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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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상작 이라는 이름을 꼬리표로 달고 나온 소설은 언제나 큰 기대를 가지게 한다.  물론 많은 수장작가들은 그 뒤로 많은 좋은 작품들을 써냈고 몇 몇 작가들에 대해서는 그네들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기도 한다.
달의 바다를 쓴 정한아 라는 작가를 검색하면서 주저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게는 너무 낯선 신세대라는 점이었다. 호평이 쏟아지는  이 책의 선택은 다른 수상작에 비해 그렇게 먼 시간을 돌아서 내손에 들어왔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7쪽)
(사는게 선택의 문제라면 저는 제 손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싶거든요. 11쪽)
책을 펼침과 동시에 눈에 박히는 이 첫 문장을 읽는 순간,내가 가진 기우는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느낌을 안다는 것은 꾸며 지은 글이라는 소설 속 문장이라 하기에는 너무 소름 돋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은미의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내온 우주비행사의 일상과 달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편지 부분과 할머니의 부탁으로 고모를 만나러 미국에 다녀 온 은미의 이야기로 쓰여져있다.정말 고모는 우주비행사일까? 미혼모를 시작으로 불행이 함께 한 짧은 결혼생활의 끝에 그녀는 정말 할머니가 꿈꿨던 그 달을 왕래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고 있을까? 몇 년째 떨어지는 취업의 낙방을 뒤로하고 15년전 연락이 끊긴 고모를 만나러 가는 은미의 눈에 펼쳐진 고모의 모습은 편지의 내용과는 극과 극의 상황이었다. 탄탄대로가 펼쳐질꺼라 여겼던 고모와 은미의 성장과정은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하이웨이가 아니었다.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은미는 죽음을 준비하던 자신을 보게 된다.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매일 매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고모의 일상을 뒤로하고 은미는 월석이라며 미국에서 가지고 온 돌을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선물한다.

현실을 신으로 여기는 할아버지,꿈을 사랑하는 할머니, 대를 이어온 갈비집과 이제 더 이상 신문기자를 꿈꾸지 않는 은미,또 다른 나로 살기를 희망하는 친구 민, 이제 엄마를 꿈꾸는 찬이를 통해 이 소설속에는 현실을 자각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꿈꾸는 희망을 보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라는 것을 작가 정한아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고 해야할까? 아니,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것이리라. 그럼에도 소설속에서 묘사되는 달에 대한 환상은 어릴 적 내가 꿈꾸던 계수나무 아래 방아를 찧는 토끼의 모습이다.
(언제든지 명령이 떨어지면 저는 이곳에서 완전히 정작할 준비를 시작해야 해요. 그 때가 되면 더이상 편지는 쓰지 못할 거예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161쪽)고모가 보낸 마지막 편지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빛을 보이는 별을 믿고 달을 믿는다.

힘든 현실속에서도 아름다운 달을 선물한 고모의 눈물겨운 웃음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때로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행복을 주기도 한다. 또한 대를 이어온 갈비집에서 갈비를 자르는 은미의 웃음이 누군가에겐 거짓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은미에게는 진심인 행복인 걸 모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믿고 다가가고 있는 소망의 끝은 어쩜 허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이 우리의 삶이고 그 안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라는 막연함으로 책을 읽은 많은 호평속에서의 눈물대신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 밑에 덧글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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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2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있는데 아직 안 읽었어요.
리뷰 당선 또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07-10-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감사합니다. 혜경님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네요.
 
내 시대의 초상
이윤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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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화장을 하려고 거울 앞에 앉아있는 경우가 있다. 외출이 적은 내가 집안에서 한 번씩 화장을 하는 것은 적나라한 내 모습을 바로 보기가 두려운 것인지 모른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내 시대의 초상을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걸까? 묵직한 지난번의 책과는 달리 손안에 착 안기는 듯한 두께의 이 책은 네 편의 단편이 이어진 연작 장편 소설이다. 
21세기를 살고 있으면서도 현재를 부인하면서 과거속에 속하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수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고 하지만 일부분만을 기억하며 전부를 다 안다고 말하는 우리들의 현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샘이 깊은 물][뿌리 너무 깊은 나무]두 단편은 과거가 주가 되어 이야기 되고 있다.
구전동화처럼 전해지는 샘에 대한 이야기로 임금님의 말한마디로 인해 샘을 지키는 할머니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라를 잃은 임금님이 꼭 지키라고 했던 샘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쓸데없는 미신처럼 여겼지만 목숨을 다해  정갈하고 고고한 샘을 지키려 했던 할머니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할까? 그것은 신의 일까? 충이었을까? 지금이라면 물론 샘은 찾아보기도 힘들거니와 우리의 대통령은 여론을 의식해 그러말을 내뱉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 시대가 지남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샘뿐이 아닌지 모르겠다. 너무 강하여 결국 부러지고 말 것같은 성품을 지닌 친척이 전통을 고집하며 높은 눈을 고수하다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해 결국은 외국인 며느리를 보게 된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뿌리 너무 깊은 나무]에는 참으로 안타가움이 가득하다. 세상이 변함을 알고 그 변함에 전통을 접목할 줄 모르는 우리네 어르신들을 종종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제목을 통해 그 강조함을 더하고팠던 작가의 의중은 나는 헤아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와 [호모 비아토르]는 현재의 모습과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예시하고있다고 할까? 벌써 이 책이 나온지 4년이 지났으니 후자의 소설에서 말하는 시대의 모습은 흔한 광경이 아닌가 싶다. 승승장구 세상에 부러울꺼 없이 살아온 것으로 보여지는 50대 남자가 명예퇴직후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일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혹은 세상과의  단절이 얼마나 무선운 결과를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폭력의 욕구에는 안전판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폭력 욕구의 내압이 한계에 달하면 안전판이 열린다.이것이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다. 129쪽) 보여주는지 말하고 있다.
성공이라는 것에 즐거움이 있어야 진정한 성공인 것을, 세상과의 소통이라 여겨지는 많은 것이 실은 내적으로는 깊은 단절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마도 모른채 살고 있을 것이다. 말이 많을때 실은 외로운 것을 홀로 있을때 누군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면서 그런 면까지 신경쓸 수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렇치만 한 순간을 지나치는 반복에 어느날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마지막의 [호모 비아토르]는마치 We are the world를 듣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많다. 세상은 점차 벽이 사라진다고 한다. 중성의 개념이 강해지고 복잡한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싶은욕구는 점점 편리성이 가득한 개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소설속 주인공 박한우는 일찍 세상의 변모에 눈을 뜬 사람으로 점점 박한우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님을 시작으로 끝에는 세상이 하나로 이어지는 인터넷이 등장한다.

이윤기 작가는 과거를 지나 현재로 오는 이 소설을 통해 전통을 고수하자는 말도 미래에 발빠르게 대처하다는 말도 직접적으로 하려한 것은 아니리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접속사 같은 그것,소통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렇게 급속도로 변모한다. 화상통화가 멀게 느껴졌던 그 언제가를 기억할 수 없다. 원하면 뭐든지 손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현재 모습인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씩 확인하지 않으면 모르는 음성메세지를 간직했던 호출기가 그립고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 잔꾀를 일삼는 광고를 만들어내는 신기종 핸드폰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점점 구세대 집단에 속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시대의 초상은 하나만이 아니기에 나의 모습도 이 시대의 진정한 초상이라는 다소 아날로그적인 생각을 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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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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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온라인 서점을 클릭만 하면 여기 저기 달콤한 나의 도시가 춤을 추었다. 지인의 선물로 내 품에 온 은수와 친구들은 지금쯤 잘 살고 있을까? 그 사이 그네들은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고 자신만의 달콤한 도시에서 새로운 집을 짓고 살고 있겠지.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쓰여진 이 가을을 들썩이게할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책은 제목과 표지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입술만 동동 떠나니는게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은 진실이 아닐꺼라는 막연한 확신까지 던져준다.
 
정이현의 이 책은 지난해 장편소설보다 무척 밀도가 깊고 시선도 다양하다. 달콤한 나의 도시로 인해 국한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면 이 소설집을 통해서는 아마도 그 폭이 무척 넓어질꺼라는 것은 나만이 가지는 느낌이 아닐것이다.
10편의 단편속의 몇 편들은 내가 지나온 학창시절이 거슬러 올라오듯 많은 부분이 나의 또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어쩌면 그녀의 진짜 이력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되기도 한다.
서른중반을 넘어선 그녀가 만든 이야기 속에 그녀와 같은 연배의 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빨려들었는지 모른다.
나의 10대와 책속 그녀의 10대. 나의 20대와 그의 20대. 그리고 이어지는 내가 살고 있는 30대라는 지금의 모습.더 나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그 다음 세대를 포함한 이야기가 퍼즐처럼 펼쳐진다.
실제사건을 소재로 삼은 삼풍백화점과 드러내지 않았지만 거짓이 진실을 뛰어넘음을 잘 표현한 어금니,진실이지만 무기력하게 거짓이 되고 마는 그 남자의 리허설이 가장 기억에 남고 주목할만 하다.
 
삼풍백화점 - 그저 순탄하게 살아왔다고 말하는 나는 삼풍백화점에서 직원으로 있는 R을 다시 만나게 되고 취업준비를 하면서 저녁시간을 R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잦아진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지 그때는 몰랐을 나. 혼자 살고 있던 R에 대하여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또한 알지 못한다. 취업이 되면서 어느새 점점 연락이 멀어지고 사고가 일어나던 날 내가 그곳에서 빠져나오나 마자 백화점은 붕괴된다.
붕괴사건은 금새 잊혀지고 만다. 거짓말처럼. 그곳을 지키고 있는 아파트만이 그 땅을 기억할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다. 부의 상징으로만 여겨지는 강남의 어느 곳에는 화려함에 밀려 살고 있는 무채색의 삶들도 많다. 그 무채색과의 조화에 힘입어 우리는 화려해지고 있음을 가끔 잊고 산다. 정이현이 정말 썼을까? 싶은 느낌이 자꾸 드는 단편이다.


어금니 - 49번째의 생일을 맞는 중년여인에게 닥친 아들의 모습은 이미 썩어질대로 썩어버린 그래서 발치를 해아함이 분명한 어금니과 같다. 모범적이라 여긴 아니 그렇게 믿은 아들은 채팅을 통해 미성년자와 원조교제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 인사사고를 낸다. 아무렇치 않은 듯 교통사고 병실에 누워있는 아들과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나. 재력으로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남편. 셋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다.


그 남자의 리허설 - 시립합창단원인 남자에게도 총망받는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성악을 전공한 남자일 뿐이다. 그에 반해 아내는 뛰어난 연출기획자이며 재력이 든든한 집안을 두었다. 초고속 초고층의 무슨 무슨 아파트는 보안이 철저한다. 남자는 아파트를 나올때 경비의 극진한 인사를 받는다.그러나 남자가 지갑을 놓고 나온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경비앞에 섰을때는 남자는 외부인이며 불청객이 되고 만다. 결국 남자는 키를 받으러 아내에게 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남자는 구차하면서 쓸모없어 보이는 자신없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는 듯 현기증을 느낀다.자신에게 악취가 나는 듯하고 모멸감을 느낀다.

남자가 느끼는 내면의 감정변이와 남자를 둘러싼 시선처리가 무척 잘 쓰여졌다.
나머지 7편의 소설도 무척이나 구성력이 좋다.
이혼한 부부가 기르던 강아지를 놓고 시작된 갈등이 교통사고의 공범으로 마무리되는 타인의 고독, 거짓된 이용후기를 작성하는 일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인 오늘의 거짓말,80년대의 중학생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꼬집어 놓고 비밀과외는 특히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빛의 제국 어두워지기전에 익명의 당신에게는 현재의 겉도는 대화뿐인 부부,권력라는 힘의 아래속에 빛나는 거짓말등을 통한 안감힘을 쓰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 위험한 독신녀는 이 소설집에서 조금은 거리가 있는 이물감이 느껴진 소설이었다.
 
정이현은 그녀를 기다리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0편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모두 도시라는 배경속에 있지만 도시라는 화려나 불빛이 아니라 고층빌딩숲에서의 고독함과 외로움을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누구를 만나서 술잔을 부딪히며 하루를 마감하고 싶어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거짓이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싶어한다. 당신의 예쁜 포장지로 포장된 거짓말이 아닌 툭 내던지는 일상의 진솔한 한 마디의 진실을 기다리는 누군가를 돌아보라고 정이현은 그녀 나름대로 귀여운 웃음을 지어내며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다.
 
진실이라는 것은 항상 존재한다. 거짓이라는 것도 역시나 항상 존재하고 있다. 수 많은 거짓과 진실속에서 진실의 눈을 바로 찾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일뿐이다. 숙제라 여기면 또 어려울지 모르겠다. 반복된 학습은 때론 거짓을 진실로 여기게도 한다. 바른 눈과 바른 귀를 갖기를 소망함은 어쩜 거짓이 진실 인채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부질 없는 바람인지도 모른다.
 
한 번의 거짓말에 가슴을 졸이던 십대를 지났고 선의의 거짓말은 괜찮다고 눈감음으로 지나간 나의 이십대도 지나갔다. 그건 거짓말이라고 내심 알면서도 그래 한 번 만 봐준다는 마음로 사는 30대를 살고 있다.  명백한 거짓이 아닌 모호한 거짓의 경계(가끔 진위와 진심을 찾을 수 없는 경우) 를 만날때면 정말 당신의 진실이 무엇이냐고 소리쳐 묻고 싶지만 너무 큰 거짓이 드러날까  두려운 것은 나만이 겪는 갈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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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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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의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를 힘겹게 읽어냈다. 힘겹게 읽어낸다는 표현이 좀 거창하기는 하지만 몽환적인 느낌과 여전하게 어렵고 슬픈 80년대를 꺼낸 소설이라 내게는 다소 힘들었었다. 그리고나서 이 소설집을 선택한 것은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라는 다정한 제목과 멋스러운 화원의 입구를 꿈꾸게 하는 표지도 한 몫 거들기는 했지만  장편이 아닌 단편은 어떻게 쓰여 졌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정미경은 은희경이나 공지영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우선 들었다. 나는 공지영과 은희경을 비롯한 여류작가를 좋아하는데  정미경의 소설집은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두 작가의 작품과는 차별적인 그 어떤 것이 있다. 공지영의 글은 섬세한 면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무척 절망의 빛이 역력하다. 은희경의 소설은 공지영의 글에 비하면 부드러움이 덜하지만 공격적인 느낌과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정미경의 문체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쓰여져 있으면서도 그녀가 가진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한 권의 책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건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염두해두기 바란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예로 보면 공지영은 과거만의 슬픔을 그대로 털어내고 있으며 은희경은 직접 그 내부에 들어가지 않은 채로 표현하고 있다. 정미경은 그 기억과 현재를 동시에  쓰고 있다고 할까? 아니다. 이건 나만의 궤변이다.
이 소설집은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녹록함과 내면의 진실과 보여지는 허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무화과 나무 아래 - 잘 나가는 다큐멘타리 피디인 나는 머나먼 타국에서 사형수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어차피 죽을 사람의 신장이라고 그렇게 자연스레 단정지으려 하지만 그는 그럴수가 없다. 나를 잃어버린 듯 방황하고 나를 찾으려 몸부림친다.  

무언가 - 사고치는 엄마과 그 사고를 책임지는 딸. 가족만이 아니라면 달아나고 싶은 관계이다. 엄마라는 꼬리를 떼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며 그 안에서 딸은 살아가는게 지겹기만 하다. 그녀의 직업은 텔레마케터로 목소리로 세상과 사람들을 만난다. 보여지지 않는 것으로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득 공감하면서 의구심이 생긴다. 얼굴의 생김새가 변함에 반해 목소리를 변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다. 정말로 변하지 않는 것은 목소리일까,그렇다면 변하는 것은 무엇일까?  

달걀 삼키는 남자 - 고양이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 스티브와 동거하는 나는 그 고양기가 너무 싫다. 거기다 매일 달걀을 삼키는 샘은 더 이해할 수 없다.결국 스티브 몰래 고양이를 안락사 키기기에 이르른다. 스티브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모에게 양육되는 과정에서 달갈을 삼키는 것으로 유일하게 칭찬을 받게 되고 그 이후로 매일 달걀을 삼키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란 어떤 의미일까? 존재함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일터인데 나 역시도 누군가의 그 본능을 모른척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치 않다. 

모래폭풍 -  백화점 남성복코너에서 일하는 내게 온 한 남자.시간강사로 내 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경제적인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부드러운 말로 나를 위로하는 듯 하지만 내가 필요할때 그는 없다. 어쩜 그 진실을 알까봐 나는 두려웠는지 모른다. 지적인 그를 그가 던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었는지 모른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 집안에서 외톨이가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성형외과 의사인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잘 자라준 아들과 딸.어느날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집안은 엉망이 되버린다.4인 4색의 시선으로 쓰여지고 있는 단편은 고3의 수험생의 심리와 중산층으로 잘 살고 있는 듯 보여지는 한 가족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각각의 시선으로 서술되고 있는 이 글에서 그들의 공통된 한 가지 시선을 이끌어내낸 해결방법은 우리가 바로 찾아내야 할 과제이지 싶다. 

검은숲에서 - 내가 여전하게 여기서 살고 있는데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 절망감은 얼마나 클까? 어쩌다 보니 전입신고도 하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도둑이 들어 계약서를 도둑맞았고 약혼자는 나를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엉망으로 흘러가는 삶은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물론 똑똑치 못하다고 따가운 시선을 받을 지 모른다. 그렇치만 그런 삶들은 우리 주변에 엄연하게 존재한다. 사는게 힘들어서 그러기도 하고 너보다 내가 소중해서 그러기도 하며 나중에 라고 미루다 보니 또 그러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구와의 수다일수도 있고 점점 늘어나는 적금통장기도 하며 책에서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나에게 보내는 에쁜 포장안의 선물일 수도 있다. 책 밖에 있는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무얼 하고 있을까?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검은숲에서 나를 이끌어 낼 그것은 무엇일까?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 기러기아빠인 남자와 간호사인 재이는 정해진 관계를 지속해나간다. 서로에게 깊이 알려하지 않은 채 선을 그어놓고 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연하게 방송에서 그가 아내를 사랑하고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유학시켰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치만 그것은 보여지는 것이다. 그와 그의 아내는 아이들의 유학을 핑계로 별거중이며 아내를 이혼을 요구한다. 위층과 아래층의 관계로 만난 재이와 그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지만 보여지는 것은 그저 윗층과 아래층 이웃일 뿐이다. 그는 홀로이 죽게 되고 재이는 그의 이웃인 신분으로 그의 죽음을 맞는다.

7편의 소설속의 주인공은 PD,텔레마케터,영어강사,요리강사,대학강사,성형외과 의사등 소위 괜찮다는 직업들을 가지고 있고 소설속의 그들은 모두 활기차게 표현되어 보여지고 있으며 곳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가슴 한쪽에 보여지지 않은 힘든 삶의 모습도 여과되지 않은 채 보여준다. 해피엔드라는 결말을 찾을 수 있는 소설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끝이 아니기에 어떠한 결말도 맺지 않은 채 그대로의 모습으로 끝을 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다른 이의 죽음과 맞바꾼 나의 생명도 감사하지만 죄책감을 버릴 수 없고 핏줄이라는 이유로 나를 묶어놓고 있는 가족도 그러하다. 포기하고 싶은 내 삶도 포기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정미경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열심을 내고 살고 있다. 건조한 마른 장미꽃처럼 보이지만 그 마른 장미꽃이 간직한 향과 처음 만났을때의 그 싱그러움을 기억하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날들을 만난다. 누구에게 위로 받고 싶은 날들도 만난다. 그럴때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혼자라는 사실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미경은 이런 많은 날들을 견뎌낸 듯 그렇게 앞선 삶을 살아낸 언니처럼 글 속에서 누군가를 달래는 듯 보여진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는 그런 눈을 만난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위로가 있다. 자신을 달랠 수 있는 건 자신뿐일때,그럴때 제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오래 우는 것이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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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0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알고 어떤 내용인지 몰랐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괜찮을 것 같네요. 꾹!

자목련 2007-09-1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어보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07-09-2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도 축하드립니다.^^

코코죠 2007-09-28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 당선-! 좋은 소식 들려와 제 맘도 기뻐요. 선인장님이 거기 계시면, 오즈마는 항상 기뻐요^.^

자목련 2007-09-29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감사합니다.
오즈마님 감사합니다.

yanghuelee 2007-09-30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이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은 리뷰덕에 좋은 책 한권 더 읽게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

자목련 2007-10-0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nghuelee님.감사합니다. 읽어보시면 분명 좋아하실꺼예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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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을 읽어내면서 뒷문장을 곁눈질한다. 그러면서 또 그 다음문장을 행해 눈동자를 굴린다.
성석제에 대한 극찬의 글을 많이 읽어왔기에 더욱 더 그의 책이 궁금햇다. 아,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버튼 하나를 누르면 저 혼자서 집안 구석 구석 청소하는 로봇처럼 딱딱한 과일을 금새 부드러운 과일쥬스로 탈바꿈시기는 머신처럼 그는 술술술 작가라는 사람들이 고통속에서 작품을 쓴다는 것과는 다르게 그렇게 써내려갔을꺼 같은 나만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내 눈엔 탁월한 글쟁이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단단한 뼈가 있다.그 뼈를 교묘하게 위장해놓은 위장술이 대단하다.그 위장의 이름이 바로 이 책속의 주인공들인 황만근이며 남가이이며 동환이다. 그 뼈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는 것은 독자의 몫이리라.

이야기속의 소재 선택은 또 얼마나 탁월하며 기발한가? 성석제의 단편은 어릴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현대판 옛날이야기와 향토적 소재를 담은 구전동화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어수룩하며 배운게 없어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하고 어머니에게조차 사랑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어머니를 보호하며 살아온 효자,동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바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어느날 그가 사라지고 결국은 죽음으로 돌아온다. 황만근 그는 정말 어수룩한 바보인가? 자신에게는 단 한푼의 빚도 없었건만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농민궐기대회에 그의 분신과 같은 경운기를 타고 참가의 길에 나가지만 한 줌의 재로 돌아왔다. 구수하고 정감있는 사투리로 처음과 끝을 함께 하지만 그 안에 진정으로 황만근을 향한 정감있는 말투는 어디에도 없다.

천하제일 남가이 - 황만근과 비슷한 배경과 소재로 쓰여졌지만 황만근에겐 없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남가이에겐 있다. 그의 외모는 그가 내딛는 세상을 달라지게 한다. 가이라는 이름은 개에서 따온거라는 설명이 없었더라면 가이 아름다운 이름이라 나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에 환호하는가? 그것의 실체를 우리는 알고 있을까. 수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사실 나 역시도 글속의 남가이를 한 번 만나고 싶을 정도인 것은 사실이다.

천애윤락 -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동환과 나와 문학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동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나는 동환의 삶을 슬금슬금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환에게 나는 거의 하늘과 같은 존재의 친구이고 존경스러운 친구이다. 그 사이의 교각은 문학이 맡고 있다. 동환이라는 인물은 나에게 이런 저런 삶의 고비마다 도움을 요청한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그를 만나지만 나의 속내는 적지않게 그를 경멸하고 있다. 동환의 슬픈 결혼식에서 동환은 이렇게 말한다.나,나 말야.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75쪽

동환에게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와 문학.동환은 정말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동환의 구구절절하게 길기만 했던 삶의 무게가 전해져 이 문장이 너무 슬픈 빛으로 눈에 들어온다.그것이 과연 동환의 잘못이었고 동환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무지의 연속이기도 하다.

나머지 소설인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책,욕탕의 여인들,꽃의 피,피의 꽃들에는 반어적인 표현들과 남성적인 시선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알고 싶어하는 세상의 일면들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단편들의 주인공은 모두 남자이다. 성석제에 소설에는 힘이 있고 남자들의 걸죽한 목소리와 함께 그네들의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한 지배적인 심리가 가득하다. 그러면서 잘못된 그것들을 꼬집고 비틀고 있다.

작은 시골 동네의 황만근이나 남가이를 통해서 혹은 계라는 동호인들의 모임속에서 힘을 자랑하려하고 그러면서 위안을 받는 사람들,그 안에서 몰래 정당치 못한 권력을 쌓으려는 것들을 재미있는 어투로 쏟아내고 있다.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미끄럼을 타면 내려가는 내내 신나는 즐거움만이 있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미끌럼을 타는 것만 같았다.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려면 여러 개의 계단을 딛고 올라야하지만 그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이미 이 책을 만난 사람은 여전하게 성석제의 유쾌한 글솜씨를 기억할 것이며 처음 만난 사람은 더 많은 책들에서 더 많은 재미와 그만의 어투를 느끼고 싶을 것이다. 아직 못만난 그대라면 그대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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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라는 이름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만나보질 못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성석제씨의 유쾌한 글솜씨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군요.

순오기 2007-09-0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못만난 그대라면 그대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에 해당함을 신고합니다. ㅎㅎ

자목련 2007-09-1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돌이님,순오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