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 -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시 치유 에세이
전미정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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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인의 상처는 언제나 작아 보인다. 티눈처럼 작은 상처라도 내 상처만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소한 다툼에도 사랑의 이별에도 모든 원인을 내 잘못보다는 상대의 잘못으로 돌리려 한다. 그만큼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해서 상처를 치유하기란 더욱 힘든 일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술을 마시거나 우는 방법을 택한다. 함께 울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는 독특한 치유 방법을 제시한다. 시가 그것이다. 하소연 할 친구 대신 때로는 음악이나 그림이 더 좋은 치료가 된다는 걸 안다. 과연, 시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시인이면서 상담자인 저자는 시를 통해 인간이 가진 수많은 심리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우선 자신을 드러낸다. 다섯째 딸로 태어나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어린시절, 힘들었던 사랑과 이별의 상처, 혼자 살아가는 삶의 외로움을 과감없이 꺼내 놓는다. 그리하여 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온다. 나약한 심성탓에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사연을 읽고 있노라면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다. 

 책은 너, 나, 우리,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상처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로 ‘
너에게’에선 공감, 죄책감, 자기애, 상실, 분리 불안, 동반의존 등 9가지 감정을 다룬다. 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과 그로 인해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나를 믿고 슬픔을 토해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감사한 일이며 잘 살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마음을 가졌는가 묻는다.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당신 곁의 사랑하는 이가 지옥에서 구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연약한 당신 역시 그런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사람에 대한 지상 최고의 환대가 푸짐한 음식이 아니라, 푸짐한 공감으로 이루어진다. 공감은 존재 하나가 세계를 전부 거머쥐는 황홀한 순간이다. p. 21 

 두 번째 ‘
나에게’에선 말하기, 수치심, 질투, 자학, 반성 분노 등 10가지로 나를 관찰할 시간을 준다. 자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를 귀하게 여기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라 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에선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감정으로 상처, 사랑중독, 사랑, 외로움, 용서, 자살, 소문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내면 심리와 행동을 28편의 시로 분석했다. 저자가 선택한 시는 널리 알려진 시보다는 낯선 시들이 대부분이다. 아무 생각없이 시를 읽었다가 저자가 들려주는 사연과 설명을 듣고 다시 천천히 시를 읽게 된다.누군가를 향한 끊임없는 질투와 분노로 힘들었던 순간과 끝내 용서를 하지 못한 내 모습을 떠올린다. 시를 통해 감춰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고 고치지 못한 성격을 지적당한 듯 부끄럽다. 그리하여 누구나 쉽게 회복되지 않을 깊은 상처가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로 진행되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자신의 상처도 사랑해야 하고 타인의 상처도 사랑해야 한다. 앙갚음하는 심정으로 오기를 부르며 살아왔더라도, 사랑으로 그 상처가 숙성되고 부드러워진다면 끝내 누군가의 삶의 혀끝을
향긋하게 자극해 주리라. 상처와 더불어 사는 맛은 뜻밖에도 감미롭다. 그 맛은 달콤 쌉싸래하다. 그리고 성숙한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진정한 달콤함은 쓴맛이 주는 자극 속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인가 살아가면 갈수록 상처가 꽃이 된다는 믿음을 뿌리치기 힘들다. p. 216

 자신의 상처도 사랑해야 하고 타인의 상처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날들이 올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껏 내 상처에만 급급한 나머지 곁에 있는 이의 상처엔 신경쓸 겨를이 없던 마음이 조금은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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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황홀 - 김도언 문학일기
김도언 지음 / 멜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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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동과 창작을 병행하는 동안 나는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전폭적인 이해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문단으로부터는 딜레탕트의 혐의를 받았고, 회사로부터는 위장취업의 혐의를 받았다. 나는 기우뚱한 날개를 달고 위험한 비상을 하는 불구의 새와 같았다. 나는 이 위험한 비상의 기우뚱한 순간들을 ‘불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여기에 기록된 내 젊은 날은 이 불안을 껴안기 위해 치열하게 욕망하고 투쟁하고 성찰했던 시간의 집착이다. 그 과정 하나하나는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황홀한 감회에 젖는다. 예정된 길로 날아가고 날아오는 새의 안전한 날갯짓에 과연 어떤 황홀이 있을 것인가. 책의 제목을 ‘불안의 황홀’이라고 붙인 것은 이와 같은 생각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김도언이 출판사 편집장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 전업 소설가로 김숨의 남편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위험한 비상의 기우뚱한 순간들이란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소설가로 산다는 건 정말 외롭고 힘겨운 날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도언의 소설을 아직 읽지 못했기에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대신 그의 아내 김숨의 소설은 무척 좋아한다. 해서, 김도언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숨의 남편일 뿐이다.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에서 만난 김도언을 기억한다. 소설 <랑의 사태>가 곁에 있다. 블로그를 방문하여 그의 일기를 훔쳐 읽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심이 있는 건 맞다.  <불안의 황홀>는 그런 일기의 기록이다. 소설가를 흠모하는 독자로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불안의 황홀>은 2004년 7월 19일의 일기를 시작으로 2009년 12월 27일 까지의 일기다. 그의 의도인지, 출판사의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일기는 역순으로 묶였다. 나는 그 반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거꾸로 책을 읽은 셈이다. 일기를 쓴다는 건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일은 정말 대단하다. 그것이 메모든, 책의 내용이든, 사색이든 말이다. 소설가와 편집장이라는 직업을 떠나 개인적인 그의 글쓰기가 존경스럽다. 

 김도언의 문학일기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과 그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와 더불어 친분이 있는 작가와 만날 수 있는 행운까지 안겨준다. 천양희, 김승옥, 박범신, 김훈 등 한국문학의 거장들과 젊은 소설가와 젊은 시인이 그러하다.  그의 집 1층에 사는 젊은 시인 신동옥에 대한 글은 문학에 대한 김도언의 강한 다짐처럼 들린다. 

 동옥은 내가 문학을 불신하고 냉소할 때마다 홀로 그의 방에 촛불을 켜고 그 빛을 창문 밖으로 흘림으로써 나의 경솔을 부드럽게 타일러준 시인이다. 직설적으로 말해 나는 동옥을 보면서 다시 문학의 가능성을 긍정한다. 문학을 하려는 자는 동옥의 삶에서 많은 걸 읽어야 할 것이다. 동옥은, 물정과 사람을 몰라서 시를 쓴다. 그는 평생 그럴 것이다. 거짓과 위선을 두드려패면서 처참한 시를 쓸 것이다. 2008년 2월 23일 토요일 일기 중에서

 소설가 부부와 시인이 사는 단독주택에선 언제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들끓고 기르는 고양이 마저 시를 좋아하지 않을까. 문학뿐 아니라 술이 있다. 소설가의 고독과 불안을 달래는 술이 자주 등장한다. 삼삼오오 문학인들이 모여 술를 마시고, 문학을 논한다. 시를 읽으며 책등을 마주하며 술을 마시는 소설가, 그 모습을 흉내내는 이가 많을 듯하다. 어쩌면 늦은 밤 시를 읽을 때면 술이 생각날지 모르겠다. 

 내 방에서 뇌가 녹아내리도록 술을 마시고 있다. 빨간 방울토마토가 소주의 쓴맛을 덜어준다. 빨간 토마토를 둥글게 만든 것은 어떤 사랑일까. 바람이 단풍나무 이파리를 건드리고 지나간다. 단풍나무 이파리가 띁어먹고 싶을 정도로 파릇하고 상큼하게 느껴진다. 단풍나무는 당연히 나보다 휠씬 상상력이 풍부할 것이다. 예술가의 오만과 열정과 분쟁과 굴욕과 열등감 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토요일 오후다. 사실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내가 처음 불을 보았을 때의 눈동자를 묘사해야 한다. 2008년 4월 26일 토요일 일기 전문

 어떤 날의 일기는 아주 친절하고, 어떤 날은 감미롭기까지 하다. 시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일까. 글은 너무도 맑았다. 그는 이런 표현을 싫어할 게 분명하다. 이런 말은 독자니까 할 수 있다. 문학에 대한 끊임없은 그의 고뇌와 열정이 느껴진다. 문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발견할 수 있는 일기, 전문적인 문학에 대한 견해의 기록은 일반인 독자인 내게는 대부분 어려웠다. 

 내 안에 있는 것들, 이중의 겹을 두르고 나선형을 회유하는 친절과 공격적인 허무주의. 결핍을 상쇄하는 과대망상과 저체중의 요설, 침묵의 비만, 상처를 관능으로 왜곡하려는 저의와 기꺼이 왜곡당하려는 저의. 그 뻔한 것들 - 2005년 8월 9일 화요일 일기 전문 

11월은 소금 같다
눈동자에 떨어지는 소금처럼,
긴 황홀이다
나뭇가지마다 흉터가 열리는,
11월은
비늘을 벗은 물고기처럼
등이 따갑다 - 2005년 10월 30일 일요일 일기 전문 
   

 김도언이 좋아지려 한다. 아직 그의 소설을 읽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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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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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죽음을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 아니, 죽음을 실천하고 싶은 여자라고 해야 겠다. 그 여자의 죽음을 막고 싶은 남자도 있다. 독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복어>는 죽으려는 여자와 그녀를 살리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은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들려준다. 조각가인 여자와 건축가인 남자는 자살로 죽은 가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편과 자식 앞에서 복어국을 마시고 자살한 여자의 할머니,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고 투신한 남자의 형. 여자에겐 죽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악몽을 꾸는 아버지가 있었고, 남자에겐 아들의 죽음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아버지가 있었다. 죽음이라는 그늘에 속한 삶이었다. 

 조각가인 여자는 자살 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혼자서 깔끔하고 단정하게 삶을 마무리 하고 싶어서다. 여러 방법을 생각한 끝에 복어를 선택한다. 모임에서 여자를 본 남자는 그녀의 눈에서 죽음을 본다. 형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여자에게로 향했던 것일까. 남자는 여자와 만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여자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어떤 계기라도 있나요?
그냥 끌린 거예요. 복어한테.
자연스럽게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분명한 목적도 없이요.
오른손이 왼손을 이끄는 것처럼요.
그럼 복어는 오브제 같은 것이로군요.
……오브제요?
그렇죠. 자연스럽게 끌리면서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요. p.170~171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죽음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 변명하고 싶다. 조경란 특유의 감정을 배제한 건조함과 섬세함으로 심리를 묘사하고 있으나  죽기 위해 살고 있는 여자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공의 직업으로 인해 등장하는 공간과 예술에 대한 부분도 형상화 시키기 어려워 힘들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지 찾을 수 없었다. 타고난 기질, 운명이었을까. 우울했고 침울했다. 

 간질을 앓는 여자의 친구 사임, 사후 정리를 도와주는 유품 정리인, 주변인물마저 모두 쓸쓸하고 어두운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와 달리 생에 대해 강한 애착을 지녔다. 예고없이 닥치는 발작으로 언제나 죽음을 대비하는 삶, 끔찍한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여자에게 그들은 죽음의 실체가 얼마나 두려운지 보여준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여자에게 그들보다 더 확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이가 있을까.    

 너는 내가 복어로 뭘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 가까이 갔어. 그리고 그것을 만져보지 않고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었어. 그 이전에는 결코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 왜냐하면 나를 압박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욕망이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 밤에. 복어의 뼈가 말했어. 온몸으로 밀고 가야만 하는 삶이 있다고. 복어의 눈이 말했어. 소중한 것이 사라지기 전에 똑바로 봐야 할 게 있다고. 그리고 나는 눈을 떴어. 내가 눈을 떴을 때 본 것, 그것이 지금 내가 기다리는거야. p. 331

 소설은 죽음을 말하는 동시에 삶을 이야기한다. 아니다, 복어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죽기 위해 매일 복어를 보러 간 여자는 복어를 마주할 때마다 지독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산다는 건 고역이다. 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조경란은 생에 대해 회의를 느낀 여자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해 말한다. 절망의 연속일 때, 세상에 나 혼자라고 생각할 때 언제나 누군가 있다고 알려준다. 또한 사는 동안 죽음은 그림자처럼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해야 한다. 존재, 그 자체가 생의 이유이며 목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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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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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경꾼들>이란 제목이 흥미롭다. 누군가를 지켜보는 일은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 때로 지나친 관심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책을 읽기 전에 떠오른 단어는 관심, 애정, 훔쳐보기, 동물원 등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스타나 동물은 언제나 행복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도 구경꾼이 아닌 주목받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소설의 구경꾼들은 누구를, 무엇을 구경할까. 

 소설은 주인공 나가 들려주는 나의 가족 이야기다. 한 가족의 일대기라 해도 좋다.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가족을 시작으로 내가 성장하는 동안 일어나는 가족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부모님의 연애사, 친가와 외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가족 모두의 삶을 들여다 본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나와 엮여 있고 나로 시작한 모두의 이야기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큰 삼촌, 작은 삼촌, 고모, 나로 구성된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제 독자는 3대 가족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된다.

 모든 가족의 일상이 그렇듯 소설 속 나의 가족도 평범하다. 불행은 큰 삼촌의 죽음이었다. 가족 여행에서 교통사고가 나고 입원한 병원의 옥상에서 떨어진 여자에게 깔려 죽는다. 여덟 명이 아닌 일곱 명이 모여 앉은 식탁을 떠올리자 코 끝이 찡하다. 큰 삼촌의 죽음으로 아버지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어머니와 여행을 떠난다. 

 소설은 부모님의 여행과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로 계속된다. 낯선 나라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네의 그것과 똑같이 닮았다. 감동적인 사연, 슬픈 사연, 모두가 자신만의 사연이 있었다. 내게만 닥친 불행이 아니었고, 기적이라 불리는 일들은 계속 이어진다. 나는 방황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여덟 명이었던 나의 가족이 점차 줄어들고 나는 더이상 소년이 아니다. 비워진 가족의 자리에 새로운 가족이 들어오고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것이다. 구경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자신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구경할 또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뷰타인더로 아버지를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반으로 자른 다음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에 맞춰 숨을 멈추었다. p.237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가지를 치며 뻗어나가는 형식으로 확장된 이야기 속에 독자는 빠져든다.  솔직히 말하면, 직접 읽어야만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윤성희의 입담이 얼마나 대단하지 표현하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적절한 익살과 적절한 슬픔이 어우러진 따뜻한 소설이다. 살아가면서 쉽게 놓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달는다. 소설을 통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곧 나와 당신의 이야기였다. 해서, 슬픈 사연에 함께 울고 기쁜 사연에 함께 웃는다. 누군가의 삶을 구경하던 구경꾼이었던 당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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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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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타 뮐러의 소설은 어렵다. 읽는 것도 어렵고 읽고 나서 책에 대해 말하는 건 더 어렵다. 그러나,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헤르타 뮐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라고 말이다. ‘숨그네’와 마찬가지로 ‘마음짐승’은 그녀만의 언어다. 그것은 독재치하의 시대를 산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가 부모 세대의 시선으로 독재를 경험하고 바라 보았다면 <마음짐승>은 자녀 세대인 청춘의 눈으로 바라본 글이라 하겠다. 차우세스쿠의 독재자 시절 루마니아의 상황은 같지만 <마음짐승>은 분명, 젊은 소설이다.  공포와 불안의 시대를 살아내며 분노하고 투쟁하는 젊은 이의 이야기였다. 

 소설은 대학생 롤라의 자살로 시작한다. 헤르타 뮐러가 네모라 명명한 기숙사에서 옷장에 허리띠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일주일 전에 당원이 된 롤라는 왜 자살을 했을까. ‘다만, 이 여학생은 자살했다.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녀를 경멸한다. 이는 국가적 수치다.’ p.35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한 사람의 죽음을 국가적 수치라 말하는 사회,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는 세상일까.

 죽은 롤라와 같은 방을 쓰던 주인공은 롤라가 남긴 노트에서 체육 강사에게 강간을 당했음을 알게 된다. 롤라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와 만나 매일 매일 시대를 논한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정치를 비판한다. 동시에 그들은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경감 프옐레는 네 사람의 방을 수색하고 심문한다. 가족이 있는 시골 집까지 수색이 이뤄지고 그들이 가는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감시는 계속된다. 

 공장에서 번역사로 일하는 주인공은 다른 도시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편지로 소식을 전한다. 감시와 검열이 철저했던 시절, 그들은 머리카락을 한 올 넣는 걸 잊지 않는다. 심문은 손톱가위, 수색은 신발, 미행은 감기 걸렸다는 암호로 가득한 편지로 서로를 위로해야 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친구들뿐이었다.  동료라 믿었던 테레사도 경찰의 심부름꾼이었다. 과거 장발 단속이나, 금지곡, 통행금지를 떠올리면서도 나는 이런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머리속에 풀이 자란다. 말을 하면 풀이 잘린다. 침묵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제멋대로 두번째, 세번째 풀이 계속 자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운이 좋다.’ p. 8 이 문장을 읽었을 때, 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침묵할 수 밖에 없었으니, 풀이 자랄 수 없었다. 침묵을 강요받는 시대, 주인공의 할머니가 미쳐서 노래하는 건 당연했다. 공장에서 쫓겨난 주인공은 풀이 자랄 수 있는 곳으로 망명한다. 헤르타 뮐러가 그 시대를 겪은 때문일까.<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나 <숨그네>보다 <마음짐승>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치욕적인 심문을 견디고 루마니아를 떠나 함께 떠나지 못하고 죽음으로 남은 친구들을 애도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는 그 시절을 기록하여 세상에 알려야 하는 의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살아남은 고통을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네들이 함께 읊었던 시를 읊으며  제멋대로 계속 자란 풀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는 황홀한 상상에 빠져든다.

구름 한 점마다 친구가 들어 있네
공포로 가득한 세상에서 친구란 그런 거지
어머니도 원래 그런 거라 하셨네
친구야 아무렴 어떠니
진지한 일에나 마음을 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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