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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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읽는 시간은 어쩌면 저자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과 같은 맥락인지도 모른다. 철학자 니체의 아포리즘은 일상에서 많은 위로가 용기를 건넨다. 지혜를 주는 책, 실용인문학으로 나쁘지 않다. 제목처럼 언제나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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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거짓말에 물들다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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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은 빨간 원피스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젊었고 싱그러웠던 시절이다.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의 무게에 짓눌리는 삶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나를 이해시키려도 애쓰지도 않았다. 어떤 이는 청춘이라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계절이었다, 그 시절의 여름은.

 

 한은형의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는 그런 여름 같았다. 그러니까 긴 겨울의 끝에서 누구나 기다리는 봄이 아닌 통과해야 하는 계절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뜨거운 열정이 없거나 아쉽다는 게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그 여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간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론가 황현경의 진짜 연애소설이란 말도 맞겠다. 내게는 그것이 여름을 향한 사랑으로 보였으니까.

 

 수록된 8편의 단편은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 점이 단점이자 장점이다. 조금은 낯설은 소재와 말투, 이야기의 흐름이 그렇다. 한은형의 등단작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은 꼽추 미카엘의 이야기이자 욕망에 대한 것이다. 호수가 보이는 숲 속의 멋진 별장의 집사이자 돈을 주면 무엇이든 하는 미카엘과 그를 통해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의 모습은 끔찍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소유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는 미카엘의 삶은 잔혹한 슬픔이다. 누군가에게는 여름밤이 권태로운 일상의 도피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삶의 연장일 뿐이다.

 

 “여름밤에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치명적으로 아름답거든. 짧은 게 더 자극적이잖아, 치마처럼.”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 17쪽)

 

 표제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도 슬프기는 마찬가지다. 분명 외롭고 쓸쓸한데 정작 표현하지 못한다. 누가 봐도 멋지고 당당한 치과 의사는 ‘나’에게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자신의 자위행위를 글로 써달라는 것이다. 그 어떤 요구도 없이 그게 전부다. 욕망과 맞닿는 순간을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었을 치과 의사의 고독은 얼마나 처절한가. 치과 의사와 만나기 위해 반드시 지나쳐야 했던 너구리 상(象)은 그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직 개를 위한 요리책을 제안한 남자가 결국 개가 된 기이한 이야기 「그레이하운드의 기원」, 애인이 아니라 연인의 역할을 하는 로봇이라는 설정의 「연인형 로봇」, 평양으로 파견 나간 남자가 그곳의 교통경찰 여자를 사랑하는 「샌프란시스코 사우나」는 기발하고 도발적인 상상이다. 특히 이런 문장은 한은형이 만든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기에 충분히 아름답다.  제복을 입고 반복된 행동을 하는 여자를 향한 무한 애정이라니.

 

  ‘그녀는 거리에서 시를 쓰고 있었다. 순간마다 완벽하게 사라지고 완벽하게 창조되는, 그래서 완벽한 시. 우리는 동료였다. 애정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나는 회전교차로와 공산주의와 시인의 역할과 사랑에 대해 이해했다. 사랑은 무언가 부족할수록 생겨나는 것 같았다. 나는 없는 게 많았다. 현실감도, 책임감도, 준법정신도, 자부심도, 열등감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 괜찮은 시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사우나」, 98~99쪽)

 

 불현듯 이 모든 게 존재하는 공간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곳에서는 개가 된 남자를 만나는 것도 나만을 향해 지나친 충성을 사랑이라 믿는 로봇도 평범한 일상이겠지. 그러나 그것이 한 여름밤의 꿈이라는 걸 곧 알아차릴 것이다. 여름은 지속되지 않을 테니까. 빨간 원피스의 시절이 그러했듯이. 때문에 여름은 찬란하다. 다른 여름이 오기 전까지 그 여름은 유일하니까.

 

 한은형의 소설에서 여름과 여름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억은 오직 여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여름과 한은형을 하나로 묶고 싶은 나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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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10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여름도 입추가 지나자 조금 꺾이는 것 같아요. 여전히 뜨겁지만 그래서 좋기도 한‥ 저도 여름이면 입던 빨간원피스가 있는데 이젠 조금 끼이는 듯해서 안 입어요. 나잇살이 붙네요. ^^ 마음도 그렇게 조금은 둔해지길‥

자목련 2015-08-11 10:48   좋아요 0 | URL
정말 신기해요. 아침 저녁으로 더위가 옅어지는 기분이에요.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빨간 원피스는 여름과 뗄 수 없는 기억이라 자주 등장해요,ㅎ

책읽는나무 2015-08-10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엔 빨간 원피스??
그리고 여름엔 한은형의 소설!!
상상하고 있어요^^

자목련 2015-08-11 10:49   좋아요 0 | URL
잔꽃무늬가 프린트 된 빨간 원피스.
한은형은 여름을 좋아하는 소설가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상상 속 여름은 어떤가요?
 

 

 매미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렇게 울어댈까? 그저 본능적인 몸짓에 불과한 것일까? 새벽부터 울어대는 매미를 곁에서 지켜본다면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다. 그러니까 매미의 몸부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과 다른 사람 말이다. 작년보다 훨씬 힘겨운 여름을 나고 있다. 나뿐이 아니다. 아마도 이 여름을 사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내게만 국한된 어떤 여름이 있다고 여기는 건 나의 이기심 때문이다.

 

 입맛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굶는 건 아니다. 자두, 복숭아, 냉커피, 비빔면 이런 것들을 먹고 있다. 여름밤처럼 차가운 캔맥주를 먹고 싶은 날들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맥주 금지령이다. 이른 아침에 오는 문자는 신간 알림이 대부분이고 첫 문자는 제임스 설터의 마지막 소설 올 댓 이즈였다. 한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번역자의 이름이 낯설다. 기다리고 있는 책은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한국이 싫어서』와는 다른 느낌을 기대한다. 읽고 싶고 궁금한 책은 전영애의 시인의과 허수경의 너 없이 걸었다로 두 권 다 같은 출판사, 시인이라는 교집합이 있다. 2015년 퓰리처 수상작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작가는 눈이 아닌 귀로 듣고 보는 세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올여름은 아마도 충동구매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이들이 일어나는 여름이다. 우리가 안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매미는 멈추지 않고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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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 2015-08-0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안녕하세요? <시인의 집>을 만든 편집자입니다.
책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드는 내내 행복했던 책이에요.
충동구매일지언정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

자목련 2015-08-06 17:18   좋아요 0 | URL
소로 님, 반갑습니다.
계획충동구매로 지금 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안겨준 책이라니, 더욱 궁금하네요.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어주세요^^
 
닮은 듯 다른 교과서 속 우리말 1~2학년군 - 별명 좀 바꿔 주세요 닮은 듯 다른 교과서 속 우리말
정유소영 글, 현태준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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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듯 쉽지 않은 한글, 맞춤법, 띄어쓰기 정말 어렵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슬쩍 어른을 위해 구매하고 싶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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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8-07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맞춤법이랑 띄어쓰기는 참말 어려워요ㅜ

자목련 2015-08-10 10:40   좋아요 0 | URL
수많은 언어 가운데 한글이 제일 어려운 말이 아닌가 싶어요. ㅎ
 
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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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가고 있는 지금, 하늘이 더 크게 보인다. 아니면 내가 더 작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28쪽)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산다. 어김없이 내일을 꿈꾼다.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어설픈 공감이란 단어로 내뱉어서도 안 된다. 다만 생각하고 다짐한다. 절실하지 않은 삶은 어디에도 없다고.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데이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싶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기록하며 하루하루를 알차고 소중하게 사는 데이지에게 암은 지워야 할 목록  가운데 하나였다. 사랑하는 남편 잭과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항암 치료와 방사능 치료도 다시 인생의 목록에 존재할 거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고 승리했다. 분명 그러했다. 그런데 암이 재발했다. 단순 재발이 아닌 시한부 삶을 통보하고 있다. 데이지의 몸은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어떤 통증도 증상도 찾을 수 없기에 데이지는 믿고 싶지 않다. 논문을 쓰고 잭이 졸업을 하면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죽음이라니.

 

 누구라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데이지는 달랐다. 낡은 집을 수리할 계획을 세우고 강의를 듣고 치료를 위한 진료도 놓치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은 임상치료에 참여하며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을 이어간다. 눈물로 인사를 전할 엄마에게도 담담히 알리고 자신의 상황을 떠벌리지 않고 가장 소중한 친구 케일리에게만 전한다. 그렇게 죽음과 함께 살아가다 자신의 죽음을 깨닫는다. 딸이 사라진다는 것을, 친구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 잭의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문득, 그러나 또렷이,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이 잭에게 일어날 일임을 깨닫는다.’ (135쪽)

 

 시시각각 다른 크기와 형태로 다가오는 죽음의 절망이 아닌 혼자 남겨질 잭이 안타까워 데이지는 견딜 수 없다. 자신이 없으면 엉망인 일상을 이어갈 잭. 무엇 하나 찾지 제대로 찾지 못하고 필요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공부밖에 모르는 잭. 과연 잭의 졸업식에 참여할 수 있을까? 데이지는 잭의 곁을 지킬 아내를 찾아주기로 한다. 분명 미친 짓이다. 잭과 함께 남겨진 시간을 쪼개어 살아도 부족한데 아내를 찾다니. 이런 일을 응원할 사람은 케일리뿐이다. 잭에게 어울릴 사람을 찾기 위해 사이트에 가입하고 공원이나 카페에서 여자들을 관찰한다. 잭이 좋아할 스타일인지, 말이 통할 만한 사람인지 살펴보다 쏟아지는 어떤 감정과 마주한다.

 

 그랬다. 데이지는 여전히 간절하게 잭을 사랑한다. 약 때문에 오렌지색 우스꽝스러운 피부가 되고 암세포가 자신의 영혼까지 지배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잭과 처음 만난 그 순간의 떨림처럼 그를 원하고 그를 사랑한다. 잭에게 완벽한 아내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아무에게도 내주고 싶지 않은 잭의 사랑을 원했다.

 

 ‘잭이 나를, 진짜 나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예쁜 나를, 강하고 능력 있는 나를, 그가 사랑에 빠졌던 나를.’ (359쪽)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걸 주려고 애쓰고 누군가는 사랑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강요한다. 데이지와 잭이 사랑하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서로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오해를 쌓아가는 둘에게 필요한 것 역시 사랑이다. 데이지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잭이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내 옆 바닥에는 하얀 운동 양말이 열 켤레는 쌓여 있다. 치우기를 잊어서가 아니다. 너무 게을러서도 아니다. 그게 우리들만이 이해하는 장난이기 때문에 거기 둔다. 내가 끊어낼 수 없는 데이지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 그리고 데이지가 어디에 있든, 웃고 있기를 바란다.’ (412쪽)

 

 영원한 이별 때문에 오늘의 사랑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곁에 있는 사랑을 만지고 느끼고 기억해야 한다.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기 두렵고 무섭지만 그것을 함께 계획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랑도 필요한 것이다. 사랑을 믿지 않고 결혼을 포기하는 시대에 사랑의 의미를 말하는 소설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만으로 삶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슬픔을 이길 수 있는 사랑, 절망을 버릴 수 있게 만드는 사랑의 존재를 보여준다. 데이지와 잭의 사랑이 그러하다.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사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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