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연인들 - 김선우 장편소설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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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주문처럼 말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사랑과 소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하루를 견디고 또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밥을 먹고 잠들 수 있는 힘은 어떤 분노이거나 증오에서 나오기도 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존재를 넘어서기 위해 그가 무참히 짓밟히는 그 날을 고대하며 사는 삶도 있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불행을 안고 태어난 삶이 그러하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나 형제의 잘못으로 그 삶이 대물림 되는 경우,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새로운 불행이 잉태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감하게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누군가에는 끊고 싶은 고리가 누군가에는 다시 이어가고 싶은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김선우의 소설에서 ‘고리’는 사랑이다. 끊어야 할 고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된 폭력이며, 이어가야 할 고리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죽이고 복역 중인 지숙은 딸 유경을 사랑했기에 자살을 선택했다. 유경의 인생에 걸림 돌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경은 엄마의 고향인 ‘와이강’에 유해를 뿌리고 일부를 가지고 스톡홀름으로 향한다. 북유럽을 꿈꿨던 엄마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유경은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한다. 그가 한국의 와이강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경에겐 충분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와이강을 찾는다. 평온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곧 돌아오겠다던 그는 사고로 죽고 그 충격으로 유경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흐르던 사랑이 멈추자 유경의 삶도 멈춘 것이다. 유경이 다시 와이강을 찾은 건 해울의 편지 때문이다. 해울은 와이강의 물을 보내고 자신을 도와달라는 의문을 편지를 보냈다. 와이강에서 버려져 그곳의 당골네가 손녀 수린과 함께 남매처럼 키운 아이였다.

 

 유경에게 와이강은 엄마와 그를 떠올리는 소중하면서도 아픈 곳이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와이강은 버림 받은 이들, 상처 받은 이들을 품어주고 치유해 주던 강이 아니었다. 정부 정책이라는 이유로 곳곳이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있었다. 강이 파괴되면서 몸이 굳어가는 수린을 위해 해울은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숙, 그, 수린, 해울은 와이강이 존재했기에 살 수 있었던 이들이다. 와이강은 죽은 지숙에게 맑고 순수한 추억을 간직한 곳이었고 그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이었으며 수린과 해울에겐 엄마였다. 그리고 유경에겐 멈추었던 삶을 흐르게 할 유일한 곳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붙잡을 수 없었던 그의 이름, ‘연우’를 찾고 생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에 대해 단순하게 사랑 이야기라고 예상한 건 오산이었다. 『캔들 플라워』를 떠올렸어야 옳았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민한 글로 그림자이거나 그늘인 삶에 빛의 길을 터 준다는 걸 기억해 내야 했다. 그녀는 극도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우리의 무감각을 흔들어 깨운다.우리가 함께 지켜지고 지속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것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괜찮아요. 아주 오래 살아도 좋았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어. 강이 흐르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선생님? 와이강이 오빠랑 내게 늘 들려주던 얘기인데요. 어제보다 오늘을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강은 흐르는 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지 않으면 흐를 필요가 없어요. 어제에 멈춰 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거기까지 말을 마친 수린이 힘이 드는지 가만히 숨을 내쉰다. 희미한 단내가 풍기는 수린의 숨소리가 물소리처럼 흐른다…… 라고 유경은 느낀다. 응, 죽은 거나 마찬가지로 살았어. 이제는 안 그럴게. 어제보다 오늘 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할게. 그렇게 흘러갈게. 그게 사는 거니까.’ 257쪽

 

 그러므로 김선우가 이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사랑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 너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물에 대한 사랑 말이다. 수린의 말처럼 강이 멈추지 않고 흘러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는 사랑이 흘러야 할 것이다. 작은 물줄기가 흘러 다른 물줄기를 만나 커지고 더 많이 흐르듯 나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이 흘러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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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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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건 가면을 쓰고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감정을 자제하고 숨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우리네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살아내야 하니까, 도미노처럼 몰려오는 삶의 거친 파도 앞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서글프다. 그런 줄 알면서도 서글프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내몰려도 나를 대신 할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 아프다. 한강의 소설은 그것을 한 번 더 각인시킨다. 잔인하게도.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깊게 베인 상처를 가만히 지켜보고 어루만진다. 오랜 시간 기다리고 기다렸던 손길이라는 걸 우리는 금세 알아차린다.

  

 「회복하는 인간」은 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다친 발목을 치료하다 입은 화상을 방치한 주인공 이야기다. 그녀가 화상을 입은 건 복숭아뼈 만이 아니었다. 지난 시절 언니와의 관계에서 조금식 데인 부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부모님과 남편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언니는 그녀의 상처를 보여주기도 전에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얼마나 힘든 날들을 버티며 살아왔는지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회복하는 인간」, 32쪽>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삶은, 그녀의 발목처럼 깊은 상처를 안은 채 견디고 있는 건 아닐까. 남편 대신 가계와 아이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훈자」속 주인공이나 이제까지 살았던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길을 떠나는「밝아지기 전에」도 그녀들과 다르지 않다. 안간힘을 쓰며 살지만 산다는 그 자체가 무의미할 뿐이다. 지친 그녀가 견디다 못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고 믿었던 「 왼손」의 남자처럼 말이다. 평범한 직장인 주인공은 언제부터인지 아내와 말을 나누는 시간이 줄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가 잘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은 그저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 되버렸다. 어느 날 왼손이 통제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남자의 왼손은 그동안 감췄던 욕망을 분출하듯 과격하게 행동한다. 그로 인해 직장에서는 해고되고 오랜 만에 만난 첫사랑과도 불편한 사이가 된다.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왼손은, 감춰진 울분이었을까.

 

 그들이 간절히 바랐던 건, 그저 자신을 그대로 바라봐 주는 단 한 사람의 눈빛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의 세계에서 그 한 사람이 되어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눈빛을 기다리고 바라는 건 여전히 우리의 생을 사랑하고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숨기고 살았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내는 「에로우파」와 「파란 돌」의 화자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모든 걸 잃은 「노랑무늬영원」의 현영이 차마 꺼내놓지 못한 바람도 그것이었다. 죽음의 터널을 지나왔지만 현영에게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림이 전부였던 그녀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두 손은 사라졌고 남편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두 손만이 남았다. 절망의 그녀에게 삶을 보여준 건 친구 소진의 아들이 키우는 도마뱀 노랑무늬영원이었다. 앞발을 잃은 도마뱀의 앞발이 다시 돋아나듯 그녀의 생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만일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시 살아나가야 한다면, 내 안의 죽은 부분을 되살려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부분은 영원히 죽었으므로. 그것을 송두리째 새로 태어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노랑무늬영원」, 296쪽>

 

 소설에서 마주하는 삶들은 잊고 있었다고 여겼던, 그리하여 아무런 상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믿었던 나의 이야기이며 당신의 이야기다. 소설 속 그녀(그)를 부서지게 만든 건 대단한 것들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무던하게 믿었던 미련함이나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지 못한 채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균열은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되기에 우리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한강의 소설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발견하지 못하는 그 작은 틈새를 발견하고 메울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틈새는 한 번에 메워지기도 할 것이고 어떤 틈새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을 버티고 견디는 생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포기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힘내라는 그녀의 작지만 강한 목소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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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무가 될 수밖에 없었어
    from 그리하여 멀리서 2016-04-29 17:37 
    자신을 지키며 성장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특히 어디서든 뛰어나올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서는 말이다. 외부의 공격뿐 아니라 내부의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려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결정한 건 영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을까. 영혜는 남편과 가족들에게 충분히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해받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두부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이고 싶었다. 두부 부침도 하고 싶었다. 두부가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얄팍한 두께의 돼지고기를 김치와 함께 끓였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두부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우습게도 내일이면 잊어버릴 두부가 이 저녁을 지배한다.

 

 낮에 알라딘에서 머그가 도착했다. 탁상 달력과 다이어리도 도착했다. 내심 기다렸던 파란 머그였다. 다이어리는 노랑이었다.  빨강과 파랑 머그를 하나씩 더 들여야 겠다는 생각을 슬그머니 챙긴다. 빨강과 파랑, 노랑이 존재하는 저녁이다. 좀 전에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거래하는 은행에서 온 전화로 예금 안내에 관한 것이었다. 얼결에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아직 퇴근을 못하셨냐고 물었다. 따뜻한 집 안에서 전화를 받으며 괜히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주말엔 큰 언니가 다녀갔다. 언제부턴가 언니와 나의 대화엔 농담처럼 죽음이 등장한다. 죽음을 말하는 삶은 죽음을 인식하지 않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 속 생각을 말로 꺼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상실에 대한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읽어야만 했던 모든 이별에는 끝이 있다란 책 때문인지도 모른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조만간 곁에 두지 않을까 싶다. 2013년, 첫 주문을 위한 리스트로 담아두었는데 보관함으로 옮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담았다.

 

 

 

 

 

 

 

 

 

 

 

 

 

 

 

 천운영의 소설집 『바늘』,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아직 읽지 못했다. 장바구니와 보관함을 전전하다 2013년 첫, 주문으로 올 것이다. 강석경의 『신성한 봄』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위한 것이다. 읽지 않을 책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D.H  로렌스의 『패니와 애니』도 있다.

 

 2013년 소망 리스트를 적었다. 작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나의 소망은 언제나 같은 소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소망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게으른 자의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일 뿐이다. 친한 동생의 말처럼, 내게는 아직 간절한 그 무언가가 없는지도 모른다. 간절한 그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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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2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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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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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2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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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2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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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봄을 기다리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나의 계절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인 것이다. 2012년은 내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내게서 파생된 일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다. 계절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울리는 일들이 많았고 그 핑계로 나는 시원하게 울기도 했다.

 

 

 겨울

 

  큰 언니가 많이 아팠다. 여전히 언니의 삶은 아픈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아프지 않은 삶 보다 많은 것들을 보게 만든다. 내가 그랬듯 언니도 그럴 것이다. 언니의 계절도 겨울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언니는 어제 이사를 했다. 점심을 먹기 전 잠깐 통화를 했는데 집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한다. 흡족함을 너머 충만한 기운이 목소리에 가득한다. 기쁜 일이다.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그 집에 가게 될 것이다. 이 겨울이 아니라 그 겨울에 나는 이 책을 기다렸다. 한국문학과 일상을 다룬 독서 에세이 <치유하는 책읽기>, 부끄럽지만 내가 쓴 책이다. 알만한 사람도 모를 책, 이제서야 이 책과도 이별을 할 수 있다. 겨울이 봄다운 봄의 손을 잡을 무렵 부끄러운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미세한 떨림을 전하기도 전에 봄은 어떤 소식으로 나를 습격했다.

 

 

 봄

 

  그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라 부를 수 없는, 그 이상의 절대적인 슬픔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다시 그 계절이 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온 몸이 저리고 아플 당신을 생각하니 나는 시간이 두렵다.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진리를 위로로 말하지만 시간은 흉터를 기억하게 만든다. 시간은 그런 것이다.  <열두 겹의 자정> 이 있어 견딜 수 있는 밤도 있었다. 당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프다. 곧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의 생일이다. 당신은 또 울음을 삼킬 것이며, 밤을 낮처럼 우두커니 앉아 다시 아침을 맞을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

 

  수국으로 시작된 나의 여름은 얼음과 냉면의 시간이었다. 휴직을 한 언니와 함께 보낸 계절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 냉면을 먹고 얼음을 얼렸고 서로의 짜증을 증폭시켰다. 밤은 길었고 올림픽의 열기만이 그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포맷하시겠습니까?>란 말처럼 새로운 포맷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나는 선풍기, 에어컨 없이 그 계절을 견뎠다. 두 대의 선풍기 중 하나는 베란다에게 긴 휴식을 취했고 다른 하나는 거실과 다른 방에 있었다. 올 겨울에는 에어컨을 구매하자는 매년 반복되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국을 보러갔을 때 잠깐 바다를 만났을 뿐, 오롯이 바다를 위한 바다에는 가지 못했다.

 

 

  가을

 

  가을의 중심에서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예정된 것으로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쉬운 결정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한 문장이 끝나고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마침표를 찍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해준 당신들이 있어 고맙다. 가을은 특별했다. 내가 몹시도 흠모하는 당신을 만나러 길을 떠날 수 있었고 당신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목소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 날에 마주한 하늘과 낯선 거리의 이정표들과 나무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년 가을, 그 날이 되면 또 당신을 추억할 수 있고 이제 나는 그 계절을 사랑할 수 있다. <입술을 건너간 이름>을 마주할 때마다 나즈막히 그대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당신에게로 갈 계획을 세울 것이다.

 

 

 겨울

 

  뚜꺼운 커튼을 장만하는 것으로 겨울을 맞았다. 다양한 이들의 정성을 먹을 수 있는 김장은 익어가고 오빠표 흰 쌀과 현미도 도착했다. 한 겹으로 모자라 두 겹의 양말을 신는 날도 있고 목에는 스카프가 사라지지 않는 날들이다. 빨간 머그에 커피를 마시고 반가운 지인의 손편지에 놀라는 날들이다. 이 계절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될까. 지난 겨울에 계획했던 것들은 잊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리스트를 세워야 할 시간이 시작된다. 아직도 펼치지 못한 <노랑무늬영원>은 책읽기 리스트에 처음으로 들어갈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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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2-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며칠간 어떤 시를 찾겠다고 시집을 다 뒤졌는데 그때마다 자목련님 페이퍼가 보여서 완전 반가웠어요. 저도 한강 소설집 보고 싶은데 택배기사님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새해를 넘기고 주문할 생각이에요. 2012년은 안녕하고 2013년에는 우리 더 잘 지내요. 사이좋게요^^

아직 겨울이 두 달이나 더 남았는데도 새해가 되면 꼭 봄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좋아요. 자목련님도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12-12-31 23:45   좋아요 0 | URL
찾았던 시는 찾았나요? 사이좋게란 말이 이렇게 예쁘고 다정한 말이군요..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설레요. 우리들의 봄이 환하길 바라요.
아이님도 건강한 새해 맞으세요.^^

2012-12-31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3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데이지 2012-12-3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자목련님♥새해엔 미소지을일만 있으실거예요^^

자목련 2012-12-31 23:55   좋아요 0 | URL
복을 나줘주셔서 고맙습니다.
블루데이지님, 우리 2013년에 함께 많이 웃어요!!

댈러웨이 2013-01-02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은 봄의 글에 오래 머물렀지만, 눈은 첫겨울의 책에 머물고 있어요. 그리고 자목련님 손 잡아 보고 싶어졌어요. 안녕요, 자목련님. 아, 보라보라한 라벤더 머리사진도 다시 환영요.

자목련 2013-01-04 13:43   좋아요 0 | URL
첫겨울의 책은 부끄러움입니다.

내린 눈들이 녹는 날들입니다.녹은 자리에 다시 눈이 내리겠지만 그러한 풍경을 마주하는 일상은 이 계절의 특권이겠지요. 휴대폰으로 그곳의 시간을 찾아봅니다. 분명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지만 예전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그.곳.

보라보라한 대문으로 쭉~~
 
이날을 위한 우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5
빌헬름 게나치노 지음, 박교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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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때때로 경이롭다.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기이한 정도로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놀라운 반전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경이로움을 누구나 겪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제외한 삶에만 적용되는 듯 보여 절망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같은 행위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은 하루는 행복한 것이며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소망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빌헬름 게나치노의 『이날을 위한 우산』속 인물들도 그렇다.

 

 소설의 화자인  ‘나’ 는 마흔 여섯 살의 남자로 수제화를 신고 걸으며 테스터를 하는 직업을 가졌다. 과거에는 인터뷰 진행자로 활동했고 신문에 글을 쓰기도 했지만 모두 과거일 뿐이다. 현재는 구두 테스터로 받는 비용이 긴축재정이라는 이유로 줄어들고 일자리를 잃을 위기며, 진정 사랑하는 연인 리자는 약간의 생활비를 남기고 떠났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구두를 신고 거리를 걸으며 이웃을 관찰하는 일이다. 같은 시각에 만나는,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옛 친구나 동료가 전부다. 거리를 청소하는 내외, 말의 털을 빗질하는 여자,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노무자의 아내나,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제와 다른 어떤 사소한 변화나 발견에 놀라고 감탄하기도 한다. 나와 마주하는 그들도 역시나 유명했던 과거 이력을 지녔을 뿐이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삶을 꿈꾼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오랜 친구 수잔네는 여전히 연극 무대를, 한때 사진작가였던 힘멜스바흐는 재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현재 자신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수잔네의 말처럼 말이다.

 

 ‘대중의 고통은 말이야, 수잔네는 말한다(그녀가 정말로 대중의 고통이라는 말을 쓰다니 놀랍다),불쌍하기 그지없는 그들 모두가 일생 동안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인해, 이해하겠어?’ 78쪽

 

 정말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고통스러울까? 어쩌면 그런 생각으로 위안을 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와 인연을 맺는 사람이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 누구와 마주하게 될지 모르니까. 소설에서 어쩔 수 없이 구두 테스터를 계속해야 하고, 벼룩시장에 구두를 팔아야 하는 주인공이 힘멜스바흐의 부탁으로 신문사에 연락을 했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되고 수잔네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실패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한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삶을 계속 이어간다.’  158쪽

 

 우리는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산다. 그러니까 내일을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과거의 화려한 시절에 발을 담그고 살기도 할 것이다. 때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넘어졌기에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다는 걸 모른다. 그럴 때 누구나 삶을 원망할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날을 위한 우산』은 그런 멋진 풍경을 선물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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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2-1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삶은 결코 순수한 우리 자신만의 작품은 아니겠지요...
* * *
삶의 궤적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이켜볼 때 아깝게 놓쳐버린 여러 번의 행운과 스스로 불러왔던 여러 번의 불행을 떠올린다면, 그것이 '미로를 헤매듯 잘못 거쳐온 삶의 행로'(괴테, 《파우스트》1부, 헌사)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칫 자신을 지나치게 질책하기 쉽다.

삶은 결코 순수한 우리 자신의 작품이 아니다. 삶은 두 가지 요인, 즉 일련의 사건과 우리가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게다가 두 요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일찌감치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견하기는 더욱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눈 앞의 사건과 현재의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목표가 아직 멀리 있는 한,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만 짐작으로 대충 방향을 잡을 뿐이다. 우리가 내린 결정이 목표점에 더 가까이 데려가주기를 바라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순간순간 결정내릴 뿐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과 우리의 기본 의도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주어지는 두 가지 힘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겨나는 대각선이 바로 삶의 궤적이다. (쇼펜하우어)

자목련 2012-12-18 21:01   좋아요 0 | URL
전 <파우스트>를 읽지 못했는데,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oren님은 정말 깊은 독서를 하시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