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단편을 떠올리면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란 프로가 생각난다. 놀랍고 기막힌 사연과 사람들, 보통의 삶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닮았다.  가장 대표적으로<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가 그러하다. 인기 코미디 프로의 복불복처럼 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하지만, 운 나쁘게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누구나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면 김영하는 누구보다도 삶을 놓지치 않는 소설가가 아닐까 싶다.  

 13편 중 인간의 감정까지 조종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한 단면을 상상케 하는 <로봇>, 특정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는 부부가 아이스크림 소비자상담실에 전화를 걸며 느끼는 복잡한 심리를 그린 <아이스크림>, 사고로 인해 자신과 가족을 믿지 못하는 남편과 살고 있는 여자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남자의 이야기 <밀회>는 인상적이다.  

 가장 김영하다운 단편은 <여행>과 <퀴즈쇼>라 생각한다. 결혼을 앞 둔 한 여자가 헤어진 연인의 강압에 의해 떠나는 <여행>. 낯선 곳에서 옛 연인은 사고를 당하지만 여자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면 될 뿐, 과거로 인해 현재를 망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가족의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혼자 살아 남은 소녀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다룬 <퀴즈쇼>. 평생 상처를 끌어안고 산다는 건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타인은 상처가 아닌 부모가 남긴 유산만을 기억한다.  내 삶이 아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김영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  좀 더 밀착된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편한 인연들과의 관계, 지우고 싶은 기억들, 언젠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들. 기존의 소설에서 느꼈던 극적인 상황은 분명하나,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세상, 씁쓸하고 슬픈 현실을 김영하는 꼬집는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삶이라 말한다.  꿈이었으면 하는  상처를, 지우고 싶은  순간을 냉정하게 위로한다. 아무도 모르는, 혹은 누구나 다 아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많다. 기대가 클수록 기다림은 간절해진다. 하루키의 1Q84가 그러했다. 과연 어떤 결말을 내놓았을까. 선구의 리더를 죽인 아오아메의 생사 여부, 그토록 서로를 원했던 덴고와의 만남은 이뤄졌을까. 1Q84 3권을 손에 들고 맨 마지막 장을 먼저 읽고 싶은 충동을 참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차례로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오아메덴고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었던 1~2권과 다르게 3권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바로, 선구가 아오아메를 찾아내기 위해 고용한 변호사 출신의 우시카와란 사람이다. 소설은 찾으려는 자와 숨으려는 자의 숨막히는 대결이 펼쳐진다. 우시카와덴고와 아오아메의 관계까지 밝혀 내 범위를 좁힌다. 아오아메우시카와의 이야기는 극도의 긴장감을 안겨준다. 아오아메는 위험을 감지하지만 두 개의 달이 떠오르고 덴고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을 떠날 수 없다. 아니, 1Q84를 떠나기 위해 꼭 덴고를 만나야만 한다. 하루 하루 덴고를 기다리는 아오아메의 마음이 애잔하다.

 반면, 의식이 없는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덴고의 일상은 오히려 평온하다. NHK수금원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덴고는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그들을 이해하려 한다. 덴고에 관한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아버지였다.

 3권에서는 덴고와 아오아메, 우시카와의 삶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엄격한 아버지와 살아온 덴고, 증인회에 빠진 부모로 인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아오아메, 가족과는 다르게 보기 흉한 외모를 지닌 우시카와, 모두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선택에 의해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랬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다른 이들이 볼 수 없는 두 개의 달을 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성행위 없이 아이를 임신한 아오아메, 수신료를 받으려 문을 두드리는 NHK수금원,이 모든 것은 1Q84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분명 아오아메는 임신을 했고, 아이의 아버지는 덴고라 확신한다. 서로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결국엔 서로를 알아보고 1984의 세계를 향해 나가는 아오아메와 덴고. 1Q84의 마지막엔 사랑이 있었다. 이제 단 하나뿐인 달을 가진 세계에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 3권 723p


 1Q84의 첫 페이지에 등장했던 노래가사는 이미 그 끝을 암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두 개의 달이 떠오르고 리틀 피플이 등장하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기묘한 세계,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나를 믿어줄 네가 있다면 어떠한 위험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함, 어쩌면 하루키가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는 아닐까. 1Q84 역시 하루키가
꾸며낸 것, 그 세계에 빠져든 우리는 오래도록 두 개의 달, 1Q84를 기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르타 뮐러는 <숨그네>에서 고통과 슬픔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그렸다. 때문에, 슬픔이 더 크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무척 어렵게 읽은 탓도 있겠지만,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해서, 두려움을 안고 다시 그녀의 글을 만났다. <숨그네>에 비하면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얇은 책이었지만, 역시나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펼치자 마자 마주한 문장은 이렇다. ‘전몰자 기념비 주변에 장미가 피어 있다. 장미는 우거진 덤불. 아주 무성하게 자라나 풀들의 숨통을 틀어막는다. 종이처럼 돌돌 말린 작고 흰 꽃을 피운다. 꽃들이 바스락거린다. 동이 튼다. 곧 날이 환해질 것이다.’ p 11  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숨을 죽인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헤르타 뮐러의 글은 이처럼 강렬하고 황홀하다. 그리하여, 그 황홀함 속에 숨겨진 슬픔과 절망을 때로 잊게 한다. 

 소설은 루마니아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 독일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빈디시 가족을 중심으로 모피가공사, 목수, 재단사, 야간 경비원, 통장이, 늙고 힘 없는 노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빈디시, 그의 아내 카타리나는 전쟁의 참혹함을 견내냈지만 서로의 상처를 할퀴며 지낸다. 그랬기에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의 떠남은 간절했는지 모른다. 

  빈디시는 루마니아를 떠나기로 결정한 날부터 방앗간으로 출근 할 때 날짜를 헤아린다. 헤아린 날짜가 많아질수록 절망감은 커져간다. 밀가루를 시작으로 온갖 뇌물을 받치지만, 권력을 가진 경찰과 신부가 원하는 것은 끔찍했다. 도시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는 딸, 아멜리에를 원했다. 가장인 빈디시는 자신의 무력함에 고뇌하지만, 러시아에서 몸을 팔며 살아남은 아내 카타리나는 다르다. 루마니아를 떠나야만 살 수 있기에, 생존은 죽음보다 위대하기에 어떻게든 여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멜리에의 희생으로 여권을 얻는 비참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비겁한 삶은 얼마나 가혹한가.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면 수용소의 생활를 다룬 <숨그네>의 뒷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독재 치하에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누리는 생활이 아니었다. 일상을 함께 나누던 이웃과 친구를 믿을 수 없는 공포가 가득한 시절이었다. 

 헤르타 뮐러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죽음, 이별,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인간답게 살고자 자유를 위해 떠난 사람들, 떠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 죽음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치열한 하루 하루를 너무도 고즈넉하게 담아냈다.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산문시라 할 수 있다.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이주한 헤르타 뮐러의 경험이 더해졌기에 생생한 풍경의 묘사와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헤르타 뮐러만이 쓸 수 있는 고요한 글은 그 어떤 화려한 글보다 큰 울림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전쟁을 소재로 한 글을 읽고 나면,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상관없이 현재의 삶에 한없는 감사를 느낀다. 죽음과 삶이라는 두 가지가 놓여진 삶이 바로 전쟁에서의 삶이 아닐까. 죽음을 선택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여, 선택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어떠한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전쟁을 다룬 소설은 언제나 숨막히는 전개와 극도의 긴장감이 넘친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달랐다. 영혼을 조여오는 삶에 대해 헤르타 뮐러 <숨그네>는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냈다. 비참함은 결코 들어오지 못하도록 촘촘한 숭고함만이 가득했다. 하여, 소설은 더 빛나 보였다.

 <숨그네>는 열 일곱살 소년, 레오가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생활한 이야기다. 소설은 레오가 루마니아에서 수용소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소련이 어떤 곳인지, 얼마나 추운지 모른 채 기차에 오른 레오가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설은 일반적인 전개 방식이 아닌, 레오의 시선을 따라 흘러간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아닌 감정의 흐름이었다. 소설은 소설이면서 시였고, 산문이었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기계적이었고, 잠자리와 음식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 온 몸으로 느껴야 했을 공포, 전쟁은 끝났지만, 수용소는 언제나 전쟁중이었다. 레오가 ‘배고픈 천사’라 부르는 배고픔은 사람들의 영혼을 조종했다. 배고픈 천사는 빵과 양배추수프를 원하고, 아내의 음식을 빼앗고, 누군가를 고발하고, 도망치게 하고, 심지어 죽은 자의 옷을 벗기게 한다. 

 배고픔의 단어들, 즉 먹는 단어들이 대화를 지배할 때도 우리는 혼자다. 저마다 자기 단어들을 먹는다. 함께 먹는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를 위해 먹는 것이다. 배고픔에서 타인이 자치하는 자리는 없다. 타인의 배고픔을 나눌 수는 없다. p 178

 대화를 나누고, 벽돌을 나르고, 나란하게 누워 잠을 자도 배고픔은 나눌 수 없는, 수용소라는 공간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철저한 생존의 공간이었다. 곁에 있던 사람이, 함께 삽집을 하던 사람이 사라지고, 느닷없이 트럭에 올라 알 수 없는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열 일곱 소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 레오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너는 돌아올 꺼야’ 란 할머니의 말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레오를 지켜준 또 하나의 물건, 손수건이 있었다. 배고픔을 위해 난방용 무연탄을 팔려고 두드린 집에서 늙은 여인이 시베리아 수용소에 있다는 아들을 떠올리며 건네준 것이다. 할머니의 말과 손수건은 레오를 슬프게도 했고, 강하게도 했다.수많은 어머니와 아들들, 전쟁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지치고 무너지는 마음을 단단하게 여미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싸워야만 했을까.  

 ‘배고픈 천사가 나를 저울에 올릴 때 나는 그의 저울을 속일 것이다.
아껴둔 빵처럼 나는 가벼워지리라.
그리고 아껴둔 빵처럼 씹기 어려워지리라. 두고 봐,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간단한 계획이지만 오래 버틸테니까. p 251 

 잠잠한 고통의 기록들은 레오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어진다. 그 기록들은 더 슬펐다. 오랜 시간, 전쟁에 속해 있던 삶은 그렇지 않은 삶 속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거대한 벽이 가로 막고 있는 듯, 그들의 삶엔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심지어 수용소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들, 아무도 레오를 이해할 수 없다. 5년 동안 레오를 지배한 본능은 수용소 이후에도 그를 놓아 주지 않는다. 오직  배고픈 천사만이 레오를 온전하게 소유하며 이해한다. 

 <숨그네>는 헤르타 뭘러의 동료 오스타 파스티오르가 들려준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렸기에 소설보다는 사실에 가깝다.  때문에, 더 간절하고 더 참혹하다. 분명 그러할진대, 헤르타 뭘러는 어찌도 이렇게 잠잠하게 쓰고 있는가.  배고픈 천사로 태어난 배고픔은 황홀한 날개짓을 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 숭고한 아름다움이 춤춘다. 

 
** <숨그네>는 내겐 너무 버거운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에 이어 이번엔, 이다. 두 번째 만나는 김숨의 장편소설이다.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물줄기가 집에서 흘러나오는 표지, 기묘한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다. 물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머니(물), 아버지(불), 쌍둥이 자매(소금, 금), 막내딸(공기)로 구성된 가족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소설은 화자인 소금이 이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시작한다. 동시에 수족관이 들어오고 있다. 불인 아버지가 수족관을 깨부수고 집을 나가고 처음이다. 수족관은 딸들이 태어난 곳으로, 물에겐 소중한 공간이다. 소금을 시작으로, 기도원에 간 금과 공기, 소식이 없던 아버지 불까지 집으로 돌아온다. 

 물과 불은 그 물질이 상징하듯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쌍둥이인 소금과 금의 관계도 수평이 아닌 수직적이다. 언제나 금이 우선이다. 공기만이 그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물질이다. 물, 불, 소금, 금, 공기는 상징적 이미지가 아닌, 물질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 곧 인물이다. 불과 소금을 소멸시키는 물, 소금을 만들고, 금을 변형시키는 불의 성질이 가족 간의 갈등, 욕망, 대립으로 드러난다. 

 소금인 나는 질량과 맛과 성분으로, 금은 빛과 질량과 순도로, 물인 어머니는 부피와 움직임과  상태로, 불인 아버지는 온도와 빛과 열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 보인다. 무색무취할 뿐 아니라 아무런 맛도 지니지 못한 공기는, 움직임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보인다. p  61

 물인 어머니 물은 얼음과 수증기의 상태를 오간다. 발작하듯 얼음이 되었다가, 저절로 다시 물로 돌아온다. 물로 존재할 때, 완벽한 어머니가 된다. 어려서부터 금을 질투한 소금은 멀리해야 할 물에 집착한다. 언제나 모두에게 사랑받은 금이 금을 낳기를 바라는 불은 금의 곁을 맴돈다. 공기는 종교에 집착한 생활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몇 방울의 물만 남긴 채 집 안의 물이 사라진다.  삼백만 톤의 물을 몰아내고 자신이 직접 지은 불은 막힌 수도배관을 찾기 시작하고, 집은 악취로 가득하다. 난쟁이인 수도 검침원은 엄청나게 밀린 수도세를 내라고 재촉하며, 물에 대한 경고를 한다. 은행은 불이 집을 지으며 진 빚으로 집을 경매하겠다고 통보한다. 배관공을 불렀지만, 막힌 수도배관을 찾을 수 없었다. 금은 배관공의 아이를 갖는다. 기이하게도 수도세는 점점 더 늘어난다. 얼음의 상태가 잦았던 물은 끝내 수족관에서 죽는다. 금은 금이 아닌 납을 낳고, 소금이 납을 키운다. 거대한 저택은 사막처럼 건조해지고, 사라졌던 물이 돌아온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물’이었다

 한 방울의 물과 한 방울의 물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끌어당겨 한 방물의 오롯한 물이 된다.’ p 205

 <물>에서 보여준 관계는 분명 극적이나, 나를 잃지 않고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일인지 보여준다. <물>은 <철>과 비슷한 구조를 지녔으나, 더 확장되었다 볼 수 있다. 수도 검침원인 난쟁이는 <철>에 등장하는 곱추를 떠올린다. 난쟁이과 곱추는 유일하게 문제의 심각성을 찾아내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소설은 더 몽환적이고 잔혹하다. <철>에선 철이 가진 특성 하나만으로 소설을 전개하나, <물>에선 물을 시작으로 불, 소금, 물, 공기, 납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인물의 욕구를 담았다. 

 김숨의 반복적이고 짧은 문장은 여지없이 차갑고 건조하다. 거침없이 섬뜩한 묘사도 여전하다. <철>,<물>에 이어 김숨이 선택할 광물이 궁금하다. 얼마나 더 치밀하게, 기묘하게 그려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