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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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연습이 있다면 잘 살 수 있을까. 아니다, 연습이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실전에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연습할 수 없기에 순간의 감정은 가짜가 아닌 진짜 최고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부끄럽고 후회로 남더라도 말이다. 윌라 캐더의 장편소설 『루시 게이하트』를 읽으면서 루시야말로 그런 삶을 살았구나 싶다.


추위에 떨지 않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춤추든 발걸음을 내딛던 루시, 어든 계절이든 쉬엄쉬엄은 루시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루시는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이 소설이 좋아서, 소설 속 루시를 상상하며 만나고 싶다. 살짝 상기된 얼굴에 긴장을 감추지 않는 표정을 상상한다. 루시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싶다.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지만 루시를 아는 모든 이의 가슴에는 루시가 살아있을 것이다. 소설로 만난 모든 독자에게도.


작은 마을 해버퍼드 중심가에서도 1킬로미터쯤 떨어진 서쪽 끝자락에 살았던 루시는 피아노를 잘 쳤다.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피아니스트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시카고로 간다. 그곳에서 운명의 만남이 이뤄진다. 우연하게 듣게 된 성악가 서배스천의 노래를 듣고 스승의 추천으로 그의 연습 시간 반주자가 된다. 매일 서배스천의 연습실로 향하는 길은 루시에게 가장 행복한 길이 된다. 그건 서배스천도 마찬가지다. 루시를 통해 잊고 있던 생의 기쁨을 생각한다. 서배스천을 향한 루시의 감정은 점점 깊어지고 서배스천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를 아끼고 존경하고 행복을 바라는 사이일 뿐이다. 루시는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루시가 성장을 알아본 이가 있었다. 그는 고향에서 가장 부유한 해리였다. 해리는 루시를 찾아온다. 오페라ㄹ를 보며 일주일을 시간을 보낼 셈이다. 루시는 해리가 자신을 찾아온 목적을 짐작했다. 친구를 만나 반갑고 좋았지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해리는 곧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루시는 아무렇지 않았다. 루시의 마음에는 서배스천이 있었고 그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소중했다. 둘 사이에 어떤 약속이나 다짐은 없었다. 서배스천은 루시에게 아버지뻘이었고 아내가 있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서배스천을 통해 배우고 더 좋은 연주를 하고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삶을 꿈꿨다. 그러나 꿈은 이뤄질 수 없었다. 비극적인 운명이 도착했다. 공연을 위해 떠난 서배스천이 사고로 죽은 것이다.


루시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어둠과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와 언니 폴린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지만 루시의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해버퍼드에는 루시에 관한 소문이 자자했다. 오며 가며 해리를 볼 수 있었지만 해리는 어떤 틈도 내주지 않았다. 루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추운 거리를 명랑하게 걷는 루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루시가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램지 부인은 루시를 부르고 따뜻한 말을 건넨다. 루시가 겪고 있는 상실과 슬픔을 위로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희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루시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 루시를 아끼는 마음이 전해진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나이, 스물하나, 스물둘에게 인생의 봄이 지나고 있을 뿐이니까.


“인생은 짧아. 할 수 있을 때 장미 꽃잎을 그러모아야지. 분명 루시도 조금 모았겠지.”

“조금요.”

“루시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봄이 힘든 일이 있었다고 낙담하면 안 돼. 네 앞에 긴 여름이 있는 데다가 모든 일은 때가 되면 풀리기 마련이니까. ” (173쪽)


그러나 타인의 말 한마디로 무너지고 가라앉았던 마음이 일어서는 건 아니다. 루시는 스스로 일어선다.오랜 시간 닫혔던 문을 열고 나간다. 아버지와 폴린과 함께 오페라 순회공연을 보고 온 다음 루시는 잊었던 마음을 찾는다. 순회 극단의 가수의 노래를 듣고 무대에 올라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를 통해 서배스천을 본 것일까. 어떤 뜨거운 갈망. 그랬다. 루시의 가슴엔 여전히 서배스천이 존재하고 있었다.


서배스천 자체가 앎으로 향하는 문이자 길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191쪽)


만약, 만약 생 자체가 연인이라면? (중략) 아, 이제는 알았다! 루시는 가져야만 했다. 도망칠 수 없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그의 정체성을 이루는 모든 것을 손에 넣어야 했다. (192쪽)


루시는 다시 한번 성장했고 앞으로도 성장할 일만 남았다. 이 소설은 루시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수많은 루시를 떠올리게 만든다. 과거에 루시였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소설이 아름다운 건 루시 때문이 아니다. 작가가 그려낸 소설 속 모든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그들 역시 성장해서다. 루시의 재능과 반짝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지원한 서배스천. 그가 루시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루시를 향한 서투른 마음으로 다른 선택을 한 해리의 인생도 그렇다. 고향에 돌아온 루시를 대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루시와 그녀의 가족이 모든 떠난 뒤에도 루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해리. 루시의 꿈을 응원하며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 대신 가계를 책임지고 살아야 했던 폴린.


혼자 남은 해리가 그 모두를 기억한다. 루시의 반짝이는 삶을 기억하고 무언가를 지향했던 루시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루시가 되고 누군가는 해리가 된다. 인생이 연습이 있었다면 그런 전제는 필요 없다. 그러 모아놓은 장미 꽃잎이 적다해도 말이다. 인생이 어느 계절을 살든 순간을 사랑하는 루시가 그랬던 것처럼 차가운 겨울 따위는 두렵지 않을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소설이 생각할 것 같다. 어느 계절에 읽어도 좋겠지만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겨울에 만나면 더 애틋하고 아름다울 것 같다. 추운 날에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강렬해진다는 루시를 만날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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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4-11-20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장소설과 성장영화를 정말 좋아하는지라 소개해주신 소설 <루시 게이하트> 바로 구매했습니다. 추운 날에는 살아있다는 감각이 강렬해진다는 제목에 이끌려 서평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여름의 무기력함이 겨울이 되자 사라지는 기분이 참 신기해요. 작년 겨울에 혹독한 추위를 제대로 겪었기에 그런가봐요. ˝연습할 수 없기에 순간의 감정은 가짜가 아닌 진짜 최고가 된다˝ 라는 서두의 문장에 흠뻑 반했습니다. 최근 들어서 경험한 일련의 사건들을 한번에 정리해주는 감사한 문장입니다. 연습이 아닌 삶의 모든 순간들이 이제서야 비로소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네요. 덕분에 좋은 소설 읽을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자목련님의 감각적인 서평들 하나씩 소중하게 읽어나가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친구신청도 해봅니다ㅎㅎ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자목련 2024-11-20 17:1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전야제 님^^
댓글 남겨주시고 친구 신청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겨울도 어마어마하게 춥다고 해요. 하지만 겨울이니 추운 게 당연하겠지 싶은 마음을 가져봅니다. <루시 게이하트>는 정말 아름답고 좋은 소설이에요. 전야제 님도 반하실 게 분명합니다.즐겁게 읽으시길 바라요^^*
 
2024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조경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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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안간힘을 쓰고 끊어질까 불안에 휩싸인다. 무엇으로부터 끊어지고 내쳐지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러다 한순간 알게 된다. 사는 건 언제나 불안과 두려움의 연속이며 그것과 화해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걸 알아차린다 해도 온전히 수긍하기가 어디 쉬운가. 오랜만에 읽은 조경란의 단편 「그들」 속 인물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아서. 그들과 우리가 너무 닮아 애처롭다.


「그들」은 영주와 종소 두 사람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노인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살고 있는 종소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지만 임용 과정에서 제외됐다. 어머니를 지켜보는 일은 힘들고 현재는 일자리가 없는 상태인 종소는 자신을 배제한 최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아내 영주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간다. 복수라니, 어떻게 복수를 하겠다는 말인가.


그에 반해 교수 남편을 두고 카페를 운영하는 영주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상하게 지금껏 지켜온 생활이 무너져버릴 거란 불안이 영주를 힘들게 한다. 단출한 에코백을 챙겨 카페에 출근해 보내는 시간이 영주에게 위안이다. 손님으로 온 종소가 남편과 아는 사이라는 걸 안 후에도 불편하지 않다.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교류가 오가는 건 아니다. 그저 뭐랄까. 서로의 불안을 조금 알아차리는 것 같다고 할까.


경제적 어려움과 어머니의 우울증을 지켜보는 종소,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아들 상현과 그를 보호하는 남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영주. 카페 주인과 손님으로 그저 인사를 나누고 스치듯 대화를 나누며 손님의 뜯어진 주머니를 꿰매줄 수 있는 사이. 그러다 종소가 카페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문을 밀었을 때 안에 있던 사람의 머리를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종소와 영주가 다친 손님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최교수가 신속하고 원만하게 처리한다. 그동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물론 그런 건 아니다. 영주에겐 아들 상현과 종소에겐 일자리와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있다. 하지만 일상은 이어진다. 종소는 아침마다 어머니를 살피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어머니가 부탁한 소금을 사야 한다. 영주는 고장 난 전기밥통을 고쳐야 했다. 소소하지만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들처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종소의 어머니에게 소금이 있으면 괜찮아지는 것처럼 그들과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소금이 존재할 것이다. 살아갈 수 없는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현재를 긍정하기에 충분한 거 아니겠냐고 조경란은 말한다.


소금. 어머니가 여름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소금이었다. 어머니는 어떤 한시적인 어려움이 생겨도 먹는 일에 관해서는 소금만 있으면 겪어낼 수 있다고 믿었고 중소에게 여름은 소금만으로는 부족한 계절이었다. (중략) 그러니까 어머니는 올여름을 지나실 모양인가보다고. 십 킬로그램짜리 천일염을 몇 포대쯤 사놓으면 어머니가 계속 살아가고 싶어할까. (「그들」, 40~41쪽)


「그들」 다음으로 「조각들」이란 동명의 단편이 인상적이다. 반수연의 「조각들」과 이승은의 「조각들」이다. 반수연의 단편은 어린 딸을 위해 한국을 떠나 밴쿠버에서 자리 잡은 목수 아버지와 성인이 된 딸이 미국으로 취업을 해 독립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민자의 삶이란 세대가 변하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는 다양한 삶을 인정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타국의 청년의 자리에 딸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딸이 살아갈 집을 살피고 고치는 모습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출입문 나사는 조일수록 헛돌았다. 나사를 단단히 물고 있어야 할 나무가 썩어 부스러기가 떨어져나왔다. 이 상태라면 금세 나가가 헐거워져 문이 저절로 열리거나, 열어야 할 때 열리지 않을 것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썩은 부분을 도려내기로 했다. (반수연의 「조각들」, 176쪽)


이승은의 「조각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려는 사람의 이야기다. 카페를 운영하며 수제 쿠키를 팔던 서경은 현재 타운 하우스의 입주 도우미로 생활한다. 다시 카페를 운영할 계획을 세우며 주인 부부가 여행을 떠난 사이 쿠키를 굽는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은 옆집에서 온 손님이 찾아오며 조각난다. 놀랍게도 그들은 과거 서경이 카페를 운영했을 당시 가게의 물건을 훔친 고등학생들이었다. 옆집이 고모 집이라며 그곳에서 영화를 찍을 거라고. 서경은 그들을 도우면서 타운 하우스의 진짜 주인처럼 행동한다. 주인 부부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면서 서경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위기를 모면하려 거짓말을 하기에 이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었으니까.


서경은 산산이 부서진 삶의 조각들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조각들을 모아서 원하는 삶을 다시 꾸리고 그 조각을 사람들과 나누는 날을 꿈꾼다. 부단한 노력으로 잃은 것들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서경은 그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있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 서경은 무모한 사람일까. 아니면 용감한 사람일까. (이승은의 「조각들」, 312쪽)


세월호 참사 십 년을 담담하게 기록한 조해진의 「내일의 송이에게」, 바람을 피우는 아들의 뒤를 밟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태식의 「그래도 이 밤은」, 정신질환을 겪는 아들을 돌보는 가족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그린 안보윤의 「그 날의 정모」까지 다채로운 단편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이색적이고 기발하고 놀라웠던 단편은 신용목의 「양치기들의 협동조합」였다.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걷는 화자가 스페인 내전 당시 희생된 주민들의 무덤에 군자금이 묻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는다. 그러나 무덤을 파헤치는 밤이 지나고 그곳에 어떤 곳인지 깨닫는다. 아픈 역사의 현장이자 삶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픽션이지만 정말 어딘가 그런 곳이 존재할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소문에 가려 우리는 진짜 역사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반성하게 만든다.


불안한 삶을 달래고 위로해 줄 고정된 무언가를 생각한다. 그것은 안정된 일 자리와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라는 누군가로 이어진다. 그러다 생각을 달리한다. 삶은 언제나 불안정하다고. 상수(常數)였다고 믿었던 것도 변수(變數)가 된다고. 그게 삶이라고. 그러니 한여름을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소금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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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세계 - 어느 알려지지 않은 차원과 그곳에서 온 기이한 생명체들에 대한 기록
유린 지음, 도밍 그림 / 고블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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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다른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외계인이나 미확인 우주 물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귀신 혹은 영혼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괴담을 넘어 기이하고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다만 그들을 모른 척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니 여기 판타지를 넘어 호러와 공포 미스터리의 합체라 할 수 있는 『너머의 세계』는 낯설게 다가온다.


우선 책의 형식과 구성이 독특하다. 표지만 봐도 기묘하지 않은가. 그 수상함은 삽화로 더욱 증폭된다. 수년 전 웹에서 인기 있던 시리즈를 연재했던 작가 유린을 아는 이라면 반갑고 기대가 클 책이다. 단순한 공포 소설이 아닌 나폴리탄 괴담(출처를 알 수 없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을 취재한 결과물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전단지, 인터뷰, 일기, 녹취록 같은 증거들을 모아 사건을 상상하게 만든다. 목차도 침투, 사냥, 잠식으로 의심스럽다.






괴담이 발생하는 장소는 우리에 익숙하고 친근한 공간이다. 매일 등교하는 학교, 아파트, 극장, 서점, 놀이공원 같은 일상 공간에서 괴담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아파트 복도의 표식, 안내문, 꼼꼼하게 읽지 않는 사용 설명서, 사실은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무섭다.


산장에서 사라진 손님,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자리를 이탈한 후 돌아오지 않은 학생, 영화관 B동 근무자가 긴급 호출 시 마주한 이상한 형체, A동의 이상한 소문, 한옥마을에서 반인반귀(半人半鬼)상태로 인간을 잡는 사냥하는 귀잡기 놀이, 입주민 봄 소풍에서 사라진 세대, 모든 게 의심스럽지만 사건의 정황이나 증거도 찾기 어렵다.


6층 8관에 대해 떠도는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직원 여러분은 고객들에게 사실을 안내하시기 바랍니다. 상영관 내에서는 사망자 또는 실종자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바닥 청결 상태를 점검하다 D11 좌석에서 물기 어린 발자국을 발견했다면 매점으로 가십시오. 매점에서 사탕을 받아 놓아둔다면 발자국은 사라질 것입니다. (54쪽, 「영화관 근무자를 위한 업무 매뉴얼」)


공식적인 관리자가 아닌 다른 이가 배포한 유인물, 존재하지 않는 호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존재, 무엇을 믿어야 할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만약 그 공간에 내가 있다면 어떨까. 아니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상한 산장 안내문을 발견했거나 특별한 서점에 방문했거나 새벽에 자꾸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당장 그 공간을 벗어나는 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공포가 스며든 몸은 통제 불가한 상태가 될 테니까.







세 번째 안내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 아파트 복도나 중앙 현관에서 물웅덩이를 밟는 듯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다가가거나 직접 확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만일 우연히 그곳을 지난다 해도 절대 쳐다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아이 컨텍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 (131쪽, 「그 아파트의 축제」)


○○아파트에서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도대체 무엇이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을까요? 취재 팀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계속 취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길 바라며 오늘의 뉴스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63쪽, 「그 아파트의 축제」)


읽는 내내 불안과 긴장감이 더해지는 책이다. 뭔가 책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공포물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미 나폴리탄 괴담을 즐기는 이라면 흠뻑 빠져들 책이다. 길고 지독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의 입구가 아닌 더위의 한복판에서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책이다. 추리 스릴러의 계절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살짝 팁을 공개하자면 눈치가 빠른 이는 책 속의 모든 괴담이 연결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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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산책시키기 - 당신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10가지 방법
벤 알드리지 지음, 김지연 옮김 / 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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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문제와 직면한다. 예상하고 대비했던 문제가 아니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만 그렇다고 여기지만 사실상 모두가 그렇다. 하나의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이후가 달라진다. 우왕좌왕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와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해결을 찾아 나선 이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도 처음부터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모든 어려움에 맞서 보험을 들거나 각 분야의 전문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바나나 산책시키기』의 저자 벤 알드리지도 다르지 않았다. 달랐다면 그는 스토아 철학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바나나 산책시키기』 란 호기심을 불러오는 제목의 이 책은 저자가 스토아 철학에 영감을 받아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들려주는 책이다. 어렵게 말하자면 스토아 철학 일상 적용이라 할 수 있고 쉽게 말하자면 주체적으로 삶을 이끄는 10가지 방법에 대한 안내서라 하겠다. 그러니 스토아 철학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버려도 좋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스토아학파는 외부 사건, 즉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 대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불확실하기에 우리가 그 결과를 좌지우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자들은 외부 사건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나의 통제력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집중함으로써 인생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46쪽)


저자가 소개한 ‘안티 버킷 리스트’는 스토아학파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리스트가 아닌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리스트가 안티 버킷 리스트다. 딴지를 거는 이가 있을 것이다. 버킷 리스트도 하기 어려운데 왜 안티 버킷 리스트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목록(아주 사소한 것들 - 벌레 만지기, 통화 포비아)를 하나씩 도전한다면 정복하지 않더라도 해보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 수 있다. 인생의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주체적으로 삶을 이끄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자발적 불편함 추구하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운명을 사랑하기, 스스로 돌아보기, 역할 모델을 찾기, 부정적인 상황도 염두에 두기, 내 마음을 통제하기,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상대하기, 죽음을 생각하기, 우주적 관점 지니기로 10가지다. 저자는 10가지 항목을 소개하면서 각각 스토아철학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현재의 삶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자발적 불편함 추구하기에 바로 책의 제목인 ‘바나나 산책시키기’가 등장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나나 산책시키기’는 말 그대로 줄에 묶인 바나나를 산책시키는 일이다. 반려견과의 산책을 떠올리면 된다. 상상해 보라, 당신이 바나나를 산책시키고 있다면 얼마나 창피할까. 그러나 수치심을 깨뜨린 경험이 생긴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이 생길게 분명하다. 거기다 자발적으로 물을 덜 마시거나 SNS와 단절하고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다면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도 염두에 두기는 뭘까. 부정적 시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정적 시작화란 하나의 일에 대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일을 가상해서 대비하는 것이다. 저자는 암벽 등반가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등반 중 맞닥뜨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를 상상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일이다. 아마도 한 번쯤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새로운 공간을 방문할 때 발생하는 위험 요소. 이런 연습은 실제로 부정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니까 삶 자체에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생각하게 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일상의 불편함은 크다. 그제야 지금껏 잊었던 손가락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한다.


주체적으로 삶을 이끄는 10가지 방법 가운데 끌리는 것부터 먼저 만나도 좋다.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과 딱 맞는 주제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막연하게 다가올 두려움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인생은 얼마나 비참한가.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알고 있다고 다 내 것이 되는 건 아니다.


걸음을 멈추고 장미 향기를 맡아 보라. 인생은 언젠가 끝이 나고, 그럼 더 이상 피자를 먹을 수 없게 될 거란 걸 기억하라. 미래는 불확실성의 연속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지만, 괜찮다. 어떤 어려움에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으며, 훈련을 통해 그 힘을 더욱 키울 수 있다. (351~352쪽)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려주고 조언해도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른 자기 계발서가 그렇듯 벤 알드리지가 스토아철학에서 발견한 내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내 삶에 적용시켜 실천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이제 미루지 말자. 각자 삶의 주도권을 잡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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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은 무엇일까. 눈을 감아봐야 알까. 아니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일까. 어쩌면 마음의 평정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제목만 보고 잠언 비슷한 글이 아닐까 짐작했다. 제목 때문에 에밀 시오랑이 생각나기도 했다. 생에 마지막 2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로 모두 9편의 짧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1940년~1941년에 쓴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신기하게도 그가 살아온 시대는 80년 전인데 마치 지금의 우리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사는 건 결국 다 같은 것일까.


그는 말한다. 절망과 비탄이 가득한 삶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실패와 좌절 대신 웃음과 사랑을 바라보며 그래야 한다고. 그래서 이 짧은 9편의 이야기는 아프면서도 위로받는 기분이고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맨 처음 만나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은 물질만능주의를 살면서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누가 봐도 초라한 행색의 청년 ‘안톤’은 가진 게 없다. 그러나 정작 안톤은 걱정이 없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타인에게 나누고 돈이 아닌 필요한 것들로 받는다. 아름다운 순환이라고 할까.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면 그만이다. 그런 마음은 최악의 인플레 사태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나에게 돈이란」으로 연결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고 깨닫게 한다.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돈의 실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나에게 돈이란」, 42쪽)


3년은 편히 살 수 있는 거액의 돈뭉치를 내고 빈 오페라 티켓을 샀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슈테판 츠바이크. 석탄 부족으로 난방이 되지 않아 코트를 입고 따닥따닥 붙어 앉은 관람객. 음악가의 훌륭한 연주와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전하는 감동. 돈이 줄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알려준다. 돈을 좇는 삶이 아니라 돈에서 자유롭고 돈이 아닌 삶의 가치를 생각하라고.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나에게 돈이란」, 44쪽)


존경하는 로댕의 작업실에 방문하고 그의 집에서 본 로댕의 놀라운 작업 열정에 반한 「영원한 교훈」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프랑스 혁명사를 읽다가 발견한 사소한 일화에 대한 것이다. 루이 16세가 콩코르드광장에서 처형되는 극적인 날, 광장과 지척인 센강에서 수많은 낚시꾼이 평소와 다르지 않게 낚시를 하고 있는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통찰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그것이다. 우리가 살고 만드는 역사. 삶이란 무엇이며 역사란 무엇인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역사를 진정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모든 역사책이 센강의 낚시꾼에 관한 그날의 사소한 일화를 빼놓지 않고 다루기를 바란다. 우리는 현재 매일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센강의 낚시꾼」, 53쪽)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센강의 낚시꾼」, 54쪽)


슈테판 츠바이크의 완벽한 문장으로 빛어낸 훌륭한 이야기는 짧고 강렬한 글에 담긴 심오한 울림은 오래 곁에 머문다. 그래서 한번에서 끝나지 않는다. 분량이 짧기도 했지만 좋아서 두번 읽게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으면서 히라오 마시히로의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가 생각났다. 닮은 듯한 제목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다 같지만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니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범과 도덕이 필요하다.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를 혼란에 빠진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 무질서한 사회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학습했다고 할까. 그럼에도 우리 삶에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필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는 윤리학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도덕과 윤리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눈에도 안 보이고, 있는 것이 당연하며, 딱히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린 바로 죽을 것입니다. 도덕이 없으면 바로 죽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지금 내가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면 이미 우리 주변에는 도덕, 윤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32~32쪽)


윤리는 무엇이며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막연하게 다가오는 질문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개인의 윤리는 자유, 사회의 윤리는 정의, 친밀한 관계의 윤리는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하여 강의한다. 윤리의 기본 원리를 12개이며 3개의 영역에서 세분화하여 4개로 설명한다. 정의와 윤리철학에 대해 이론적 내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실험, 소설, 게임, 정치에서 어떻게 윤리가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이고 강렬한 사고실험은 이렇다. ‘버튼을 누르면 1억 엔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선가 모르는 사람이 죽는다면 버튼을 누르겠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단순하게 1억 엔인데 누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모른척할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 다른 누군가가 버튼을 누르고 그 누군가의 죽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나는 모두 개인이고 내 위치에서만 생각하면 끝나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도 남에게도 좋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 이것이 윤리이고 정의가 아닐까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도 할 수 있고 상대가 해도 되는 일은 나도 해도 된다는 것, 바로 상호성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혼자가 아닌 사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관계는 무척 중요하다. 나 개인으로 존재하면 그만이라 여길 수 있지만 개인고 개인이 연결된 사회에서 개인은 나이면서 동시에 상대이고 결국은 우리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시작이라는 것이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명제다.


자유라는 것은 나에게는 권리가, 남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모두 해당하니 남에게는 권리가 나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뜻도 됩니다. 나의 권리는 타인의 의무와 세트입니다. 의무를 지키면 나의 자유는 제한되지만, 그것은 나의 권리를 즉,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124쪽)


80년 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에서 전하는 긍정과 사랑이 정의와 윤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할까 하는 문제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모인 사회의 윤리는 그럴 수 없다. 사회 윤리는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어야 하니까. 저자는 그것을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 말한다. 개인, 사회, 친밀한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 어렵지만 우리가 찾아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정의 자체가 윤리의 일부이며 사랑과 자유도 윤리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원했던 윤리는 이 모든 것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들 중에 하나가 튀어나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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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1-12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대의 사람들은 역사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구절에 공감이 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궁금해 졌습니다. 자목련님의 좋은 글 감사 합니다. _()_

자목련 2024-11-13 16:07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었어요. 현재의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신기했고요.

달자 2024-11-13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느강 낚시꾼의 일화는 특히 많은 울림을 남기네요. 좋은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4-11-13 16:09   좋아요 0 | URL
다른 이야기도 좋았지만 말씀처럼 그 일화는 여운이 오래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