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도예배를 하루로 지정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각각 드리고 부모님만 그렇게 정했다. 아버지의 기일이 먼저라 그날에 예배를 드렸다. 그러니 엄마의 기일은 알람만 울리고 말았다. 바쁜 농번기라서 논일을 마친 가족과 짧은 예배를 드리고 저녁을 먹었다. 그 즈음에 작은아버지의 입원 소식이 들렸고 뒤를 이어 작은언니가 입원을 했다. 건강은 자신할 수 없다고 하지만 가족의 입원 소식은 소나기처럼 쉽게 그치지 않았다.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 그때를 몰라서 그때를 알고도 미루고 싶은 심경이다. 점점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산다. 하여 어느 날엔 모든 게 공포다. 매일 전해지는 사고 소식에도 혹 그 사고에 내가 아는 이의 이름이 있을까, 노파심이 생길 정도다. 하루하루를 아무 걱정 없이 살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런 생각마저 하고 만다.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투병, 누군가의 사고 소식에 가슴이 쪼그라드는 일. 죽음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일까. 하여 이런 소설을 읽을 때 마음이 복잡하다.

 

 마동수(馬東守)는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7쪽)

 

 때때로 소설은 현실과 한 몸으로 포개진다. 꾸며낸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어떤 소설 속 인물의 삶은 우리네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같은 시대를 살고 있기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단문의 힘이 아름다운 김훈의 소설 『공터에서』를 읽으면서 내 아버지, 어머니가 떠오른 건 나만이 아닐 터.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지독한 현실을 담담히 써 내려간 김훈의 마음에 자리한 삶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정확한 시각과 장소, 아마도 독자는 저마다 그 죽음을 상상할 것이다. 친절하게도 김훈은 마동수의 투병 과정을 상세히 전달한다. 손 닿는 곳에 죽음을 두고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가는 듯 묘사한다. 늙고 병든 우리네 아버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죽음을 마주한 삶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쓸쓸하고 비참한 죽음이었다. 아내 이도순은 고관절에 금이 가 병원에 있었고 휴가 나온 둘째 아들 마차세도 자리를 비웠다. 가족도 없이 홀로 생을 마감한 마동수. 고독사 아닌 고독사였다. 죽는 순간까지 용서는커녕 화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어디에나 있다. 괌에서 사업을 하는 큰아들 마장세 없이 마차세 홀로 장례식을 치른다. 잘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조문을 왔고 하춘파 란 사람이 아버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다. 내 아버지 세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고 전쟁을 겪었고 잘 살겠다고 하루를 이틀처럼 살았던 세대.

 

 한 사람의 생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생은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시대가 원하는 삶기에는 역부족했고 시대를 이끄는 삶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 세 부자의 생을 해 만나는 현대사는 쓸쓸하고 고된 삶을 증명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부재는 아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마장세의 삶을 보면 그의 가슴에 맺힌 아버지의 상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다시 괌으로 떠나 멋진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의 감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버지가 있는 땅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부유하다 결국엔 돌아오는 인생, 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소설을 이끄는 마차세와 그의 아내 박상희는 가장 현실적인 역할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금, 먹고사는 문제가 전부는 아니지만 여전히 생을 지속하는 게 가장 힘들다. 그럼에도 그의 아내 박상희는 마차세를 위로하고 미래를 꿈꾸도록 도와준다. 멀리 외국에 있는 마장세와 연락을 취하는 일도 그녀다. 점점 죽은 아버지와 서로를 닮아가는 형제.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에서 이미 만났던 공허한 생을 김훈은 들려준다. 거창하게 삶의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는 삶이 아닌 살고 있다는 게 삶을 증명하는 이들의 이야기. 아름다운 문장으로 채워진 『내 젊은 날의 숲』에서도 이혼을 한 안요한과 자폐성향의 아들, 그들은 세상과 단절한 듯 사는 아버지와 부자가 등장한다. 감옥에 다녀온 아버지와 꽃을 그리는 딸과의 관계.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과 딸로 태어났지만 반드시 누군가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 마동수가 두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좀 더 보여주었더라면 그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갔을까. 아버지의 삶이 이렇게 힘들었다고, 아버지가 산 시대는 그랬다고.

 

 ‘마음의 일은 말하기 어렵다. 마음의 나라는 멀고 멀어서 자욱하다.’, 저절로 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일은 저절로 되어지지 않는다.’ (『내 젊은 날의 숲』중에서)

 

 그래서 우리는 미련하고 미련하여 아버지가 되어서야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지 못한 나이를 살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냈는지 실감하게 된다. 모든 삶이 그렇게 대물림되는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를 살든 말이다. 아무리 달아나려 해도 제자리걸음이다. 산다는 건 참 힘겨운 일, 나보다 훨씬 고달픈 시대를 살았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리운 날들이다.

 

‘아버지는 삶에 부딪혀서 비틀거리는 것인지 삶을 피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마장세는 알 수 없었지만, 부딪히거나 피하거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 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도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노새나 말, 낙타처럼 먼 길을 가는 짐승 한 마리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얼씬거리다가 그 너머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이 세상이 다시는 지분덕거릴 수 없는 자리로 건너갔다는 것은 어쨌든 아버지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막상 죽음의 소식을 받고 보니 아버지가 건너간 자리는 아주 가까워서 아버지는 가지 않고 다시 이쪽으로 건너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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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7-10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딱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어찌어찌하여
계속 읽게 되네요.

다른 건 몰라도,
흡입력 있는 서사 하나만큼은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자목련 2017-07-10 17:05   좋아요 0 | URL
저도 어느 순간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해요, ㅎ
그래도 읽고 지나가야 하는 작가로 남았어요.
화장, 폐경, 이런 소설을 특히 좋아하면서도 말이에요.

얄라알라 2017-07-10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공터에서 새벽까지 너무 뜨거운 마음으로 읽었네요 자목련님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17-07-13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알라북사랑 님, 반갑습니다. 누군가의 생을 읽는다는 거, 소설이지만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어요.
더위, 시원하게 보내세요^^
 

 

 게으름이 장마처럼 쏟아졌다. 7월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날 새벽 기도에서 목사님의 말씀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믿음과 기도에 관한 것이었지만 일상생활에 더 적용할 수 있는 있었다. 착실하게 쌓아둔 내실이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결국 10일 지나서야 기록한다.

 

 기다렸던 장마는 조금 더디게 왔다. 그나마도 이곳엔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아 걱정이다. 부족한 곳에는 비가 부족하게 내리고 넘치는 곳에는 더 넘치게 내리는 비라니. 비와 함께 찾아온 습기와의 전쟁에서 나는 패했다. 제습기를 돌리고 보일러를 켜도 내 몸 어딘가에 불필요한 습기가 남아 있는 듯하다. 여름을 좋아하는 나인데, 올여름이 살짝 미워진다.

 작은언니는 퇴원을 했고 복직을 했다. 다 나은 게 아니라 힘든 일과를 보내고 있다. ​주말마다 치료를 받으러 서울로 향하고 목 디스크와 함께 살아간다. 올해는 튼튼해지는 해일까. 작은언니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유로 병원을 찾은 나와 작지 않은 접촉사고로 병원 신세를 진 동생까지. 훗날 올여름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충분할 터.

 

 습기, 더위, 장마를 핑계로 나의 산책은 멈춤이다. 하여 이런 자귀나무를(하루 이틀 미뤘더니 결국 이 꼴이다) 담았다. 올해의 자귀나무. 눈꽃처럼 흩날리던 자귀나무 꽃이 아니다. 나무그늘 아래에는 자전거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작은 벤치도 있어 평온한 일상처럼 보인다.

 

 

 

 

 그래도 게으른 책읽기는 이어졌다. 곧 개봉할 영화 <군함도>와 동명의 소설인 한수산의 『군함도』를 읽었고 김애란의 단편집도 읽었다. 기다리는 신철규의 시집은 아직이고, 기다리지 않은 하루키의 소설『기사단장 죽이기』는 예판 중이다. 최진영의 소설『해가 지는 곳으로』는 어떨까? 『구의 증명』과 같은 맥락처럼 여기지도 하는데. 읽어야만 알겠지. 남은 7월의 계획은 여유가 없다. 이미 게으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곧 장마는 끝이 날 것이고, 반짝반짝 더위가 오겠지. 능동적인 여름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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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7-1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읽기의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중입니다.
비가 오니 더더욱 책을 읽지 않을 핑계가 생긴
다고나 할까요.


자목련 2017-07-10 17:05   좋아요 0 | URL
앗, 레삭매냐 님도 비를 핑계로 게으름을 부리시다니. 동지를 만난 듯 반가운 기운이 넘쳐요^^

나와같다면 2017-07-10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초록 가득한 나무처럼 생명력 가득하시기를..

언니분도, 동생분도, 그리고 자목련님도

자목련 2017-07-10 17:06   좋아요 0 | URL
아, 나와같다면 님의 댓글로 튼튼해지고 건강해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님도 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세요!!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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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우리의 내부는 어떤 계절일까. 지금 내가 사는 이 계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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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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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입에서 당신의 귀로 건너간 말들을 생각한다. 시에서 느꼈던 그 울림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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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진실
장 필리프 투생 지음, 박명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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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은 저마다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 어느 하나 같은 방식의 사랑이 없고 어느 하나 같은 형태의 사랑이 없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똑같이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도 있을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사랑은 그렇다. 너무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이 있고 사랑하기에 사랑을 말하지 않는 사랑도 있다. 이처럼 다채롭게 성장하는 유기체와 같은 사랑, 자신의 삶에 자유로운(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마리’의 사랑은 어떤가, 그런 마리를 사랑하는 ‘나’의 사랑은 어떤가.

 

 ‘마리는 지나칠 정도로 열린 창문과 열린 서랍, 열린 트렁크, 무질서, 혼돈, 아수라장, 회오리바람, 움직이는 공기 그리고 돌풍을 좋아했다.’ (13~14쪽)

 

 장 필리프 투생의 『벌거벗은 여인』에 이어 만난 『마리의 진실』속 그들의 사랑은 연약하고 위태로웠다. 무엇 하나 두려울 것 없는 이기적인 마리의 사랑은 유리 같았다. 마리와 ‘나’의 관계는 여전히 선명하지 않다. 어떻게 만나 사랑했는 헤어진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더 끌리고 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마리를 향한 ‘나’의 사랑을 말이다. 소설에서 ‘나’는 끊임없이 마리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헤어진 연인을 향한 미련이 아니라, 지극한 사랑으로 보인다. 이상하게도 그렇다. 같은 공간에서 눈을 뜨고 잠을 자고 사랑을 했지만 ‘나’는 마리를 떠나 다른 공간에 있다. 운명처럼 마리(같은 이름의 마리)와 침대에 함께 있던 새벽, 마리의 연락을 받는다. 자기에게 빨리 와 달라고,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거절할 수 없다. 마리의 부탁이니까. ‘나’의 마리이므로.

 

 같은 시각 마리의 공간에서 마리와 함께 있던 남자 장 크리스토프 드 G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마리는 ‘나’를 찾은 것이다. ‘나’와 나눴던 공간에 다른 이가 있었던 것. 그는 누구일까. 그는 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그러나 ‘나’는 마리에게 아무것도 물을 수 없다. 그것은 ‘나’가 마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비 내리는 밤 마리가 원하는 대로 가구를 옮길 뿐이다.


 ‘우리는 복도에서 동작을 멈추고 가구를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빛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우린 서로를 이해했고, 서로에게 이해되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랬다. 어쩌면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정확한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보다 더 정확한 말도 없을 것이다.’ (54쪽)


 소설은 이제 마리와  장 크리스토프 드 G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어떤 사람이며 두 사람의 만남과 과정을 자세히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나’와 마리가 아닌 그와 마리에 관한 것이라니.  그러나‘나’는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벌어진 마리와 그의 일을 들려준다. ‘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리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장 필리프 투생은 이렇게 독자를 소설 속으로 유인한다.


 ‘나는 마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더이상 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은 더이상 내가 아니었다. 저 남자의 존재가 보여주는 것은 내 부재의 이미지였다. 나는 눈앞에 내 부재를 나타내는 강력한 이미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며칠 전부터 내가 마리의 삶에서 사라졌으며, 내가 없이도 그녀는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그녀는 나의 부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갑자기 시각적으로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그녀를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만큼 더 강렬하게.’ (142~143쪽)

 

 『벌거벗은 여인』과 『마리의 진실』속 엘바 섬은 마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애도의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다.  장 크리스토프 드 G가 죽음 후 마리와 ‘나’는 엘바섬의 저택으로 향한다. 마리와 ‘나’는 동행할 뿐 관계가 회복된 건 아니다. 적어도 마리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마리의 분노와 슬픔을 다 아는 나였으므로. 마리를 향한 ‘나’사랑은 그러했다. 마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나’의 곁에 있든 떠나든. 그녀의 진실을 아는 이는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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