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알고 있다
대니얼 샤모비츠 지음, 이지윤 옮김, 류충민 감수 / 다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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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체는 경이롭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인간은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생활한다. 하지만 그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세상은 달리 보인다. 어쩌면 식물의 감각에 대한 연구도 이런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물론 과학자에겐 우리와 다른 무언가가 있겠지만 말이다. 주디스 콜의 『떡갈나무 바라보기』가 개미, 벌, 꽃, 나무 등 자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를 다룬 책이라면 『식물은 알고 있다』는 식물이 주체가 된 책이다. 그러니까 식물은 인식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땅의 고정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식물이 어떻게 사물을 보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듣는지에 대해 인간의 그것과 비교하여 쉽게 설명한다. 빛이 있는 쪽으로 혹 그 반대로 식물이 움직인다는 건(이를 굴광성이라고 한다)은 식물을 키워본 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한데 이것이 식물의 시각이라고 한다. 인간이 볼 수 있는 빛과 색과는 다르지만 식물은 생존을 위해 주변의 시각적 환경은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식물은 우리가 감지하는 것보다 더 짧고 긴 파장을 감지한다고 한다. 실험을 통해 식물이 어느 부위로 빛을 보는지에 따라 우리는 인공의 빛을 통해 인위적으로 꽃을 피우게 할 수도 있으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빛을 인식하는 것이 시각이라면 냄새를 맡는 후각은 식물의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재미있는 건 식물의 후각에 대해 과학적 증명이 있기 전 고대부터 인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집트인이 무화과나무 열매 전체를 익히기 위해 몇 개를 칼로 반으로 자르고, 중국인은 배가 익도록 행을 피웠다고 한다. 대부분의 과일에서 방출되는 에틸렌 가스가 과일을 숙성을 돕는 것이다. 즉 다른 과일의 냄새를 맡으므로 익는 현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또 있다. 동물이 소리를 통해 위험을 감지하는 것처럼 식물은 후각을 보호를 위한 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식물에게 있어 살리실산은 식물의 면역체계를 강력하게 만드는 ‘방어 호르몬’ 이다. 식물은 박테리아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았을 때 살리실산을 생성한다. 살리실산은 식물 체내에서 녹아 세균에 감염된 부위에서 정확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잎맥을 통해 식물의 나머지 부위에 신호를 퍼뜨려 세균이 아직 공격하지 않은 부위에 위험을 알린다.’ (63쪽)

 

 촉각에 대해서는 미모사나, 파리지옥풀을 통해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잎사귀를 건드리기만 하면 재빨리 닫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위험을 감지하고 생존을 위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식물은 촉각을 느끼지만 통증은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 느끼는 촉각과 통증은 저마다 그 크기가 다르지만 식물은 뇌가 없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청각에 대해서 우리는 식물이 음악에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실험 데이터는 없다고 한다. 저자는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에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 소리에 대한 반응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서식지를 정복하고 확장하니 식물은 대단한 존재다.

 

 책은 식물의 자기수용감각과 기억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인간의 전정기관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눈을 감고 코를 만지고 던진 야구공을 받는 행위가 식물에게도 있을까? 식물이 위아래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원래 뿌리는 아래를 향하고 싹은 하늘을 향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중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식물이 위아래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18~19세기에 걸쳐 놀라울 정도로 진전을 보였다. 처음으로 뒤아멜은 모종들이 뿌리는 아래로, 싹은 위로 자라도록 스스로 성장 방향을 되잡는다는 것을 밝혀냈고, 다음으로 나이트는 위아래 성장의 이유가 중력임을 입증했다. 그다음 다윈 부자는 뿌리 끝에 중력을 감지하는 기작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34쪽)

 

 식물이 기억을 한다고? 맞다, 기억한다. 식물의 떡잎에 상처를 가했을 때 그것을 기억해 그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더 많이 자란다는 것이다. 또한 추운 겨울의 기후를 경험해야 개화하는 밀은 따뜻한 겨울이 지나서는 개화하지 않는다. 이 밀의 기억을 이용해 냉장고에 넣었다 심었더니 싹이 낳다고 한다.

 

 정말 신선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다윈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실험과 연구 결과가 아니었다면 밝혀내지 못 했을 식물의 감각이다. 계절마다 같은 자리에서 꽃을 피워내는 게 자신의 모든 감각을 이용한 결과라니, 봄이 되면 제일 먼저 꽃을 피울 목련을 보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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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두행숙 옮김 / 걷는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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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행동과 말이 상대방을 아프게 만든다. 그로 인해 관계는 엉망이 된다. 이전의 좋은 감정은 사라지고 만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처받는 나는 나만 생각한다. 상처는 점점 커지고 깊어진다. 어떻게든 빨리 상처를 치유할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띠귀 맞은 영혼>으로 만난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나의 옛 상처까지 치유해 줄 수는 없다. 우리의 감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이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이해하고 노력해야 한다.’ 83쪽

 

 물론 아무리 훌륭한 상담가와 의사를 만나더라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책을 통해 만나는 사례들은 어느 특정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서 자라는 상처, 슬픔, 자괴감, 분노인 것이다. 어떤 이는 더 많이 사랑받고 싶을 뿐인데 그 마음을 몰라주는 연인에게 상처를 받고, 어떤 이는 헤어졌거나 이미 죽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한다.

 

 때로는 상처의 원인이 전부 상대방(가족, 친구, 연인, 동료, 상사)에게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관계는 상호적이므로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상대가 모를 수도 있으니 표현해야 한다. 사랑하는이라고 해서 내 마음의 우물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이는 없으니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저마다 가슴속에 아직 성장하지 못한 아이가 있다. 잊었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의 아픈 감정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힘들더라도 그 상처와 마주해야 한다고 말이다. 힘겨웠던 순간을 꺼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하지만 평생 그것과 함께 살면서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상처가 끔찍할수록 꽁꽁 감추는 일은 위험하다. 억눌린 상처가 인생 전체를 파괴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설사 고통을 다시 겪게 되더라도 한 번은 상처와 마주해야 한다. 유배된 상처가 저절로 낫는 일은 없다.’ 148쪽

 

 다양한 사람들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확신은 자존감에서 온다. 그러니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더불어 상처를 인정하고 어리석은 복수를 꿈꾸거나 마음의 문을 닫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과 숨기고 싶은 단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적어도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뒤떨어지지 않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장단점이 모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 를 받아들이고, 열등감을 극복하면서 원하는 이상을 추구할 때 자존감은 강화된다.’ (231, 232쪽)

 

 사소한 말 한마디에 자주 속상하고 화를 어느 시절의 나를 돌아본다. 지금은 어떤 상황, 어떤 상처에도 의연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책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은 건 맞다. 그래서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마음과 관계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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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폐허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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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을 때마다 절망과 고통에 부딪히는 시대다. 하여 많은 이들이 환멸의 삶을 살고 있다. 길을 잃을 양처럼 목자를 찾는다. 불안과 허무로 채워진 삶의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인문학과 철학을 향한 급증된 관심을 보면 그곳에 무언가 해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에밀 시오랑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어쩌다 읽게 된 책이다. 그러니 나는 에밀 시오랑의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때문에 그의 사색에 더 쉽게 흡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쫓기는 듯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유를 선물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한 긍정이나 행복에 대해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죽음, 고통, 허무, 슬픔, 우울로 가득하다. 그것이 모두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에밀 시오랑은 ‘유’가 아닌 ‘무’ 를 통해 존재를 말하는 듯하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던 시절, 살아내기 위해 살았던 시절에는 죽음을 두려워했을까? 이런 구절을 마주하면서 죽음은 삶의 동의어구나 생각한다.

 

 ‘삶의 구조 자체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의 구성 속에 없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죽음을 없음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삶을 삶의 부정이라는 원칙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곧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음은 ‘없음’ 이 결국 삶을 누르고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없음을 향하는 도정을 현재화한다.’ (「죽음에 대한 소고 」중에서, 45쪽)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나의 삶을 생각하니 말이다. 아니, 슬픔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는 여지없이 죽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다만 그것을 누가 알아차릴까 두려울 뿐이다. 하지만 슬픔의 얼굴은 표가 난다.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슬픔에 표정은 잠식당하고 만다. 그리하여 결국엔 슬픔의 주제를 잃어버리고 에밀 시오랑의 말처럼 슬픔은 신비로 교체된다. 아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는 슬픔이라니...  

 

 ‘깊은 슬픔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의 얼굴에서는 너무도 많은 외로움과 체념을 읽을 수 있어, 슬픔에 찬 얼굴은 곧 죽음이 밖으로 드러난 형상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슬픔은 신비로 향하게 된다. 그 신비는 너무도 깊어 슬픔을 수수께끼로 남긴다. 만일 신비의 등급을 매긴다면 슬픔은 무한하고 끝없는 신비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슬픔에 대하여 」중에서, 73쪽)

 

 어제와 다르지 않는 오늘을 살면서 우리는 때로 수많은 어제를 그리워한다. 그때는 좋았는데, 그때가 행복했는데,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제에 속한 삶이 아니라 오늘을 느껴야 한다고 에밀 시오랑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순간은 오늘인 것이다. 현재를 기억하고 현재의 나를 사랑하는 말이다.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의 상처가 남긴 환부를 지켜보며 살기 때문이다. 그는 이별했던 순간, 무시당했던 순간, 부끄러웠던 순간을 현재의 순간으로 채울 수 있어야만 충만해질 수 있다는 걸 각인시켜 준다.

 

 ‘영원한 현재는 실존이다. 영원한 현재를 경험하면서 실존은 자명해지고 확실해진다. 순간의 연속에서 떨어져 나온 현재는 없음을 벗어나 존재를 생산한다. 순간의 기쁨 그리고 사물의 온전한 있음이 주는 매력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 순간 속에 살 수 있고, 현재를 빈틈없이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순간 속의 절대」중에서, 155쪽)

 

 모든 구절에 밑줄을 긋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을 만나는 모든 이가 그럴 것이다. 주제마다 우울과 허무가 산재해 있지만 분명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왜 나만 불행할까, 왜 나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절망하는 이에게 나의 심연과 마주하게 만든다. 산다는 건, 그 자체가 고행이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은 세상의 전부가 당연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감당해야 할 고통의 몫이 줄어든다. 안다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에밀 시오랑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다.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외로움이 아무리 깊더라도,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는 세상을 더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객관적 의미나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를 찾을 수 없지만, 존재의 다양한 형태들은 내게 언제나 슬픔과 희열의 원천이다.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이 우주의 궁극적 목적을 충분히 보상해주듯,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작은 구름 조각이 나의 우울한 염세주의를 즐겁게 해주는 순간들을 경험했었다. 내면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지극히 미미한 자연의 광경에서도 상징적 의미를 발견한다.’ (「고통의 저주스러운 원칙」중에서, 198쪽)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는 제목처럼 곧 해가 뜬다는 명징한 사실을 잊고 살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만 살아갈 것이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어둠이 길어질수록 마주할 빛은 크고 눈부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통과 절망의 삶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삶을 지배하고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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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돌아보며 읽은 책을 정리하는 일은 즐겁다. 잊고 있었던 책들과 다시 마주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읽었던 책, 놀랍게 읽었던 책,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책을 생각한다. 항상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싶은 책만 나열한 글이 많다. 부끄러운 일이다. 해마다 다양한 책읽기, 인문서적 읽기를 목표로 삼지만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다. 외국문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은 왜 이리 많은지, 새로운 작가와 만날 때마다 놀란다. 특별했던 소설, 더 많이 알고 싶은 작가들의 소설이다.

 

 20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 , 나만 그 명성을 몰랐던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 , 애정하는 작가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 , 영화로 더 기대가 되는 토마스 H. 쿡의  『붉은 낙엽 , 매튜 탐정의 다른 활약이 궁금한 로렌스 블록의  『죽음의 한가운데 가 그렇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디어 라이프』 14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여든이 넘은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한 소설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 해서 여성 독자들이 많은 공감을 할 이야기라 생각한다. 파스칼 키냐르의 책은 곁에 둔 지 오래지만 정작 만난 건  『세상의 모든 아침』 이다. 긴 소설이 아닌데 무척 힘겹게 읽었다. 읽고 리뷰를 썼지만 어떤 소설인지는 설명할 수 없는, 파스칼 기냐르는 내게 그런 작가다. 제임스 설터는 그냥 좋다. 단편집에 이어 만난 장편  『가벼운 나날』 에서도 그는 무심한 듯한 삶을 그려내고 뒤흔든다.  『붉은 낙엽』 은 정말 놀랍고 아름다웠다. 분명 추리소설이었다. 아이는 유괴되었고 범인은 잡혔다. 그 과정에서 의심과 불신에 대한 묘사가 정말 멋지다. 로렌스 블록의  『죽음의 한가운데』 는 추억을 불러온다. 사건이 아닌 사건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공중전화를 찾고 싶게 만드는 아련한 그리움까지 선물한다.

 

 

 

 

 

 

 

 

 

 

 

 

 여전히 읽겠다고 구매한 책들은 많다. 하나씩 모으는 밀란 쿤데라 전집, 급 궁금해진 토마스 만과 윌리엄 포크너, 세계문학들, 해외문학상 수상작들은 언제나 궁금하다. 가장 빨리 읽게 될 외국문학은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끼의  『마부』, 읽다가 멈춘 문학동네 세계문학 여명』, 읽은 이마다 호평만 하는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애드 맥배인의 『조각 맞추기』,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이다. 게획대로 읽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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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1-0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새해도 벌써 셋째날이네요. 신명나는 한 해 누리세요^^

자목련 2014-01-03 17:44   좋아요 0 | URL
어, 하는 사이에 내일이 주말이네요.
2014년에는 즐겁고 기쁜 일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님, 매번 먼저 마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올해도 잘 부탁드려요^^*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한국문학이다. 한데 1년 동안 사놓은 한국문학이 읽은 그것보다 훨씬 많다. 그러니까 여기 올린 책들은 읽은 책 중에서 선정한 것이다. 물론 기준은 내 맘대로다. 최진영의 <팽이>, 류소영의 <개미, 내 가여운 개미>,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노재희의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어쩌다 보니 단편집이 4권이다.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과 구병모의 <파과>도 나쁘지 않았다. 시집은 제대로 읽고 리뷰를 쓴 게 없어서 제외했다.

 

 최진영은 젊은작가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이 소설집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 그녀의 시선이 더 궁금해졌다. 공교롭게도 작가정신의 소설이 두 권이다. 노재희와 류소영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윤고은의 소설은 이번에 세 번째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가장 좋았다. 강유정의 말대로 그녀는 변화하고 있었다. 아, 김연수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리뷰를 쓰지 못했다. 이 소설집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리뷰를 쓰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민음사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반갑고, 작가정신에서 나오는 한국문학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진다. 2014년에는 김숨의 <국수>, 백민석의 <혀끝의 남자>, 조해진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을 읽을 것이다. 꼭 리뷰도 남기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기다리는 작가는 김이설 단편집과 정용준 장편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문학을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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