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축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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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모두를 즐겁게 한다. 종교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엔 너도 나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석가탄신일에는 가족 건강을 기원하며 등을 밝힌다. 축제를 즐기는 이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분주해진다. 대목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슈루즈베리의 마을 사람들은 사정이 달랐다. 성 베드로 축일 이틀 전인 1139년 7월 30일,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르 수도원은 분위기가 심각하다.


제프리 코비저 시장을 필두로 상인들이 헤리버트 수도원장 후임으로 새로 부임한 라둘푸스 수도원장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용건은 축일장 수익의 1할을 요구였다. 내전으로 파손된 성벽과 도로 복구를 위한 비용 충당을 위한 합당한 제시라고 주장했다. 축일장이 열리는 3일 동안 시장 상인들은 장사를 접어야 하는 피해를 설명했다. 그러나 라둘푸스 수도원장은 원칙주의였고 원칙적으로 축일장 수입은 수도원 것이므로 나룰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이다.


캐드펠 시리즈 세 번째 『성 베드로 축일』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갈등을 보여주는 시작으로 처음부터 긴장감이 감돈다. 성 베드로 축일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각지에서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위험한 인물이 있을 거란 예상은 충분하다. 시장 상인을 비롯한 시민들이 축일장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상인들을 좋게 볼리 없으니까. 자신의 정원에서 허브와 약초를 관리하는 우리의 수사 캐드펠은 여전히 평온하다. 브리스틀에서 온 대상 토머스의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말이다. 그것도 알몸의 시체라니. 범인은 토머스에게 원한이 깊은 사람이 아닐까 짐작게 하는 정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머스가 죽기 전 코비저 시장의 아들 필립 사이에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온 상인들과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젊은 청년들은 다툼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위협을 느낀 토머스가 필립을 지팡이로 내리쳐 상해를 입힌다. 토머스의 조카딸 에마가 말리고 상인의 통역을 위해 근처에 있던 캐드펠도 그곳으로 달려가는데 한 청년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슈롭셔주에서 온 코르비에르였다. 캐드펠은 아름다운 외모의 에마를 바라보는 코르비에르의 눈길을 놓치지 않았다.


토머스를 죽인 범인으로 필립은 감옥에 수감되지만 에마는 필립이 외숙부를 죽였을 리 없다며 그의 편을 든다. 젊은 혈기에 다툼은 가능하지만 살인이라니. 강도를 위장한 살인으로 보였지만 캐드펠은 범인이 토머스가 가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는 걸 직감한다. 캐드펠의 직감은 맞았다. 누군가 토머스가 타고 온 배에 침입했기 때문이다. 없어진 게 없냐는 캐드펠 수사의 말에 에마는 축일장에 오면서 산 장갑을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범인이 찾는 건 무엇일까. 토머스가 지닌 게 아니고, 배에도 없다면? 외숙부의 죽음과 일련의 사건을 생각하면 에마가 위험할 수 있기에 에마는 휴 베어링 부부의 집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 사이 휴 베어링은 결혼을 했고 아내는 아이를 임신했다. 시리즈의 재미는 주인공의 활약과 더불어 등장인물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는 일 아닌가.


외삼촌의 장례식을 위해 움직이는 에마 곁을 코르비에르가 지킨다. 젊은 여인을 위한 사랑의 마음이라 보기에 충분하다. 그런 에마를 캐드펠도 조용히 관찰한다. 그러던 중 잃어버린 장갑을 사기 위해 장갑 장수를 만나러 가는데 이번에도 살인이 일어났다. 장갑 상인이 죽은 것이다. 누가 왜 상인을 죽였을까. 토머스,의 살인, 누군가 침입한 배, 장갑 장수의 죽음. 세 사건과 고통으로 연결된 건 에마뿐이었다. 그렇다면 에마는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범인은 한 명일까? 토머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필립은 나머지 두 사건의 용의자는 아니다. 토머스 사건도 필립의 친구들의 증언으로 그는 풀려낸 상태다.


필립은 자신을 믿어준 에마를 위해 진범을 찾기로 한다. 예상했겠지만 그건 사랑의 감정이 분명했다. 토머스가 죽던 밤 자신의 행적을 따라가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필립은 캐드펠 수사에게 그 사실을 전한다. 『성 베드로 축일』은 연이은 사건으로 독자를 정신없이 몰아친다. 범인의 동기도 모르겠고 범인의 윤곽도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수상한 이가 있다. 바로 에마다. 뭔가 숨기는 그녀, 캐드펠은 그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나처럼 궁금한 이를 위해 범인에 대해 살짝 언급하자면 범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과 별개로 『성 베드로 축일』에서 나를 붙잡은 건 캐드펠 수사의 이런 말이다. 왕권을 위한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전쟁은 신을 따르는 수도원의 수도사와 수도원 밖의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복잡한 정세, 신의와 신념이라 믿고 따르는 이들. 그들의 모습은 진정 신이 바라는 것일까. 지금도 전쟁은 이어지고 신은 무슨 생각일까 알고 싶다.


“죽음은 전쟁 중엔 죄 없는 여인들에게 떨어지고, 평화로울 땐 악인에 의해 저질러지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진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온 노인들에게,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떨어진다네.”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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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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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졌던 욕망은 한순간에 튀어나온다. 숨겨온 게 아니라 게 같은 자리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때다 싶은 타이밍에 움직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세 번째 『수도사의 두건』 속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로버트 부수도원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내전 당시 스티븐 왕의 편에 서지 않았던 헤리버트 수도원장의 권한이 정지되고 회의 참석차 런던으로 떠났으니 모든 권한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에게 있었다. 때마침 일어난 살인 사건 수사도 말이다.


사건은 이랬다. 자신의 장원을 수도원에 양도하고 남은 생을 수도원에서 보내기 위해 며칠 전 수도원으로 이사한 영주 거베이스 보넬의 죽음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보넬이 보낸 문서를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승인하지 않고 떠났다는 것.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보넬의 죽음으로 장원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도 관련자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캐드펠 수사에게 중요한 건 보넬이 독살당했다는 것인데 자신이 기른 약초가 살인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약초의 이름은 ‘수도사의 두건’으로 우리에게 투구꽃으로 익숙하다. 보넬이 먹은 음식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그에게 보낸 것으로 같은 음식을 먹은 부수도원장은 괜찮으니 범인은 보넬의 가족이나 하녀, 하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부엌에는 하녀 알디스와 하인 앨프릭과 메이리그가 있었다.


메이리그는 보넬이 하녀 사이에 낳은 자식이었으나 상속과는 무관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보넬의 의붓아들 에드윈으로 장원을 수도원에 양도한 것에 앙심을 품어 살해했다는 정황이다. 평소에도 보넬과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집을 떠나 매형의 가게에서 목수 일을 배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충분한 가설이었다. 더구나 도망치듯 달아났으니까.


보넬이 식사를 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에드윈이 음식에 독을 넣을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캐드펠의 진료소에서 약초를 훔쳐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약초의 효능을 아는 사람 말이다. 캐드펠의 작은 오두막에 있던 약초는 캐드펠과 진료소를 담당하는 수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진료소를 방문한 누군가가 범인일 가능성이 컸다. 억울한 범인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로버트 부수도원장는 에드윈을 잡아 사건을 종결하고 싶었다.


『수도사의 두건』에서 흥미로운 건 보넬의 아내 리힐디스와 캐드펠의 관계였다. 그렇다. 리힐디스와 캐드펠은 과거 연인이었다. 이 사실을 들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캐드펠에게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한다. 이제 사건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가 있으니 바로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서 캐드펠과 대등한 관계에 있던 휴 베어링이다. 사리분별이 가능한 그는 사건을 맡은 행정장관을 대신한 책임자였다. 행정장관은 왕의 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오. 힘이 든다고, 진실에 눈을 감은 채 편안한 것에만 안주해서는 안 되지 않겠소?” (238쪽)


캐드펠은 사건 수사에 관여할 수 없지만 아픈 수사를 돌보는 일은 가능했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 정보를 구하기에 충분했다. 누가 진료소에서 약초의 효능을 알고 몰래 훔쳤을까. 보넬의 죽음으로 장원을 소유할 가능성이 생겼을까. 보넬의 장원의 지리적 위치가 중요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간 접경지대의 가족 관계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통혼도 많았다. 리힐디스의 아들 에드윈은 보넬이 어떻게 죽은 지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었고 약초가 담긴 약병에 대해서도 몰랐다. 범인이라면 약병을 버렸을 것이고 약초를 따르며 흔적을 남겼을 게 분명하다. 몸소 체득한 지식과 지혜와 연류를 더한 캐드펠의 수사는 이번에도 완벽했다.


엘리스 피터스는 12세기 중세 모습을 치밀하고 상세하게 그려낸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안타까운 마음을 배제하지 않았다. 인간이 어떤 짓까지 벌이는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말이다. 『수도사의 두건』은 촘촘하게 잘 짜인 역사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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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8-16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봐도 뭔가 좀 어렵네요. 역시 역사소설은 장벽이 느껴져요 ㅠㅠ
시리즈라길래 봤더니 중세시대 영국배경의 탐정물? 뭔가 새롭네요.
자목련 님도 시리즈 정주행 중이신가요 ㅎㅎㅎ

자목련 2024-08-18 07:17   좋아요 2 | URL
제가 정리를 잘 못했서 ㅋㅋㅋ
완간 30주년 기념판이라 이미 팬이 많은 시리즈라고 합니다.

달자 2024-08-16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추리 소설이라.. 뭔가 색다른 조합인데요? 추리소설이 너무 어려우면 좀 힘들던데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셨네요 …!! 리뷰를 읽어도 좀 어려운 책 같은데.. 으으 호기심 그득그득

자목련 2024-08-18 07:18   좋아요 1 | URL
제 리뷰는 엉망이지만 소설은 무척 재미있어요. BBC에서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 드라마로 봐도 좋을 것 같아요!!
 

말복이다. 말복인데 더위는 이제 막 시작한 것 같다. 왜 이리 더운 것일까. 질문은 쏟아지는데 답을 찾을 수 없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될 줄 몰랐냐고 혼내는 것 같다. 그냥 온몸으로 꾸중을 듣고 벌을 서는 것처럼 여름을 보낸다. 지난 추 입추는 쪼금 달라진 것 같았다.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입추가 되니 손톱만큼 시원해진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었나 보다.

말복이고 내일은 광복절. 그래서 오늘은 택배가 오지 않는 날이다. 이 더위에 얼마나 다행인가. 새벽 배송을 운영하는 업체는 예외라고 하지만. 아, 엊그제 새벽 배송으로 먹거리를 주문하고 받은 나 같은 소비자도 한몫한 것일까.


말복과 책이니, 책 이야기를 해보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엎드리는 개』와 한정원의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도 기대가 큰 책이다. 한정원의 산문은 ‘한정원의 8월’이라는 부제가 있으니 8월이 가기 전에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이 두 권으로도 남은 8월을 채우기엔 충분하다. 읽는 것도 힘든 요즘이다.







뜨겁게 달궈진 더위는 식을 줄 모르지만 그래도 시간은 간다. 시작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란하고 긍정적인 화제를 낳은 올림픽도 끝났다. 이번 주말까지 잘 견디면 다음 주에는 더위가 식을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말복이니 삼계탕을 먹어볼까. 실은 어제 삼계탕을 끓였는데 실패했다. 삼계탕에도 실패가 있냐고 놀랄 수 있지만 가능하다. 내가 끓인 삼계탕은 분명 실패작이다. 그 사정은 기회가 되면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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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8-14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잉 엎드리는 개, 자목련 님 리뷰 벌써 기대됩니다~!!
근데 삼계탕을 직접 끓으신다고요????!!!! 놀라워라. 🙀🙀🙀

자목련 2024-08-14 09:50   좋아요 4 | URL
그냥 닭, 마늘, 짭쌀 넣고 끓이면 끝!
놀라운 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4-08-14 09:53   좋아요 2 | URL
찹쌀이 아니라 짭쌀을 넣어서...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8-14 09:54   좋아요 2 | URL
앗, 그렇군요!
심지어 급한 마음에 불리지 않은 짭쌀(찹쌀)을 넣어서 ㅋㅋㅋ

다락방 2024-08-14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계탕 이야기 꼭 들려주세요. 정확하게는 삼계탕 실패한 이야기!!

자목련 2024-08-16 11:01   좋아요 1 | URL
실패한 삼계탕 먹느라 고생한 이야기까지 써볼까요? ㅎㅎ

페넬로페 2024-08-14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정말 잠깐 온도가 내려간 것에 속았어요 ㅠㅠ
너무 더워 책도 읽히지 않아요.
집중력 저하를 더위 탓으로 돌리네요 ㅎㅎ
여름 가기 전에 삼계탕 한 번 해 먹어야겠어요
삼계탕에 넣으려고 녹두 구매해 놨는데 아직입니다~~

자목련 2024-08-16 11:02   좋아요 2 | URL
녹두을 생각하니 어렸을 적 녹두 따기 싫었던 기억이...
이 더위, 끝은 있겠죠?

독서괭 2024-08-14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입추라고 조금 나아진 것 같다 했었는데 말입니다… ㅜㅜ
삼계탕 직접 끓이시는 것만도 훌륭! 저는 뭔가 요리를 하면 희한하게 하라는대로 해도 맛이 안 나더라고요? ㅎㅎ

자목련 2024-08-16 11:03   좋아요 1 | URL
레시피는 왜 있는가 싶어요 ㅎㅎ
오늘도 무지 덥습니다. 시원하게 보내시길 바라요!!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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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피터스는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을 통해 성녀 ‘이니프리드’의 유골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고발한다. 이어 캐드펠 수사 시리즈 두 번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제목을 통해 살인이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시체 한 구가 복선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이야기일까. 기대를 안고 캐드펠 수사를 만나보자.


1138년 잉글랜드는 왕위를 놓고 모드 황후와 스티븐 왕 사이의 내전으로 전운이 가득하다.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캐드펠 수사는 오늘도 세상과 상관없이 수도원의 정원에서 자신만의 텃밭을 가꾼다. 수도원 밖은 전쟁터 그 자체다. 수도원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지만 캐드월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한다. 그런 캐드월에게 한 수사가 부모를 잃어 갈 곳 없는 어린 소년 고드릭을 부탁한다. 캐드월은 고드릭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며 고드릭을 찬찬히 살핀다.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서 고드릭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게 느껴진다. 캐드웰 시리즈 두 번째에 나의 추리력이 상승한다고 할까. 음, 미리 말하자면 그건 아니었다.


캐드펠 수사는 슈루즈베리 성을 함락한 스티븐 왕의 명령으로 시체를 수습하고 매장하는 임무를 맡는다. 스티븐 왕이 승리했다는 건 모드 황후를 지지하던 이들의 패했다는 것. 누군가는 이 기회에 모드 황후를 배신하고 스티븐 왕에게 신임을 얻기로 하는데 ‘휴 베링어’도 그중 하나다. 그는 모드 황후를 지지하던 귀족의 딸 고디스의 약혼자로 왕에게 고디스의 찾아내 그녀의 아버지의 행방을 왕에게 보고할 계획이 있다.


시신을 수습하던 캐드펠은 시체의 숫자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자에 따르며 수습할 시신은 ‘아흔넷’이라고 했는데 분명 하나가 더 있는 ‘아흔다섯’이었다. 누군가 살인을 저지른 후 시신의 무리에 몰래 갖다 놓은 것이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설사 발견되었다 해도 의심할 이가 없을 거라 자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캐드펠 수사는 아니었다.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만 했다. 다른 수사가 그 임무를 맡았다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겠지만 살인자는 운이 나빴다. 캐드펠 수사에게 대충은 없으니까.


교묘하고 잔인한 계획을 세운 살인자는 누구일까. 자신이 승리했다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자, 누구인가. 우선 죽은 자의 신원을 알아야 했다. 캐드펠은 그가 모드 황후의 편에 선 행정 장관의 향사 ‘니컬러스’였다는 걸 알아냈다. 프랑스로 보물을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고 그에게는 다른 일행도 있었다는 사실까지. 다행스럽게 캐드펠은 그 과정에 죽은 자의 다른 일행 토럴드가 다쳐서 숨어 있는 걸 발견한다. 고드릭와 함께 그를 치료하면서 살인 사건 전말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다면 스티븐 왕의 명령을 받은 이가 저지른 살인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신을 처리한 방법을 보면 그건 아니다. 또 하나 의문점은 보물의 행방이다. 캐드펠은 범인이 노린 건 보물이라고 확신한다.


소설 초반에 등장한 소년 고드릭으로 돌아가 보자. 이쯤 되면 그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는 휴 베어링이 찾아 나선 그의 약혼녀 고디스였다. 수도원에 숨어있지만 눈치 빠른 휴 베어링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캐드펠은 고디스를 수도원에서 안전하게 내보내기 위해 치밀한 계획은 세운다. 캐드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휴 베어링과의 대치 상황과 대결 구도는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휴 베어링이 캐드펠의 생각을 읽고 그의 계획을 망치는 건 아닐까 읽는 내내 마음 졸였다. 살짝 과장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할까. 생대를 제압하는 눈빛 대결,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포커페이스.


“모든 의문에는 반드시 답이 있기 마련이지.” 캐드펠은 경구 같은 말을 내뱉었다. “충분히 기다리기만 하면 말이오.” (131쪽)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곳이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성스러운 신의 공간인 수도원도 마찬가지. 저마다의 욕망을 감춘 채 수도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수도원으로 모여든 인간 군상의 욕망을 보여주는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첫 번째 이야기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보다 치밀한 구성으로 훨씬 더 매력적이다.


캐드펄의 인간적인 모습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범인의 정체는 물론이고 고디스와 토럴드의 달달하고 풋풋한 로맨스까지 한층 재미있다. 다음 이야기 『수도사의 두건』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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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8-1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리즈 저 구판으로 꽤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어디다 처분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당시 참 인기였고 유명했는데 저는 몇 권 읽다 말았죠.
이렇게 개정판이 나오니 또 다시 모으고 싶고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자목련 2024-08-14 09:45   좋아요 1 | URL
이미 읽으시고 소장도 하고 계셨군요.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인 매력과 뛰어난 통찰력에 반하고 있습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달달북다 1
김화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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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는 순간 재미와 감동은 줄어든다. 그게 일이든 사랑이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랑에는 권태기가 오고 주기별로 사표를 써야지 싶은 마음이 찾아온다. 누군가 다음 단계로 결혼을 택하거나 다른 사랑을 찾고 누군가 이직을 하거나 퇴사를 결심한다. 김화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속 모림도 그런 일상을 살아간다.


딱히 올라가야 할 목표 같은 것 없이 직장 생활을 하는 모림에게 팀장은 의욕을 갖고 적극적으로 일하라고 말한다. 결혼을 결정한 친구 성아는 모림에게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라고 조언하다. 모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직장에서 맡은 업무를 하면서 승진이가 고가에 대한 기대가 아닌 양심적으로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그런 모림에게 변화가 생긴다. 출근길에 우연히 들른 떡집 남자를 만나면서부터다.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남자가 떡집 아들이라는 건 몰랐다. 저녁 공원 산책을 하면서 만났다. ‘약밥이’라는 개의 주인인 ‘찬영’은 손님으로 온 모림을 기억하고 있었다. 모림보다 어린 남자, 부모님의 떡집에서 일하면서 머리를 꾸미고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 그러니까 MZ 세대로 보면 맞을까. 아침 출근길에 떡집에서 퇴근 후 저녁엔 공원원에서 만나면서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성아의 조언을 생각하면 찬영과 만남은 끝내야 하는데 모림은 찬영에게 이끌린다.


떡집이 등장하기 때문일까. 소설에는 ‘약밥이’란 이름처럼 떡과 그에 대한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데 충분히 작가의 의도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의도가 나쁘지 않지만 기발하거나 신선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이 짧은 단편을 공들여 쓴 것 같다. 모림의 3개월간 한 권이 책만 읽는 습관이나 모림이 읽고 있는 책 속 주인공의 이름을 찬영에게 모림이 붙여준 설정이 흥미롭고 재밌다.


나는 큰 얼음에서 쪼개져 떠내려가는,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조금씩 작아지는 얼음조각에 탄 무리에서 가장 아둔한 펭귄 같다. (…) 다른 얼음조각에 닿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 얼음을 꼭 붙여, 녹였다가 얼개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조랭이떡 같은 모양으로부터 넓어진 얼음 위에서 누군가와 함께 흘러가면 좋으련만. (54쪽)


찬영과 모림의 관계와 직장인으로 모림의 일상과 고민을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다. 섣불리 사랑이라 확신할 수 없지만 피할 수 없는 감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반복된 일상과 미지근하게 지속되는 감정을 가진 현대인의 모습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다.


저는 제 인생이...... 좀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다 제치고, 냅다 그런 말을 해버렸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욕망을 깨달은 것도 같았는데,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간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한참 늦더라도 내 마음대로 걸음대로 이 시대를 가로지를 것. 그것이 나의 목표다. (60쪽)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단편이다. 가볍게 산책하듯 읽기에 좋다. 재미없는 소설이나 어려운 책에 지쳤다면, 독서 권태기가 온 독자라면 다시 책과 이어줄 계기가 될지 않을까. 약밥이 같은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요즘 남자를 떠올리면 더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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