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책을 주문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고 싶은 책과 살 수 있는 책, 사는 책은 다르기 때문이다. 문학동네에서 청소년 테마 소설이 나왔다. 세 권 가운데 관계의 온도를 선택했다. 관계는 어른이든, 아이든, 청소년이든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리고 어렵다. 그런 관계를 어떻게 다뤘을지 궁금하다. 주문한 책을 보니 신간보다 구간이 더 많다. 3900원(5만원 이상 구매시)이란 매우 파격적인 가격으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정약용의 산문집다산의 마음, 문화재 지킴이 전형필을 다룬 간송 전형필, 소재 때문에 선뜻 읽기가 겁나면서 관심이 가는 『고백, 모두 구간이다. 그러니까 남들 다 읽은 책을 나는 이제야 읽으려 한다.

 

 

 

 

 

 

 

 

 

 

 

 

 

 

 

 

 

 

 

 

 

 

 

 신간의 유혹은 여전히 강렬하다. 책을 좋아하는 이, 책을 소장한 이, 책을 읽는 이, 책을 모으는 이, 여하튼 책과 관련된 이들에게 장서의 괴로움은 지나칠 수 없는 책이다.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읽고 싶은 이어령, 버리는 글쓰기가 내게 강렬한 눈빛을 보낸다.

 

 어제는 동네 어른의 부고를 들었다.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를 잃은 이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내일이 발인이라는데, 기상 캐스터는 폭우를 예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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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4-08-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밥 대신 책입니다. ㅋㅋㅋ

자목련 2014-08-20 20:54   좋아요 0 | URL
아침엔, 책 주문하느라 밥 때를 놓쳤습니다, ㅋㅋ

프레이야 2014-08-2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밥도 포기할 수 없어요 ㅎㅎ. 쌓여가는데도 책은 좋아요. 빗소리 시원한 저녁입니다^^ 동기들의 부고도 들려오곤 합니다. ㅜㅜ 그런 나이가 되었네요. 죽음이 나이순은 아니지만 ‥

자목련 2014-08-21 18:48   좋아요 0 | URL
분명 구매한 책인데 찾지 못하는 일이 늘어도, 장바구니를 계속 채우고 있어요. ㅎ
여긴 비가 그쳤어요. 흐린 듯하면서도 맑은 그런 하늘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행사, 애도에 대한 기사를 읽는다. 죽음이 산재한 세상, 지구촌 곳곳에서 죽음이 발생한다. 어제 도착한 롤랑 바르트의 책을 읽는다. 일기라는 표현이 맞겠다. 매일매일, 짧은 글로 자신의 감정을 기록한 책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읽으면서 죽음과 삶을 생각한다. 텅빈 어떤 공간을 생각한다.

 

 절망, 갈 곳 없는 마음, 무기력:그래도 여전히 맥박을 멈추지 않는 건 단 하나 글쓰기에 대한 생각. 그 어떤 즐거운 것피난처,  축복미래의 계획으로서의 글쓰기,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으로서, 기쁨으로서의 글쓰기. 을 향하는 경건함으로 가득한 어느 여인의 가슴 벅찬 감동들 또한 다른 것이 아니리라. (1978년 11월 21일)

 

 내가 늘 두르고 다니는 검은색 혹은 회색의 목도리처럼 내가 입고 다니는 외투도 침울하다. 이런 내 모습을 마망은 분명 그냥 뇌두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자 내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좀 색깔이 있는 옷을 입고 다니렴. 처음으로 색깔이 있는 목도리를 두른다(체크무늬가 그려진). (1978년 3월 6일)

 

 모든 일들은 아주 빨리 다시 시작되었다:원고들, 이런저런 문의들, 또 이런저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사랑을 또 인정받기를) 가차 없이 얻어내려고 한다:그녀가 죽자마자 세상은 나를 마비시킨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 라는 원칙으로. (1978년 6월 15일)

 어머니의 자족적이고 검소했던 삶, 물론 그녀가 당신만의 물건을 소유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금욕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물건들은 아주 적다. 마치 그녀가 죽은 뒤에도 자신과 그 물건들이 분리당하지 않고 함께 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1978년 10월 3일)

 장맛비로 습해진 공간을 제습기가 차지한다. 장맛비를 기다리던 날도 있었다고 말할 수 없는 순간이다. 활자화된 죽음과 애도를 마주하면서 점심엔 비빔면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침이다. 여지없이 계속되는 삶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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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싶었던 책은 루이스 어드리크의 『그림자 밟기』였다.  최지월의 『상실의 시간들』에 밀려 다음으로 미뤄진다. 받아든 책을 펼쳐 만난 문장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번째로 펼쳐진 곳이다.

 

 ‘엄마는 세 번의 출산을 모두 집에서 했다. 세 번 다, 아버지는 근무하느라 집을 비웠다. 옆집 아주머니가 도와주긴 했다지만, 엄마는 소희 언니를 낳을 때 호되게 고생했기 때문에 내 출산 예정일에 맞춰선 시댁에 연락했다. 친할머니가 왔는데, 나는 예정일에 나오지 않았다. 보름쯤 해산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급한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시골로 돌아갔다. 나는 고 사이에 태어났다. 열네 시간에 걸친 지독한 난산이었다. 내가 태어난 뒤에 할머니가 다시 왔지만, 이제 몸도 풀었으니 일해도 되겠다면서 밥을 차려내라, 국이 맛이 없다, 집이 더럽다, 애 꼴이 저게 뭐냐 하는 등등의 잔소리와 훈수로 엄마 가슴에 평생 잊지 못할 한을 남겼다.’ (80쪽)

 

 내 어머니를 생각한다. 엄마는 다섯 번 출산을 했다. 마지막 남동생의 출산엔 내가 있었다. 뜨거운 물을 끓이는 등 분주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아들 손주라 좋아했다. 하지만 그 귀한 손주를 낳은 엄마에겐 어떤 말도 건네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소설처럼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두 달이 지났다. 아버지 방은 사라졌다. 동생이 새로운 장판을 깔고 벽을 도배했다. 방 어느 벽엔 구름무늬가 있는 벽지가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들어왔다. 아버지가 잠들었던 방에서 동생이 잠을 잔다.

 

 밤새 쏟아지던 장맛비가 사라진 시각, 나는 제습기를 돌린다. 창을 닫고 선풍기를 켜고 제습기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옮긴다. 단편집 『뱀』으로 만난 윤보인의 장편소설 『밤의 고아』가 들려주는 문장들.  ‘문을 열면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간다. 서른한 개의 계단, 아니 서른세 개의 계단, 계단 끝에는 지하실이 있다. 지하실 옆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다.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9쪽)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걸을 것이다. 정해진 곳을 향하거나 알지 못하는 낯선 곳을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딘가에 멈춰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이광호의 산문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속 문장처럼 말이다.

 

 ‘절대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누군가와 떨어져 있다면, 죽음처럼 건너갈 수 없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너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아득한 거리는 아득한 시간이다.’ (37쪽)

 

 나와 아버지의 거리, 나와 엄마의 거리는 아득한 그것이다. 때로 아득해서 꿈속을 헤맨다. 때로 아득해서 멍으로 채워진 시간을 보낸다. 부재를 인정하고 부재를 소멸해야 하는 일이 남은 것일까?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커진다.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다른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아빠가 아닌 아버지.

 

 

 

 

 

 

 

 

 

 

 

 

 

 

 

 

 

 

 

 

 

 

 내게는 이해인 수녀의 책이 아닌 백지혜의 책인 『밭의 노래』가 나왔다. 백지혜의 책이 처음이라면 『꽃이 핀다』와 함께 만나면 더 좋을 것이다. 끝이 보이는 장마, 그 뒤를 이어 달려올 더위를 날려줄 책으로 『유괴』를 고른다. 초복, 여름이라는 삶에 지친 당신에게 윤희상의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에 수록된 이 시를 건넨다.

 

 

  버드나무로부터의 편지 - 윤희상

 

 

 이른 아침부터 언덕을 거닐며 안으로부터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읽고 있다

 그리움이거나

 미움이거나

 목마름이거나 그럴 테지만, 뜨겁다

 이내 바람이 불어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이지만,

 아픈 것은 마음이다

 이제 다치지 않는 바람이 되고 싶다

 날마다 그런 마음을 드리운 그림자를 물 위로 띄워보지만,

 아무도 건져서 읽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바람에게로 간다

 이미, 풀어내린 긴 나뭇가지의 잎사귀들이

 바람 속으로 먼저 들어서고 있다

 언덕에서 바람에게 몸과 마음을 다 맡기도 있다

 벌써 바람과 함께 놀고 있다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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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돌이 2014-07-2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꽃이 핀다]의 그림작가였군요. 이해인의 글에 그린 사람이...어쩐지 푸근하고 낯이 익는 그림이다 했어요^^
아이 어릴때 사놓곤 그림이 너무 예뻐 자주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림자밟기] 읽으려고 하고 있는데, 선뜻 손이 안가네요.
가슴아픈 가정사를 읽으면 우울해지려고 해서...

자목련 2014-07-23 10:11   좋아요 0 | URL
남희돌이 님도 <꽃이 핀다>를 곁에 두셨군요. 저도 종종 들여다보는 책이에요.
이번 그림책엔 이해인 수녀님의 글이 있어 한층 더 풍성할 듯해요.

[그림자 밝기]는 지금 오는 중인데, 저도 언제 읽게 될 지 모르겠어요.

비가 오는 수요일, 평온하게 보내세요^^
 

 

 한 권의 책이 운명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표현했지만 사랑을 주고 싶은 책이라는 말이 맞겠다. 정호승의 산문집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가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이라고 하는데 나는 칼럼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글이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었는데도 참 좋다. ‘좋다’란 말속에  따뜻함, 포옹, 기운, 안부, 토닥임, 친구 같은 뜻이 담겼다. 뭐라고 표현하면 정확할까? 아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좋겠다.

 

꽃은 왜 아름다울까. 그것은 겨울이라는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지금은 묵묵히 고통을 견뎌내야 할 때다. 나이 든 중년 세대의 인생은 짧지만 젊은 청년 세대의 인생은 길다. 인생은 일회적인 것이지만 수능이나 입사 시험은 일회적인 게 아니다. 수능이나 입사 시험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니다.’ (127쪽)

 

 ‘사람이든 나무든 직선보다 곡선의 삶의 자세나 형태가 더 아름답다. 새들은 곧은 직선의 나무보다 굽은 곡선의 나무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함박눈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쌓인다. 그들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만들어져, 굽은 나무의 그늘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편이 쉰다. 사람도 직선의 사람보다 곡선의 사람의 품 안에 더 많이 안긴다.’ (201쪽)

  

 내게는 이렇게 정확하지 않아도 좋은, 설명하지 않아도 좋은, 그리 믿고 있는 인연이 있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이들이다. 오직 글로만, 때로는 목소리로, 문자로 만난 이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신비롭고 신기한 일인가. 이 책을 나누고 싶은 이가 떠올랐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E 님,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즈음이 생일이다. 방금 주문을 했다. 나는 괜히 설렌다. 내가 책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아진다. 책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이 그곳에 제대로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생은 어느 순간에 가장 아름다워지는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고독한 성찰의 세계에 머물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 박항률의 그림 속에 앉아 자연과 하나가 될 때 나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을 살게 된다. 그의 그림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또한 내가 사랑하는 까닭은 바로 그림 속의 인물과 내가 하나 됨으로써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 인물과 하나가 되어 한순간이나마 영원히 낙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254쪽)

 ​화가 박항률의 그림 때문에 더 좋다. 해야 할 일들이 거미줄처럼 펼쳐졌지만 가만히 그림을 바라보고 매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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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문할 때마다 시집을 한 권씩 주문한다. 최근 내 곁에 온 시집은 한결같이 좋다. 

요동치는 마음을 위해, 편협한 마음을 위해, 시를 읽어야 한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 눈물 대신, 때로 분노 대신, 때로 슬픔 대신 시를 먹는다.

그리하여 시가 되는 꿈을 꾼다.

다시, 시를 읽어야 할 시간이다.

 

 

 

 

 

 

 

 

 

 

 

 

 

 

 

 

물방울들은 얼마나 멀리 가는가

새들은 어떻게 점호도 없이 날아오르는가

 

그러나 그녀의 발은 알고 있다

삶은 도약이 아니라 회전이라는 것을

구멍을 만들며 도는 팽이처럼

결국 돌아오고 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의 손은 알고 있다

삶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

가슴에 손을 얹고 몇 시간째 서 있으면

어떤 움직임이 문득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동작은 그렇게 발견된다는 것을

 

동작은 동작을 낳고 동작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춤을 낳고 춤은 허공을 낳고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길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녀는 아는가

돌면서 쓰러지는 팽이의 낙법을

동작의 발견은 그때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나희덕의 <동작의 발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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