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꽃이 피는 당연한 일들이, 잠자던 땅이 깨어난다는 사실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자연의 위대함을 다룬 책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이유도 그 때문일까? 소설을 읽다가 사건의 중심 속 인물의 내면이 아니라, 계절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에 빠져든다. 이제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가 좋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봄이 되었고, 친분이 없는 누군가의 트윗에 올라온 꽃소식을 듣는다. 겨울에는 듣지 못했던 새의 소리를 듣는다. 아, 봄이구나!!

 

 아직 아파트 주변의 나무엔 연두의 춤사위는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지 않으니 더욱 알 수 없다. 꽃을 보러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자랄 뿐이다. 오빠네 집에는 커다란 동백이 피었을지도 모른다, 수줍은 목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뒤적인다.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은 이제 봄의 대명사가 된 책이다.

 

 

 

‘3월이다. 파랑새들이 하늘에서 미끄러지듯 날아다닌다. 4월이다. 고래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희귀한 참고래가 해안에 도착한다. 만으로 들어오고, 가끔 항구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장난을 아는지 거대하고 육중한 몸을 뒤채고, 물 위로 뛰어오른다.’ 23쪽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우주는 활기차고 사무적이다. 우주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 그 섬세한 풍경들을 보이고 괴록을 과시하고 인식을 하는 건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그 억양들은 우리에게 최고의 활력소가 된다.’ 48쪽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우주의 놀라운 괴력을 말이다. 그런 거대한 우주와 만나는 삶은 어디에 있을까. 소로의 사색을 담은 고독의 즐거움속 구절들이 그러하다. 복잡다단한 삶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삶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나고 자란 탓에 흙과 땅은 익숙하다. 지금도 논과 밭이 보이는 곳에 살고 있다. 가끔 아침에 창문을 열면 퇴비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익숙한 냄새지만 아직은 향기롭다고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호수는 인생보다 아름답고, 인간성보다 투명하다. 화이트 호수와 월든 호수는 이 땅의 커다란 수정이며 빛의 호수다. 만약 두 호수가 영원히 얼어붙은 상태고 손에 잡힐 만큼 작았더라면 어느 노예가 보석이라 훔쳤을 테고 그것은 마침내 황제의 관을 장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호수는 액체인데다 너무도 거대하며 시장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다.’ 252쪽

 

 어린 시절 작은 늪을 우리는 포강이라고 불렀다. 우포 같은 늪지가 아닌 그런 형태를 지닌 작은 웅덩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가 되었다. 그 옆을 지날 때마다 물뱀이 나타날까 재빠르게 뛰었던 기억만 남았다. 모든 것은 변하고, 결국엔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는 것들을 우리는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목성균의 누비처네를 읽으면서 내내 그리웠던 건 어린 시절이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던 나의 마음에 미움이 있었던 시절, 비나 눈이 오면 질퍽거리던 작은 마당, 돼지를 키웠던 우리, 옆집 밭에서 몰래 딸기를 따 먹고 모르쇠로 일관했던 시절이다. 소소한 일상의 조각들을 만날 수 있다.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정말 경이롭다.

 

 

 

신록이 우거지는 초여름, 다랑논을 본 적이 있다.모내기 준비를 끝낸 다랑논은 참 깨끗했다. 가래질을 해서 질흙으로 싸발라 놓은 논둑이 마치 흙손으로 미장을 해 놓은 부뚜막처럼 정성이 느껴졌다. 차마 신발을 신고 논둑길을 건너가기가 죄송할 지경이었다. 골짜기의 물을 허실 없이 가두려고 정성을 다해서 논둑을 싸바른 것이다.

 

물을 가득 잡아 놓아서 거울같이 맑은 다랑논에 녹음이 우거진 쇠재가 거꾸로 잠겨 있었다. 뻐꾸기, 꾀꼬리, 산비둘기의 노랫소리가 다랑논에 비친 산 그림자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송홧가루가 날아와서 논둑 가장자리를 따라 노랗게 퍼져 있었다. 조용히 모내기를 기다리는 다랑논이 마치 날 받은 색시처럼 다 받아들일 듯 안존한 자세여서 내 마음이 조용히 잠기는 것이었다.’ 30, 31쪽

 

 

 

 

 봄이다, 보.옴이라고 말해도 참 예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예쁜 말이지만 봄은 신비한 마술을 부리는 계절이다. 봄을 노래한 시, 꽃을 노래한 시를 찾는 즐거운 날들이다. 나의 계절이 봄이었던 시절, 연인은 내게 이런 시집을 선물했다. 정현종의 한 꽃송이. 아, 그 봄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봄에

 

 진달래꽃 불길에

 나도

 탄다.

 그 불길에 나는 아주

 재가

 된다.

 트는 싹에서는

 간질 기운이 밀려오고

 벚꽃 아래서는 가령

 탈진해도 좋다.

 숨막히게 피는 꽃들아

 너희 폭력 아래서는 가령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

 

- (한 꽃송이,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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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4-03-21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출하는 차안에서 읽으며,,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네요~ 벌써 수십 번의 봄을 지내왔는데 좀더 각별한 봄이 될 듯 싶어요~누비처네는 참 따뜻한 글인것 같아요^^

자목련 2014-03-22 11:28   좋아요 0 | URL
해마다 오는 봄인데, 봄을 맞을 때마다 새로운 설렘을 갖는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누비처네, 정말 아름답고 포근했어요.며칠 동안 쌀쌀했던 기운이 사라진 듯해요. 주말, 평온하게 보내세요^^
 
폭설 외 김지원 소설 선집 1
김지원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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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발견하고 알려주는 건 타인이다. 친구나 지인을 통해 혹은 처음 만난 이들을 통해 습관이나 성향에 대해 듣게 된다. 어쩌면 객관적인 그들의 시선이 정확한지도 모른다. 그러니 소설 속 인물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도 될 것이다. 때문에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속마음 또는 꼭 한 번은 해 보고 싶었던 일탈과 욕망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평범과는 대척점에 있는 듯한 일탈은 모두의 꿈이다. 반대로 일탈이 일상인 삶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그 삶을 갈망하고 부러워한다. 김지원의 소설 <폭설>과 <잠과 꿈>에 등장하는 이들이 그렇다. 그러니까 타인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이들은 또다른 누군가의 삶을 흠모하는 것이다. 좀 더 과감한 삶과 사랑, 도덕과 윤리에서 벗어난 삶을 말이다. 그것은 한국이 아닌 뉴욕이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79년에 쓴 <폭설>이나 87년에 쓴 <잠과 꿈>은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민자, 뉴욕 주재원, 유학생 등의 일상이다. 그들은 쉽게 관계를 맺지만 쉽게 단절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관계가 아닌 소모적 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왔지만 누군가는 도피처였으므로.

 

 <폭설>엔 딸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어머니와 사는 진주가 등장한다. 유학생 시절 꿈과 사랑을 나눴던 정섭과 결혼을 했지만 점차 옅어진 그들의 사랑은 이별로 끝났다. 무기력한 진주의 삶은 직장, 어머니, 어울리는 미스 오가 전부다. 그런 진주 앞에 나타난 남자 기(起)는 그녀를 변화시킨다. 언제나 당당하고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기와 사랑에 빠지고 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기와 진주는 같은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진주는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원했다. 계획을 세우고 아이를 낳고 뿌리를 내리고 싶었지만 기는 여러 여자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했고 진주에게도 그런 삶을 권한다.

 

 뉴욕이라는 공간은 자유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뉴욕에선 결혼생활에 속박되지 않고 각자의 사랑을 즐기자는 기의 태도가 이해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소설 속 기의 바람과 불륜은 진주에게 질투와 동시에 욕망을 불러온다. 진주는 기의 무의미한 사랑과 방황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돌아본다. 진정 진주가 원했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진주의 흔들리는 내면을 잡아 줄 단단한 버팀목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잠과 꿈> 속 혜기도 다르지 않다. 한국엔 친정 엄마가 있고 남편 순구와 아들 완이가 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키우는 일상은 단조롭다. 공원에서 옛 친구 서윤을 만나면서 건조한 삶에 약간의 활기가 들어온다. 한국에서 결혼에 실패한 서윤은 선생님이라 부르는 남자와 살고 있다. 서윤이 직장에 나간 후 그는 제자라는 이유로 많은 여자를 유혹하고 만난다. 남편과는 다르게 자신을 알아보고 긴장시키는 그에게 혜기 역시 다른 여자들처럼 빠져든다. 거기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여자가 있다고 통보하듯 고백한다. 혜기는 순구의 불륜을 견딜 뿐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다. 끓어오르는 열망을 뻔뻔하게 터트릴 수 없었던 혜기는 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김지원의 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그들은 사랑과 삶,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며 흘러간다. 하여 답답하고 애처롭다. 불확실한 일상에 대한 불안과 위태로움을 안고 사는 수많은 진주와 혜기가 떠오른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 덩어리인 삶, 우리네 인생은 왜 이리 가여운가.

 

 ‘창밖으로 가로수의 헐벗은 가지가 온천지에 구원의 손길을 청하는 듯 바람에 휘청휘청 아무 데나 절을 해대고 있었다. 나는 나무와 같아, 뿌리가 땅에 박혀 움직이지 못해. 엄마, 전 무게로 내게 기대지 말아요, 나는 엄마가 생각하듯 행복하고 젊지가 않아, 기력도 없고 생기도 없어. 엄마, 다시 한 번 내게 엄마가 되어줘요, 어린 나를 큰 날개로 봄볕같이 안아줬듯.’ <잠과 꿈,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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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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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때로 충동적인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아주 짧은 순간에 내린 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알면서도 말이다. 전체가 아닌 한 부분을 통해 전부를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설령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건 나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 모든 걸 인정하고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미루고 싶어 한다. 앨리스 먼로의 『런어웨이』속 그녀들도 그렇다. 이곳의 삶이 그곳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곳을 꿈꾼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곳엔 분명 아주 특별한 삶이 존재할 거라 소망한다. 어쩌면 그런 바람이 없었더라면 보잘 것 없는 일상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설사 신기루라 할지라도 바람은 존재해야만 한다.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여자들의 시선에서 삶을 말한다. 그녀들은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주부, 직장 여성, 누군가의 딸, 어머니, 아내다. 그러나 때로 누군가에겐 특별한 사람처럼 보인다. 사랑에 빠졌거나, 남들과는 다른 공부를 하거나, 독특한 취미를 가졌을 때, 세상은 그들이 달라졌음을 알아챈다. 어느 순간 그들의 눈빛, 목소리, 몸짓이 변화한다.

 

 표제작 <런어웨이>의 칼라에게서 실비아가 본 것도 그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매사에 화가 난 듯한 남편 클라크를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원하는 칼라는 본 것이다. 하지만 칼라는 지금의 상황에 아주 작은 변화가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실비아가 빌려준 옷을 입고 토론토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지만 결국 그녀는 클라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녀의 선택은 옳은 것일까. 어떤 이는 떠나야 했을 거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은 오직 칼라만이 알고 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반복된 일상을 살아가지만  어제와 오늘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칼라가 어느 순간 카펫의 무늬를 발견한 것처럼.

 

 ‘카펫에는 갈색의 작은 사각형 무늬가 있었는데 각각의 사각형 안에는 또다시 짙은 갈색과 적갈색 그리고 황갈색의 곡선과 도형 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오랫동안 칼라는 각 사각형 안에는 곡선과 도형의 배열 방식이 똑같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시간이 남아돌 때 무늬를 자세히 살펴보니, 네 가지 패턴이 합쳐져 커다란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열을 쉽게 알아볼 때도 있었고 뚫어져라 쳐다봐야만 알아볼 때도 있었다.’ <런어웨이, 17~18쪽>

 

 칼라와 달리 연작소설 <우연>, <머지않아>, <침묵>의 줄리엣은 변화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줄리엣은 주목받지 않는 학생이었다. 박사 준비 중 여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쳤고 기차 여행에서 에릭을 만난다. 아내가 있던 에릭에게 연락이 왔고 그를 만나러 떠난다. 에릭의 아내가 죽었고 딸 퍼넬러피를 낳았지만 온전한 부부라고 할 수 없다. 줄리엣의 선택은 놀라운 것이었다. 적어도 그녀를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 삶이 항상 행복한 건 아니다. 갑자기 에릭은 죽고 퍼넬러피는 줄리엣을 떠나 소식을 끊는다.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이듯 줄리엣은 혼자서 살아간다.

 

 줄리엣의 삶이 그렇듯, 가족이라 해도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 <반전>의 주인공 로빈을 언니의 조앤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차를 타고 연극을 보러 가는 로빈이 이상할 뿐이다. 그러나 로빈에겐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 몇 시간으로 그녀는 자신이 돌아가려는 보잘 것 없고 불만족스러운 삶이 일시적인 것일 뿐이고, 그런 삶을 견디는 것도 전보다 덜 힘들 거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 그런 인생, 모든 것 뒤에는 기차 창밖을 통해 보이는 햇빛을 받아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광채가 있었다. 여름 들판을 비추는 햇빛과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연극의 여운 같았다.’ <반전, 358쪽>

 

 대단한 무언가를 바란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운명 같은 남자 다닐로를 만났지만 그게 끝이었다. 오해로 마무리된 운명은 먼 훗날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래도 오해가 풀리고 진실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므로,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그러므로 지난 삶을 낸시, 올리, 테서가 각자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단편 <힘>에서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확인하려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낸시가 올리에게 하는 말처럼 인생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니까.

 

 “그래도 인생은 흘러간다는 걸 너도 알았겠지.” <힘, 489쪽>

 

 앨리스 먼로는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돌아보면 모든 삶이 애처롭고 뼈아픈 것이라고. 거대한 상처로 남은 일도 사소한 오해로 시작된 경우가 많고,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믿는 일도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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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온다는 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고속도로나 국도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류독감으로 자녀들에게 설에 내려오지 말하던 방역 작업을 하며 인터뷰를 하던 아주머니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고향이라는 말은 마치 엄마란 말이 지닌 그것처럼 아린 통증을 불러온다. 비는 곧 그치겠지만 떠나지 못한 이들의 가슴에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겠지 싶다. 그믐날 아침이라 그럴까, 김경후의 시도 생각난다.

 

 

 나를 꽝! 닫고 나가는 너의 소리에

 잠을 깬다

 깨어날수록 난 어두워진다

 기우뚱댄다

 

 거미줄 흔들리는 소리

 눈을 감고 삼킨다

 

 오래 머물렀던 너의 이름에서

 개펄 냄새가 난다

 그것은 온통 버둥거린 자국을

 부러져 박힌 비늘과 지느러미들

 

 나를 꽝! 닫고 나가는 소리에

 내게 묻혀 던 악몽의 알들이 깨어난다

 깨어날수록 난 잠든다

 컴컴해진다

 

 닫힌 내 안에

 꽉 막힌 목구멍에

 이제 그곳에 빛나는 건

 부서진 나를 짚고 다니던 부서진 너의 하얀 지팡이

 내 안에 악몽의 깃털들만 날리는 열두 개의 자정뿐  (「그믐」전문, 46~47쪽)

 

 

 그믐의

 마지막

 빛

 테두리

 

 버려진

 뱀 허물을 뚫고

 자라나는

 제로

 담쟁이덩굴

 한

 줄기 (자라나는 제로전문, 38쪽)

 

 

 어제는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설 연휴 배송 안내를 참고하여 2월 3일에나 받겠지 생각했는데 빠른 배송에 살짝 놀랐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반가운 책들이다. 계획했던 폴 오스터의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주문했고 그 책의 첫 문단을 옮기면 이렇다.

 

 일은 잘못 걸려 온 전화로 시작되었다. 한밤중에 전화벨이 세 번 울리고 나서 엉뚱한 사람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훨씬 나중에, 그러니까 자기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우연 말고는 정말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휠씬 뒤의 일이다. 처음에는 단지 사건과 결가가 있었을 뿐이다. 그 일이 다르게 끝이 났건, 낯선 사람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로 미리 정해진 것이었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야기 그 자체이며,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이제야 읽었다. 정말 입소문 그대로 아주 짧고 아주 강렬한 소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강렬함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 소설에 대한 짧은 감상이나 리뷰를 쓰기는 힘들 듯하다. 남성적 소설이라는, 권희철의 해설을 읽고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읽는 이가 많지 않을까 싶다.

 

 설 연휴에는 떡국을 먹을 것이고, 몇 권의 책을 뒤적이며 가끔 긴 잠에 빠질 것이다. 기름진 것들을 만들고 먹기도 할 것이며, 내 나이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말(馬)과, 말(語)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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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3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04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 구매하고 소장하는 이유는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읽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면 좋겠지만 내 경우 그게 쉽지 않다. 시골이라 그런지 아니면 찾지를 못하는 것인지 내가 원하는 책은 도서관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문학전집 중 몇 권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10만원 이상 구매하면 큐브 책장을 주는 이벤트에는 응모하지 못하고 한 권, 한 권씩 주문을 하는 것이다. 아침과 저녁의 마음이 달라서다. 아침엔 구매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저녁에 다시 와서 책을 보거나 검색을 해보면 그 사이 새로운 책이 나오고 멋진 사은품과 적립금이 지급된다고 유혹한다.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두 권 가지고 있다. 읽어냐고 묻지 말길, 제대로 아니 훑어보기가 아닌 미리보기 수준이니까. 그런데도 이번에 나온 체 게바라 만세에 눈이 간다. 와인색의 표지와 <체 게바라 평전>을 주는 이벤트 때문이다. 세상에나 이런 기회는 놓쳐도 괜찮을까? 을유문화사도 고전 이벤트 중이다. 구간은 할인율도 크고 신간은 적립금이 있다.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브루노 슐츠 작품집』이다. 다들 좋다고 말하는 폴 오스터(아직 나는 이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의 에세이 『겨울일기』가 있다.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끌린다. 마지막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봄에 나는 없었다』는 그냥 끌린다.

 

 책이라는 게 무엇일까, 정답을 아는 이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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