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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격려가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지지 않는다’를 이긴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등만 알아주는 세상에서, 진다는 건 정말 속상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꾸준하게 계속하는 일은 최고와 같은 뜻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소설가 김연수가 소설 쓰는 일과 달리기를 하는 건 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최고라는 말이다.
산문이 주는 장점과 즐거움을 고루 갖춘 책이다. 소설처럼 주인공의 마음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줄거리를 놓쳐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다. 놀랍게도 어느 부분이든 어떤 이야기든 우리 삶과 닿아 있다. 그건 김연수가 소설가가 아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기다 마음을 진솔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솔직하게 나 역시도 그가 왜 달리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게 있고,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누구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니까. 달리기를 통해 그가 삶을 배우고 자신의 삶에 더욱 큰 애정을 갖고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누군가 달리기를 시작했다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평이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에 담긴 은밀한 삶의 발견을 마주하는 건 무척 유쾌한 일이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을 향한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깨닫는 건 중요하다. 세상 속엔 내 주변의 사람과 사물이 포함된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모든 현자들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떠올린다.
‘아름다움과 시간은 상호보완적이었다. 곧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아름답지 않다. 한편으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삶이 결국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는 건 결국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른다.’(73~74쪽)
사라질 것이니 소중하게 바라보아야 하고, 사라질 것이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다니. 김연수가 그랬듯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야 고독과 외로움의 본질을 감지하는 게 우리네 삶인 것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세상과 어른이 된 후 마주한 세상이 다르다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이기도 하다. 40대에 누군가의 부고를 듣는 일이 잦아지는 것이 그렇다. 어린 시절에 몰랐을 죽음이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애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161쪽)
살아 있어 떠난 누군가를 기억하는 건 축복이면서도 서글픈 일이다. 결코 혼자서는 추억을 만들 수 없다는 김연수의 말은 정확하다. 함께 보낸 순간, 함께 보낸 공간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게 누구이든 괜찮은 것이다.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우리는 더 많은 공기를, 더 많은 바람을, 더 많은 서늘함을 요구해야만 한다. 잊을 수 없도록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지켜보고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이 맛보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아침의 미명 속에서도 우리가 달리는 이유다. 그게 바로 때로 힘들고 지친다고 해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 삶을 마음껏 누리는 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297쪽)
김연수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도 적다. 비가 온다는 어제의 예보도 맞지 않을 때가 있고, 정확한 시간에 소독을 실시한다는 아파트 관리소의 고지도 그렇다. 그러니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아파하는 시간으로 소모할 필요가 없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일로 속상해하고 어떻게 마주할지 모르는 미래의 삶으로 미리 걱정하지 말자. 살아 있는 동안 나를 사랑하고 살아가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