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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한 번뿐인 생을 생각하면 모든 게 의미 있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을 외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순간에 직면한다. 절실하게 매달렸던 것들이 무너지고 믿고 사랑했던 이가 배신하는 건 다반사다.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다 죽고 사는 게 아니라면 삶에 얽매일 필요 없이 단순하게 살는 게 제일 현명하다는 결론을 맺는다. 단순하게 사는 게 가능한가 싶지만 말이다.
지난 7월 사망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며 관계에 얽매여 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시작된 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존재,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하려 애쓰다 생을 마감하는 존재.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때로 무겁게 때로 가볍게 생을 살아간다. 아니, 영영 알지 못한 채 번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과의 만남을 운명이라 여기며 다른 삶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여 길을 잃는 사람들, 사실 잘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소설에 등장하는 네 남녀의 사랑이 닿고자 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선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을 보면 둘 사이 관계의 주도권은 의사인 토마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여자들을 자유롭게 만나는 토마시는 우연한 만남으로 그를 찾아온 테레자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토마시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테레자가 승자라 할 수 있다. 토마시의 특별한 여자 친구 사비나를 통해 출판사에서 사진을 찍게 된 테레자는 끝내 토마시와 결혼에 성공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소련의 침공으로 체코를 떠나 스위스로 간다.
스위스에서 테레사는 자신의 사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낀다. 체코에서 전쟁의 현실과 참상을 다루었지만 스위스에서는 선인장이나 장미를 찍어야 한다니. 테레사는 토마시와 상의 없이 프라하로 돌아오고 토마시는 그녀를 찾아온다. 토마시에게 테레사의 부재는 자유 그 자체여야 하지 않을까. 더없이 가볍고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었을 텐데. 토마시는 병원 일을 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을 신문에 기고하게 된다. 이념이나 정치를 떠나 그저 순수한 의견이었다. 그 일로 토마시는 감시와 회유의 대상이 되었고 테레사와 시골로 향한다. 의사가 아닌 창문을 닦고 나중에는 트럭 운전사가 된다. 테레사와 반려견 카레닌과 함께 살아간다. 마냥 가벼울 수는 없었다. 누군가 그들을 감시한다는 걸 알았기에.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골 생활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남녀는 어떤가? 토마시의 오랜 연인이었던 화가 사비나는 그와 헤어지고 스위스에서 교수 프란츠를 만난다. 프란츠 역시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둘 사이의 사랑도 평탄하지 않다. 사비나는 헤어졌지만 토마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동시에 그녀를 붙잡는 건 역사였다. 그렇다고 그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았다. 토마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가벼움을 누렸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으로 공산주의를 미학적으로 저항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말로 표현하면 배신이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조국을 배신했다. 그런 사비나를 프란츠는 이해할 수 없었다. 파리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고 과학자로 평탄하게 살아가는 프란츠는 사비나의 조국인 체코를 향한 동정심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모든 것을 책과 이론으로 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리에서의 투쟁이나 시위, 자유를 외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이상적인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네 남녀에게 삶의 변곡점은 작게는 서로를 만난 것이고 크게는 외부 작용인 역사의 소용돌이로 볼 수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마침내 토마시와 살게 된 테레자에게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고 토마시는 그래야만 한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토마시가 테레사를 거부하고 하던 대로 가벼운 삶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소설을 이끄는 건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1960년대 체코란 역사를 떼어놓을 수 없다. 그 두 가지를 실존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묘사하기에 어려운 소설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무거움을 따지기 이전에 존재 그 자체를 참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존재, 그것은 사랑, 이념, 역사,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63~64쪽)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네 사람의 사랑과 삶을 끊임없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저울질하면서도 한쪽으로 기울기를 거부한다. 마치 독자에게 어느 것을 선택할 거냐고, 어떤 게 더 나은 삶이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시작부터 화자는 내게 너무도 궁금한 존재였다. 네 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는 작가 밀란 쿤데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은 저마다 자신의 생을 사랑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그 과정이나 결과가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디에 의미를 두냐에 따라 그 삶은 지나치게 가벼울 수 있고 걷잡을 수 없이 무거울 수 있을 뿐이다.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9쪽)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 영속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역사를 마주할 때 안타까움을 어찌할 수 없다. 1960년대 프라하를 떠올리지 않아도 종교와 이념을 포기하지 못해 일어난 전쟁의 무게는 얼마일지. 우리가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그 분명하고 명확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존재의 경중을 떠나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설령 우리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볍다 하더라도 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존재 그 자체는 위대하다는 사실에 감동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