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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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신의 미국작가 하 진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소설 『기다림』에 대한 호평을 접한 터라 『멋진 소설』에 기대와 설렘이 컸다. 결과적으로 그의 소설은 나를 흡족하게 했다. 수록된 12편의 소설은 친근했고 편안했다. 소설은 중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는 이민자들의 삶을 다뤘다.   

 표제작 <멋진 추락>의 주인공 간친은 뉴욕의 사원에서 쿵후를 가르친다. 그러나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주지는 비자 연장을 도와주지 않고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자신이 일한 만큼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주지는 그를 사원에서 내쫓는다. 간친의 사정을 들은 친구 신디는 스님의 신분을 벗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한다. 그는 결국 죽음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음식을 대접받은 식당주인에게 그 동안 주지가 일삼은 착취에 대해 털어 놓는다. 그의 추락은 이슈가 되어 각계각층의 도움을 받는다. 그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말 그대로 멋진 추락이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인디언들을 제외하고 미국이 자기 나라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당신이 여기에서 살고 일하면 당신 나라인 거죠.” 
 “바꾸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스물여덟 살밖에 안 됐어요!” 
 “그래도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어요.” 
 “당신은 앞으로 적어도 50년은 더 살 거예요.”  p. 357  

 신디의 말처럼 미국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나라다.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할 수 있는 건 바로 자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민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거나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12편의 소설 속 다양한 삶은 결국 미국에서 잘 살고자 하는 같은 목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어떤 사람은 성공을 위해, 어떤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달랐다. <벚나무 뒤의 집> 속 여자들은 중국에 남겨진 부모와 형제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고, <계약 커플>의 남녀는 남편과 아내가 있었지만 동거를 해야 했고, <부끄러움>의 교수는 불법 체류자란 신분 때문에 영사관 직원을 피해 다녀야 했다. 몸이 아파도 의료보험료가 비싸 병원에 가지 못했고 나를 위해 그 어떤 투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일상을 부모나 형제는 알지 못했다. 해서, 좀 더 많은 돈을 보내주기를 원했고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으며, 잠시 다니러 온 부모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어와 환경이 다르고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른 사회에서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은 때로 실소를 자아냈고 때로 안쓰러웠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로 안절부절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사소한 일상을 차분하게 담을 수 있었던 건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중국인으로 미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 진의 소설은 자연스레 영국 출신이나 인도인 부모를 둔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과 김재영의 『폭식』을  떠올렸다. 그들 소설에서 이방인이란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견뎌내야 할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줌파 라히리가 여성의 심리를 면밀하게 묘사했다면 하 진은 남성의 그것을 간결한 단문으로 담백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멋진 추락>으로 하 진을 만났으니 누군가 그의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흔쾌히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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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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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이별을 예상하며 관계를 맺고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이별의 카운트다운이 함께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수를 얼마까지 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이별한다. 어제의 나와도 이별하고 가족과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으로 짧은 이별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일상적인 이별이 반복되어 때로 이별의 늪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 이별에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이별 리뷰』는 다양한 이별 중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말한다. 저자가 택한 이별 치유법은 바로 책이다. 책 읽기를 통해 이별을 해석하고 이별을 위로하고 사랑을 말하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건 단순한 책읽기를 떠나 책에서 만나지는 다양한 삶을 마주하고 이해하면서 사랑과 이별에 대해 깊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소설은 우리의 생을 가장 많이 닮았고 가장 많이 투영한다. 소설 속에서 우리는 원없이 사랑하고 처절하게 이별한다. 물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게 우리네 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을 소설 속에선 맘껏 발산할 수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이유로 저자는 책 읽기를 선택한 게 아닐까 한다. 

 이별을 견디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울부짖으며 누군가는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할 것이다. 혹독하게 이별을 겪은 사람은 이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전하게 이별을 껴안지 못했기에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잔인한 말이지만 이별이 진행 중인 사람이거나, 이별의 전를 느끼고 있는 사람, 곧 누군가에게 이별을 통보할 사람이라면 더 좋을 책이다. 이런 구절들처럼 말이다.   

 ‘사랑을 한다면, 그리고 이별을 했다면 당연히 미쳐야 한다. 우리가 사랑과 이별을 겪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어쩌면 미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약간은 미쳐서, 이별을 기억하지 않고, 다만 사랑만 더 아름답게 각색하면서 살아도 좋을 것이다.’ p. 92 

 저자가 선택한 32편의 소설이나 시는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으로 김동리의 <역마>,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시작해 김애란의 <성탄특선>까지 다양하다. 그저 역사 소설이라 여겼던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과 여진의 강렬한 이별은 예상된 이별이지만 애절함으로 남는다. 박완서의 <그 여자 네 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어느 한 세대의 소유물이 아니며 어디에나 삶이 있듯 어디에나 사랑과 이별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나의 이별이 가장 고통스러운게 아니라고 전한다. 자신의 이별의식을 잘 치른 후에야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할 수 있다. 소설 속 연인들의 이별과 사랑은 안다고 믿었던 이별에 대해 다시 한 번 학습하게 한다. 그리고 제대로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수많은 이별이 사랑으로 다가가는 길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는 것은, 과장되게 연애하고, 덜 아프게 이별하게 위해 가면을 쓰는 일이 아니라, 가면을 한 손에 들고, 자신에게도 가면이 있음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일이다. 나 또한  가면은 버리지 못한다. 다만,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 가면을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p.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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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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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에게 사물과 일상은 내가 알고 있는 의미와는 또다른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그 의미는 소설 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것이고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때로 놀라고 부러워하며 슬퍼하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 각자 다르듯 같은 소재나 주제를 다룬 소설이라도 소설가에 따라 다르다. 그런 소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삼십대의 여류 작가(김미월, 김숨, 김이설, 윤이형, 장은진, 한유주, 황정은)가 모여 비를 테마로 쓴 소설집『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은 더욱 그랬다. 비를 좋아하기에 더 좋았고 비라서 더 기대가 컸다.   

 누구나 비 오는 날이나, 비에 관한 그리움 하나 간직하기 마련이다. 비가 그런 것이다. 소설은 사전적 의미인 비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습한 기운이 가득하다. 비로 기억되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기 보다 소설 속에서 나는 비를 만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습하고 눅눅한 비가 아닌 새로운 비와의 만남이다.   

 김숨의 <대기자들>은 치과 치료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다.  주인공에겐 암투병중인 어머니가 있었고, 이혼 절차 중인 아내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의 풍경은 왠지 쓸쓸하도 처량하다. 대기자는 수동의 의미를 지녔다. 누군가가 자신을명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여전하게 대기하고 있지만, 확인시켜주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다. 그건 소설 속 비와 같다. 

 “비가 오네”?  
 대기자들 중 누군가 뜬금없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비는 아까부터 내리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비가 다 그친 뒤에 깨닫지 그랬나. 나는 짜증이 나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가 다 그친 뒤에나. 그러나 비가 그친 뒤에나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비는 내리는 동안에만 비일 것이었다. 그친 뒤에는 비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p. 66~67

 지붕 위로 날라오는 티슈를 모으며 왜 티슈를 뿌릴까 호기심을 불러오는 장은진의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는 따뜻했고, 마법사와 비의 이야기인 윤이형의 <엘로>는 한 편의 아름다운 환상 동화를 만난 듯했다. 고교시절 백일장에서 남의 시를 훔쳐 적어 1등을 한 주인공의 비오는 날 시와 연상시킨 김미월의 <여름 팬터마임>은 가장 보편적인 비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김이설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은 부드러운 비가 아닌 폭력적인 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폭행으로 유린당한 상처를 지닌 화자인 의 남편은 소아성애자다. 어린이 실내 놀이터 사장인 남편은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손을 댄다. 화자는 남편의 행동을 모른 척 한다. 사모님이라 불리는 호칭과 명품들과 과거를 보상받는 삶이라 여긴다. 아픔과 상처는 치유되었다고 치부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가 내릴 때마다 자신을 옭아매는 기억과 마주한다. 

 펑, 하는 소리와  곧이어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남편의 비명 소리도 섞였다. 나가보니, 바람과 빗물이 온 집 안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외벽 통 유리 한 짝이 바람에 박살 난 것이었다. 남편이 유리 파편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알몸이 유리에 긁혀 온통 붉은 자국이었다. 남편이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남편 눈에 박힌 주먹만 한 유리 조각이 보였다. 순간, 붉은 피가 솟구쳤다. 눈이 아니라 목이었다. 핏줄기가 뿜어졌다. 훅, 훅, 훅 - 심장박동을 따라 검붉은 줄기가 리듬을 탔다. 바람 때문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베란다가 피범벅이 됐다. 시뻘건 몸뚱이가 갓난아이처럼 보였다. p. 194

 순간, 오래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김이설의 소설은 끔찍한 소재로 불편하고 잔인하나 묘한 쾌감이 있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결말을 소설을 통해 후련하게 해준다고 할까. 

 황정은의 <낙하하다>는 죽음을 비가 떨어지는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니, 죽어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녀의 소설은 하나의 문장이 기초하여 반복되고 확장되어 새로운 의미로 태어난다. 삼 년째 떨어지고 있는 화자는 비이며 죽음이다. 떨어지며 마주하는 풍경과 생각들이 함께 떨어진다. 바닥에 닿았을 때 그것들은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까. 우리가 마주하는 비가 비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 해 본 적이 있는가?  

 애초 빗방울이란 허공을 떨어져 내리고 있을 뿐이니 사람들이 빗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빗소리라기보다는 빗방울에 얻어맞는 물질의 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런 물질에도 닿지 못하는 빗방울이란 하염없이 떨어져 내릴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p.204~205

 한유주의 소설 <멸종의 기원>은 인상적이었다. 화자인 에게 할아버지는 ‘불행하라’는 유언과 ‘날씨표시상자’를 남겼다. 소설을 불행을 찾아 나서는 여행처럼 보인다.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엄마,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버지, 혼자 지내는 내 곁에 있는 건 날씨표시상사뿐이다. 건기에는 왕이 우기에는 여왕이 나타나는 상자였다. 그러나 언제나 왕뿐이었다.  화자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여왕은 등장하지 않았다. 왕은 마치 불행을 암시하는 듯 여겨진다. 그러다 날씨표시상에서 태엽을 발견한다. 왕과 여왕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유언은 정말 불행하라는 것이었을까. 묘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비가 내릴 때마다 듣는 음악이 있고 비가 내릴 때마다 읽는 시집이 있고, 비가 내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계절마다 비는 각기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라는 제목 때문이지 자꾸 단편에 어떤 색이 떠오른다. 무기력한 회색, 날 것 그대로의 선홍빛, 환상적인 노랑, 기분좋은 녹색, 빠져드는 보라, 명쾌한 파랑처럼 그들만의 색을 찾는 즐거움이 있다. 김미월과 한유주의 소설은 처음이라는 이유로 색다른 느낌이었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다면 그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어도 좋다. 끌리는 제목이 있다면 그 소설을 먼저 읽어도 역시 좋다. 일곱편의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당신의 비는 어떤 색으로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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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감정 - 제20회 편운문학상 수상작 민음의 시 158
김지녀 지음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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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었다. 간간히 시를 읽었지만, 한 권의 시집을 끝까지 읽은 건 정말 오랜만이다. 작년 한 해 읽은 시집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시를 안주지 못했다. 아니, 시를 읽지 못했다는 게 더 맞다. 김지녀의 시집 『시소의 감정』을 시작으로 시를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지녀의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니, 그건 시를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리라. 시인에게 모든 것은 시로 귀결되는 건 당연한지 모른다. 아니, 시를 쓰는 동안만 시에 집중할까.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안다. 나는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튼 김지녀의 시는 시가 가진 거리감보다 조금 가깝게 느껴졌다. 내게 그러했다는 말이다.  이런 시 때문이다. 

 에이, 라는 점에서 그들은 동일하다 
 낮에도 밤 같은 방에서  
 작은 여자 A는 
 밥 먹고 잠잔다 그리고 가끔, 웃는다 
 아직 오지 않은 애인을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요리를 한다 매일 
 작은 여자 A와 무관하게 
 큰 여자 a는 계란을 삶는다 
 아직 떠나지 않은 애인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흰자에서 노른자를 골라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러나 웃는다 가끔, 
 초인종이 울리기도 한다 
 작은 여자 A와 큰 여자 a는 
 말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문을 열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에이, 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작은 여자 A와  큰 여자 a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덜컹거린다 
 서로를 알아채지 못한다  - p. 30~31 <A 그리고, a> 전문  

 재미있는 구조의 이 시는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울컥하기도 한다. 작은 여자A 와 큰 여자a는 같은 여자이거나 다른 여자이거나 그럴 수 있다. 아니면 당신이거나 나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시인은 애정을 갖고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문득, 내가 밥을 차리는 모습이나 물이 끓는 주전자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떨까 묘사하고 싶어진다. 뜨거운 김이 나오는 주전자 입을 주시하며 비스듬히 서 있는, 단단하게 굳은 얼굴로 식탁에 앉자 큰 김치통에서 김치를 꺼내어 작은 접시에 덜어 놓는, 걸레를 빠느라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베란다에 기대어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 말이다.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또 하나의 시가 있다. 

 키가 계속 크는 사람과 키가 계속 크지 않는 사람이 만
나 악수를 하고 있다

 아주 커다란 바지를 입으면서 바지 밑단으로 빠져나오는
또 커다란 발을 보면서
 키가 계속 크는 사람은 구부정하게 버스를 타고
 어깨동무도 없이 길거리를 타박타박 걷고 대문짝만한
이빨을 보이면서
 아래로 아래로 눈길을 주고

 계속 키가 크지 않는 사람은 아주 작은 신발을 신고 발
닿지 않는 의자에 앉아 발을 흔들거리다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모자를 벗고 손을 내밀면서
 위로 위로 눈을 맞추고 있다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이 저렇게 나란히 서서 기타
를 치고 노래한다면
 이 끝과 저 끝의 중간쯤에서 슬픔도 만나 몽글몽글한
웃음이 될까
 가슴 닿는 포옹 한 번쯤  할 수 있을까
 
 커다란 손이 작은 손을 감싸 쥐며 악수를 하고 있다
 키가 커서
 키가 작아서
 슬픔과 슬픔이 만나서 반갑게 웃고 있다 - p.61 <슬픔과 악수하는 사람들> 전문


 김지녀의 시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 하고 싶었던 시는 바로, 시집을 열면 마주하는 첫 번째 시다. 이 시는 시집의 마지막 시를 읽을 때까지 맴돈다. 그건 이 시집 전체를 보면 좋은 건 아닐 수 있다. 대표적인 시로 각인되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반할 수 밖에 없는 정말 아름다운 시다.

  이것은 귓속에 자라나는 돌멩이에 관한 기록이다 

 귓가에 얼어붙은 밤과 겨울을 지나 오랫동안 먼 곳을  
흘러왔다 
 시간을 물고 재빠르게 왔다 부서지는 파도의 혀처럼 
 모든 소리들은 투명한 물결이 되어 나에게 와 덧쌓이고 
 뒤척일 때마다 일제히 방향을 바꿔 내 귓속, 돌멩이 속 
으로 돌돌 휘감겨 들어간다 

 이것은 소리가 새겨 놓은 무늬에 대한 기억이다
 
 돌멩이의 세계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창문을 닫고 누워 처음으로 지붕이 흘려보내는 말을 들 
었을 때 나는 캄캄한 밤을 떠다니는 한 마리 물고기에 불 
과했다 몸에 붙어 있는 비늘을 하나씩 떼어 내고 조금씩 
위로 올라가 지붕에 가닿을 듯 그러나 가닿지 못하고 지붕 
위에서 소리들은 모두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사라졌다 빗 
소리가 해를 옮기는 동안, 내 귀는 젖어 척척 접히고 나는  
자꾸만 아래로 가라앚아 갔다 천천히 단단해지며 돌멩이 
가 또 한 겹, 소리의 테를 둘렀던 것이다 

 언젠가 산꼭대기로 치솟아 발견될 물고기와 같이, 내 귓속에 
는 소리의 무늬들이 비석처럼 새겨져 있다 p. 15~16 <耳石> 전문 


 김지녀의 시는 일상의 관찰과 기록, 동화적 소재를 통해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슬픔을 달래는 작업을 하는 듯 보인다. 시 <오르골 여인>를 보면 태엽을 감아요 어떤 예감처럼 팽팽한 느낌이 나쁘지 않/죠 누군가 벽을 타고 오르고 있어요 그리다 만 벽화 같아/요 내 얼굴을 밟고 지나간 발자국 같아요/ <기린과 나> 에선 껌벅이는 눈, 기린이 긴 혀로 날름거리며 나를 핥고 있다 / 나는 콧등에서 발등까지 순식간에 흐물거리다 녹아내린다 / 이것은 적도가 내 몸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 / 한차례 소나기 후, 오후가 끈적해졌기 때문 / <마녀의 저녁 식사>란 시도 그렇다. 그림자는 남쪽으로 걷지요 동시에 / 난 북쪽으로 떠나요 / 슬픈 얼굴로 그림자를 행해 안녕, / 크게 손을 흔들며 안녕, / 그림자와 멀어질수록 자꾸 웃음이 나요/

 이런 시도 좋다.

 이곳에서 나는 망명한 짧은 역사(歷史)가 된다  

 나는 내 방이 없다
 창문과 책상과 침대가 없다 
 침묵은 나와 다른 시간에게 겸손해지는 일 
 
 당신은 나를 짚어 가며 아무 곳에나 쉼표를 찍고 두세 
페이지를 쉽게 건너뛸지도 모르지만 
 나를 떠나 다시 나에게로, 회귀본능의 어류처럼 
 내 기억은 당신의 길 밖에 있다 

 가는 비가 내리면, 나는 당신이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책의 어디쯤에서 
 선사시대의 금 간 유물처럼 단단해진다 
 들춰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오늘 내 말은 비석처럼 차가워지고 

 당신은 종이에 물을 뿌려 나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묻어 나온 것들은 간혹, 당신이 읽어 낼 수 없는 나의 여 
백이거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번지는 먹구름이거나 
 나는 여기서 쉼, 표를 찍는다 

 당신을 쓸며 간 바람의 필체를 그냥, 
 흔들림이라 말할 수 없듯이 
 누웠다 일어나는 일은 내게 오래도록 잠수했다 
 물 위로 떠오르며 내뱉는 호흡 같은 것이다 

 어제와 같은 길을 걷는 일 
 그것은 흐르고 흘러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 온다 가지 않는 비가, 내 역사를 소란스럽게 두드리 
며 간다 

 당신이 책을 덮은 뒤에 내 체온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 p.  80~ 81  <이 말을 당신의 의자에 앉아 쓰고 있다> 전문  


 시를 읽는 동안 나는 책이 된다. 그리고 비를 만나고 빗소리를 듣는다. 진짜 비가 내리는 깊은 밤에 읽게 되다면 더 좋겠다. 비가 오면 나는 이 시집을 꺼내들고 귀를 열어 빗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럼 그 밤에 나는 슬픔을 달래주는 시의 속삭임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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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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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자인간’이란 상자 속에서 사는 사람을 뜻한다. 걸인이나, 부랑자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집이 아닌, 상자를 뒤집어 쓰고 밖을 볼 수 있는 시야만을 확보한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을 주의 깊게 지켜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정말 상자인간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닌 자발적으로 상자인간으로 살고자 한 사람이 있다. 소설은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전직 카메라맨이었던 화자인 나가 왜 자청해서 상자인간이 되었는지, 그 이유부터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왜 『상자인간을 쓰게 되었는지 작가인 아베 고보에게 묻는 것과 같다.   

 화자인 는 머리부터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 속에서 생활하는 남자다. 상자 안에 그에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절대적인 물건들만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상자이니, 다르게 말하자면 상자이외의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상자인간은 상자 밖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야 확보를 위한 프레임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해도 좋다. 

 상자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좀 더 세밀하게 볼 수 있고, 좀 더 열심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심 한 복판 속에서 사람들은 상자인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극단적이지만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어떤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엔 친절하게 상자를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누구나 원하면 상자인간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소설엔 다양한 시선이 등장한다. 진짜 상자인간, 가짜 상자인간, 상자인간이 탄생되기 전 누군가를 훔쳐보기 위한 관음증에 해당하는 경우까지 말이다. 그건 결국 하나의 시선이자, 작가의 시선이었다. 

 상자인간에게 상자를 사러 접근한 간호사, 그 여자에게 상자를 사오라고 요구한 의사가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상자를 버릴지 말지 갈등하는 나와 그 상자를 원하는 의사. 같은 공간임에도 상자 속과 밖의 엄연하게 구분된다. 그건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관점이랄까.  
 
 나는 상자인간의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과연 이 남자가 상자를 벗고 나올 수 있는지, 아니면 상자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지 말이다. 1973년 발표된 소설,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했나 보다. 놀랍게도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상자인간이 자신의 상자 속에 남긴 낙서임을 고백하다. 그러니까 소설 처음에 말한대로 상자인간이 상자 속에서 상자인간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기이하고 기발하지만 어려운 소설이라 하겠다.  실은 커다란 상자안에서 나를 의식하지 않은 상대를 지켜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구체적으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겠지만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무슨 기분일까 상상하게 된다.

 아베 고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상자라는 국한된 공간에서 소유는 무의미하다. 그러니 욕망이 부질없음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존재함으로 견뎌야 할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누구나 때로 익명의 상자인간을 꿈꾸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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