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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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친구와 지인이 늘고 있다. 취업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준비로 취득한 것이다. 한 친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려고 편입을 하기도 했다. 노후대비의 하나가 된 치매보험이 낯설지 않다. 내가 사는 시골에는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많다. 늙었지만 혼자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기에 혼자 사신다. 낮에는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집을 놔두고 그곳에서 잠을 자는 일도 허다하다고 들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혼자가 적적해서, 생활비를 줄이려고, 오며 가며 운동이 되니까. 그러나 겨울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추위로 나서는 길은 미끄럽고 위험하며 낙상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해서 겨울엔 여력이 되는 자녀가 와 있거나 어르신들이 자녀의 집에서 지내다 오기를 반복한다.

내 부모는 두 분 모두 돌아가셨기에 요양원에 갈 일이 없어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친구에게 들은 비용은 생각보다 비쌌다. 노년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비는 얼마나 될까, 아무런 대비 없이 살아가는 나는 심란해졌다. 어떤 질병은 예상 없이 찾아온다. 대책과 대안이 없다면 당황하게 된다. 삶의 마지막조차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진정 서글픈 일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식들의 눈치를 보거나 같은 이유로 고집을 피우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굴복하고 된다. 디디에 에리봉의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속 어머니처럼 거긴 내 집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멈춘다.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은 살아있는 삶일까.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많은 질문을 남기고 한편으로는 노년이라는 구체적인 삶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묻고 있다. 부모가 아닌 다가올 나의 노년에 대해서 말이다.

디디에 에리봉처럼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가 집을 떠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게 안전하고 합리적이다. 위급상황이 생겼을 때에도 빠른 처치가 가능하고 그곳에는 이미 기존 사용자가 있느니 그들과 잘 지내면 괜찮다고 여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예상하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 기대했던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삶이 그렇다는 걸 알려주듯이.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그곳은 내 집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이다. 새로운 집이 될 수 없다. 잠시 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원이 아니라 퇴원이라는 조치가 없다. 혼자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게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의견이 수용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곳에는 그곳 나름의 규칙이 있고 사용자를 도와주고 돌봐주는 직원의 수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사립이 아닌 공공 요양원의 예산은 삭감된다. 필요한 재정은 항상 부족하니까.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마땅한가. 그런 삶을 강요해도 되는가. 어머니는 자신이 방식대로 받아들였다. 음식을 거부하고 마지막을 선택한 것이다.

디디에 에리봉은 그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자주 찾아뵐 거라 여겼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후에 쓰인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를 나쁜 아들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나쁜 아들이 아니다. 한 번도 행복한 시절이 없었던 온통 불행했던 어머니의 삶을 재조명하며 사회적 구조와 현실적으로 필요한 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훌륭한 책을 썼으니까.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하녀와 가정부로 생계를 유지하고 노동자와 결혼한 어머니. 남편이 죽은 후에야 뭔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주어졌다. 그러나 아프고 병들면서 그것은 온전히 사라졌다. 한때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 때문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디디에 에리봉과 어머니와 보낸 시간을 통해 어머니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남다르고 특별하다.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적인 활동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했던 디디에 에리봉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시작한다. 항상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지내는 어머니, 은근한 인종주의자 노인. 디디에 에리봉은 어머니의 잘못된 행동이나 발언을 언급하면서도 어머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녀의 집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 없이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므로. 어머니의 부재는 그 모든(어머니와 보낸 순간, 짧은 대화, 사소한 언쟁) 게 애달프고 그립다.

아들이었으나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내게도 일어난 일이다.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문화적·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정말로 내가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의식하게 되는 것. (155쪽)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 역할이 사라진다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울컥했다. 부모가 없는 나에게는 사라진 역할, 친구들이 여전히 수행하는 그 역할.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관계는 지워지고 역할은 사라진다. 나는 더 이상 딸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의 딸이었던 나는 존재하지 않고 큰언니의 동생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누군가 그게 무슨 말이냐 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디디에 에리봉이 어머니의 입에서 자주 쓰던 억양, 말투, 어조, 사투리를 들을 기회가 없다고 여겼던 차에 발견한 방언사전은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1930년대 프랑스에서 태어난 디디에 에리봉의 어머니의 이야기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을 읽으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농담처럼 사촌에게 사고뭉치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고모, 택시 운전을 하시는 작은아버지, 고된 농사일을 하는 오빠 내외, 얼마의 국민연금을 받게 될까 계산하는 나까지. 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이 다르지 않다. 다가올 노년의 내 목소리는 누구에게 닿을 것인가. 아니,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늙음과 죽음을 마주할 공간, 내가 원하는 집은 존재할까.


남들에게 들리도록 소리를 낼 수 있는 고령자들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의 가능한 ‘우리’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현실에서나 심지어 상상의 영역에서도 가능한 공적 발언이 없기 때문이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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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04-14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며 저도 저의 노년을 떠올리며 자주 울컥 했어요. 부모님도 생각하게 되고요. 프랑스의 현실도 우리나라와 너무 닮아 있어 놀라고요. 요양원에서 늙은 어머니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떠도는 디디에 에리봉의 한 밤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눈물을 흘렸어요. 자목련님의 글에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별 다섯 개도 모자랄 정도로 저도 참 많은 걸 느낀 독서였습니다.

자목련 2026-04-14 11:43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이 리뷰 덕분입니다. 정말 좋은 책이에요. 별을 마구마구 주어도 아깝지 않아요. 어렵지도 않았고 현실적으로 돌아보고 사유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어요. 공공의료가 부족한 시골에 살아서 더욱 와 닿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기대수명이 늘고 있는 게 마냥 좋지는 않아서,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는 늙음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삶을 생각해봅니다.

구단씨 2026-04-1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리뷰 문장 하나하나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물론 책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이미 겪어온 시간의 일들이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네요.
그러다가 리뷰 마지막 부분에서는, 어떤 역할이 사라진다는 말에 ‘헉‘ 했어요.
들려주신 이야기 모두 제가 겪었고, 또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어서 지친다는 생각만 하던 요즘이었는데,
저의 어떤 역할이 사라진다는 것에 이렇게 무거운 마음이 될 줄 몰랐어서요.
지치다가도 다시 기운 내야 할 것 같은 님 리뷰에 힘 얻고 가요.
이 책 가지고 있는데, 빨리 펼쳐봐야 할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6-04-1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히 주거지나 환경의 변화가 아닌 과거와 현재의 나로부터 완전히 뿌리뽑힘을 당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깊더군요. 그곳이 마지막 주거지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는 말과 함께요.....
 
장미와 주목 메리 웨스트매콧 컬렉션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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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도 없는 한 인물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묘하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자 누군가를 사랑하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삶을 살아가는 기준과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태연한 이저벨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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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나라는 통증 - 비로소 나아가는 읽기, 쓰기
하재영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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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는 결핍 속에서, 통증에 의해 형성되었다. 통증은 단순한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존재가 세계와 마찰하는 순간에 생겨나는 미세한 감각이다. 또한 말이 채우지 못한 자리에 발생한 공백이자, 말이 넘쳐 흐른 자리에 생겨난 잉여다. 이 낯선 감각은 기억과 몸, 타자와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내가 지극히 나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10쪽)


간헐적으로 통증에 시달린다. 미련하게도 참는다. 오랜 시간 약을 먹었기에 약을 줄이고 싶은 마음인지 모른다. 그러다 약을 먹는다. 통증이 사라진 이유가 약 때문인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결과인지 알 수 없다. 이 통증은 나밖에 모르기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하다 한들 나의 고통을 상대는 모른다. 그걸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통증은 언제든 나를 습격한다. 나를 지배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정이 하재영의 『지극히 나라는 통증』이 궁금했다. 이 책은 단순하게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통증을 다루거나 통증의 경험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다른 지면에 발표한 글과 다양한 주제를 풀어낸 에세이다. 그건 저자에게만 닿은 고유한 감각과 생각일 수도 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관심 있게 짚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지극히 나라는, 개인적인 서사는 타인에게 공감을 얻기 어렵다. 상처와 고통, 과거의 트라우마를 꺼내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했다면 다르다. 아니, 그 이야기를 꺼낼 창구가 있다면 괜찮다. 창구가 있다면 들어줄 이가 있다는 것이니까. 저자가 12년 전의 상처를 꺼내고 정신의학과를 다니고 변호사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은 아무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의미가 있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트라우마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잔인한 상흔으로 남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대단한다. 쓴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쓴다는 건 복잡했던 무언가가 풀리는 순간이며 말하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태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저자는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며 잘못된 사회적 시선에 대해 말한다. 더불어 타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진다. 발레를 위한 몸을 위해 감수해야 했던 시간, 그러나 끝내 발레에 적합한 몸이 아니라서 선생님에게 비난의 말을 들어야 했다. 날씬하고 마른 몸 뒤에 숨겨진 폭력의 언어와 폭식. 성년이 되면서 이어진 굶기와 하이힐의 높이로 채워진 몸.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고 여성은 주입받는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정녕 그건 당연한가.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독자라면 자신의 몸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지불한 시간과 돈, 그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일한 나, 그러니 획일된 몸은 사라져야 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은 술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알코올사용장애’라고 설명한다. 적당한 취기는 효과적인 사회적 가면이라고. 술을 마시지만 원고 마감을 어긴 적도 없고, 취재나 강연에 늦지 않았고, 집안은 깨끗하고 정리되어 있고 공과금을 연체하지 않았다고. 중독에 관해서는 ‘술’대신 다른 것들로 채워질 수 있다. 스마트폰, 연애, 커피, 쇼핑, 게임. 과연 중독에서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될까. 아니 가능이나 할까.




현대인은 자율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비자율적인 쾌락에 기대 특정한 행위를 반복한다. 더는 중독을 비참하게 훼손된 인간의 징표로만 여길 수 없다. 대상과 정도는 다르지만 무엇인가에 얼마만큼은 중독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동의 운명에 처해 있다. (92쪽)


이처럼 자신의 통증(경험)을 통해 우리는 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 경험을 터놓을 수 있는 시작,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키우던 반려견의 죽음을 통해 느꼈던 슬픔과 상실, 나아가 반려종에 대한 부분이 그러하다. 나는 반려인이 아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통한 상실은 가족을 잃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려 한다고 해도 온전히 알 수 없다. 또한 유기견 센터에 모인 버려진 개에게 좋은 입양자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말 잘 듣는 개라는 소개는 결국 키우기 쉬운 개라는 말이며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이라 말한다. 생명체로 대우하기는 어려운 일인지,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환경보호 정책으로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운행이 금지된 곳에서 그것들을 대신한 말의 노동력은 괜찮은가 묻는다. 그런 풍경을 마주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관광지에서 말을 타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보았지만 동물노동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기에. 인간의 필요와 이익이 최우선 순위인 시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관계는 새롭게 사유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믿음을 고민하게 된다.

저자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만났던 공간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애틋하고 울컥한다. 그것은 여성의 공간, 여성의 글쓰기로 연결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가부장제에 편입되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인 여자는 어디에나 있어야 했지만 그렇기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고 자신만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어도 없는 사람이라 말했던 엄마의 말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침묵해야만 했다.


한때 우리는 침묵으로써 우리를 보호하려 했으나, 지금은 존재한다는 것이 곧 말한다는 의미임을 안다.나 자신으로서 말하기, 위반된 언어로 말하기, 단상 위에서 말하기. 또다시 내면의 유혈사태를 겪더라도 나는 잃어버린 것을 회고함으로써 계속 말하고 싶다. (248쪽)


무엇이든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 말하고 쓰는 것. 이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것이 왜 두려운 것이 되었을까. 잘 쓰고 싶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잘 쓴 글이 아닌 나를 쓰는 일을 중요하다. 솔직하고 정직한 나를 쓰는 일, 나의 통증을 마주보고 나를 쓰고 싶다. 그 가능성을 믿는 일, 그게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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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4-1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께서 소개하시는 책은 다 읽고 싶어요. 그렇지만 자목련님의 해석과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을 적은 글보다는 책의 내용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글이 너무 좋아서요.
이번 봄에 많이 만났던
자목련만 보면 자목련님이 생각났어요.
자목련을 보며
자목련님의 안부를 물었던 것 같아요.

자목련 2026-04-14 11:25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 님의 댓글이 제일 좋습니다!!
다양한 경험으로 시작한 사유와 그것을 풀어내는 글쓰기와 읽기에 대한 것으로 공통분모가 많으면 가깝게 다가올 책이라 생각해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훑어보시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자목련이라 행복합니다^^*

곰돌이 2026-04-13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탄의 마음을 누를 길 없게 만드는 글을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읽었어요.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을 안고서도 말하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는 태도가 쓰기의 시작이라는 말씀에 개인적인 공감을 꾸욱 눌러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하고 정직한 나를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자목련님의 고백이, 저처럼 아직 쓴다는 것이 쑥스러운 이들에게는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응원처럼 들려 더욱 깊이 와닿네요. 내 감정을 드러낸다는 게 처음에 너무 어렵더라고요. 이제는 쓰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서 그저 좋을 뿐이고, 오늘 자목련님의 글이 그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해주네요.

자목련 2026-04-14 11:36   좋아요 1 | URL
나를 쓰는 일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게 참 어렵고요. 저는 가득한 미움에서 벗어나려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돌아보니 정말 그랬어요.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게임에서 독서로 이어졌어요 ㅎㅎ
곰돌이 님의 성실하고 아름다운 읽기와 쓰기는 부럽습니다. 온맘으로 응원하고요. 쓰는 것만으로 좋다, 동의합니다. 우리 즐겁게 써보아요!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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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들고, 혼자가 되고, 그 모든 과정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과 계획이 필요하다. 돌봄에 대한 모두가 만족하는 구체적인 대한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 책이 정말 좋았지만 중간중간 읽기를 멈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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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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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건의 서슬 퍼런 날카로움이 이렇게 시작되었구나 생각한다. 단편 속 아일랜드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아서 속상하고 화가 난다.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의 삶을 알 것 같아서. 소설 속 이야기는 현실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 아니 소설에서조차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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