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현의 산문집 『환승 인간』 은 여행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환승’이란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소와 공간을 이동하는 뻔한 여행을 기대한 건 아니다. 경험하는 인간, 다른 나로 이동할 수 있는 삶 같은 그런 의미의 환승이었다. 갈아탈 수 있는 삶은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수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갈아타야만 하는 삶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 쓸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정현의 소설은 단편 한두 개 정도가 전부였다.
한정현의 소설이 궁금하지 않았다. 적어도 『환승 인간』이란 산문집을 읽기 전에는 말이다. 그가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소설 속에 자기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도, 그러니까 점점 더 나는 그가 쓴 소설이 궁금해지는 거다. 그는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일까. 이 산문집은 한정현이라는 인간의 삶의 이동경로인 셈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고 공부하는지, 그 모든 걸 그는 ‘환승’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자신을 설명하고 소설에 대해 말하는 방법, 하나의 관심사에서 다른 관심사로 이동하고 확장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가 볼 수 있는 앞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뒷면이 궁금해 파고드는 사람. 그래서 하나가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한 줄의 기사에 숨겨진 이면을 보는 사람, 국가나 사회의 폭력으로 아픈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 결국 그것을 소설로 써야만 하는 사람.
산문집을 읽으면서 좋아서 좋구나 하면서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하지 말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알려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가 아닌 프롤로그 더하기의 이런 부분이 그랬다. 우리는 우리가 환승하고자 원하는 것들에만 관심을 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 속 일원으로 혼자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므로 다른 삶의 환승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한정현은 바깥의 삶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할 수 있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마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손쉽게 쓰지만 사실 요즘은 그런 것마저 만들어내야만 견딜 수 있는 삶도 많다고 느낀다. 그런 삶의 환승의 수가 빈번하게 높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무수한 환승을 경험하면서도 순간 나 자신의 바깥에 놓은 삶에는 또 한 번 무감했던 것 같다. (「프롤로그 더하기」, 18~19쪽)
그러다 또 이런 구절에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사랑에 한정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라는 말. 가만 생각하고 돌이켜보니 사랑의 시작은 과연 그러하다.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한 되는 것, 그건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가 남는 것. 헤어짐의 슬픔이든 실연의 아픔이든 감당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69쪽)
감당하기 어려운 일,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삶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이름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 이름으로 환승하여 다른 이름 뒤에 숨어 버리는 일은 재미있다. 소위 부캐라고 할까. 여려 명의 나로 존재하여,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면 비대한 하나로 힘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다운 발상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우리로 환승하면 조금 쉽고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작가의 산문집은 작가의 생각과 관심사, 가족, 친구에 대한 개인적인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는 무척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별로 일 것이다. 나는 경계에 있다고 해두겠다. 한정현 작가가 뉴질랜드에 갔다가 그곳에서 더 공부하게 되고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의 우정이 그를 살리고 위로가 되었다는 건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너는 한국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외국인 친구의 질문. 그것은 그의 소설과도 연결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 그러니가 이 산문집을 읽고 그의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과 훨씬 더 가까워질 거라는 말이다.
영자원(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본 영화 이야기, 아빠와 함께 비디오테이프로 본 히치콕의 영화 <새>로 인해 생긴 조류 공포증부터 다양한 영화 리뷰도 흥미롭다. 그가 소개하는 영화는 제목도 낯선 영화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 <이다>, <마스터>,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무척 궁금한 영화로 남았다.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 어쩌면 나만 몰랐던 영화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영화를 통해 보고 전하려는 건 약자의 삶, 전쟁의 상흔, 진정한 자유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 다수의 목소리에 가려진 소수의 삶, 잊힌 개인의 이야기.
『환승 인간』에 대한 글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내가 원하던 바일 수도 있다. 나처럼 조금 더 한정현이 궁금해지기를, 한정현의 소설이 궁금해지기를 바라니까. 나는 읽지 않은 그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더 좋은 나로 환승하는, 더 좋은 쪽으로 나가는 그의 소설에 대한 기대가 생긴 것이다. 『마고』, 『줄리아나 도쿄』,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 들려줄 한정현이 궁금해졌다. 그의 할아버지 ‘주희’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