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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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수집하는 남자, 정작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에게 속한 이름,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가 살고 있는 삶은 알맹이는 사라진 껍데기가 아닐까 허무함만이 가득하다. 8년 동안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만들어 준 탐정 소장이 떠나고 홀로 남은 그는 이제 자신을 찾아 나선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찾아 헤매는 여정. 나를 아는 사람이 없을까. 

 파트릭 모디아노의 대표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자신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기’로 불린 삶이 아닌 본연의 이름과 삶을 찾아가는 과정은 한 가닥 떠오르는 기억도 없어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가 찾아낸 단서들은 낡은 상자 속에서 잠자던 몇 장의 사진들, 과거의 자신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원사, 사진사, 여전하게 낯선 사람들뿐이다.

 한 장이 낡은 사진 속에 함께 한 그들은 이미 죽거나 사라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 시절, 그가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다시 돌아갈 수도 재생될 수도 없는 시간들이 분명하다. 왜 그곳에 있었는지 사랑하는 연인과 왜 헤어져야 하는지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에게 절실한 것들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미 새로운 기억으로 가득찬 건물들은 그에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한다. 다만 그 자리에서 만났던 바람, 나무, 느낌이 자신을 그 시절로 데리고 간다. 아, 사랑했던 여인, 함께 했던 친구들. 기억 속 세상은 어지러웠고 그들은 안전한 곳으로 떠나야만 했는지 알 수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문장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p9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갔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p.153 )과 그가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오는 흡입력을 가진 매력적인 소설.  탐정이라는 직업적 암시는 자신을 찾게 되어 다행인 결말을 이끌어 낸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에서 그가 마주하는 것이 무엇이든 지난 날의 나를 확인한 그는 이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거와 너무도 다른 삶이라 할지라도.

 불확실한 자아에서 확실한 자아를 찾게 되었을 때,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삶, 타인이 나를 기억하는 삶이 한 곳에서 만날 때 기억은 완성되는 것인지 모른다. 빛바랜 사진은 삶을 살아내는 모두에게 존재한다. 현재라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추억과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재생되는 그 시절로 때로는 위안을 얻는지도 모른다.  지갑 한 구석에 쑥스러운 웃음의 촌스러운 작은 여자 아이를 만나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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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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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언제나 어렵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숨겨진 의미를 시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해하기란 역부족이다. 더구나 익히 접해본 시인이 아닌 생경한 이름의 시는 더욱 그러하다. 온전하게 시를 이해할 수 없기에 시를 읽는지도 모르겠다. 허연의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다라고 소개하고 싶다. 역시나 내게는 잡고 싶지만 잡히지 않는다.

 긴 시간, 시를 쓰지 않은 듯한 시인은 이제 다시 시를 쓰면서 그 외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듯 보인다. 허나, 그의 가슴에는 언제나 시를 품고 살았을 게 분명하다. 그리하여, 이토록 절절하면서도 일상적인 시어들을 탄생시킨게 아닐런지.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게  별반 값어치
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
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
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제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전문

 시인을 빛나게 하던 푸른빛, 내게도 그런 빛이 있었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것을. 늙음으로 향하는 내가 마지막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망을 기억하게 하는 시다. 그리하여, 시인은 나쁜 소년으로 서 있고, 나는 나쁜 소녀로 서 있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은 중요치 않다. 나는 나쁜 소녀이고 싶을 뿐. 허연은 시를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다.  밥벌이를 위해, 빌딩숲으로 걸어가는 자신을 보면서도 시를 열망하던 나쁜 소년을 찾아내려 애쓴게 아닐까 싶다. 감히, 나는 이 집을 ‘시를 위한 시로 채워진 시인을 위한 시’라 말하려 한다.

 굳은 채 남겨진 살이 있다. 상스러웠다는 흔적. 살기 위
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유독 몸의 몇 군데 지나치게 상스러
운 부분이 있다. 먹고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포기도 못했
고 가꾸지도 못한 곳이 있다. 몸의 몇 군데

 흉터라면 차라리 지나간 일이지만. 끝나지도 않은 진행
형의 상스러움이 있다. 치열했으나  보여 주기 싫은 곳. 밥벌
이와 동선이 그대로 남은 곳. 절색의 여인도 상스러움 앞에
선 운다. 살은 굳었고 나는 오늘 상스럽다.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 > 전문 

 이 시를 계속해서 읽고 또 읽었다. 사랑한다가 아닌 사랑했었다. 이미 과거가 되버린 사랑이며 삶이다.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나도 누군가를 사랑했던가. 상스럽고 상스럽게. 그런 적이 있었던가.  허연은 무엇을 잡고 싶었을까. 시를 위해 고뇌하던 먼 기억을 붙잡고 싶었을까. 허무하게 살아지는 복잡하고 건조한 모래성 같은 일상에서 ‘시’라는 빛을 다시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닌 시라고 말하지만, 정작 시는 그 자신인 것을 느낀다.

 여전하게 나쁜 소년인 허연, 그 나쁜 소년을 만난 나는 왠지 그가 나쁘지 않다. 그가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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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내맘대로 좋은 책 연말 스페셜!

 제대로 된 책읽기를 소망함은 말 뿐이었다. 언제나 급한 밥을 먹듯이 체할 듯 그렇게.. 그리하여, 한 해를 지나고 보니 이 책이다, 라고 소리내어 말할 책들은 또 얼마나 되는지...  소중한 책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책을 아끼는 마음에 대한 표현을 좀 더 많이 하고 싶었는데, 나의 표현은 언제나 어떤 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역시나 한국문학중 소설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시를 많이 읽으려 했으나 한 권, 한 권, 늘어나는 시집으로 족한다.

 사실, 신경숙의 책을 근래에는 부러 읽지 않았다. 그냥, 슬픔을 피하고 싶었다고 할까. 결국은 <엄마를 부탁해>를 만나고 내내 눈물속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여기 저기 소문을 많이 냈다. 내게는 이제 엄마라고 부를 그 존재가 없다. 이제 그 엄마가 되었고. 나는 어떤 엄마로 살아야 할지.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숙제이다.  

 

 

 <내 아들의 여인>정미경, 그녀를 좋아한다. 고요하면서도 적나라하게 삶을 그려낸다. 꿈틀대는 욕망, 슬그머니 눈을 뜬다. 어디선가 그녀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아름답게 미화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래도 나는 좋다. 그녀의 책을 만날 때마다 설레며, 구절 구절, 너무도 행복하다. 지금도 새로운 소설이 얼른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시인의 <접시꽃 당신>을 읽으며 시인의 사랑에 슬퍼했던 시절. 숲에서 나는 향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책, 더러워진 내 영혼이 조금은 깨끗함을 받는 듯 했다. 소설이 아닌 산문 읽기의 즐거움을 준 책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나의 그대는 나의 숲에 언제 올까.. 나의 숲을 알기나 할까. 

 

  

 출판사 이름 때문에, 책의 제목에 혹하여 구매한 책이다.<그림에, 마음을 놓다>  출판사는 앨리스라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출판사인지.. 그림을 모른다. 시골 미술관을 기웃거린 기억이 전부다. 이주은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재주를 지닌 듯 했다. 그림을 설명하면서 마치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그녀의 글이 참 따뜻했다. 언젠가 직접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마주 할 날이 오면 좋으련만..  
  


정혜윤의 두 번째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에 대한 평은 둘로 나눠진다. 심한 혹평, 극찬을 아끼지 않는 호평. 뭐라도 좋다. 나는 이 책이 좋으니까. 즐겁게 만났으니까. 내 서고를 꿈꾸고, 내 글을 꿈꾸게 하는 책이었으므로. 다만, 그 책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랄뿐...  

 

백발이 너무 멋진 분, <광휘의 속삭임>, 아직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마음이 무거울 때, 눈물을 감추고 싶을 때, 시를 읽는다. 정현종님의 시...  

 작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시작으로 김연수를 만났다. 올 해 <여행할 권리>, <스무살>,<7번 국도>,<밤은 노래한다>를 차례로 읽었다. 그 중에 내게 최고의 책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다. 작가, 김연수를 만난 듯한 소설이었다. 김천의 뉴욕 제과점을 떠올리고, 그 시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 싶은...  

가끔 작가가 리뷰에 덧글을 써주었다거나, 혹 사인한 책을 보내주었다는 이웃들의 글을 보면서 몹시도 부러워했다. 여하튼 김연수는 인기 작가이며, 이웃집 이웃 같은 작가다. 이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니, 팬인 나 역시 그 수상 소식에 맘껏 기뻐하고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리뷰에 반해서, 허연을 만났다. 나 역시도 리뷰를 올려야 할 책이다. 남기고 싶은 기록들. 푸른빛, 파란색, 나의 청춘은 어떤 색일까. 시를 위한 시, 시인을 위한 시...  

 

 

  

새로운 해가 시작되고, 여전하게 책을 읽고 있다. 읽고 싶은 책들, 읽어야 하는 책들로.. 책은 계속 내게로 온다. 나도 책에게로 가고 있는게 맞을까. 힘이 되는 소식으로 2008년의 마지막 날을 만났다. 그 기뻤던 기억으로 올 해를 살고 싶다.  내게도 분명 무언가가 있을꺼라 그렇게 믿고 싶다. 책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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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7 05: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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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9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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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내게 필독서였던 시기가 있었다. 기억이 가물 가물한 역대 수상작들. 얼마 전에 만난 김훈의 에서이 <바다의 기별>이 아니었다면 기실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요즘 많은 문학상들이 수상작을 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하게 이상문학상은 문학계에서 귄위가 있지 않나 싶다. 수상작인 김훈의 <화장>을 비롯하여 우수상을 수상한 내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김훈의 <화장>에는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火葬)과 대조적으로 젊은 여직원의 생동감있는(化粧)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메마르고 건조한 아내의 육체, 싱그러운 여직원에 대해 감춰둔 욕망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병든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 남성적이라서 그런지 소설은 애잔함보다는 사실적 기술이 많다. 죽은 아내를 화장시키는 내내 화자가 근무하는 화장품 회사에서는 두 개의 광고 카피에 대한 언급이 계속된다. <여자의 내면여행>, <여름에 여자는 가벼워진다>라는 두 개의 문구는 죽은 아내와 여직원으로 연결된다. 결국 <가벼워진다>라는 것이 선택됨과 동시에 나는 자꾸만 죽은 아내가 떠오른다. 삶과 죽음, 삶이라는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세상으로의 여행이 삶이 아닐까.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글, 김훈의 글이 가진 특징을 잘 살린 소설이 아닐까 싶다.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는 제목처럼 어머니가 가진 향기에 대한 이야기다. 늙은 어머니, 그녀에게서는 고약한 냄사가 난다. 아무리 환기를 시키고 집 안 가득 향수를 뿌려도 그 냄새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은 시작되고 그 사이에서 있는 아들은 어머니의 잠시 동생에게 부탁한다. 어머니의 방을 청소하면서 발견한 어머님의 물건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새우젓을 팔던 젓국자, 냄새의 시작은 그것들이었다. 어머니의 냄새는 나를 만든 냄새였건만.  문득, 내 어머니의 냄새는 어땠던가, 코를 킁킁거려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슬픈 소설이었다. 늙는다는 것,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 것을. 우리는 때로 잊고 산다. 내 어머니의 모습은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7편의 우수상 수상작들중에서 특히 좋았던 소설은 김승희의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과 하성란의 <그림자 아이> 였다. 김승희 작가의 단편은 처음 만난 것이다.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의 여성 주인공들의 독백, 대화 형식으로 독특하다. IMF를 겪고 힘들어진 생활을 위해 여자들은 전화방에서 일을 한다. 각각의 힘든 가정사를 독백으로 털어 놓는다. 우리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진흙 파이잖아. 물기가 없어 버석버석하긴 하지만 울면 진흙이 흘러내려. 진흙이 마구 흘러내리면 우리는 자신을 잃게 되잖아. 굽자, 굽자, 또 굽자. 흘러내리려는 내 몸을 굽기 위해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거는 거야. p145 그녀들은 모두 진흙 파이로 묘사된다. 부서질 듯 안타까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절망하지 않고 삶을 지탱하는 그녀들. 
 
 하성란의 <그림자 아이>는 점진적으로 소설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남자는 요양원 창 밖의 자전거만을 주시한다. 사실을 알리려는 아내, 사실을 숨기려는 어머니. 그 사실속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남자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것은 손 안에 무언가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손을 맞잡은 것은 바로 아이의 손이었다. 트럭이 아이를 치었고 남자는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 하성란은 차갑고 차분하게 그 슬픔을 전달하고 있다.
 
 새로운 작가, 알고 있었던 작가의 새로운 단편을 읽는 즐거움과 동시에 소설들이 갖는 의미를 평하는 작품 해설을 이해하기에는 한계를 느낀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글이 있어 소개해 본다.<늙으신 어머니의 향기>의 작가 문순태의 글이다. 진정 문학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작가의 노력과 문학을 저버리지 않는 독자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세상에는 낡지 않은 것도 새롭지 않은 것도 없다. 축적된 전통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고, 최첨단 과학 안에서도 낡은 것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실험정신도 중요하지만
옛것 안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가꾸는 노력도 작가는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실험적 의식이나 새로움만을 찾으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보편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도 존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p108 작가의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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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걸어간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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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환적인 표지는 금세 나를 윤대녕만의 세상으로 이끈다. 네 번째로 만나는 그의 소설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그 설렘을 기억하게 한다.  같은 듯 다른 느낌의 소설들, 혹독하게 말하자면, 윤대녕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와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윤대녕의 소설에는 언제나 낯선 이와의 만남, 일상에서 벗어난 또 다른 행로,  누군가의 부재, 결핍이 있다.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 2004)소설집에서도 마찬가지다. 6편의 중단편의 소설을 통해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 상실, 절망에 대해 쓰고 있다. 그의 글은 아름답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색으로 표현하자면, 보랏빛의 소설, 서정적인 신비로움이 아닐까 싶다. 

 표제작인 <누가 걸어간다>를 비롯해 <찔레꽃 기념관>, <올빼미와의 대화>, <흑백 텔레비젼의 꺼짐>의 단편들은 주인공의 행동,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 일상의 풍경의 묘사가 탁월하다. <누가 걸어간다>의 주인공은 몇 년 전 아내와 이혼을 하고 암 진단을 받아 생의 마감을 생각하며 파주로 들어온다. 때마침 근처 군부대에서 탈영한 남자는 미용사인 여자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두 남녀의 모습은 주인공과 학원강사인 한 여자와의 만남과 비교되며 절망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탈영병은 암에 걸린 주인공과 겹쳐진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삶은 그 순간,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행 간 사이에서 백색의 찔레꽃이 튀어나올 것 같은 <찔레꽃 기념관> 은 무척 아름다운 단편이다.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 삼류 영화의 시나리오를 손봐주는 소설가로 전락한 주인공과 일이 없는 방송작가의 우연한 만남은 둘 사이에서 <찔레꽃>에 대한 추억은 둘 사이를 점점 긴밀하게 만든다. 소설가가 어린시절 만났던 이발사의 집 앞에 가득했던 찔레꽃, 시인이었던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방송작가의 병든 아버지가 부르던 노래 찔레꽃. 이발사이면서 시인이었던 그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추억과 동시에 붙잡을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쓸쓸하다.

 윤대녕의 소설 속 화자는 항상 자신이 누군인가를 찾아 헤메고 있다. <흑백 텔레비젼의 꺼짐>에서 주인공 서정원은 권력자의 서자로 자신의 아버지를 알지 못하다 자신의 첫 남자가 자신의 생부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녀를 사랑한 일도를 남겨둔 채, 서사모아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물방울 같은 존재였어요. 무엇에 부딪히면 툭 꺼져버리는 존재말예요. 그걸 터뜨리지 않기 위해 정말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아왔어요. 매순간 숨이 차게 말예요. 하지만 그게 햇빛 속에 떠 있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버티겠어요.”p55

 소설 속 정원만 물망울 같은 존재일까.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물방울 속에 갇혀있거나, 물방울 속에 살고 있는 타인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서로의 물방울을 터뜨렸을 때, 비로서 관계는 확장되고 커다란 그들만의 물방울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말없이 혼자 사라져 여관방에 누워 있거나 일부러 먼 곳에 있는 술집에 찾아가 문을 닫을 때까지 벽을 바라보고 안자 있거나 혹은 나처럼 걷고 있거나 또한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엉뚱한 장소에서 마치 타인인 듯한 심정으로 자신의 우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름 없는 존재들 말이다. 알고 보니 그게 모두 사람이라는 존재였다. p247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에도 말했지만, 중복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누가 걸어간다>를 읽으면서 단편 <배암에 물린 자국>을 생각했고, 걷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는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를 떠올린다.  윤대녕의 집필실이 제주도여서 그럴까, 꼬집어 말하자면 낯선 공간, 여행지,  섬은 제주도라는 공간과 마주한다. 그리하여, 그 곳에서 소설석 화자를 통해 작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게 아닐까 하는 엉뚱함으로 이어진다.  비릿한 바다냄새, 그럼에도 나는 그의 성실한 독자이고 싶다. 그가 이끄는 대로, 그의 글 속을 유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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