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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잠깐의 이별이든 영원한 이별이든 그렇다. 원하지 않은 그것이라면 어떤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사랑하던 연인과의 이별 그 자체보다는 왜 헤어져야 하는지 원인을 알지 못할 때, 당혹스럽다. 해서 이별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이는 헤어진 연인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어떤 이는 오랫동안 지난 시간 속에 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별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고 그 터널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있다. 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속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별은 앞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연은 언제나 뒤로 온다. 실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을 일시에 집어 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p. 56~57
주인공 사강과 지훈은 모두 이별했다. 승무원인 사강은 조종사인 유부남 정수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기업 교육 강사인 지훈은 동창인 오랜 연인 현정에게 통보를 받았다. 둘은 우연하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한다. 아침 일곱시에 실연당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버리지 못한 사랑의 징표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실연이라는 감정을 견디는 이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이다. 한데, 과연 그럴까? 흔하디 흔한 사랑이라는 감정도 내게로 오면 혼자만의 그것이 되듯, 이별 역시 그러하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함께 나눌 수 없고 함께 견딜 수 없다.
책은 사강과 지훈의 이별 과정을 들려주며 이별 후에 시작되는 사랑에 대해 묻는다. 아니, 사강과 정수가 벗어날 수 없었던 맨 처음 상처와 이별하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강과 정수에게는 언제나 어떤 이별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살아 온 사강에게는 아버지의 부재가 그러했고, 같은 날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 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유언으로 부탁한 아픈 형이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강은 정수와 반드시 이별을 해야 했고, 정수와 현정에게 이별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백영옥은 내내 담담하게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과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소설 속 미도라는 인물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듯하다. 미도는 연인과 이별했지만 어떤 감정 소모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삶은 이별의 연속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에 다니는 미도가 현정의 의뢰를 받고 실연당한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커플을 맺을 수 있다는 기막힌 발상을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랬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란 모임은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들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바깥과 안을 모두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p. 413
‘‘고마워’로 시작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힘들다. 상대보다 힘들어지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별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로 새겨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지훈에게 그것은 운동장을 빠르게 뛰는 현정의 뒷모습으로 기억될 것이었다. ‘미안해’로 끝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눈물겹다.’ p. 417
사강과 지훈은 이제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별한 후에 다가오는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 것이며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스스로가 낸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누군가의 아픔도 제대로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은 이별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별이라는 소재를 아름답게 담은 소설이다. 이별의 아픔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 동안 나눠야 할 인사는 이별이 아닌 만남의 인사라는 걸 잊지 말라고. 그래서 더 아프지만 이별의 그늘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소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