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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정미경의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를 힘겹게 읽어냈다. 힘겹게 읽어낸다는 표현이 좀 거창하기는 하지만 몽환적인 느낌과 여전하게 어렵고 슬픈 80년대를 꺼낸 소설이라 내게는 다소 힘들었었다. 그리고나서 이 소설집을 선택한 것은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라는 다정한 제목과 멋스러운 화원의 입구를 꿈꾸게 하는 표지도 한 몫 거들기는 했지만 장편이 아닌 단편은 어떻게 쓰여 졌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정미경은 은희경이나 공지영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우선 들었다. 나는 공지영과 은희경을 비롯한 여류작가를 좋아하는데 정미경의 소설집은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두 작가의 작품과는 차별적인 그 어떤 것이 있다. 공지영의 글은 섬세한 면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무척 절망의 빛이 역력하다. 은희경의 소설은 공지영의 글에 비하면 부드러움이 덜하지만 공격적인 느낌과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정미경의 문체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쓰여져 있으면서도 그녀가 가진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한 권의 책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건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염두해두기 바란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예로 보면 공지영은 과거만의 슬픔을 그대로 털어내고 있으며 은희경은 직접 그 내부에 들어가지 않은 채로 표현하고 있다. 정미경은 그 기억과 현재를 동시에 쓰고 있다고 할까? 아니다. 이건 나만의 궤변이다.
이 소설집은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녹록함과 내면의 진실과 보여지는 허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무화과 나무 아래 - 잘 나가는 다큐멘타리 피디인 나는 머나먼 타국에서 사형수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어차피 죽을 사람의 신장이라고 그렇게 자연스레 단정지으려 하지만 그는 그럴수가 없다. 나를 잃어버린 듯 방황하고 나를 찾으려 몸부림친다.
무언가 - 사고치는 엄마과 그 사고를 책임지는 딸. 가족만이 아니라면 달아나고 싶은 관계이다. 엄마라는 꼬리를 떼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며 그 안에서 딸은 살아가는게 지겹기만 하다. 그녀의 직업은 텔레마케터로 목소리로 세상과 사람들을 만난다. 보여지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득 공감하면서 의구심이 생긴다. 얼굴의 생김새가 변함에 반해 목소리를 변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다. 정말로 변하지 않는 것은 목소리일까,그렇다면 변하는 것은 무엇일까?
달걀 삼키는 남자 - 고양이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 스티브와 동거하는 나는 그 고양기가 너무 싫다. 거기다 매일 달걀을 삼키는 샘은 더 이해할 수 없다.결국 스티브 몰래 고양이를 안락사 키기기에 이르른다. 스티브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모에게 양육되는 과정에서 달갈을 삼키는 것으로 유일하게 칭찬을 받게 되고 그 이후로 매일 달걀을 삼키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란 어떤 의미일까? 존재함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일터인데 나 역시도 누군가의 그 본능을 모른척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치 않다.
모래폭풍 - 백화점 남성복코너에서 일하는 내게 온 한 남자.시간강사로 내 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경제적인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부드러운 말로 나를 위로하는 듯 하지만 내가 필요할때 그는 없다. 어쩜 그 진실을 알까봐 나는 두려웠는지 모른다. 지적인 그를 그가 던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었는지 모른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 집안에서 외톨이가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성형외과 의사인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잘 자라준 아들과 딸.어느날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집안은 엉망이 되버린다.4인 4색의 시선으로 쓰여지고 있는 단편은 고3의 수험생의 심리와 중산층으로 잘 살고 있는 듯 보여지는 한 가족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각각의 시선으로 서술되고 있는 이 글에서 그들의 공통된 한 가지 시선을 이끌어내낸 해결방법은 우리가 바로 찾아내야 할 과제이지 싶다.
검은숲에서 - 내가 여전하게 여기서 살고 있는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 절망감은 얼마나 클까? 어쩌다 보니 전입신고도 하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도둑이 들어 계약서를 도둑맞았고 약혼자는 나를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엉망으로 흘러가는 삶은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물론 똑똑치 못하다고 따가운 시선을 받을 지 모른다. 그렇치만 그런 삶들은 우리 주변에 엄연하게 존재한다. 사는게 힘들어서 그러기도 하고 너보다 내가 소중해서 그러기도 하며 나중에 라고 미루다 보니 또 그러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구와의 수다일수도 있고 점점 늘어나는 적금통장기도 하며 책에서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나에게 보내는 에쁜 포장안의 선물일 수도 있다. 책 밖에 있는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무얼 하고 있을까?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검은숲에서 나를 이끌어 낼 그것은 무엇일까?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 기러기아빠인 남자와 간호사인 재이는 정해진 관계를 지속해나간다. 서로에게 깊이 알려하지 않은 채 선을 그어놓고 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연하게 방송에서 그가 아내를 사랑하고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유학시켰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치만 그것은 보여지는 것이다. 그와 그의 아내는 아이들의 유학을 핑계로 별거중이며 아내를 이혼을 요구한다. 위층과 아래층의 관계로 만난 재이와 그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지만 보여지는 것은 그저 윗층과 아래층 이웃일 뿐이다. 그는 홀로이 죽게 되고 재이는 그의 이웃인 신분으로 그의 죽음을 맞는다.
7편의 소설속의 주인공은 PD,텔레마케터,영어강사,요리강사,대학강사,성형외과 의사등 소위 괜찮다는 직업들을 가지고 있고 소설속의 그들은 모두 활기차게 표현되어 보여지고 있으며 곳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가슴 한쪽에 보여지지 않은 힘든 삶의 모습도 여과되지 않은 채 보여준다. 해피엔드라는 결말을 찾을 수 있는 소설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끝이 아니기에 어떠한 결말도 맺지 않은 채 그대로의 모습으로 끝을 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다른 이의 죽음과 맞바꾼 나의 생명도 감사하지만 죄책감을 버릴 수 없고 핏줄이라는 이유로 나를 묶어놓고 있는 가족도 그러하다. 포기하고 싶은 내 삶도 포기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정미경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열심을 내고 살고 있다. 건조한 마른 장미꽃처럼 보이지만 그 마른 장미꽃이 간직한 향과 처음 만났을때의 그 싱그러움을 기억하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날들을 만난다. 누구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들도 만난다. 그럴때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혼자라는 사실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미경은 이런 많은 날들을 견뎌낸 듯 그렇게 앞선 삶을 살아낸 언니처럼 글 속에서 누군가를 달래는 듯 보여진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는 그런 눈을 만난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위로가 있다. 자신을 달랠 수 있는 건 자신뿐일때,그럴때 제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오래 우는 것이다 -2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