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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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에 살고 있다면 그들은 밖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에서 밖으로 갔을 뿐 안을 잊지 않았으니 안과 밖에 살고 있다는 것일까. 밖에서 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밖에서 사는 게 아닐까. 한국계 미국인 작가 고은지의 장편소설 『해방자들』 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속 주인공처럼 말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 떠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찾은 선택지가 그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1980년 대전의 요한으로 시작한다. 군계엄령과 시위의 시대 요한은 죽음을 당한다. 그가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요한의 딸 인숙은 성호와 결혼한다. 이제 인숙에게는 성호뿐이었다. 그러나 성호는 이민을 결심하고 인숙을 어머니 후란과 함께 남겨두고 혼자 떠난다. 성호가 떠나고 아이를 갖은 걸 알게 된 인숙은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숙과 성호의 이민 정착기나 성공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민자의 고단한 삶을 이어주는 가족애나 동포애 같은 걸 말이다.


그러나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인숙의 아들 헨리가 태어나고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 이야기는 분명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로 공간만 바꿔엇을 뿐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성호를 향한 시어머니 후란의 애정,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성호, 그들을 피해 일터로 나간 인숙. 그리고 혼자 자라는 아이 헨리. 인숙은 일터에 헨리를 데리고 다녔다. 그런 헨리가 의지하는 건 인숙이 일터에서 만난 로버트, 그도 한국인이다.


인숙에게 이념의 희생자인 아버지가 있다면 로버트에겐 일제 식민지 시대와 제주 4·3을 겪을 어머니가 있다. 인숙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로버트인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로버트는 사람들을 모으고 글을 쓰고 통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북에서 온 제니는 로버트를 돕는다. 성호는 그가 못마땅하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한국 현대사를 짚어가며 국가는 무엇인가 묻는 듯하다.


88올림픽과 삼풍 백화점의 붕괴, 북한을 지원하는 남한의 정책, 그리고 세월호 참사까지. 안이 아닌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적이고 명확하다. 제니와 헨리 사이에 태어난 아들 하루가 어째서 아무도 사람들을 구해주지 않느냐는 질문, 그것이 진실이다. 안에 있기에 날카롭게 파고들지 못하는 부분을 작가가 밖에서 분명하게 묻는다고 할까. 허국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우리가 듣지 못한 답을 향한 질문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강연을 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로버트는 끝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잊어버리고 싶었던, 아니 기억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잊어버리려고 애쓴다는 건 기억하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61쪽)


“우리의 이 작은 나라에서도, 또 넓은 세계 속 우리의 입지에도 진전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한국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233쪽)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소설이지만 한 편으로는 역사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같았다.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가족소설의 형태를 지녔지만 공동체 의식이나 그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단단하게 묶어줄 대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 인숙과 성호가 화해하고 제니와 헨리, 그리고 하루가 한 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애틋하고 따뜻했다. 아픔과 상처, 뒤늦게 찾아온 작고 소소한 행복이 그들 가족을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제니가 처음 찾아왔을 떄처럼 편안하게 머물렀다. 아이들이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나는 성호더러 새 엔진을 단 제니의 승합자를 차고에다 세워두라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처음 10년 동안, 매일 아침 나는 하루를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제니가 쉴 수 있게 해주었다. 제니가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면 부엌 조리대에서 커피를 타주었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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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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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은 척 거짓말을 한다.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한 번 더 물어봐 주기를, 정말 괜찮으냐고. 어느 날은 비밀을 말하고 싶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을 쏟아내고 싶다. 어떤 마음은 거짓말이 되고 어떤 말은 침묵이 된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속 고등학교 2학년인 소리, 지우, 채운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한다. 진실을 털어놓고 싶은 채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소리,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는 지우.


세 아이의 곁에는 엄마가 없다. 소리와 지우의 엄마는 돌아가셨고 채운의 엄마는 아빠를 찌르고 감옥에 있다. 채운의 아빠는 죽지 않았고 채운은 전학을 오고 이모집에서 지낸다. 전학을 온 학교에서 채운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한 아이를 보고 놀란다. 사고가 있던 그 밤, 그곳에 있던 아이였다. 지우였다. 지우도 채운을 알아봤다. 엄마가 일하던 갈빗집에 부모님과 함께 온 행복해 보였던 아이. 채운의 가정은 지우가 꿈꾸던 모습이었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지우를 키우며 힘들게 살았다. 그리고 사고로 죽었다. 하지만 지우는 의심이 된다. 엄마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까 봐. 지우는 엄마의 애인 선호 아저씨와 살지만 떠날 계획을 세운다. 반려 도마뱀 용식이와 살 공간을 마련하면 떠날 것이다.


채운의 집은 지운이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빠는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폭군이었다. 사고가 나던 날도 그랬다. 그 사고로 아빠기 죽기를 바랐다. 아빠가 살아나서 진실을 말할까 두려웠다. 채운을 위로하는 건 반려견 뭉치였다. 덩치가 큰 뭉치만이 채운의 가족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뭉치의 발을 잡은 소리가 뭉치와 많이 놀아주라고 말한다. 소리의 말을 들은 얼마 후 뭉치는 죽었고 채운은 소리에게 아빠를 한 번 만나달라고 부탁을 한다. 요양원에 있는 아빠가 정말 좋아지고 있는지 채운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리는 친구들에게 이상한 애란 말을 듣는다. 그림을 그리는 소리는 기이한 경험을 한 후 타인과 손을 잡기를 피한다. 자연히 친구들과 멀어진다. 그러니 지우가 연락을 해서 놀랐다. 당분간 용식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소리가 말하고 싶은 비밀은 손을 잡으면 죽음이 보인다는 것이다. 죽음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아픈 엄마의 손을 잡고 바라기도 했던 마음이라고 소리는 말하고 싶다.


소설의 제목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담임 선생님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이다. 5가지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일,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이어야 한다. 채운, 지우, 소리가 하고 싶었던 진짜 거짓말은 무엇일까. 아니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을 무엇일까. 아직 돌봄이 필요하다고, 엄마의 부재를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잘 모르겠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를 원했던 건 아닐까. 만화 카페에 자신의 이야기를 단편 만화로 그리는 지우처럼. 공교롭게 채운과 소리는 그 카페에서 만화를 보고 지우라는 걸 알게 된다.


채운, 소리, 지우는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였지만 채운과 소리, 소리와 지우, 지우와 채운이 서로를 의식하고 연결된다. 세 아이는 서로에게 거짓을 말하는 동시에 진실을 말한다. 용식이를 맡기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는 지우는 소리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소리는 채운의 아버지의 손을 잡았지만 건강해질 거라고 말한다. 채운은 그날 밤 지우가 목격한 게 무엇인지 묻지 못한다.


때로는 가벼운 농담이나 거짓말을 건네는 사이도 필요하다. 지우는 선호 아저씨가 그랬으면 싶다. 그러면 아저씨에게 거짓말에 담긴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 아이 모두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아간다. 채운, 지우, 소리도 어찌할 수 없는 삶이라는 걸 안다. 세 아이는 너무 빨리 삶의 거짓과 진실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더 안쓰럽고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어른이 되면 다른 삶이 펼쳐진다고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저마다 다른 상처를 만나고 오랜 시간 통증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말해줄 수도 없다. 자기소개처럼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며 삶에 대해 단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라는 변수투성이를,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무조건 희망을 건넬 수는 없다. 어쩌면 소설 속 세 아이는 나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빰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기는 일도 허다하겠지. 누군가 집을 떠나 변해서 돌아오는 이야기. 지우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하지만 그 결말을 잘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 빛나는 재능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몰입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로 여기지는 않았다.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 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232쪽)


그럼에도 김애란은 소설을 통해 삶이라는 거짓투성이 속에도 진실이 반짝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질문을 던질 이가 있다는 걸 말이다. 유연하고 명랑한 그런 게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며 성장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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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1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애란 좋아하는 사람 많던데 자목련님 이책 그저 그런가 봅니다. 저도 오래 전 한 작품 읽고 별로여서 관심없었는데 이 책은 표지가 끌리더군요. ㅎ

자목련 2024-09-16 11:27   좋아요 3 | URL
이번 소설은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느낌이 많았어요. 표지 좋아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독서괭 2024-09-13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자목련님~ 제가 이런 리뷰를 쓰고 싶었다고요 ㅜㅜ

자목련 2024-09-16 11:29   좋아요 2 | URL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뭐가 빠진 것 같은 소설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랬어요.
독서괭 님, 평온한 명절 보내세요^^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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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이 비 끝에 이별이 닿을까. 그러니까 온전한 여름과의 이별 말이다.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를 읽은 후라 그런지 비가 그치면 개운한 일상이 시작될 것 같다. 제목 때문에 궁금해서 읽은 소설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소설인 줄 몰랐다. 헌책방에서 발견하는 낯선 이의 흔적에 감탄하거나 찾아 헤매던 책을 찾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다. 일정 부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 다카코가 1년 동안 사귄 직장 선배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별이야 할 수 있지. 화가 나는 건 상대가 직장 동료와 내년에 결혼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말인가. 다카코만 선배를 사랑한 것이고 상대는 아니라는 확인 사살. 결혼을 상대가 있으면 진즉 헤어졌어야지. 화가 난다. 화가 나. 스물다섯의 다카코는 그 일로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만의 세상으로 파고든다. 무엇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다카코는 외삼촌의 전화를 받고 외삼촌이 운영하는 진보초 거리의 헌책방에서 지내게 된다. 다카코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결정이었다. 엄마가 있는 본가로 갈 수는 없으니까.


외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헌책방을 외삼촌이 물려받았다. 다카코가 지낼 서점 2층은 쾨쾨한 책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헌책방에서의 일상이 처음부터 유쾌했던 건 아니다. 다카코를 바라보는 외삼촌과 단골손님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재밌는 책이 없을까 찾다가 헌책방 서가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하다. 작가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내용은 모르는 책이었는데 한순간 빠져들고 말았다.


책을 통해 이런 멋진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왠지 지금까지 인생을 손해 보며 산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더 이상 게으르게 자고 또 자는 짓은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잠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대신 외삼촌과 번갈아 가며 가게를 보면서 내 방에서든 카페에서든 책을 읽었다.


헌책 속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역사가 쌓여 있었다. 이건 결코 책의 내용에 관해서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한 권 한 권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온 그 흔적들을 나는 여럿 발견했다. (64쪽)


다카노의 경험은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마음과 무척 비슷해 반가웠다. 침잠하던 시절 나를 꺼내준 건 가운데 하나가 책이었으니까. 다카노는 헌책방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보초 거리를 살펴본다.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그곳 직원과도 친하게 지내며 진보초 거리 헌책방에 조금씩 스며든다. 저마다 특색을 지닌 헌책방의 거리를 상상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코를 찌르는 낡은 책 냄새와 말을 거는 책을 찾아 이리저리 서가를 맴도는 모습.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할 책이다.


그렇다고 헌책방에서 낭만적인 로맨스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런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그 책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의 상처와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과 마주한다. 외삼촌과 다카코가 나누는 소소한 대화도 좋다. 실연을 당한 조카와 함께 선배에게 찾아가 사과하라고 말하는 당당한 모습은 통쾌하고 후련하다. 상대의 진정한 사과를 받았다 할 수 없지만 자신의 감정을 후련하게 말한 다카코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젊은 시절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고자 했던 삼촌의 마음, 그 마음이 지금 헌책방에 있다는 것. 그리고 집을 나간 외숙모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래, 그건 마음의 문제야.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진솔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가 있을 장소야. (88쪽)


다카코가 헌책방을 떠나 자신의 자리로 찾아가고 새로운 관계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는 일. 뻔하지만 뻔해서 나쁘지 않다. 나를 위로하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다카코에게 진보초 거리 헌책방이 그렇듯 저마다 그런 공간이 하나씩 있었으면 한다.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좋은 이와 함께 한다는 상상만으로 즐겁다.


서정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일이 휴식이며 나만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일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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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자리 소설Q
문진영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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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을 수 없었다. 그런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소멸하기를 바라고 바랐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시절, 그 아득한 시절이 떠올라서 문진영의 소설 『미래의 자리』를 읽고 가만히 조금 울었다. 그 시절을 지나왔지만 사라진 것 아니다. 내 몸은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의 내가 상상하지 못한 미래의 자리에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미래의 자리』란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예고 없이 떠난 소설 속 ‘미래’의 부재를 확인하는 자리이며 미래의 쌍둥이 언니 나래, 친구 지해, 자람에게 다가올 미래의 자리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후 삶은 온전한 복구가 불가능하다. 무엇으로도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무엇이 미래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알 수 없기에 더욱 힘들다.


초등학교 때 만난 지해와 자람은 중학교에서 미래를 만났고 친구가 된다. 글을 잘 쓴다는 미래의 말은 지해가 소설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 미래와 더 친한 지해를 보는 게 속상한 자람의 마음을 미래는 인정해 주었다. 미래가 고교 진학을 하지 않으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들의 중심엔 미래가 있었다. 지해와 자람, 나래가 대학에 입학할 때 미래는 세상을 보고 나가는 방법으로 영상을 택했다. 그리고 어느 날 미래는 세상을 떠났다.


소설은 지해, 자람, 나래,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지해, 자람, 나래의 이야기가 끝날 때 미래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각자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준다. 지해는 언제나 열심히 살았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다. 뷔페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쓰지만 나아가지 못한다. 독립을 했지만 나만의 공간에 대한 애착도 없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하루를 버틴다고 할까.


첼로를 배워 첼리스트가 되기를 꿈꿨던 자람은 아빠의 사고로 모든 게 달라졌다. 자람을 위로하며 한 방을 쓰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람은 자해를 시작했다. 허벅지에 낸 상처가 쉽게 아무는 걸 보고 자해는 계속 이어졌다. 대학을 졸업 후 연주가가 아닌 복지관을 다니며 플랫폼을 통해 일대일 첼로 강의를 하며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자람에게는 중고 자동차 ‘금옥이’가 유일한 쉼의 공간이다. 미래의 기일과 가깝다는 이유로 이후로 생일을 챙기지 않는 지해를 보는 게 안타깝다.


정해진 대로 부모님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과학고, 카이스트에 입학한 나래는 중학교 졸업 후 독립한 미래를 향한 부모님의 웃음을 질투했다. 미래의 죽음으로 모든 걸 놓아버린 나래는 살아주면 안 될까란 지해의 말에 일어난다. 다시 수능을 보고 의대에 진학한 나래는 자신의 아픔에 무감각해진 일상을 이어간다. 나래의 곁에 연인이 있지만 그 사랑이 결혼 예정으로 이어졌지만 잘 모르겠다.


지해, 자람, 나래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정녕 그렇다. 그러나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 같다. 십 대 소녀가 주인공인 지해의 소설은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자람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게 작은 기쁨의 전부가 되었다. 자람은 아버지의 폭력성을 사랑하는 엄마를 혼자 두고 집을 나올 수 없다. 나래는 연인에게 미래의 죽음에 대해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미래가 없는 그들은 오늘을 버티고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다 지해는 도서관에서 뷔페식당에서 같이 일하는 용이 씨를 우연히 만나 말을 건다. 그의 꿈이 목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손을 통해 뭔가 만들어가는 과정의 위대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글을 조금 더 잘하고 싶어졌다. 자람에게 그런 순간은 작은 일탈로 시작됐다.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 와 버린 것. 횟집 수조에서 새끼 고양이 해삼과 멍게를 만나 서울로 돌아와 일주일 사용으로 공유 오피스텔을 계약한다. 집에 가서 짐을 챙겨 나와 구한 낡은 주택의 이층에서 고양이와 새 삶을 시작한다.


바람이 불자 버드나무들이 한꺼번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마치 우아한 군무를 보는 것 같았다.

버드나무구나. 자람은 깨달았다.

내 흉터는 저 버드나무를 닮았구나.

직선도 곡선도 아닌 것.

단단하지만 유연한 것.

흔들리지만, 끊어지지 않는 것.

그렇게 생각하자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해삼과 멍게가 건강하게 살다가 눈을 감을 때까지.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거라고, 자람은 생각했다. (196~197쪽)


지해가 쓰는 소설 속 소녀는 어쩌면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잃어버렸기에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그릴 수 없는 마음. 그러나 미래가 자신의 꿈 이야기 속 공기방울이 된 친구에 대해 죽은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겨우 오늘을 살아냈다는 안도조차 할 수 없었던 마음도 미래가 아닐까. 자람이 자신의 흉터를 매만지며 살아가는 미래. 고통, 슬픔, 상실로 가득한 삶이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삶이 존재한다는 걸 발견하는 나래의 바람처럼 그런 미래는 올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삶을 이리도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은 모순일까.

대단한 모험보다는 소소한 위험들을 함께하면서 그 떨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갖고 싶다.

겁낼 줄도 알고 용기 낼 줄도 아는 사람을.

돌아볼 줄도 알고 내다볼 줄도 아는 사람을. (219쪽)


『미래의 자리』를 통해 문진영은 조심스럽게 오늘이 끝이기를 바라며 내일을 꿈꾸지 않는 이들에게 내일의 자리를 말한다. 고통이나 불안이 아닌 다른 형태로 다가올 내일의 자리에 함께 손을 잡고 울어줄 이가 있다고. 내일이라는 말이 두렵다면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여기면 어떻겠냐고. 다양한 흉터를 품고 살아가도 괜찮다고. 그런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자리가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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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4-09-10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흉터가 더 이상 상처로 다가오지 않고 그냥 덤덤하게 흔적.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삶이면 좋겠습니다

자목련 2024-09-11 14:58   좋아요 2 | URL
네, 시간이 지난 흉터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이길 바라요.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니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두 손으로 커피잔을 감싸 안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방송에서 냉면이나 팥빙수가 나오면 절로 침이 고인다. 하나의 계절이 지나고 다른 계절이 오고 있다는 걸 가장 가까이서 느끼는 게 식탁이다. 요즘 생각나는 건 고구마 줄기 볶음이다. 이맘때 먹을 수 있는 맛, 때에 따라 생각나는 맛이 있는 것처럼 어떤 음식이나 상황에 떠오르는 책들이 있다. 가을이 시작되면 흐릿한 기억 속 한수산의 장편소설 『가을 나그네』가 생각난다. 이처럼 책이란 시나브로 일상으로 스며드는 힘을 지녔다. 여기 그 순간을 포착해 아름다운 문장과 철학적 사유와 맛으로 소개하는 책이 있다. 셰프 정상원의 독서일기 『글자들의 수프』가 그것이다.

셰프 전성시대라 해도 좋을 만큼 셰프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대다. 방송 프로그램에 셰프의 등장은 익숙하고 요리가 아닌 예능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저자를 알지 못했기에 그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가 반갑고 특별했다. 그가 소개하는 책은 독특한 요리의 맛이 있고 작가의 일생과 근황, 작품에 대한 배경까지 풍부하다. 한 권의 책을 다채로운 맛으로 느낄 수 있다. 말 그대로 저자는 독서 고수다.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흡수하기가 버거운 면도 있다. 어떤 책은 내용이 아닌 음식의 재료만 기억에 남기고 하고 어떤 책은 문장 한 구절만 남고 어떤 책은 몰랐던 작가의 일생 한 부분이 남는다.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셰프의 독서일기이니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때문에 표제인 <글자들의 수프>가 등장한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은 무척 인상적이다. 그 소설을 읽지 않은 나에게는 더욱 그럴 수밖에. 로맹 가리의 소설 속 장면을 모티브로 만든 요리라니. 단호박과 오렌지를 넣어 오랜 시간 끓인 수프가 그것이다. 단호박과 오렌지가 합쳐지면 어떤 맛이 될까. 나만의 소설 속 한 장면을 요리로 승화시킬 수 있다니. 이러한 사연을 몰라도 메뉴판에서 <글자들의 수프>를 발견한다면 나 같은 독자는 그것을 주문할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일상의 평범한 순간에 곁들인 음식 재료나 요리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책으로 연결시킨다. 축구를 볼 때 쥐포를 먹는 일상은 쥐포가 삼천포항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쥐포를 좋아하는 나는 반색한다. 다음에 쥐포를 구매할 때 제품 설명에 삼천포가 있다면 그 제품을 구매하리라. 놀랍게도 그가 쥐포와 함께 소개하는 건 박재삼 시인의 시였다. 시와 삼천포와 쥐포의 완벽한 조합인 셈이다.

항구의 겨울바람은 당연히 일어나는 일들을 멈춰서게 하고 밋밋했던 것들 사이에 시간의 주름을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비밀을 눌러 담는다. 세상에 없던 맛과 향이 쥐치의 살결 사이로 천천히 스며든다. 쥐포는 바람이 멈춘 시간의 맛이다. (91쪽)





내가 읽은 소설 목록이 겹쳐지는 부분은 언제나 반갑고 기쁘다. 이맘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메밀밭의 주인공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 ‘긍게 사람이지’로 남은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막연하게 언젠가 읽겠지 하며 1,2권만 읽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는 내내 추억의 맛이 그리웠던 황석영이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 『황석영의 밥도둑』, 잔망스러운 소녀를 꿈꿨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황순원의 『소나기』가 그랬다.

그런가 하면 소시지 하나로 독일 철학과 문학을 말하는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은 소시지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읽고 싶은 철학 책이 된다. 은행나무가 스무 살이 되어서야 서로를 알아볼 꽃을 피운다는 사실과 함께 온 소설은 쥘 베른의 『녹색 광선』이다.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드는 동명의 출판사의 소설 목록도 따라온다.

서쪽으로 대서양을 품은 유럽 바닷가 마을들에는 녹색 광선에 대한 일관된 전설이 있다. 일몰을 바라보다 녹색 광선을 만나면 그 순간 에피파니처럼 관계에 대한 많은 고민의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답이 있다 한들 그를 찾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그녀를 만난다면 정답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145쪽)

『글자들의 수프』를 읽고 나면 맛있는 수프를 맛있게 음미한 기분일 것이다. 어디 수프뿐일까. 저자가 직접 발로 찾은 소설 속 지역이나 해외까지 곳곳을 여행을 끝내고 정리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좋은 재료로 잘 차려진 식사를 마치고 배부른 느낌이다. 이 가을엔 셰프가 차려준 독서 식탁에 앉아보는 건 어떨까? 색다른 맛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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