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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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백일몽이 아니라, 연결입니다. 현실과 연결되거나 혹은 다른 책과 연결됩니다
 
 과연 그랬다.한 권 한 권 그의 책을 만나보니 저 글귀가 맞춤이었다. 김연수의 책은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김연수라는 원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김연수라는 원은 결코 완전한 원이 될 수 없다. 또한 독자는 김연수라는 원이 그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계속 원을 향하여 나가기만을 희망한다. 혼란스러운 7번 국도를 여행하고 스무 살을 만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7번 국도에서 만난 그들을 이 단편집에서 만날 수 있을꺼라 상상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도 책에서 만나면 실제의 그것보다 조금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현실에서 찾지 못한 이상을 우리는 소설에도 찾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 김연수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9편의 소설내내 작가인 화자가 등장한다. 김연수이거나 그의 그림자이거나. 다시 말하면 그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좀 더 과감하게 좀 더 직설적으로 세상에 말을 건다.

 유머로 위장하여, 궤변에 궤변을 이어가며 자신이 겪은 스무 살을 회상한다.  <마지막 롤러코스터>, <뒈져버린 도플갱어>를 통해 현실에 살면서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젊음을, <죽지 않는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연작에서 그는 7번 국도의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그들을 부활시킨다.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렇기에 그는 소설속에서라도 죽은 자들을 살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이미 많은 이들에게서 죽은 자로 기억된 그들을 잊지말라고 당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하게 온전한 그들이 아닌 결핍투성이인 그들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다.  불안전한 스무 살에 대한 아련함도.

 그는 말한다.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정말 내게도 그랬다. 설렘과 기대로 시작된 20대의 첫 해, 열정도 없이 미흡하고 모자란 실수 투성이로  어떤 즐거움도 안겨주지 않았던 나의 스무 살, 그 이후는 그저 20대의 나머지로 기억된다. 작가 김연수가 겪었던 그 스무 살과 같은 시대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스무 살이란 형태는 달라도 본질적인 형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싱그러운 나이, 청춘으로 대표되는 나이, 그러나 결코 눈부신 아름다움이 아닌 스무 살에 대한 자화상이다. 다른 듯, 같은 스무 살을 지나온 모든 이들의 자화상. 스무 살을 기대하는 어떤 이에게는 스무 살을 연결해주는 터널이 될까.  지나간 스무 살, 이제는 내게도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곱절의 나이. 작가 김연수는 내년에 그 곱접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그는 세상에 내놓을 마흔을 이미 준비해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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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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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날개에 풋풋한 모습의 김연수처럼 소설 7번 국도는 낯설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가의 초기작을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금의 김연수가 아닌 10여전의 김연수를 만나는 일, 약간의 흥분과 설렘이 있다. 7번 국도라는 매개체로 작가 김연수는 독자에게 지도를 펼치게 한다. 그러나 7번 국도의 여행을 따라가는 것은 적지 않은 인내를 요한다.
 
 누구에게나 그만의 트라우마가 있기 마련이다. 삶을 노래하고 한 여자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싶었던 재현, 우연한 만남으로 운명처럼 다가와 그들의 인생에 한 분기점이 되어버린 화자, 재현이 사랑한 여자 서연, 자신만을 위한 포근한 공간을 원했던 세희, 그들이 꿈꾸던 7번국도, 지금보다 젊었던 그 어느 날, 나 역시 7번국도를 지났던 추억이 있다. 그 시절, 참 열정적이었던 모습이 스쳐지난다.

 비틀즈, 기형도, 팝송, 낯선 시, 그리고 조각 조각 나뉘 놓은 퍼즐로 이어지는 이야기. 과거로 현재로 이어지는 재현과 나의 만남, 언제나 등장하는 7번 국도. 재현에게 서연은 그 자체가 트라우마다. 사랑했던 여자, 이제 존재하지 않는 여자. 그 자리를 세희는 결코 대신할 수 없다. 그들에게 7번 국도는 어떤 의미였을까. 죽음이 함께 했던 그곳은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노래하게 했는가.

 소설은 사실 모호했고 난해했다. 이유도 모르게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가 자꾸만 오버랩되었다. 안개속을 걷는 듯한 느낌. 재현의 슬픔을 토해내는 소리가, 세희가 스스로를 못견뎌하면 그리워하는 일본 아버지, 외계인과 수신하는 카페 7번 국도 주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끝내 자살하고 마는 7번국도씨라는 인물. 90년대를 살고 있는 화자를 비롯한 주변 인물은 80년대를 이어온 상처를 이제 버리고 싶다. 7번 국도에 그들의 슬픔과 상실를 토해내고 자유롭고 싶어한다.  망각을 위한 여행이었는지 모른다.

 나의 문학적 폭이 좀 더 넓었더라면, 김연수가 살짝 비틀어 수록한 작품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이 책에 더 빠져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듯 김연수는 자신의 시대를 껴안고 사랑한다.

사람은 모두 은어와 같은 것이다. 세희야, 넌 아느냐? 동풍이 불고 나면 다시 서풍이 불어온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벗어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야.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지. 네가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 것처럼 어차피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은 한 번은 그렇게 죽게 된다. 하지만 벗어난 자리도 바로 너의 자리이고 돌아온 자리도 바로 너의 자리이다. 난 이제 곧 죽게 된다. 하지만 이 끝없는 윤회 앞에 도대체 죽음이란 없다. 불생불멸, 그 무엇도 없다. 숨결 없이, 그 본성으로 숨쉬는 단 한 가지, 그것말고는 도대체 아무것도 없다” 본문 202쪽. 세희의 아버지가 세희에게 들려주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삶에 대한 답이 아닐까.

 책을 덮고 다시 한 번 7번 국도를 검색해보고 주절 주절 중얼거린다. ‘동풍이 불고 나면 다시 서풍이 불어온다.’ 주문을 외듯 자꾸만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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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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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하나, 실상 부모가 되어서는 부모보다는 자식만을 챙기게 된다. 어리석은 줄 알지만 자식이 부모보다 항상 한 발은 더 가까이 있는 듯 하다. 품안에 자식이라고 하지만 부모는 늙은 자식도 언제나 안타깝고 안쓰러운 존재인 것을 왜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걸까. 신경숙의 신작 <엄마를 부탁해>(창비, 2008년)를 마주하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녀의 글은 <깊은 슬픔>, <깊은 숨을 쉴 때마다>, <그는 언제 오는가> 이처럼 제목부터 메마른 떨림을 이야기 한다. <엄마를 부탁해> 내겐 이제 누군가에게 부탁할 엄마가 없다. 다만 신에게 엄마의 영혼을 부탁할 뿐이다. 

 언제나 손 내밀면 잡아주고 듣기 싫은 파열음으로 화를 내도 묵묵히 다 들어주는 엄마,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다 내어주고 빈껍데기로 살면서도 언제 그 껍데기라도 자식이 필요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엄마, 눈물이 난다. 자꾸만 눈물이 난다. 그런 엄마를 잃어버렸다. 잘난 자식 중 어느 하나 상경하는 부모를 마중할 시간이 없어 그만 아버지 손을 놓진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

 정갈하고 맑은 분, 흐린 판단을 하지 않을 분으로만 알았다. 늙어짐에 쇠약하고 정신을 서서히 놓고 계심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남편도 딸도 내심 부정하고 싶었을 뿐이다. 큰 아들 처음 방을 얻어 살던 집, 며느리를 들이고 그 아들이 내 집 마련했던 동네 시장 어귀에서 엄마를 보았다는 연이은 제보에 자식들은 그 시절을 떠올린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셨던 모습, 빠른 손놀림으로 집 안을 빛내주셨던 엄마. 

 간절하게 엄마를 찾기를 바랐다. 제발 소설 속에서 엄마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주기를 바랐다. 아니, 소식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작가 신경숙은 끝내 가슴속에 고인 길고 긴 울음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고요하고 담담하게 엄마와의 추억을 엄마의 지난 날을 이야기하게만 했다. 아들의 소리를 통해, 남편의 소리를 통해, 딸의 소리를 통해. 자식에게 든든한 지원을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던 모습, 딸이 쓴 소설을 읽고 싶어했던 엄마의 간절함, 바람처럼 세상을 향해 떠돌던 아버지의 몫까지 살림을 도맡았던 모습을 회상한다.

 아내의 손은 무엇이든 다 살려내는 기술을 가진 손이었다. 이 집은 짐승이 잘 되지 않는 집이었다. 아내가 이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개를 얻어다 기르면 새끼 한 번 못 받고 죽어나갔다.  (....) 이 집은 개는 안된다고 당신의 누님이 일렀으나 아내는 다른 집에서 막 태어난 강아지 한 마리를 눈을 가린 채 데리고 왔다. (...)그리 데려온 강아지는 마루 밑에서 아내가 주는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새끼를 다섯 배 여섯 배 낳았다. (...) 아내의 손이 닿으면 무엇이든 풍성하게 자라났다. (...)아내의 손길이 스치는 곳은 곧 비옥해지고 무엇이든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160~161쪽

 남편이 기억하는 아내의 손, 자식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손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생명을 만드는 손이었다. 어디서든 모든 자식들을 감싸고, 요술 방망이처럼 엄마의 손을 거치면 완전하게 돌아오는 살림살이들, 지친 마음 달래는 약 손.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린 적이 있는가. 고단한 삶을 투정이나 부리고 짜증 섞인 말투로 쏟아내기나 하는 우리네 자식들.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 시절을, 나의 처녀 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엄마의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쩌든지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261~262쪽

 정말 그랬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여야만 했다고. 소녀도 여자도 아닌 그저 엄마로만. 참으로 잔인한 마음이다. 우리들 모두의 페부를 찌르는 글을 작가 신경숙은 어쩜 이리도 차분하게 써내려 갔을까. 엄마를 잃은 상실도 분노도 흥분도 그녀의 글에서는 깊은 숨을 내쉬게 한다. 언제나 그리운 엄마, 책을 덮고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들다.  이제 들을 수 없는 엄마의 목소리, 이제 잡아볼 수 없는 엄마의 손이 그리운 날들이 연일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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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를 만나러 가다
김경욱 / 문학동네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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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깊었던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면 누구의 극본인지 끝까지 자막을 기다리는 습관이 있다. 그 자막을 통해 기억하고 있었던 작가가 김경욱이다.  드라마가 아닌 책을 통해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동명 소설을 드라마로 만난 느낌 때문인지 그의 소설은 마치 치밀하게 계산되어 연출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시간적 배경탓인지 지워버리고 싶은 암울한 기억들, 새로운 시대로의 불안과 낯섬이 함께한다.
 
 사실상, 세기가 바뀜은 별반 큰 사건은 아니다. 또 다른 오늘, 달라지고자 염원하는 이는 세상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 김경욱은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관찰한다.  소통하고자 하는 그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세상으로 교류를 꿈꾼다.
 
 그토록 갈망하는 <베티를 만나러 가다>속  베티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베티는 <변기 위의 돌고래> 희미한 일상에서 잃어버린 열정을 찾고 싶은 사람이 찾는 돌고래와 같다.  허락되지 않은 사랑, 그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영혼까지 내던지는 연인들의 모습을 그린 <아르헨티나의 연인들>. 아르헨티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먼 거리의 곳, <블랙 러시안>이나 <화성의 역습>에서 등장하는 화성이라는 이상적 공간이다.
 
 지금 이곳에서 존재하는 나를 잊고 싶은, 21세기에는 지구가 아닌 낯선 세계로 빠져 들고 싶은 욕망은 그가 심어놓은 <너바나>, <라디오 헤드>, <스팅>, <U2> 의 노래를 통해 흐른다. 또한 곳곳에서 그가 사랑하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독자는 그의 글을 통해 만난 영화와 음악으로의 관계를 맺는다.  <아비정전>, <그랑블루>, 김경욱의 글은 부드러운 짜릿함과 황홀감, 무척 감각적이다. 시간을 거슬러 흥분과 열정으로 가득찼던 1999년을 생각해 본다. 모두가 꿈꾸던 21세기, 한 순간 터져오르는 불꽃놀이처럼  맞이하고 싶은 21세기였것만. 21세기에 살고 있는 내가 만난 20세기는 아련한 그리움이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하나의 유혹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여전하게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를 유혹한다. 1999년 이 책을 만났다면 나 역시도  소설속 화자들처럼 화성이상의 그 어떤 곳으로 떠나고 싶고 나만의 베티를 만나고 싶은 유혹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들보다 더 치열하게 사랑하고 더 열심으로 나를 찾아 헤매였을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참으로 유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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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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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왜 이리 고단한 것일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열심으로 살아내고 있는데 언제나 그 자리인 우리네 살림살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까. 그런 우리네 마음을 작가 공선옥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꾹꾹 눌러 담은 김장 김치처럼 12편의 단편들이 그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12편 모두를 읽어내는게 힘겨웠다. 그 힘겨운 편린들을 끌어안기에 나는 아직 삶에 대해 여유롭지 못하다.

 버스 차장을 비롯하여 많은 직업을 가졌다는 작가의 이력은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다.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겉도는 가족들, 이혼, 별거, 미혼모,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의 약자, 변방의 삶을 말한다. 어느 누구, 그리 살고 싶겠는가.  열심을 냈던 사업이 경기 침체로 무너지고,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과 가난은 눈물까지 마르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지나치도록 명랑하다.

‘꽃 진 자리’, ‘폐경 전야’ 에서의 바르고 모범적인 삶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교사들, 때로는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싶고 때로는 욕지거리 내뱉고 싶다. 시골 좁디 좁은 작은 방에서 미래를 꿈꾸던 ‘명랑한 밤길’속 스무살의 그녀들은 넓은 세상, 화려한 세상으로 달려나가고 싶다. ‘도넛과 토마토’, ‘별이 총총한 언덕’ 그녀들은 지긋지긋한 삶, 엄마라는 무거운 책임감, 놓아버리고 싶다. 새로운 삶을 위해 이혼을 선택하고 싶고 간절한 꿈을 다시 꾸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욕망을 감추어야 하고 늙은 노모를 병든 엄마를 돌봐야 하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긴 투병생활, 남편의 죽음은 치매걸린 시부와 철모르는 세 아이가 남았다. 남편의 죽음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자신이 너무 서러워 울어야 하는 삶.  몰려드는 수입 농산물, 그래도 농군은 농사를 지어야 하고 미혼모는 이해받을 수 없는 세상, 사랑했지만 아이가 아닌 자신을 선택하라는 남자. 자신의 뿌리를 찾았지만 어머니를 찾게 하지 않는 어머니의 나라. 이것들은 모두 피하고 싶은 감추고 싶은 사실이며 우리가 살아내는 삶이다.

 공선옥이 그려낸 인물군은 참으로 애처롭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전부를 걸고 살아가지만, 세상은 언제가 그것을 빼앗거나 그 이상을 요구한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더 애처롭다. 문학이라는 것이 때로는 지친 삶을 위로하고자 적당히 포장하지 않는가. 놓아버릴 수 없는 삶,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삶, 말도 통하지 않고 월급을 받지 못해도 자신을 위로하는 한국의 유행가를 사랑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폭우로 가족을 잃고 남겨진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만나면 싸우는 명절. 공선옥은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의 옆 자리에 혹은 그들과 같은 곳에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결국 희망을 말하려 한다. 어두운 밤길, 명랑하게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통해, 다툼은 그만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가족들의 작은 노력을 통해, 힘들고 무서운 세상, 혼자보다는 함께 라는 것을 알기에 고단한 그들이 기댈수 있는 어깨를 그녀의 글을 통해 선뜻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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