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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보존하고 지키려고 할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사소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는다. 특히 예술과 전통이 그렇다. 그래서 『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가 반갑고 고마웠다. 흥이 많은 민족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것에 대한 애정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사라지는 소리와 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전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때로 절박했고 때로 간절했다.
‘걷는 건 두렵지만 춤을 추는 것은 두렵지 않다. 몸속에 소리와 음악이 모두 들어 있어 선율의 흐름에 다라 그때그때 춤이 달라진다. 전통이란 이름 속에서 순간순간 새것이 돋아난다. 이런 순간은 맛보는 순간 중독이다. 결국 또 들여다보고픈 과욕이 극성스런 길을 가게 한다. 정녕 보고픔도 극심한 허기의 일종인 것이다.’ 24쪽
저자는 이 책을 보도자료라도 말한다. 그 속엔 발로 뛰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뜻이리라. 책에서 만나는 춤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녀, 무당, 광대, 소리꾼 이라 불리는 분들이다. 예기(藝技), 남무(男舞), 득음(得音), 유랑(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 로 나누어 각 분야에 세 명씩 모두 18분의 삶을 들려준다. 하지만 ‘공옥진’을 제외하면 대부분 낯선 이름이 많다. 그만큼 전통문화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가.
공통적으로 그들이 춤의 세계로 들어간 건 가난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선택했거나 운명적으로 춤에 끌린 경우였다. 그러나 춤은 그들에게 운명이었다. 화려하게 보이는 춤 뒤에는 고통이 내재되어 있었다. 춤으로 가족을 살렸고, 춤 때문에 버림받기도 했고, 소리 때문에 살아 남기도 했다. 이제는 평균 연령이 80세가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고, 기녀와 무당이었다는 이유로 자손들에게 누가 될까 숨기고 있었지만 끓어오르는 춤에 대한 열정은 감출 수 없었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기억해 보면 굿은 동네의 잔치이자 위로였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걱정하고 풍년을 기원했다. 감히 누가 그들의 춤에 대해 논할 수 있으며 감히 누가 그들의 삶을 말할 수 있겠는가. 혼을 다한 춤사위에 감동할 뿐이다.
전통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닌 ‘우리 것’ 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부활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제대로 기억하고 배워야 한다. 집안 내력을 따라 광대의 딸이라 불렸던 심화영 할머니의 말씀은 춤뿐 아니라 내면이 아닌 보이는 것들에만 치중하는 우리네 삶에 대한 충고 같아 괜히 뜨끔하다.
‘장단을 치다가 벌떡 일어나 북걸이를 잡고 버섯발을 들어올리는데, 큰 구경이라도 한 것처럼 눈에 새로웠다. “맹글어 추지 말어, 호흡보다 몸이 놀아야 혀.” 요사이 조형에만 신경쓰는 전통춤을 향한 말이었다. 무척 자연스러운 몸놀림이었다. 호흡이라는 말보다 숨이란 말로, 몸 가는 대로 추는 춤이었다.’ (「중고제의 마지막 소리, 심화영」 중에서 96쪽)
지키려 한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유랑광대로 살아온 김운태 님은 포장극장이 아닌 두레극장을 개관했지만 경영에 실패했다. 풍물을 배우고 소고춤만을 추었으니 경영의 실패로 부도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구치소 생활을 하고 나온 그에게 춤은 유일한 것이었다. 현역 춤꾼으로 그의 황홀한 춤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규칙과 불규칙 속을 노니는 게 그의 삶이자 춤이다. 대개의 춤꾼이 발꿈치 가운데 중심을 둔다면 그는 모든 감각을 엄지발가락 근처에 싣는다. 무대 위에서 페달을 밟듯, 이미 뒤꿈치를 들고 어디론가 이동할 태세로 춤을 추는 것이다. 안락한 안보다 투박한 밖을 지향한 유목하는 인간, 홀로 노마드인 것이다.’ (「포장극장의 소년 신동, 김운태」 중에서 258쪽)
예인(藝人)으로 산다는 건, 명인(名人)으로 불리는 건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 그저 몸이 하는 소리를 듣고 몸으로 전하는 삶이다. 몸이 신나게 놀고 그것에 함께 취하는 삶, 이 얼마나 즐거운가. 우리는 이 즐거움을 계속 누려야 한다. ‘우리 것’ 을 즐기는 일이야말로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