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왜냐하면 객관성을 유지하려 해도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 실렸다. 번역가 김연수가 아닌 소설가 김연수는,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으로 처음 만났다.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해 거대한 우주를 도는 듯 어지럽고 어려운 소설이었다. 그 어려움은 『밤은 노래한다』로 이어졌고 김연수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나’가 아닌 ‘우리’라고 짐작했다. 전쟁과 역사를 다루면서 과거가 아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를 묻고 있다는 건 내게 무척 어려운 문제였다.

 

 김연수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도 가벼운 왈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김연수를 놓을 수 없었다. 도서관을 통해 마주한 『스무 살』, 『7번 국도』를 읽으면서 그가 좋아졌다. 그러니까 그의 글이 나만을 위한 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세계의 끝 여자친구』, 『원더보이』를 통해 그것은 확신이 되었다. 김연수가 소설에서 쓰고자 하는 건 ‘우리’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고자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건네는 진실한 문장엔 강렬한 따뜻함이 함께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 쉽게 절망하지 않을 것, 그게 핵심이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 중에서』

 

 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원하는 쪽으로 부는 바람을 잡아타면 되는 거야. 절대로 네 혼자 힘으로 저 봉오리를 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너는 어떤 바람을 잡아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원더보이, 300쪽』

 

 

 

 

 

 

 

 

 

 

 

 

 

 

 

단 한 권의 책을 선택하기란 어렵지만 그리해야 한다면 안타깝게 절판을 선언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꼽는다. 이 소설은 소통과 관계를 말했던 단편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확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입양아 카밀라가 생모를 찾는 과정은 단순하게 자신의 뿌리와 닿고자 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에 닿고자  한다. 그건 결국 나와 당신의 일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겹쳐지면 그건 사람과 사회, 사람과 세상, 사람과 우주가 될 수도 있다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김연수가 끊임없이 소설을 통해 말하는 건 누군가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편견과 오해로 인해 드러나지 않은 상처까지 발견하고 어루만지는 강력한 온기를 지녔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그 정점에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없었을 테지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274~275쪽

 

 

 여전히 김연수는 소설을 쓸 것이고 나는 그것들을 읽을 것이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를 읽는 건 나의 일이다. 그의 속도에 맞춰 소설을 모두 읽었다고 말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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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직 멀리 있구나

 

 나를 증명하는 몇 가지 서류를 본다. 한글과 한자로 쓰인 나의 이름, 나의 나이, 내가 살고 있는 주소를 본다. 한때 내가 나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절에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에게도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았고,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엄숙한 감사라는 사실을 나는 아주 늦게 깨달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다. 변한 건 무엇일까. 어떤 이의 말처럼 이제 조금씩 철이 드는 걸까.

 

 지난주에는 봄에 소식을 전했던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전히 슬픔의 구간에 있었지만 친구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인정한 슬픔을 말할 수 있었다. 목소리는 편안했고 우리는 많이 웃었다. 불확실한 만남의 계획을 세우며 다가오는 추석을 언급하며 통화를 끝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더라도 그 시간만으로 우리는 충만했다.

 

 읽지 않은 소설집이 많다. 그러니까 읽지 못한 게 아니라 읽지 않은 소설집 말이다. 어떤 책은 읽다 만 소설집이기도 하다. 어떤 책은 좋은 리뷰는 아니더라도 리뷰는 쓰고 싶은 소설집이기도 하다. 책장을 둘러보니 그런 단편집이 꽤 많다. 어디 단편집 뿐이랴, 시집과 계간지도 그렇다. 그럼에도 엊그제는 좋아하는 동생이 보낸 택배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나는 표지와 제목만 보고 김사과를 떠올렸다. 소설집  팽이 는 김사과가 아니라 최진영이었다. 최진영의 소설은 많이 만나지 못했다. 주목받는 작가라는 건 알지만 아직이다. 주목받는다는 건 좋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손보미는 확실한 선두 주자다.  그들에게 린디합을 엔 다른 수상집에서 만난 단편도 꽤 많다. 김유진이 황순원 문학상을, 윤성희가 이효석 문학상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들의 소설집을 꺼낸다. 이 소설집도 읽지 않았거나 읽다 만 소설집이다.

 

 

 

 

 

 

 

 

 

 

 

 

 

 

 

 

 

 

 달이 차오른다. 열흘 후엔 보름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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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녕을 좋아한다. 고독과 몽환으로 이끄는 글이 좋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은어낚시통신』이 아니라 남쪽 계단을 보라로 처음 만났다. 때문에 소중하고 특별한 책이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아, 저 표지를 어쩌란 말인가. 절로 단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떠올리게 만든다.(물론, 내용은 묻지 말기를). 내가 기억하기론, 그의 소설엔 절기가 등장하고, 바다와 산이 자주 등장한다. 그 바다, 그 숲을 다시 만나고 싶다.

 

 책은 책을 불러온다. 정녕 그러하다. 신해욱의 시집 『생물성』의 시「자루」의 속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란 싯구는 염승숙의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제목은 분명 신해욱의 시에서 온 게 아닐까. 소설을 직접 만나지 않고서야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신해욱의 『생물성』으로 인해 『간결한 배치』도 궁금해졌다.

 

 책은 책으로 이어진다는 자명한 사실, 나만 몰랐던 걸까?

 

 

 

 

 

 

 

 

 

 

 

 

 

 

 

 

 

 

 

 

 

 

 그는 폐가 없는 듯이 숨을 쉰다.

 나는 내용물이 가득한 자루를 끌어안고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있다.

     *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는 나를
 숨 쉬는 가구들이 들어찬 방으로 밀어 넣고 있다.

 배설물이 가득한 꿈을 강요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무럭무럭 자라는 베개 속에서
 내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지도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나는 간신히 자루를 붙잡고 있다.

 자루 속에
 숨을 수는 없다.
 일을 해야 한다. (「자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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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1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 책을 주문하려고 했다. 궁금한 내용이기도 했고 적립금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책을 정말 읽고 싶냐는 질문이 불쑥 올라왔다. 아니다, 라는 답이 들려왔다. 아주 솔직한 마음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읽어야만 할 것 같아 구매하는 행위, 진심으로 그 책을 원하는지 확실한 답을 미루고 그저 먼저 사면 될 거라 믿는 부끄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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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8-1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도 이럴 때가 있어서 마음을 접고 주문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최근에 어느 책에서 또 한번 실망을 했지만요.^^

자목련 2013-08-20 19:49   좋아요 0 | URL
책을 선택하는 일은,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 같아요. ㅎ
프레이야 님이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일까, 궁금하네요.
전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을 읽고 있는데 진도가 더뎌요^^

프레이야 2013-08-21 10:19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뒤늦게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읽고 있어요.
자목련님은 읽어보신 책일 것 같은데요^^

자목련 2013-08-21 21:30   좋아요 0 | URL
최근에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을 읽으면서 생각난 책인데, 프레이야 님이 만나고 계셨군요. 책과 서점,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라도 반가워요^^
달콤하고 시원한 밤 보내세요^^*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책이다. 그것이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라면 더욱 반갑고 기쁘다. 최근에 친한 지인에게 선물한 책을 다른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 그 책은, 김 언의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다. 선물 받은 책은 또 있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두 번째인 오현종의 달고 차가운이다. 조해진의 책에 이어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보니 계속 모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가까운 이가 읽고 추천하는 책이라면 주저 없이 곁에 두게 된다. 좋아하는 동생이 먼저 읽고 남긴 글을 보고 바로 구매한 조엘 디케르의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의 경우가 그렇다. 지인이 소개한 책이라면, 읽기 전에 기대가 상승한다. 이제 막 첫 장을 펼치려는 웬디 웰치의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은 그래서 더 궁금하다.

 

 

 

 

 

 

 

 

 

 

 

 

 

 

 

 

 

 

 

 엊그제부터 밤이 안온하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 바람이 다르다. 밤을 가르는 듯 우렁찬 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런 다짐을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나는 항상 실패한다

 

  나는 항상 실패한다. 나는 항상 시도한다. 나는 항

 상 물거품이다. 나는 항상 신비하고 절망한다. 나는

 항상 이유다. 나는 항상 결론이고 거의 없다. 나는 항

 상 무한하고 있다. 나는 항상 결정적이고 온다. 멀어

 져가는 대상에 대하여 나는 항상 단정하고 대상이다.

 나는 항상 불가능하고 없다. 홀로 던져져 있다. 나는

 항상 마주하고 적이다. 흑이고 백이다. 나는 항상 흘

 러넘치는 선물. 거리 곳곳을 옮겨 다니는 식물. 어떤

 시각이든 필요하고 어떤 청각이든 고통을 빼먹는다.

 핑계가 아니면 변명으로. 흐름이 아니면 덩어리로.

 액체가 아니면 젤이라도 바르고 나타나서 밤을 움직

 인다. 밤에 움직인다. 나는 항상 서 있다. 거의 죽어

 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묵직하게 달아나는

 영혼을 붙잡고 있다. 돌로 눌러놓고 있다. (125쪽, 나는 항상 실패한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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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3-08-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소개한 책이라면, 읽기 전에 기대가 상승한다라는 말씀 저 저 저 너무 공감해요~
왠지 믿고 본다고 할까요?ㅋㅋ

자목련님의 글을 보며
<엊그제부터 밤이 안온하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 바람이 다르다.>의 말씀에 끄덕이며
저도 평온해집니다.

자목련 2013-08-16 16:1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꾸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요. ㅎ

지금 이곳엔 바람이 가득해서 무척 시원해요. 이 바람을 블루데이지 님에게 보내드리고 싶어요^^

2013-08-16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6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