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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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으로 다시 만난 백수린의 『다정한 매일매일』에서 나는 다른 문장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같은 부분에서,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 거라 여겼는데 놀랍게도 아니었다. 읽으면서 그래,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 더듬더듬 기억이 나긴 했다. 4년이라는 시간 탓일까. 빵과 소설 쓰기로 둘러싸인 백수린의 일상에서 빵이 아닌 소설, 그러니까 소설과 삶에 대한 부분에 글이 좋았다.


나의 한계를 알지 못한 채 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쳐 시작했으나 남들이 능숙해지도록 혼자 여전히 서툴고 쩔쩔매는 일. 남들 앞에 선보여야 할 때면 늘 자신감이 없지만 결과물이 어떻든 그만둘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게 소설 쓰기와 베이킹은 어쩌면 아주 닮은 작업. (24쪽)


백수린에게 빵을 굽는 일, 소설을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일이라고 해서 언제나 즐겁고 기쁘고 만족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상하고 의도한 것과 다른 완성도에 절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고 놓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읽었다. 그런 마음이 곳곳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다양한 빵과 에피소드와 곁들인 책 소개를 읽으면서 낯선 빵을 검색하며 맛을 상상하기도 했다.


초판으로 읽었을 때 느끼지 못한 어떤 감동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건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이제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단편을 알고 좋아한다는 말이다. 깊은 절망과 고통의 연속이 삶이라는 걸 안다. 이런 문장에 고개를 끄떡일 수 있다. 어둡고 힘든 시절의 내게 건넨 소중한 이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나는 삶이 고통스럽거나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무기력한 마음이 들 때 이 소설 속 빵집 주인이 건넨 한 덩이의 빵을 떠올리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28쪽)





다시 읽었을 때 처음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세상에나 정말 그랬다. 장마철에 읽어서 그랬을까. 윌리엄 트레버의 『비 온 뒤』가 읽고 싶어졌다. 백수린의 말대로 트레버는 사건의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대신 흐르는 대로 일상을 묘사하는데 그게 정말 우리의 삶이 아닌가 싶은 거다. 어떤 일들은 애를 써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폭우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를 마주하는 게 삶이니까.


그런 마음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로 연결된다. 교수로 성공했다고 할 수 없고 아내와 불화한 삶. 그러나 그가 원하는 문학의 삶은 놓지 않았다. 무언가 포기하지 않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우리네 삶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당신과 나는 반드시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고 고독과 외로움 앞에 수없이 굴복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사실이다. (252쪽)


나만의 빵과 어울리는 나만의 책을 골라보고 싶다. 빵의 자리엔 다양한 것들이 대신할 수 있다. 좋아하는 과일, 좋아하는 음식, 나처럼 좋아하는 잔을 골라도 좋겠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이라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읽고 다른 무언가로 확장하는 책 읽기는 얼마나 뿌듯한가. 그냥 제목처럼 다정한 글이며 매일매일 한 꼭지씩 읽어도 충분한 책이다. 읽을 때마다 좋아하는 빵, 처음 만나는 빵을 먹어도 좋겠다. 빵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빵과 함께 선물해도 멋지겠다.


초판을 읽고 나는 부드러운 식빵 같은 책이라고 했는데 개정판을 읽으면서는 어렸을 적 엄마가 만들어준 술빵이 생각난다.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엄마가 최선을 다해 만든 빵이다. 그때 엄마의 삶을 닮은 빵 같다. 어떤 삶을 살든 최선을 다하는 일, 그 안에서 기쁨의 맛을 만들어내는 일. 백수린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것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소설이 삶을 닮은 것이라면, 한길로 꼿꼿이 가지 못하고 휘청휘청 비틀댄다 해도 뭐 어떤가. 내가 걷는 모든 걸음걸음이 결국엔 소설 쓰기의 일부가 될 텐데. 길 잃고 접어든 더러운 골목에서 맞닥뜨리는, 누군가 허물처럼 벗어놓고 간 쓰레기들과 죽은 쥐마저도 내 빵이 필요한 이스트나 밀가루가 될 텐데.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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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날들을 바란다. 그러니까 장마에 대한 이야기다. 밤마다 무섭게 쏟아지는 장맛비. 아침에는 말 그대로 밤새 안녕했냐는 안부를 전한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감사하게도 큰 피해가 없고 지인들도 안전하다. 내가 안도하는 날들, 누군가 어려움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자연재해라 해도 피할 수 있는 영역도 있다는 걸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다. 그런데도 놓치는 부분이 있다는 게 안타깝다.


장마의 날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지나가는 얕은 바람이 반갑고 잠깐의 햇볕이 고맙다. 어제오늘은 장마와 거리를 둔 날씨 덕에 젖은 마음을 말리는 중이다. 이런 책도 마음을 말리는 데 좋다. 7월의 책은 한국 단편소설.





작년 7월에 깜짝 출판으로 기쁨을 안겨준 김연수의 단편. 김연수의 단편집은 아니다. 음악소설집으로 김연수, 김애란,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음악이 흐를지 궁금하고 기대가 크다. 프란츠 출판사의 책은 처음이다.


그리고 이런 소설도 있다.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떠올리는 제목의 김화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이 책은 단편소설 시리즈로 로맨스 소설인 것 같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양장으로 단편을 출간한 위픽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직 자두를 먹지 못했다. 올여름의 자두를 먹어야 하는데 구매를 못하고 있다. 온라인 주문을 하까 싶다가도 온라인에서 과일을 산 친구의 후기가 별로여서 주저한다. 쉽게 먹을 수 있었던 과일을 먹기 힘든 날들이 올지도 모른다. 금값인 사과를 떠올리니 그렇고 기후 변화에 따른 결과라는 걸 생각하면 서글프다.









올해의 자두는 먹지 못했지만 여름엔 수국이 있다. 올해도 나는 수국을 주문했다. 풍성한 수국이 예쁘다. 수국수국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이 여름, 수국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하나. 맛있는 자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먹어야 한다. 여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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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7-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크와 아이보리의 컬러 조합. 제가 코디에 자주 사용합니다요. 물론 상의가 핑크요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7-12 10:10   좋아요 1 | URL
잠깐 오늘 물감 님은 어떤 옷을 입으셨을까 상상해봅니다^^

망고 2024-07-1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자두 비싸더라고요. 근데 저희집 자두나무에도 자두가 별로 안달렸어요ㅠㅠ
수국은 정말 너무 예쁜 꽃! 자목련님 수국에 저 잎줄기 꺾어다 화분에 심으면 뿌리가 나옵니다 수국 한번 길러 보셔요😁

자목련 2024-07-12 09:53   좋아요 0 | URL
마트에 자두가 없어서 구매를 못하고 온라인을 뒤적이고만 있어요.
자두 먹어야 하는데 ㅎㅎ
잎줄기에서 뿌리가 나오나요? 정말 신기하네요!

독서괭 2024-07-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이 아름답네요~ 아직 자두를 못 드셨다니! 전 자두 먹을 때마다 입덧할 때 생각이 납니다 ㅋ
장마 피해 더이상 없으면 좋겠어요 ㅜㅜ

자목련 2024-07-12 09:55   좋아요 0 | URL
수국은 정말 예쁩니다!
아가들도 자두를 좋아할 것 같은데 맞을까요?
다음 주에 또 비가 온다는데 걱정입니다.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사마란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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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은 흐릿했다. 겨우 찾아낸 사진이 그랬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고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큰언니의 영정사진은 멋지고 환했다. 큰언니의 취미 가운데 하나가 사진이었는데 출사를 다니며 찍은 사진이 많았다. 만약 엄마가 챠밍 미용실에 갈 수 있다면 엄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과 헤어를 해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은 사마란의 소설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를 읽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눈엔 내가 그냥 동네 미용실 아줌마로 보이지?”

그녀가 빙긋이 웃으며 할머니를 마주보았다. 할머니의 얼굴은 고단했던 일생이 그대로 담긴 듯 깊은 주름살이 패어있었다.

“할머니는 지금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여긴 낮엔 산 사람들 머리를 해주지만 밤이 되면 죽은 사람들이 단장을 하러 오는 곳이거든. 산 사람 꿈에 들어가기 전이나 죽어서 저승에 가기 전에 들러 예쁘게 단장을 해. 할머니도 저승 가기 전에 예쁘게 하고 가.” (112쪽)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챠밍 미용실’은 죽은 사람을 단장해 주는 미용실이다. 낮에는 산 사람을 상대하고 밤에는 죽은 자를 만난다. 그게 가능하다고? 원장 챠밍이라서 가능하다. 챠밍은 이런 일을 500년 동안 해왔다. 죽은 사람을 보는 건 물론이고 고양이와도 말을 나룰 수 있다. 챠밍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걸까. 그녀는 혹 귀신이나 구미호가 아닐까. 그러나 작가는 챠밍에 대해 함구한다. 그냥 그런 존재라고 나중으로 미룬다. ‘도깨비 복덕방’의 사장도 챠밍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만 슬쩍 흘린다. 소설은 챠밍 미용실에 방문하는 죽은 자의 사연이나 원한 같은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호러이면서 판타지인 세계로 안내한다.


챠밍은 죽은 자를 단장해주고 그들에게 구슬을 받는다. 구슬은 챠밍에게 깊은 잠을 안겨준다. 죽은 자와 챠밍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존재인 것이다. 도깨비로 통하는 복덕방 사장은 챠밍과 판(신) 연결하는 존재다. 챠밍이 요즘 꾸는 이상한 꿈 때문에 도깨비에게 신과 만나기를 요청한다. 판은 쉽게 챠밍을 만나 주지 않는다. 챠밍과 도깨비에 이어 웹툰을 그리는 의명이 현월동으로 이사 오면서 소설은 한층 더 재미를 더한다. 도깨비 복덕방의 소개로 이사 온 빌라에서 집밥을 먹고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란 계획은 한순간 무너졌다. 고물과 쓰레기로 가득 찬 1층 할아버지와 그 집 손자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신경은 예민해졌고 기이한 꿈까지 꾼다. 거기다 편집장은 그림이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참다못한 의명은 이 모든 게 1층 때문이라고 여기고 망치를 들고 1층을 찾는다. 그런데 그곳엔 할아버지와 손자는커녕 할머니의 시체만 있었다. 의명이 보고 들은 건 무엇일까?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 의명은 죽은 자를 보는 사람이었다.


의명은 도저히 그런 빌라에서 살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모른 채 부랴부랴 집을 나와 본가로 향한다. 그림 그리는 걸 못마땅해하는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갈 수밖에 없다. 트렁크를 끌고 가는 도중에 한 남자와 부딪혔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가 판이라는 걸 의명은 알 리가 없다.


소설은 챠밍과 도깨비에 이어 의명이 합류하여 죽은 자를 안전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죽은 자만이 아니라 현월동 사람들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풀어간다. 학폭에 시달리지만 아빠에게 말할 수 없는 만규, 그런 만규를 괴롭히는 석훈의 사정, 어린 나이에 결혼해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만 해온 슈퍼 할머니를 도와주고 위로한다. 그리고 궁금했던 챠밍과 도깨비의 사연도 공개된다.


소설 속 현월동의 모습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동네다. 낡은 빌라, 편의점이 아닌 동네 슈퍼, 부동산이 아닌 복덕방이 있는 곳이다. 친근하다 못해 개발이 필요한 곳, 뭔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만 벗어나고 싶은 동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고단한 삶과 외로운 죽음을 조명한다.


저승으로 가기 전 단장한다는 설정과 죽은 자를 보는 능력은 드라마 〈야한(夜限) 사진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도 드라마화되면 좋을 것 같다. 오싹한 공포와 오컬트를 좋아하는 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소설이다. 더위를 날려 줄 재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을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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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7-10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는 독실한 불교 신자라 회색 법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써 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 사진이 너무 칙칙해 싫더라고요. 근데 당신이 원하시니 그때 사용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죽으면 뭔가 다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영정 사진만큼은 늙은 모습이 아닌걸로 사용하고 싶어요^^

자목련 2024-07-11 16:12   좋아요 1 | URL
문득, 신자들이 입는 법복은 색상이랑 디자인이 다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정 사진이란 말만 들어도 먹먹해집니다.
말씀처럼 죽으면 그만이니 남겨진 이들이 어떤 걸로 결정할지 알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 죽음이란....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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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댓글 가운데 광고는 삭제한다. 스팸 차단 키워드를 이용해 관리한다. 불특정 다수가 읽지 않기를 바라는 글은 이웃 공개나 비공개로 올린다. 운영자니까 내 블로그라서 가능하다. 내가 정한 기준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의 게시물의 유해성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일까. 어떤 기준으로 영상이나 이미지를 삭제하는 것일까. 하나 베르부츠의 소설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를 읽기 전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다양한 게시물이 올라올 것이고 나쁜 의도를 가진 이도 있을 터. 누구나 볼 수 있으니 혐오나 공포를 조장하는 것들은 제재를 가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이미지나 게시물을 삭제하는 일의 어려움이나 트라우마는 생각한 적이 없다.


AI의 기술로 유해 이미지를 자동 삭제한다는 글을 읽은 적은 있다. 그러나 삭제할 대상이나 이미지를 일일이 입력하는 건 사람이 해야 한다고 기억하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일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좋은 것도 반복해서 보면 질리고 감흥이 없는데 매일같이 유해한 것들을 보고 삭제 여부를 검토하는 일은 얼마나 힘들까. 누군가 보수가 높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소설은 대기업 하청업체 ‘헥사’에서 콘텐츠 감수사였던 케일리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인터뷰 형식이라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기분이다. 그녀는 누구의 질문에 답하는 것일까. 얼핏 사회고발 프로그램의 PD가 아닐까 싶지만 변호사다. 헥사에서 일한 동료들이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케일리도 동참하기를 바란다. 케일리는 동참할 생각이 없다. 그녀에겐 그저 직장일 뿐이니까. 집단소송이 이슈화되면서 사람들은 케일리에게 그곳에서 무엇을 봤냐고 묻는다. 가장 최악이 무엇이냐고 답을 기다린다. 호기심과 관음증을 바탕으로 한 무례한 질문이다. 그러나 만약 나라면 그 궁금증을 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케일리는 업무가 끝나면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다고 여겼던 건 아닐까. 케일리에겐 동료가 있었고 헥사에서 새로운 연인도 만났다. 아름다운 ‘시흐리트’를 만난 이 직장이 유해할리 없다. 그러나 업무 환경은 시흐리트에겐 트라우마가 되었다. 시흐리트는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한 먹거리를 주문하고 보호하려 애쓴다. 휴가를 내기도 한다. 케일리가 특별한 사람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영리한 작가는 케일리를 통해 독자가 판단하기를 원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동료들은 내가 낮 동안 무얼 봤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죠.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런 게시물이 어떤 느낌이고 의미인지 알 수 있었어요. 근무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내리고 올릴 건지 얘기를 나눴어요. 이따금 누군가 “야, 지금 진짜 지랄 같은 걸 봤어”라고 말하면 나머지 우리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죠. 잠시나마 홀로 내버려둬야 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요. (52쪽)


소설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구독하는 유튜브가 없고 숏폼이나 릴스 같은 영상을 찾아보지 않지만 잔인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영상을 볼 때가 더 많다. OTT에서 보는 드라마나 영화는 갈수록 폭력성은 강하고 노출은 심하고 과도하다. 그곳의 심의는 누가 하는 것일까. 결제를 했으니 그곳에서 유해한 게시물은 없는 것일까. 오직 나의 판단과 기준만 남은 것인가.


내가 헥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케일리처럼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일하는 동안 휴대폰을 지참할 수 없고 유선전화조차 없는 환경에서 정해진 클립을 다 확인해야 하는 업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영상을 보면서도 영상에서 누군가 죽음의 위기에 놓여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퇴사를 결정한 동료의 말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그냥 더 이상 인간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뿐이야.” (127쪽)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만 소설 속 헥사처럼 음지의 영역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짧은 분량으로 많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게시물과 동영상이 업로드된다. 누군가 유해하다고 여긴 게시물은 누군가 무해하다고 판단하여 삭제 대상이 아닐 수 있다. 나는 그런 게시물 게시자가 아닌가, 유포자는 아닐까. 지금 내가 클릭한 이 게시물은 유해한가, 아니면 무해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공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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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7-0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다락방 님이 궁금해했던 그 책이네요?! 역시 리뷰는 자목련 님이 먼저 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7-04 11:56   좋아요 1 | URL
부장 님은 너무 바쁘시니 ㅋㅋㅋㅋ

다락방 2024-07-05 17:18   좋아요 1 | URL
저도 사두긴 했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7-04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 정말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 ㅠㅠ 유포된 성착취물 찾아서 삭제하는 일을 하는 분들도 다른 데서 봤었는데 에휴... 올리는 것들 지옥에나 가라~~!!
자목련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24-07-05 17:14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퇴근 후에도 영상이 따라올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도 분명 이런 직업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말씀처럼 N번방 같은 놈들 다 지옥에 가야~~
독서괭 님, 주말 신나고 즐겁게 보내세요^^

blanca 2024-07-0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는데 자목련님의 리뷰는 믿고 구입하렵니다.

자목련 2024-07-05 17:16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이 소설 괜찮았어요. 소설을 읽으며 생각도 많이 했고 이제 영상을 접할 때 쉽게 클릭하지 못할 것 같아요. 블랑카 님의 리뷰, 기다릴게요^^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되는 마녀, 『마녀의 역사』 란 제목을 보고 마녀사냥, 마녀재판, 화형 같은 게 떠올랐다. 정확하게 마녀에 대한 개념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만들어진 이미지와 이야기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마녀는 누구일까?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까지 마녀사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마녀의 역사』 란 책은 그런 궁금증을 불러온다.


책은 중세에서 근대까지 유렵에서 벌어진 마녀사냥, 마녀재판에 대해 들려준다. 누가 누구를 주도적으로 마녀로 만들었고 재판에 이르렀는지 말이다. 풍부한 자료와 해설, 그리고 강렬한 일러스트로 마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그 시대에 빠져들게 만든다. 초기의 마녀는 병을 고치고 사회를 지키는 존재였다고 한다. 고대 중동에서는 여신을 숭배했다. 고대 마녀들은 사회에 꼭 필요했다. 그러다 전사, 싸움, 남성 중심으로 남성 우위 문화와 종교의 발전하면서 마법과 마법을 쓰는 여성들에 대한 시선이 변화하였다. 기독교가 발전하면서 요술에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요술을 쓰고 마법을 쓰는 것은 기독교와 대립하며 악마와 결부된 것이라 여긴 것이다.





이처럼 종교든, 집단이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목적을 위해, 또는 정치적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고 악의적 소문을 내고 흠집 내는 일은 어느 시대나 똑같이 자행되어 왔다. 그 방식과 형태만 다를 뿐이다. 책에서 만난 마녀사냥을 통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잔혹함에 경악한다. 여기 공작부인의 경우를 보자. 공작부인이 마녀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잉글랜드 남동부 서리주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왕족과 결혼한 ‘엘리노어 코브햄’은 왕위 계승자의 아내였다. 그러니 곧 잉글랜드의 왕비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왕비 자리를 노리고 요술을 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의 목적은 그녀와 남편을 무너뜨리는 거이었다. 앨리노어가 신비 신앙(점성술)에 의존했다는 것, 그로 인해 왕비가 될 수 있을지 점쳤을 게 문제였다. 당시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교회는 신앙으로부터 일탈한 자를 벌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요술로 고발당한 왕가의 여성은 헨리 4세의 과부 ‘잔’도 있었다. 의붓자식 헨리 5세르 저주한 혐의였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4세와 결혼을 위해 요술을 벌였다고 규탄 받은 ‘엘리자베스 우드빌’도 있다. 이쯤에서 조선시대 궁궐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단 한 명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여러 후궁들의 다툼, 때와 장소만 다를 뿐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모습은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 이단을 근절하고자 대부분 여성을 마녀로 표적 삼았다는 건 안타깝다. 종교개혁자들도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틴 루터는 여성은 허약하므로 요사스러운 약속에 끌린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16세기부터 17세기 유럽의 마녀사냥으로 기록상 적어도 4만 명이 처형당했다고 한다. 기록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어느 시대든 반사회적 선동가가 출현해 민중에게 불안과 편견을 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원인으로 특정한 그룹이나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희생자는 유대인, 이미, 정부, 유럽연합, ‘지옥에서 찾아온 이웃’ 등 다양하나, 그것이 누구든 이 사회적인 병의 증상은 거의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알아야 한다. (『마녀의 역사』, 89쪽)


마녀 사냥꾼이 등장은 당연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마녀 분간법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몇 개를 언급하자면 과부이며, 고양이, 두꺼비 등을 기르고, 매주 교회에 가지 않고, 해가 진 뒤 밖을 나돈다, 혼잣말이 많다. 현대 사회에 적용하자면 내 이웃은 마녀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악의적인 마술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법도 흥미롭다. 고양이 시체를 벽에 묻는 관습, 마녀의 의자라 불리는 굴뚝의 튀어나온 돌, 밝은 색 유리로 만들어진 구체인 마녀의 공, 마녀에 대항하는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식물 마가목.


중세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마녀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고찰로 마녀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놀랍고 흥미로운 역사 속 마녀의 이야기는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사는지 말이다. SNS, 인공지능, 딥페이크를 통해 또 다른 마녀사냥을 하는 건 아닐까. 소문의 진위,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마녀의 역사』를 읽으며 떠오른 책이 있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다. 마녀와 악녀, 둘 중 누가 더 사회에 해를 입혔을까. 아니, 마녀와 마찬가지로 누가 그녀를 악녀로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역사에 남은 여성의 위대한 업적은 많지 않다. 대신 미모를 내세운 계략을 위해 이용되거나 부와 사치를 일삼에 민중의 적이 된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다.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일정 기간 국정을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리로 처리하던 수렴청정과 권력을 유지하려고 반대 세력을 몰살하는 드라마가 생각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악녀일까.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의 잔인하고 표독스러운 포정이 자꾸만 악녀와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저자 시부사와 다쓰히코가 선택한 12명의 악녀는 악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이 1964년에 나왔고 문고판 후기가 1982년에 쓰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60년 전에 나온 책으로 책에 등장하는 12명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악녀로 선택된 12명 가운데 엘리자베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클레오파트라, 측천무후, 마그다 괴벨스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나머지는 알지 못했다.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만났기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악녀들은 대체로 명문가에 태어났지만 근친상간이나 정략결혼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때문에 외도 상대 때문에 남편을 독살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가 소개한 악녀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것도 모자라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고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울한 삶에서 쾌락을 선택하거나 뛰어난 미모나 결혼으로 얻는 지위와 권력을 휘두르는 음란한 여성이다. 물론 하나같이 참혹한 결말을 맺는다.


책에 의하면 평생 처녀로 살다 간 엘리자베스 여왕은 수많은 남성과 관계를 맺었다. 여왕은 그들이 자신만을 사랑하길 원했지만 상대로 인해 마음고생도 심한 것으로 보인다. 쉰 세 살의 여왕이 사랑한 스무 살의 에식스. 점점 여왕을 등에 업고 거들먹거리는 그를 어떻게 봐줄 수 있겠는가. 야심이 강하고 폭력적이었던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욕망은 실로 대단한다. 아들 네로에 의해 암살을 당해 생을 마감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측천무후도 다르지 않다. 황제의 여인이 되었지만 질투가 심해 황제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둔 여인은 독살을 하거니 알 수 없는 죽음에 이르렀는데 그 대상은 자식과 며느리까지 다양했다.


12명의 악녀는 만족할 줄 몰랐다. 아마도 자신이 잡은 권력이 영원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여기면 모두 제거하려 했다. 자식이든 연정을 품은 상대도 가차없었다. 중세 유럽의 여성들과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 괴벨스는 성격이 다르긴 한다. 필요 없는 가정이지만 베를린 체육관에서 열린 나치당 집회에 가지 않았더라면 마그다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여왕, 왕비로 사느라 성이나 궁정에 갇혀 밖을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 역사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궁궐 안에서 살아내느라 자신만의 탈출구가 필요했던 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 주술에 빠지고 약과 독에 취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정신적으로 불안했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저자의 설명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에 쫓기듯 이것저것 놀이를 바꾸어가며 새로운 유행을 좇던 그녀의 광적인 향락 습성은 도대체 어떤 성격에 기인할까. 신앙심 깊은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경고를 받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대체 저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신지요? 저는 따분해질까 봐 두렵습니다.” 왕비의 이런 표현은 18세기 말의 정신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붕괴 직전의 고요함일지도 모른다. 혁명이 발발하기 전,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던 귀족 사회에서는 따분한 이외의 그 어떤 정신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면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춤을 계속 춰야 했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 117쪽)


12명의 여성은 악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먼 훗날 그들은 재조명될 것이다. 역사는 돌고 악녀의 계보는 추가되고 이어질 것이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는 책으로 만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같았다. 『마녀의 역사』와 『세계의 악녀 이야기』는 제대로 역사를 읽고 기록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기록은 중요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도 마찬가지라는걸. 마녀와 악녀란 프레임을 만드는 게 일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세계에는 아직 요술의 혐의로 목숨을 잃는 지역이 있다. 이성이 시대라 불리는 현대를 사는 우리도 이러한 상황을 성찰해야 하며,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에는 밝은 면이 있다. 오랫동안 추하고 고독한 외지인이라고 비웃음을 사고 두려움을 받아온 마녀들은 우리들에게로 돌아왔다. 긍정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 현대의 마녀 위키와 그들의 마법은 20세기에 착실히 인기를 모아, 긍정적이고 힘차게, 드높은 의지를 품은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암흑의 시대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21세기의 마녀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마녀의 역사』,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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