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 원재훈 시인이 만난 우리시대 작가 21인의 행복론
원재훈 지음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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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으로도 한국 문학의 상징이 되는 작가들. 그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설렘을 준다. 박범신이 만난 젊은 작가들에 비해 원재훈이 만난 작가들은 가장 적은 나이가 마흔인 중년을 훨씬 넘어선 작가들이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는 작가들이라고 하면 맞을까 싶다. 21명의 작가중 정현종 시인을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다소 흥분된 책읽기를 시작하였고 끝까지 그 기분은 계속되었다. 책은 1~2년 전 원재훈이 직접 작가들 을 인터뷰한 글들을 엮어 놓았다. 인터뷰한 장소는 주로 서울이나 일산이 많았고 도종환과 김용택은 작가의 집으로 저자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한 잔의 차나 술 잔을 마주하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면서 문학과 사랑, 삶,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명인이나 다름없기에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실도 많았지만 김연수와 시인 문태준이 고교 동창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언제나 책을 처음 만났던 그 때의 나와 작가를 기억하고 있었던 때문인지 은희경이 쉰을 넘겼고 정호승 시인이 예순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작가들에게는 언제가 책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법.  많은 책들 이 언급되었고, 정현종이 언급한 ‘카프카와의 대화’를 꼭 만나봐야 겠다 생각했고, 정호승의 만나지 못한 책을 주문 하기도 했다. 

 세련된 외모의 은희경이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고 아버지의 사업이 안 좋아서 야반도주의 경험을  ‘비밀과 거짓말’로 썼다니 그 소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전 소설가로 사는게 좋아요. 이것만 잘하면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최근에는 산문을 쓰기로 했어요. 이제 좀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법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이제는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뀐 것 같아요. 전 이제 문학소녀가 아니라, 일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여러 장르의 글을 소화해내는 것도 능력이죠. ” p 86  이제 그녀의 산문을 읽을 준비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윤대녕의 말을 썼다. 그는 어린 시절 조부모 밑에서 자랐고 조부를 문학의 아버지라 할 정도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렇게 말했다.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어요. ”그는 자신의 소설을 오늘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확실한 미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삶을 이야기하지요. 그것이 바로 오늘 입니다. 나는 이 오늘을 씁니다. ” p 113 그가 쓰는 오늘은 작가이며 독자이기도 한 것이다. 아, 윤대녕의 단편‘못구멍’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딸과 함께 다녀온 인도 여행을 풀어 놓는 전경린의 글 속에서는 왠지 평온함이 느껴진다. ‘엄마의 집’ 이후로 그녀의 글에서는 불안보다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나타나지 않을까. 글쓰기의 한가운데에서 글쓰기의 행복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뭘 선택할 수 있을까 라는 반문을 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살 방편을 마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요. 그래서 쓰고 또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p 426  혼자서 써야 하는 외로움과 고단함의 시간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한 시간은 또 얼마나 될까. 

 아직 소설이나 시로 만나지 못한 작가도 있다. 윤후명의 작품은 몇 번 만났지만 읽다가 손을 놓았던 기억이 있고, 김선우의 산문집도 그러하다. 김선우가 쓰는 동안 쓰고 싶은 소설이 세 권이나 몸으로 들어왔다는 ‘나는 춤이다’가 궁금해진다.  읽는 동안 행복했던 이유는 원재훈의 글에도 있다 . 시인이라 그런지 무척 감각적이고 섬세했으며 같은 공간을 묘사한 부분도 작가마다 그 느낌에 따라 달랐고 독자가 작가들 더 사랑하도록 공들여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인터뷰 하는 내내 작가들도 무척 행복했을 것 같다. 친구이자 선후배를 만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열심히 자신이 쓴 작품과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소중하므로. 내게도 자주 자주 열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소중한 책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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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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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특정 지역에 대한 추억이 있거나 갈망이 있다. 대부분 자신이 자라 온 고향이거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곳이 그러하다. 소설에서 만나지는 지역은 소설의 배경임과 동시에 작가에게 소중한 곳이 되는 경우다. 소설가 조경란은 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에서 자신의 터전인 서울의 봉천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했고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의 작가 윤대녕은 집필 내내 제주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소설가 전성태에겐 몽골이 그러했다. 소설집 <늑대>는 몽골에 의해 탄생된 몽골을 위한 소설집이 아닐까. 
 
 열 편의 소설 중  실린 차례대로 <목란 식당>, <늑대>, <남방 식물>, <코리언 솔저>, <두번째 왈츠>, <중국산 폭죽> 6편의 단편은 모두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목란 식당을>은 몽골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는 주인공 나와 화가인 나의 삼촌과 즐겨찾는 북한 음식 전문점인 <목련 식당>에 관한 이야기다. 교민 신문에 평 옥류관 출신 요리사가 온다는 광고가 실리면서 식당 분주해진다. 식당을 찾은 교민들과 관광객은 북한 출신 요리사는 장사 수단이라며 수입금이 북으로 유입되냐고 묻는다. 식당의 여사장은 사정이 생겼는지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목란 식당>은 식당일뿐인데, 몽골에서 북을 대표하는 이미지화 되는 현실이 씁쓸한 소설이다.

 표제작인 <늑대>는 광할한 몽골을 그대로 드러난다. 캠프촌 게르에 늑대 사냥꾼들이 도착하며 시작되는 소설은 화자가 바뀌며 전재된다. 사냥꾼의 길잡이를 역할을 하는 촌장과 그의 딸 치무게, 늑대 사냥을 온 늙은 기업가와 함께 온 여자 허와, 사원의 라마, 늑대 사냥을 도와주는 카자르.  각자의 시선으로 늑대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광활한 초원에서 말과 낙타를 기르며 살고 있던 촌장에게 몽골의 시장 경제 도입은 삶을 변화시켰다. 

 < 한 잔 수태채가, 게르에서 하룻밤 잠이 돈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노동이, 늑대를 쫓는 동행이 벌이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가. 게르 천장으로 빛나는 별과 스미는 달빛이, 지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이 역시 돈의 현영(現影)처럼 손님들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필요한 것, 때로는 여자가지 도시로 나가 사야 했지요. 그 볼모의 대지에 살을 부리며 나는 내 생에 좋은 일을 다 끝났음을 깨닫곤 했습니다. > p 38 

 늙은 사업가는 몽골의 사회주의체제가 남긴 써커스를 상업화 시켜 돈을 번다. 써커스에 필요한 늑대를 원하지도 하지만 그는 강력하게 말한다.  <나는 늑대 앞에 숙명적인 라이벌처럼 마주서기를 원합니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니 죄의식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들이 없는 절대공간에서 독대하기를 원하니다. 스스로 자신을 사냥하듯이 이루어졌으면 싶습니다. 어쩌면 나는 가징 사냥다운 사냥을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p 46

 그믐밤 늑대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라마의 말을 들었지만 사냥꾼들은 검은 수컷 늑대를 원한다. 늑대를 유인하기 위해 카자르는 양들을 몰아준다. 늑대 사냥은 결국 늑대를 떠나게 만들 것이라는 것에 안타까운 촌장. 늑대는 결국 몽골과 같은 것이었다. 늑대를 쫓는 사냥군이 늘어나고 그들로 인해 돈을 버 캠프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몽골은(늑대는)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란 어려운 것이리라.

 한국을 꿈꾸는 몽골인과 반대로 몽골을 꿈꾸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남방 식물>, <코리언 솔저>에서도 정착되지 않은 시장 경제 체제속에서 혼란스럽고  폐쇠적인 사회를 만날 수 있다.  몽골은 과거 우리가 걸어온 경제 발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발전에 가려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되볼아보게 한다. 

 그외 단편 <강 건너는 사람들>에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누구 내 구두 못 봤소?> 에서는 남과 북에 모두 아내를 둔 한 남자의 슬픔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이미테이션>이라는 단편은 혼혈아의 외모를 가졌지만 정작 부모는 모두 한국인이기에 결국 자신의 외모를 근거로 외국인 행세를 하며 학원 강사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진짜를 원하지만 진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은 몽골이라는 광활한 초원을 활주하는 늑대와 징키스칸의 후예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제 초원은 사라졌고 전성태는 이렇게 썼다. <몽골은 내게 특별한 고통과 영감을 주었다. 시원(始原)의 이지미를 간직한 광활한 대지에서 맞닦드린 고독감은 세계 바깥을 보고 온 듯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흥미로웠던 것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향한 몽골사회였고, 기이하게도 그것은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이 되곤 했다.>
몽골에서 돌아온 그의 가슴에는 아마도 한 마리 늑대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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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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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연이 딸과 살아가는 다큐를 시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만났다.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이라는 경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김연은 방송을 통해 마지막 보험이 죽음이라고 했다. 지금 17살인 딸이 스무 살이 되고 자신의 나이 쉰에 자신을 위한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아닌 이제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을 꿈꾸는 그녀. 홀로 딸을 키워가는 그녀는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으나 행복해 보였다.   김연처럼 우리 주위에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다. 여전하게 세상은 아직도 그녀들에게 많은 편견을 갖고 있지만 그들을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있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원제는  On My Own.  이 책의 저자 플로렌 포크는 두 번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자신의 이야기와 심리치료사가 되어 상담해온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말한다.

 연인이 있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마법의 문처럼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은 원하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남겨져 살아야 한다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 상실감은 크다. 연인과의 이별, 남편과의 이별이든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별의 이유를 자신에게 찾으려고 애쓴다. 사랑했기에 믿었기에 때로 배신감은 더 클 수 있다. 

 저자는 ‘혼자라는 것은 하나의 기회다’ 라고 말한다.  혼자만의 공간을 통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연인으로써 존재가 아닌 여성으로써의 존재를 발견할 기회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기혼 여성들이 베란다나, 부엌 한 켠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혼자라는 것의 확장은 고독과 이어지는데,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넘어 초월적이고 창조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순간, 나는 고독해지고 싶어졌다.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자신만의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나 주위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가 연장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픈 부모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떠나버렸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믿었던 어른에게 폭력을 당한 상처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상실의 원인이 무엇이든 아이는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 p 115 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 상처를 견디기 위해 찾았던 비밀의 정원을 기억하라고 한다. 당신을 위해 썼던 일기, 책 읽기,  빨간 머리 앤의 상상하기도 비밀의 정원의 형태인 것이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길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갈림길이 있다느 것을,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잘할 때까지 똑같은 걸음을 반복하며 연습함에 따라, 갈림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 p 247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반복도 연습도 하지 못한 채 갈림길에서 주저앉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믿음을 바탕으로 변화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면 피나는 노력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찾은 여성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삶이란 자신의 비밀스러운 삶을 찾아내는 행위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은 고독의 참의미가 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고독은 풍요로운 상태다. 나와 주변의 고요함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는 상태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 상태, 생각이 왔다 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앞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물이 그 자체로서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 바람이 불어 그 상태를 흩뜨려놓지 않는 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한, 우리는 고독의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간다. ’p 298  아, 정말 멋진 말이다. 물론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문장이지만, 나는 흥분하고 있다.

 책이 주는 특별함은 여성들만의 위한 상담,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의 고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생이거나 후배, 언니나 엄마, 할머니가 될 수 있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물론 소개된 것이 여성들을 위한, 혼자인 여성들을 위한 삶의 정석은 아니겠지만 여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다. 인식하고, 이름 붙이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과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을 위해 표현하라. 

 어려운 책이지만, 여성이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힘겨워 멈추기도 했고 공감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감추고 있었던 나의 감정 상태도 체크할 수 있었다. 내 안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보게 한 이 책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성인 당신에게, 당신을 위한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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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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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p 9  

 김연수의 말대로  정말 그렇다.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의 인생이라는 퍼즐. 제 자리를 잡은 조각들은 지나온 내 삶의 슬픔과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하루 하루가 설렘으로 가득했던 사랑이 시작되는 날들은 생각하노라면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그 어떤 모습이거나/사람으로 붐비는 앎은/슬픔이니……’ 어쩜 정작 그 날들은 설렘보다는 불안하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니 그 시절 나는 수줍었고 블그스레한 낯빛을 가졌고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산문집은 김연수만의 추억이 담겼고 그만의 문장으로 채워졌다.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주춤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 속에 겹쳐지는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세대가 같다는 것, 비슷하다는 것은 같은 추운 겨울 스케이트를 타고 누나가 사준 떡복이를 먹는 기억에 나도 큰 언니와 처음 쫄면을 먹었던 날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김광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보았다는 것, 허름한 자취방에 두둑하게 쌓아올린 연탄으로 겨울을 시작했던 가난한 대학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만든 문장이 아닌 사람 김연수를 만든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을 슬픔, 외로움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전해지는 듯하다. 느닷없이 맞이한 사촌 조카의 죽음, 빛나던 청춘의 푸르름은 어두운 보라빛으로 시든다. 그리고 그가 만난 이시바시 헤네노의 시 ‘매미소리 쏴-/아이는 구급차를/못 쫓아왔네.’ 이 짧은 시 속에 죽음이, 절망이 있었다.  쫓아갈 수 없는 죽음.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겪은 사람이라면 저대로 잊지못하는 순간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잊으라고 소리쳤지만, 정작 나만은 아직도 그 절대적인 공허와 그 절대적인 충만의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p92

 영원히 지속되는 누군가의 부재를 채울 수 없어 많은 밤을 술과 함께 견뎌낸다고 믿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부재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을 꺼내는 이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김연수는 자신의 문장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가 쓴 글은 이제 누군가의 문장이 된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p122 이 문장은 그의  소설 <스무 살>에서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 라는 문장의 연속이었다. 청춘은 불안하기에 아름답다. 어떻게 변화하여 무엇이 될지 모르기에 신비롭다. 그의 청춘을 지탱해준 많은 문장들을 읽으며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이제 더 이상 청춘이라 불릴 수 없는 나는 그의 문장을 읽고, 심보선의 시, 삼십 대를 읽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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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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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타이틀이든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어로 독자들이 갖는 기대감을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기에. 그 대표적인 작가가 2007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정한아. 한 권의 소설은 그녀를 단숨에 커다란 풍선으로 만들어버렸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 이상으로 커져버렸다. 동시에 그것이 절대 터져버리지 않을 꺼라는 믿음을 준 작가다.

<나를 위해 웃다>는 <달의 바다>가 안겨준 숙제를 잘 풀어낸 소설이다. 어떤 독자라도 작가의 성실성을 느낄 수 있다. 8개의 소설은 우울함을 달래주는 코코아처럼, 보드라운 감촉을 떠올리는 사프란의 향기처럼 독자를 기분좋게 만든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씩 벗겨내려는 몸짓이 있기 때문이다.

잉태됨과 동시에 죽음을 염두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그에 맞서듯 거대하게 성장해 버린 엄마의 삶을 이야기하는 <나를 위해 웃다>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자신을 찾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내려는 <아프리카>, 동생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잊지 않으려 요리를 하는 아빠 의식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을 담은 <마테의 맛>도 사실, 파고들면 그 본질은 고요하고 슬픈 상처와 맞닿는다. 그러나 작가는 고여있는 슬픔들을 퍼내기 시작해 그 슬픔의 크기를 점점 줄여 나간다.  

 거대병을 앓는 엄마의 배속에서 자라는 또 하나의 생명, 독자적으로 살아남는 아프리카 동물처럼 자신만의 삶을 꿈꾸고, 상처를 드러내어 서서이 딱지를 떠어내도록 유도한다. 엄마를 닮아 거대한 몸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활이 이어질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슬픔도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버릴 수 있는, 어떤 이는 강하게 부정할 그들의 삶에 막연하지만 희망과 긍정을 심어둔다. 

 슬픔이든 두려움이든 견뎐낼 때까지 고된 일들로 몸을 쉬지 않게 하여 감정을 소모시키는 <첼로농장>, 자기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남자와 그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임을 알아버린 <의자>, 어떤 의지로도 달라질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을 가진 아빠가 엄마의 구두를 닦아주고 품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전거에 엄마를 태우고 달리는 그 자체가 황홀한 댄스인 <댄스댄스>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지쳐있다. 고단함에서 벗어나려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  간질거리는 봄날처럼 편안함과 부드러움으로 기억되는 의자를 찾아나서는 이는 우리가 가진 그러나 마주할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

 포기하고 놓아버리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은 달래는 방법을 작가는 알고 있는 양,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던져 지지 않게 심지어 큰 소리로 싸움을 내지도 않으며 가만가만 그들을 토닥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결코 쉽지 않은 세세한 감정을 작가는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까. 어쩌면 내일이라는 삶이 너무도 두려워, 오늘만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작가.

 분명, 이 소설은 <달의 바다>를 뛰어 넘는다. 더 성숙해졌고 유려해졌으며 따뜻하다.  간절하게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한 것이, 그 간절함을 요란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표현하려 한 것을 느낄 수 있어 독자는 감사하다. 이제 정한아에게 가졌던 조금은 걱정스러웠던 시선은 걷어두어도 좋다.
그저 지금처럼 그녀의 소설을 기다려주고 읽어주고 같이 느끼면서 작가와 함께 성장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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