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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인생 ㅣ 앤드 앤솔러지
권제훈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평점 :
한국에서 집을 갖는다는 건 인생 성공을 의미한다. 그만큼 집을 갖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집에 대한 생각과 의미는 저마다 다르지만 온전한 내 소유의 집을 장만하는 일은 집의 크기나 가치와 상관없이 대단한 일이다. 언제부터 집을 가는 게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아니,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었을까.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전세사기 뉴스에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앤드 앤솔러지 시리즈 『전세 인생』에셔 현재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수록된 5편의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이거나 친구나 지인의 사정처럼 다가온다. 각 단편마다 작가의 집에 대한 생각과 추억을 들려준다. 집이란 무엇인가, 거주할 공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저 맘 편히 쉴 곳을 원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복잡해지면서 내가 살아온 나의 집들이 떠오른다. 집이 아닌 방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른다.
임장이 취미가 된 부부가 절대 살 수 없는 고급 아파트를 둘러보면서 느끼는 욕망과 상대적 박탈감을 그린 권제훈의 「오꾸빠 오꾸빠」에서 부부는 빈집에 들어가 48시간을 버티고 있으면 경찰도 어쩔 수 없다는 스페인의 ‘오꾸빠’를 언급하며 빈집 놀이를 이어간다. 같이 온 부동산 업자는 내보내고 집 주인인 양 방문객을 받기도 한다. 누군가는 지하를 겨우 면해 살고 있는데 다른 누군가는 혼자서 프라이빗 한 고급 아파트에 사는 게 우리 부동산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닿을 수 없는 고가의 집은 필요 없고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곳을 찾는 소시민의 모습은 고시와 공무원 준비를 하는 고시생들이 모인 노량진의 고시원의 풍경을 보여주는 김성준의 「유령들」과 전세사기를 당해 입주민들과 매일 대책 회의를 하는 아파트 주민의 안타까움을 담은 박생강의 「O션파크 1302호」에서 만난다. 고시생의 전유물이었던 고시원이 이제는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이라는 것,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는 점은 언급할 조차 없다. 전세사기로 인해 삶의 벼랑에 내몰린 주민들과는 상관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는 임대인에게 집은 돈을 버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유령이 된 전셋집 주인과 함께 지내게 된 이선진의 「보금의 자리」의 ‘나’는 언제라도 돌아갈 본가가 있는 애인과 달리 좁은 집이 전부였다. 평생 부족함이 없이 지내온 애인과 0,1평의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가능할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며 잦은 다툼으로 인해 잠시 떨어져 있기를 제안했고 건축을 전공한 애인은 철근 누락으로 인해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죽었다. 이 소설은 건설 현장을 고발하면서 집은 무엇인가 묻는다고 할까. 내게 가장 아픈 소설이었다.
집 같지 않은 집에서 삶 같지 않은 삶을 살다 보니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되어 가는 건가. ( 「보금의 자리」, 128쪽)
참 신기하지.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있어야 하는 자리를, 자신이 위치한 좌표를 정확히 알고 그보다 앞으로 나가가기 위해 안달복달했다. 더 나은 집과 더 나은 삶을 향해 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더 나은 사람은커녕 더 나인 사람이 되었다. (「보금의 자리」, 140쪽)
전 연인이 LH 임대 주택에 당첨되었다며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생기는 갈등을 자세하게 그린 임국영의 「옵션, 없음」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전 연인이 마련한 집의 방 한 칸에서 갈게 되었지만 집을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 전 연인에겐 애정의 공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집을 소유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전 연인에게 집은 욕망의 대상이었다. 현실적인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집, 그게 전부였다. 집을 대하는 태도가 같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머물 곳을 찾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만에 하나 행운이 깃들어 마음 편히 자리 잡을 장소를 발견한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초대장을 작성할 것이다. 아주 많은 종이에 글씨를 적어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하고 싶다. 이제야 조금은 안전해졌노라고. (「옵션, 없음」, 작가의 말 중에서)
내 집을 장만한다는 목표가 아닌 거주할 곳을 찾는 이야기, 어떻게든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려는 몸부림, 끌어모를 수 있는 대로 끌어모아 얻는 전세가 사기라는 사실에 절망하는 모습, 집에 대한 의미가 다른 이와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은 소설이 아닌 내 이야기, 우리의 사연이었다,
그래서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화가 나고 가슴 속 어디선가 치밀어 오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전세사기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세입자들도 생각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나의 애정은 무엇일까 돌아보기도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하고 멋진 house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쉴 곳 인 home 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