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어요, 당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알리는 알라딘 문자는 정말 반갑다. 기다렸던 김이설 작가의 소설이다. 어제 김혜나의 『그랑 주떼』로 만난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세 번째다. 노벨라 시리즈는 한 손에 잡히는 얇은 분량이다. 그렇다고 가벼운 시리즈는 아닌 것 같다. 김혜나의 소설의 경우 금세 읽히지만 여운이 무겁다. 어쨌거나 김이설의 『선화』는 표지 이미지와 제목이 잘 어울린다. 김이설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느끼지만 표지가 매력적이다. 차갑고 서늘한 느낌, 기대가 크다.

 

 김이설의 소설과 함께 궁금한 책 몇 권을 담는다. 함민복의 시집과 다른 산문집은 있는데 눈물은 왜 짠가는 없다.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호텔 로열, 황선미의 동화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도 궁금하다. 동화는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다.  반값 판매 중인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볼』, 아직 읽지 못한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그 후』는 해설이 각각 김연수와 김경주라 끌린다.

 

 

 

 

 

 

 

 

 

 

 

 

 

 

 

 

 

 

 

 

 장서의 괴로움을 읽고 당분간 책을 구매하지 않기로 한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 책은 꼭 사야 한다는 마법이 풀리지 않아서 문제다.

 

 

 *결국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우울해서 주문했다. 이러다 내일은 컵을 주문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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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주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2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비밀이니 너만 알아야 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그렇다. 김혜나의 소설 <그랑 주떼>는 말하지 못했던 비밀 아닌 비밀에 관한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상처를 꺼내 이제야 소독약을 바르는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예정은 동네 무용원의 발레 강사다. 전문적인 발레 수업이 아니라 자세 교정이나 체중 감량을 위해 수강한 수강생을 가르친다. 열다섯 늦은 나이에 예정이 발레를 시작한 건 친구 미국에서 온 전학생 리나 때문이다. 약간의 사시 때문에 왕따를 당하던 예정에게 리나가 친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리나가 다니는 무용원에서 리나를 기다리다 발레 선생님에게 큰 발과 높은 발등 칭찬을 듣는다.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던 칭찬, 그것이 발레와의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예정은 발레를 하기에 좋은 신체 조건에 비해 춤을 추지 못했다. 연습을 하고 동작을 익혀도 춤은 늘지 않았다. 결국 발레리나가 아닌 발레 강사일 뿐이다.

 

 원장 대신 수업을 진행하고 학원을 청소한다. 얼핏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한 청춘의 절망에 대해 들려주는 듯하다. 그러나 유치원 아이들이 도착하면서 예정은 흔들린다. 작고 여린 아이들의 몸짓과 마주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여덟 살에 성폭행을 당하고 고모네 오빠까지 몸을 더듬었던 잔혹한 기억과 대면한다. 두려움과 공포에 울부짖는 예정에게 어른들은 윽박지르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다짐만 받을 뿐이다. 그런 예정에게 발레와 리나는 가장 큰 위로였다.

 

 ‘리나의 이야기가 내 안에 가득 차오를수록 나는 점점 가벼워지고, 나는 점점 사라져 갔다. 내 몸이 사라지고, 내 이야기가 사라지고, 내 삶이 사라지는 듯했다. 무겁기만 하던 나의 이야기가, 바닥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나의 몸이, 공기와 같이, 산소와 같이, 무한히 가볍고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모두 다 사라져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63~64쪽)

 

 하지만 리나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은 상처받을까 겁을 내고 손을 놓고 만다. 점점 커지는 가시를 숨긴 채 어른이 된 예정은 이제야 그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저 자신도 환한 아이였고 그 빛을 감추는 법을 알지 못한 연약한 아이였다는 걸 말이다.

 

‘아이들의 생김새는 모두 달랐다. 몸이나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 어깨, 가슴, 겨드랑이, 배꼽, 허벅지, 종아리, 발가락…… 심지어 피부 색깔까지도 모두가 다 달랐다. 그러나 그 어던 아이도 밉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다, 저마다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빛을 감추거나 숨기는 법을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아이들 모두가 다 저마다의 빛으로 홀연히 빛났다. 아주 어렸던 그때의 나에게도,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빛이 존재하고 있었을까? 흘러나오고 있었을까?’ (124~125쪽)

 

 무거운 소재인 성폭력과 왕따를 다뤘지만 상처와 슬픔을 무척 아름답고 섬세하게 다룬 소설이다. 가만히 다가와 슬픔을 매만지는 손길이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비밀 상자를 매어놓은 끈을 풀어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곁에 있을 거라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만의 상처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게 만든다. 그리하여 높게 그랑 주떼를 뛰며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랑 주떼 -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발레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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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선물 받았다. 자목련이라는 닉네임과 내 이름, 그리고 깊고 푸른 바다를 보냅니다란 문장이 있었다. 작가와의 만남, 낭독의 시간, 강연회는 언제나 먼 곳의 일이다. 참여하지 못하는 공간, 후기로 만나는 걸로 족한다. 한데 이렇게 그곳에서 나를 떠올린 고마운 마음 덕분에 나는 바다를, 섬을,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책 어딘가엔 거문도의 깊고 푸른 바다가 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거문도의 바다 말이다. 아는 이는 알겠지만 나는 지척에 바다를 두었다. 그러나 이 바다와 그 바다는 다르다. 분명 다른 냄새를 품고 있을 것이다.

 

 

 

 

 

 

 

 가을 바다는 어떤 빛이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계절마다 같은 듯 다른 옷을 입은 바다. 다시 또 바다를 그리워할 시간이 된 것이다.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는 맥주를 곁에 두고 읽어야 할 것만 같다. 안주는 오징어로도 충분하다. 이미 바다라는 맛난 안주가 있으니까.

 

 한창훈 작가는, 바다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바다와 가장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작가이기도 하다. 아니, 그는 바다를 흠모하는 하나의 배인지도 모른다. 파도와 연애하는 항구인지도 모른다. 읽은 책은 <홍합>과 <나는 여기가 좋다>가 전부다. 책장 속 <그 남자의 연애사>는 읽지 않았다.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여수시에서 지금도 또 만들고 있는 모형 거북선은 바다를 모른다. 배의 목적은 항해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노동자가 휴식 뒤에 다시 일을 하러 나가듯, 해나 달이 다시 떠오르듯 배는 파도치는 바다로 나가는 게 존재의 이유이다.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아서 좋은 것은 무기분이다. 검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검집 속에 들어 있을 때니까.’ (88쪽)

 

 가을에 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산문을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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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 그리고 강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김세나 옮김 / 이봄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언제나 내 생각에 충실히 따를 뿐이다. 나는 절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루 안드레아스살로메, 164쪽)

 

 생각과 다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건 정말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과 의지를 혼자만 간직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이유로 실천하는 삶을 존경하는지도 모른다. 슈테판 볼만의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에 소개된 여성들의 삶도 그렇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수많은 질타, 압박과 고통을 견디면서 말이다.

 

 과거, 많은 여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가까운 예로, 엄마나 할머니 세대는 남아 선호 사상으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러니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란 말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 전반의 주요 결정자는 남자가 많기에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반어적인 제목의 책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슈테판 볼만이 주목한 위험한 여자는 표지를 장식한 아웅 산 수 치를 시작으로 잘 알려진 마거릿 대처, 수전 손택, 레이철 카슨, 시몬 두 보부아르, 그리고 내게는 조금 낯선 앙겔라 메르켈, 루 안드레아스살로메, 에미 뇌터 등 모두 22명이다. 얼핏 여성 해방운동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인류를 의해 희생한, 불평등하고 부당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저항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언제나 그렇듯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세상에 알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다거나 명예를 얻은 건 아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웅 산 수 치는 15년 간 가택연금을 당했고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던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삶은 의문의 죽음으로 끝났다. 앙겔라 메르켈은 정치적으로 성공했지만 동독 출신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고 위대한 물리학자 리제 마리트너는 여자라는 이유로 연구소 정문을 이용하지 못했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더욱더 정진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시작한 것에서 나도 온전히 싹을 틔운다. 『작은 것들의 신』을 시작할 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 나는 한 번도 내가 처한 상황을 괴로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적이 없다. 내 비밀은,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면서 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룬다티 로이,73쪽)

 

 22명 모두 열정적으로 소모하는 삶을 살았고 살고 있다. 여전히 주변인으로 아웃사이더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과 응원을 건넨다. 더불어 우리 시대는 위험한 생각이 부족하다. 평화를 위한 위험한 생각, 개혁을 위한 위험한 발언, 공존을 위한 위험한 시도 말이다. 우리 스스로 위험한 생각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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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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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라는 무대에서 민중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때로 전쟁이며, 쿠데타며, 학살이다. 그들의 역할이 분명한 단역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특히 1980년대가 그러하다. 그 시절은 누구에게나 잔혹한 이미지로 남는다. 과거가 되었지만 여전히 통증은 지속된다. 직접적으로 개입된 적 없는, 방관자 같았던 관객에게도 말이다.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는 그 시절의 이야기다. 

 

 주인공 나복만은 고아원 출신으로 원주에서 택시기사로 일한다. 애인 김순희와 동거하며 결혼을 꿈꾸는 소박한 청년이다. 그런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과 형사의 감시 대상이 된다. 과연 나복만은 그럴만한 사람인가? 택시 운전 중 사소한 사고를 내자 자진하여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시민일 뿐이다. 교통과가 아닌 정보과를 찾은 게 잘못이었다. 나복만은 글을 몰랐다. 당시 원주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범이 도피처로 선택한 곳이었다. 물론 그들은 원동 성당 최기식 신부의 권유로 모두 자수하였다. 이쯤에서 그 사건은 마무리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군사 정권을 향한 과잉된 충성이 나복만의 삶을 뒤흔들었다. 정보과 형사들은 나복만을 그 사건과 결부시켰다.

 

 그는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함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죄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것은 분명 아는 죄와는 다른 것이었다. 하나의 걱정이, 모든 것의 걱정으로 변화되고, 하나의 두려움이, 수십 가지의 두려움으로 연결되어 버리는 마법.(60쪽)

 

 나복만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문에 이름이 실린 것도 몰랐다. 앞으로 자신에게 펼쳐질 일이 얼마나 심각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직장 동료에게 경찰서에서 조사받은 내용을 털어놓을 뿐이다. 경찰과 정보과 직원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걸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연락이 닿은 적 없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왔으며, 자신이 원동 성당의 신부들의 지시를 받는다는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몰랐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전문 용어로 ‘눈먼 상태’되시겠다.),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179쪽)

 

 1980년대 안기부에선 모든 게 가능했다. 협박과 회유로 시작하여 끝내는 고문으로 모든 걸 인정하게 만들었다. 진실을 알리려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랬다. 우리의 나복만은 아주 쉬운 상대였다. 부모 형제 없는 고아였고 글을 모르니 없는 죄를 만들기에 적절했다. 안기부 직원이 써 준 글을 그대로 옮겨 써야 했다. 나복만은 모든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안기부 직원을 태우고 택시를 몰던 그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사라진 건 가장 잘한 일인지도 모른다. 평생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다 포기하고 나니까 막 화가 났습니다. 제가 도로교통법 말고 또 뭐가 걸릴 게 있다고…….’ (302쪽)

 

 이기호는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유쾌한 톤으로 비통한 마음을 감춘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 이것을 다시 왼쪽으로 모로누운 채, 한번 들어 보아라. 자, 다들 인상 펴고 이것을 계속 들어 보아라. 자, 이것을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를 떠올려 보며 들어 보아라.’소설을 통해 그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원주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이 소설은 소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누군가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절대로 그런 삶이 존재하는 세상은 없어야 한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 시절 얼마나 많은 나복만이 존재했을까. 어떻게 삶은 견디며 살아왔을까. 가슴이 답답해진다. 혹시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복만이 존재하면 어쩌나 정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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