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되는 마녀, 『마녀의 역사』 란 제목을 보고 마녀사냥, 마녀재판, 화형 같은 게 떠올랐다. 정확하게 마녀에 대한 개념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만들어진 이미지와 이야기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마녀는 누구일까?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까지 마녀사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마녀의 역사』 란 책은 그런 궁금증을 불러온다.
책은 중세에서 근대까지 유렵에서 벌어진 마녀사냥, 마녀재판에 대해 들려준다. 누가 누구를 주도적으로 마녀로 만들었고 재판에 이르렀는지 말이다. 풍부한 자료와 해설, 그리고 강렬한 일러스트로 마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그 시대에 빠져들게 만든다. 초기의 마녀는 병을 고치고 사회를 지키는 존재였다고 한다. 고대 중동에서는 여신을 숭배했다. 고대 마녀들은 사회에 꼭 필요했다. 그러다 전사, 싸움, 남성 중심으로 남성 우위 문화와 종교의 발전하면서 마법과 마법을 쓰는 여성들에 대한 시선이 변화하였다. 기독교가 발전하면서 요술에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요술을 쓰고 마법을 쓰는 것은 기독교와 대립하며 악마와 결부된 것이라 여긴 것이다.
이처럼 종교든, 집단이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목적을 위해, 또는 정치적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고 악의적 소문을 내고 흠집 내는 일은 어느 시대나 똑같이 자행되어 왔다. 그 방식과 형태만 다를 뿐이다. 책에서 만난 마녀사냥을 통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잔혹함에 경악한다. 여기 공작부인의 경우를 보자. 공작부인이 마녀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잉글랜드 남동부 서리주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왕족과 결혼한 ‘엘리노어 코브햄’은 왕위 계승자의 아내였다. 그러니 곧 잉글랜드의 왕비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왕비 자리를 노리고 요술을 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의 목적은 그녀와 남편을 무너뜨리는 거이었다. 앨리노어가 신비 신앙(점성술)에 의존했다는 것, 그로 인해 왕비가 될 수 있을지 점쳤을 게 문제였다. 당시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교회는 신앙으로부터 일탈한 자를 벌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요술로 고발당한 왕가의 여성은 헨리 4세의 과부 ‘잔’도 있었다. 의붓자식 헨리 5세르 저주한 혐의였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4세와 결혼을 위해 요술을 벌였다고 규탄 받은 ‘엘리자베스 우드빌’도 있다. 이쯤에서 조선시대 궁궐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단 한 명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여러 후궁들의 다툼, 때와 장소만 다를 뿐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모습은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 이단을 근절하고자 대부분 여성을 마녀로 표적 삼았다는 건 안타깝다. 종교개혁자들도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틴 루터는 여성은 허약하므로 요사스러운 약속에 끌린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16세기부터 17세기 유럽의 마녀사냥으로 기록상 적어도 4만 명이 처형당했다고 한다. 기록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어느 시대든 반사회적 선동가가 출현해 민중에게 불안과 편견을 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원인으로 특정한 그룹이나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희생자는 유대인, 이미, 정부, 유럽연합, ‘지옥에서 찾아온 이웃’ 등 다양하나, 그것이 누구든 이 사회적인 병의 증상은 거의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알아야 한다. (『마녀의 역사』, 89쪽)
마녀 사냥꾼이 등장은 당연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마녀 분간법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몇 개를 언급하자면 과부이며, 고양이, 두꺼비 등을 기르고, 매주 교회에 가지 않고, 해가 진 뒤 밖을 나돈다, 혼잣말이 많다. 현대 사회에 적용하자면 내 이웃은 마녀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악의적인 마술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법도 흥미롭다. 고양이 시체를 벽에 묻는 관습, 마녀의 의자라 불리는 굴뚝의 튀어나온 돌, 밝은 색 유리로 만들어진 구체인 마녀의 공, 마녀에 대항하는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식물 마가목.
중세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마녀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고찰로 마녀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놀랍고 흥미로운 역사 속 마녀의 이야기는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사는지 말이다. SNS, 인공지능, 딥페이크를 통해 또 다른 마녀사냥을 하는 건 아닐까. 소문의 진위,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마녀의 역사』를 읽으며 떠오른 책이 있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다. 마녀와 악녀, 둘 중 누가 더 사회에 해를 입혔을까. 아니, 마녀와 마찬가지로 누가 그녀를 악녀로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역사에 남은 여성의 위대한 업적은 많지 않다. 대신 미모를 내세운 계략을 위해 이용되거나 부와 사치를 일삼에 민중의 적이 된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다.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일정 기간 국정을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리로 처리하던 수렴청정과 권력을 유지하려고 반대 세력을 몰살하는 드라마가 생각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악녀일까.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의 잔인하고 표독스러운 포정이 자꾸만 악녀와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저자 시부사와 다쓰히코가 선택한 12명의 악녀는 악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이 1964년에 나왔고 문고판 후기가 1982년에 쓰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60년 전에 나온 책으로 책에 등장하는 12명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악녀로 선택된 12명 가운데 엘리자베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클레오파트라, 측천무후, 마그다 괴벨스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나머지는 알지 못했다.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만났기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악녀들은 대체로 명문가에 태어났지만 근친상간이나 정략결혼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때문에 외도 상대 때문에 남편을 독살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가 소개한 악녀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것도 모자라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고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울한 삶에서 쾌락을 선택하거나 뛰어난 미모나 결혼으로 얻는 지위와 권력을 휘두르는 음란한 여성이다. 물론 하나같이 참혹한 결말을 맺는다.
책에 의하면 평생 처녀로 살다 간 엘리자베스 여왕은 수많은 남성과 관계를 맺었다. 여왕은 그들이 자신만을 사랑하길 원했지만 상대로 인해 마음고생도 심한 것으로 보인다. 쉰 세 살의 여왕이 사랑한 스무 살의 에식스. 점점 여왕을 등에 업고 거들먹거리는 그를 어떻게 봐줄 수 있겠는가. 야심이 강하고 폭력적이었던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욕망은 실로 대단한다. 아들 네로에 의해 암살을 당해 생을 마감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측천무후도 다르지 않다. 황제의 여인이 되었지만 질투가 심해 황제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둔 여인은 독살을 하거니 알 수 없는 죽음에 이르렀는데 그 대상은 자식과 며느리까지 다양했다.
12명의 악녀는 만족할 줄 몰랐다. 아마도 자신이 잡은 권력이 영원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여기면 모두 제거하려 했다. 자식이든 연정을 품은 상대도 가차없었다. 중세 유럽의 여성들과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 괴벨스는 성격이 다르긴 한다. 필요 없는 가정이지만 베를린 체육관에서 열린 나치당 집회에 가지 않았더라면 마그다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여왕, 왕비로 사느라 성이나 궁정에 갇혀 밖을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 역사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궁궐 안에서 살아내느라 자신만의 탈출구가 필요했던 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 주술에 빠지고 약과 독에 취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정신적으로 불안했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저자의 설명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에 쫓기듯 이것저것 놀이를 바꾸어가며 새로운 유행을 좇던 그녀의 광적인 향락 습성은 도대체 어떤 성격에 기인할까. 신앙심 깊은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경고를 받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대체 저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신지요? 저는 따분해질까 봐 두렵습니다.” 왕비의 이런 표현은 18세기 말의 정신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붕괴 직전의 고요함일지도 모른다. 혁명이 발발하기 전,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던 귀족 사회에서는 따분한 이외의 그 어떤 정신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면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춤을 계속 춰야 했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 117쪽)
12명의 여성은 악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먼 훗날 그들은 재조명될 것이다. 역사는 돌고 악녀의 계보는 추가되고 이어질 것이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는 책으로 만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같았다. 『마녀의 역사』와 『세계의 악녀 이야기』는 제대로 역사를 읽고 기록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기록은 중요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도 마찬가지라는걸. 마녀와 악녀란 프레임을 만드는 게 일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세계에는 아직 요술의 혐의로 목숨을 잃는 지역이 있다. 이성이 시대라 불리는 현대를 사는 우리도 이러한 상황을 성찰해야 하며,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에는 밝은 면이 있다. 오랫동안 추하고 고독한 외지인이라고 비웃음을 사고 두려움을 받아온 마녀들은 우리들에게로 돌아왔다. 긍정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 현대의 마녀 위키와 그들의 마법은 20세기에 착실히 인기를 모아, 긍정적이고 힘차게, 드높은 의지를 품은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암흑의 시대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21세기의 마녀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마녀의 역사』,1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