하는 새벽, 서로를 위한 자장가는 서로에게 보내는 메일뿐.  만나려했던 시도는 물커품처럼 사라지고, 에미가 보낸 메일은 수신자를 찾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은 다시 서로의 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메일을 갖게 될까?  

 두 사람의 사랑이 위태로워 누군가는 불안해 할 거이며, 누군가는 안쓰러워 할 것이다.  닿을 수 없는, 아니 그럴 수 없는 그 애절함이 더 가슴 아팠다. 바람이 가을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일까, 나도 손편지는 아니더라도 스팸 메일이 아닌 누군가의 메일이 받고 싶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쓰는 글, 편지. 깊은 밤 깨어 있게 된다면, 나는 어쩜 이 책을 만나 같은 마음을 품은 이의 메일을 기다리며 받은 메일함을 클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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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7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8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인문학 -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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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人文은 인문人紋인데, 말 그대로 ‘사람의 무늬’를 뜻한다. 그래서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인 셈이고, 마찬가지로 인문학의 진리란 인간의 무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설렁설렁 말하자면, 인간의 무늬 속에 진리의 조건을 두게 되면서 철학적 근대가 열린다. 그런데 인문학적 진리의 조건을 이루는 인간의 무늬는 조개껍질처럼 단순한 게 아니라 겹/층을 이루고 있다. 겉무늬가 있는가 하면 속무늬도 있는 것이다.’ p 42

 몇 번을 읽더라도 좋으니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게는 어려운 글이었다. 영화인문학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영화를 통해 김영민 교수의 철학적 해석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컸다. 그가 선택한 한국인의 정서와 역사를 잘 살려 낸 한국 영화 27편을 만나는 시간은 얼마큼 이해했냐를 떠나서 즐거운 것이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떠올려 다시 그 감동을 느끼고, 제목은 익숙하지만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하는 앞 선 세대의 흑백 영화를 만나는 것도 생경하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인문학에 무지한 내가 인간 본연과 그 너머의 ‘어떤 것’을 알려고 하면 무리인 것을 알기에, 그저 우리 삶의 단면을 영화를 통해 만나는 것을 족해야 했다.  <여자, 정헤>로 잘 알려진 이윤기 감독의 <아주 특별한 손님>은 일본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도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영화가 훨신 느낌이 좋았다. 주인공 보경은 명은이라는 사람과 닮았다는 이유로 명은의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낯선 이들과 낯선 곳으로 동행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을 통해 명은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보경은 타인으로 선 자신을 보게 된다.  

 보경의 등장으로 곧 장례를 준비하게 될 명은의 집은 들썩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보경은 명은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저자 김영민은 <아주 특별한 손님>은 ‘자아는 종종 타인을 통해 바뀐다는 소식, 거꾸로 나는 영영 스스로 바뀔 수 없다는 상식을 다시 일깨운다. 타인은 템포다. 인문학 공부의 실천은 그 템포에 응하는 응접의 방식에서 시작되며, 그 템포를 놓치는 자아는 나르시스트와 에고이스트 사이를 우왕자왕하게 된다. 너무 빨리 다가서는 타자는 귀신이거나 괴수이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타자는 메시아가 된다.’p 36 라고 말했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이어졌다. 

 이병헌의 연기가 돋보였던 <달콤한 인생> 속 보스와 선우는 서로를 믿고 의지했지만, 결국 서로에게 총을 겨눈는 부분에 대해 말한다. 조폭 영화, 명령 - 복종의 수직적 관계지만, 인간대 인간으로 마주했을 때 동시에 서로를 죽여야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했지만,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한다. 보스의 여인을 품었기에, 죽이려 했을까.  오히려 상대를 죽일 수 있는 힘은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것을 강박적으로 찾으려는 애착 속에서 오히려 그 진짜 이유를 밀어낸다는 것이라,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호감이 관계를 구제할 수 없는 곳, 바로 그곳이 우리의 세속입니다.’p 71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관계의 시작은 때로 아주 사소한 호감에서 시작하지만, 관계를 지속하거나 구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 되버린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글로 다시 만나니, 정원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다림이 사진관 앞에서 그를 원망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재한 모든 것은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며, 사진 속에서 영원할 수 있다. 짧은 생을 살다가 영화처럼 떠난 영화배우 고 장진영의 환한 미소가 눈에 아른거린다.

 익숙한 제목이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영자의 전성시대>는 예상했던 유쾌한 영화가 아니었다.  1970년대 서울로 상경했던 우리 모두의 언니이자 누나였던 많은 영자들, 그들의 고달픈 삶과 사랑이 슬펐다. 식모로 버스 차장으로 결국, 강간당하고, 팔까지사고로 잃게 된 영자에게 철공소 직원인 창수의 사랑은 지고지순 그 자체였다. 그러나 두 청춘은 사랑이 주는 또 다른 모습인 상처를 보지 못햇던 것이다. 오직, 그들보다 더 앞서 삶을 살아온 김씨만이 앞날을 예견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사랑을 반대한다.   ‘상처받은 자들의 사랑은 그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가면서 더불어 이루는 호혜의 합작合作이 아니라 그 상처를 덧나게 하고 강박적으로 반복하고 그에 대한 턱없는 비용과 대가를 요구하는 어리석음의 고독인 것이다. ’p 300   한편으로 그들의 화합을 원했지만, 저자의 말처럼 현실은 사랑이 아닌 상처가 더 부각된다는 것을 안다.

 가족에 대해 새롭게, 아니 근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가족의 탄생>이나 <바람난 가족>, 조선 시대 여인의 삶을 그린 <자녀목>도 특히 인상적이었다.  많은 영화들 중에 선택되어진 27편의 영화만이 인간의 무늬(人紋)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아쉬워했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통해선 어떤 인간의 흔적을 말했을까, 궁금하다. 

 점점 쇠퇴하고 있다는 인문학,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인간을 다루는 문학,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디서나 인문학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장미와 주판 를 만나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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