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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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애란은 단편인가,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서 내 시선이 닿지 않았던 곳의 풍경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경제적인 어려움, 이웃과의 단절, 그토록 간절한 공간의 소유, 비슷해서 안도하고 비슷해서 더욱 씁쓸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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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5-12-10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의 ‘좋아요‘로는 왠지 많이 부족한 느낌을 주는 100자평을 읽고 갑니다...
 
소설 보다 : 봄 2025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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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단편이 적절하게 좋았다. 그래도 이상하게 가장 마음이 쓰이는 작가의 단편은 성해나의 소설이 아닌 윤단의 <남은 여름>이었다. 파란색 패브릭 소파에 앉은 서현 옆에 가만히 앉고 싶었다. 서현의 마음을 알아주고 지켜줄 수 없지만 곁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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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동주 창비교육 성장소설 15
정도상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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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별 헤는 밤>과 <서시>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암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구절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나부터도 자세히 모른다. 부끄럽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게 맞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기를 맞은 올해 정도상의 소설로 만난 『소년 동주』를 만났던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소년 동주』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설은 윤동주의 소년 시절을 조명한다. 저항 시인 윤동주가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부모님과 갈등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만난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암울한 분위기를 걷어낼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문학을 향한 윤동주의 열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정도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고생 새봄이 꿈에서 윤동주를 만나 그와 함께 시간 여행을 하는 설정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청소년이 역사 속 인물 윤동주에게 접근하는 쉬운 방법을 제시한다고 할까. 실은 나 역시도 이런 과정이 흥미로웠다. 영화나 언론을 통해 볼 수 없었던 중학생 윤동주의 일과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도 빼놓을 수 없다. 윤동주의 곁에는 언제나 송몽규와 문익환이 있었다. 셋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응원하는 사이였다.

소설에서 만난 동주의 모습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하는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바느질 솜씨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동요였다. 동요를 분석하고 동시를 쓰던 시간이 미래 시인 동주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적 기질을 지닌 동주와 달리 몽규는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동주와 대립한다.


동주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몽규의 문학적 재능이 부러웠다. 하지만 몽규에겐 독립군이라는 확실한 꿈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실행할 용기도 있었다. 만주의 군관학교로 떠나 학생 훈련소에서 생활한다. 부모의 응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익환도 다르지 않았다. 익환은 평양 숭실학교로 편입했다. 동주도 평양으로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반대했다. 아들이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동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익환이 있는 평양에 도착한 동주는 숭실학교의 규모에 놀랐다. 편입 시험 결과도 좋지 않았다. 4학년 편입에 실패하고 3학년 입학증을 받았다. 아버지께 4학년 편입 합격증을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동주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의 기대와 자식의 희망은 늘 같은 게 아닌 것 같다. 숭실학교에서 동주는 학생회의 잡지를 만들며 문학을 배우고 더 깊게 빠져들었다. 그 시간 몽규도 군관학교에서 잡지 <신민>을 만들고 있었으니 둘의 운명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평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숭실학교가 신사참배를 반대하자 총독부는 교장을 해임하고 교정에는 사복형사의 감시가 심해졌다. 학생들이 시위를 하자 사복형사들은 학생회 간부를 체포하고 학교는 휴교를 결정했다. 동주와 익환은 자퇴를 하고 집을 돌아온다. 얼마 후 문학 대신 총을 들고자 했던 몽규도 돌아온다. 동주의 앞에 다시 힘든 시간이 놓였다. 연희전문 문과에 가려는 동주를 아버지는 문학이 밥 먹여주냐며 의과에 가서 의사가 되라고 한다. 문학을 하고자 하는 동주의 굳은 의지는 단호했다. 지금 시대에 문학이 동주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아버지의 가슴은 미어지는 고통이었다.

하고 싶은 일, 스스로 가장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일, 오래 꿈꾸던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삶’이라고 동주는 생각했다. 물론 때로는 고통과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 고통과 희생이 두려워 꿈을 포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못 사는 삶’이 아닌가. (317쪽)

생활의 협박을 견디면서 생활 속에서 시대를 읽고, 순수를 읽고, 작고 사소한 몸짓과 슬픔에 감동하면서 시를 써야만 한다.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326쪽)


시인의 운명을 직감한 동주. 『소년 동주』를 통해 윤동주를 만나고 나니 그의 시가 어떤 고통을 안고 태어났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동요를 분석하고 동시를 쓰던 소년 동주가 자신의 시를 쓰기 위해 시집이란 시집은 모두 꺼내 읽고 시상을 찾기 위해 애쓰는 마음. 어느 시 하나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또한 책을 통해 동주, 익환, 몽규의 아름다운 우정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로 꿈을 찾아 방황하고 길을 헤매는 청소년에게 든든한 응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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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12-0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 동주라니~! 요즘 윤동주님 시에 다시 빠쪘는데 관심이 갑니다~!!

자목련 2025-12-10 09:27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만족도가 높을 것 같아요!
 


책장의 시집을 정리했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읽지 못하는 미안함이 아니라 그 마음이 허영이라는 걸 깨달아서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시들, 읽고 싶을 때 읽어야지 하며 쌓아둔 시집들은 그 마음의 결과였다. 물론 계절마다 떠오르는 시집이 있고 시가 있다. 좋아하는 단어가 등장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이 나오면 더 찾아서 읽기 마련이데, 그러다 보니 어떤 시집은 하나의 시만 읽고 나머지 시들은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준의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도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집에는 유독 짧은 시들이 많았고(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제목 때문인지 아쉬운 느낌이 있었다.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것이 시인의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만가만 그 일상을 따라가다 마주한 상실과 슬픔은 박준의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확인한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에 대한 소회는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하라고 한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는 시가 지독하게 쓸쓸하고 외롭게 다가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해가 지면

책도 그늘이 됩니다

두어장씩

넘겨가며 읽었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은

아직 친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호숫가 마을에

막 도착한 대목에서

책을 덮습니다

귀퉁이를 잇새처럼

좁게 접어둡니다

바람이 크게 일고

별이 오르는 밤이면

우리가 거닐던 숲길도

깊은 속을 내보일 것입니다

(「소일」, 전문)





올해는 비가 잦습니다

서쪽 마을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습니다

버린 기억을

테두리처럼 두른 것이

제가 이곳에서

한 일의 전부입니다

끝을 각오하면서도

미어짐을 못 견디던 때였고

온전히 가져본 적 없어

손에 닿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움큼씩

쥐고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틀림없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싶으면

일단 등부터

지고 보는 버릇도

이즘 시작된 것입니다

(「은거」, 전문)

책을 읽다 멈추고 잦은 비를 바라보며 걱정하는 일상은 우리가 보낸 지난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인가. 박준의 시가 닿는 곳에는 그런 다정함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다정함과 그 뒤에 감춰진 고단함을 생각한다.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어떤 것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이나 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

유월과 칠월을 지나는 동안에는 쌀을 두컵씩만 씻었습니다 그 사이 뜨물 같은 마음도 생겨 아득한 것마다 가까이했습니다 움켜쥐면 적은 듯도 했지만 반듯하게 펴면 이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아래 흰빛」, 전문)

자꾸만 ‘미음’을 ‘마음’이라 읽는 건 왜일까. 끓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 그러면 끓이면 그 마음은 뜨거워질까, 아니면 끓이다 보면 증발하는 것일까. 아니다, 모든 건 다 제목 때문이다. 엉켜 붙은 어떤 마음, 자꾸만 꿈에 보이는 누군가를 떨쳐버리고 싶은 내 마음. 그 모두와 이별해야 한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완벽하고 완전하게.

미음을 끓입니다 한 솥 올립니다 회회 저으며 짧게 생각합니다 같이 사는 동안 보여주지 못한 나의 수선이 어른거립니다 이내 다시 되작거립니다 체에 밭쳐둡니다 아시겠지만 진득하게 남은 것은 버려야 합니다 묽어져야 합니다 고개를 파묻습니다 나는 아직 네게 갈 수 없다 합니다 (「마음을 미음처럼」, 전문)

시집을 읽다 보면 솟구치는 욕망. 시집을 더 읽어야 한다는, 더 갖고 싶다는 허세가 커진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들을 다스릴 줄 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11월의 마지막 날, 박준의 시를 읽다가 엉뚱하게 허연의 시를 찾는다. 11월의 시가 아닌 시월의 시. 이번에는 ‘시월’ 대신 ‘십일월’을 넣어서 읽는다. 이별하는 시간이다.

이별하는 것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은 시월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병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는 단풍잎. 영혼이 빠져나가 파삭거리기만 하는 풀밭, 초속 오 센티미터로 떨어지는 마지막 열매들. 죽은 새끼들을 낙엽에 묻고 날아가는 새들. 그리고 흙장난하는 아이들 이마에 불어오는 사연 많은 바람. 시월엔 가득 찼던 것들과 뜨거워졌던 것들이 저만치 떠날 짐을 꾸린다. 그걸 알아챈 추억들도 남쪽으로 가고. 시월엔 이별이 전부다. 시월은 이별밖에 할 줄 모른다. 시월에 무릎을 꿇는 이유다. 세상엔 만남의 몫이 있는 만큼 헤어짐의 몫도 있어서 이토록 서늘하다. (「시월의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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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11-3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시들이 참 좋네요. 지금의 정서와 맞물려 곱씹게 됩니다. <시월의 시>가 특히 와닿네요.

자목련 2025-12-03 15:18   좋아요 0 | URL
허연 시인의 이번 시집<작약과 공터>의 시들이 참 좋아요^^

구단씨 2025-11-3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 시집을 종종 사곤 했는데, 이제는 사지 않게 되더라고요.
거의 다 읽지 않게 되고, 다시 펼쳐봐야지 하는 다짐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요.
근데 또 이상하게도 요즘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요즘 세계문학을 정리하고 있어요.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사서 채워넣었던 것들이 이제는 정말 장식으로만 머물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이제 다가올 내일, 12월은, 2025년과 헤어지는 시간이겠네요.

자목련 2025-12-03 15:20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시집, 좋아하는 시만 남기려고 하는데 그게 또 어렵네요 ㅎㅎ
저도 읽지 못하는(아니, 읽지 않는) 세계문학도 정리할 예정입니다.

12월 따뜻하고 건강하게 이어가세요^^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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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던 책 만드는 이야기. 편집자의 하루를 그려보게 된다. 이전까지 만났던 김혜진의 소설 중 가장 편안하고 따뜻하게 읽히는 소설이다. 김혜진의 다른 얼굴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정작 편집자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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