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지음, 윤진 옮김 / 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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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삶을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의에 빠진 이에게 어떤 희망이나 길을 제시할 수는 있다.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문학이 삶의 전체가 되거나 일부가 되는 건 지극히 사적인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문학을 특히 글쓰기를 갈망하는 이들은 많다. 무엇을 쓰는가가 중요할까. 아니면 쓰려는 자가 되려는 게 중요할까. 2021 공쿠르상 수상작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복잡한 마음을 불러오는 소설이었다. 복잡하다는 건 소설이 어렵기도 했고 소설을 통해 작가 음부가르 사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타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을 통해 문학의 시원이나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 노력하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민족의 정체성을 다루거나 역사의 한 장면을 다루는 소설 말이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의 경우도 다르지 않게 다가왔다. 1990년 세네갈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정규교육을 받은 작가 음부가르는 소설 속 화자인 ‘디에간 라티르 파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이자 세네갈의 문화와 역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그가 있기까지 지난 성장과정이나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것이 문학의 질료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작품과 작가를 일정 부분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디에간’은 음부가르가 그랬듯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글을 쓰는 작가다. 아프리카 출신의 유망주 정도 되겠다.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문학적 재능으로만 판단하고 평가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흑인과 아프리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런 그가 세네갈 출신의 문학 선배라 할 수 있는 ‘T.C. 엘리만’의 소설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을 알게 된다. 1938년에 발표된 소설, 단 한 권의 책을 끝으로 문학계는 물로 프랑스에서 사라진 사람, 엘리만을 추적하게 된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책도 출판사도 찾을 수 없다. 실재의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돌 정도다. 


그럴수록 디에간은 그에게 빠져든다. 그러다 운명처럼 세네갈 출신의 여성작가 ‘마렘 시가 D.’를 만나고 그에게서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과 엘리만에 대해 듣게 된다. 출판 당시 책에 쏟아졌던 찬사와 엘리만을 ‘흑인 랭보’라 칭했던 이야기, 그 뒤를 이은 비판과 비평. 소설이 아프리카 세네갈의 기원 신화와 같고 심지어 엘리만이 여러 작품을 차용한 콜라주였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고. 그러나 엘리만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침묵만 고수하다 결국 자취를 감췄다고. 이쯤 되면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의 내용과 묵묵부답 엘리만의 진실이 궁금해진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디에간이 엘리만의 흔적을 찾는 과정을 들려주는 동시에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들려주는 엘리만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파리에서 시작해 마렘 시가 D.를 만나는 암스테르담, 마렘 시가 D.에게 엘리만을 들려주는 아이티 시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세네갈의 다카르까지 그 여정은 엘리만 한 사람만의 인생이 아닌 다양한 세대의 인생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문화를 경험하고 어떤 차별과 어떤 고통을 견디며 살았는지 말이다. 


엘리만이 책을 쓴 1938년 아프리카 세네갈과 프랑스의 관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세네갈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 엘리만에게 프랑스는 어떤 나라였으며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곧 디에고의 정체성과 문학에 대한 질문과 맞닿는다. 디에고뿐만 아니라 파리에 살고 있던 아프리카 출신의 작가들과 ‘마렘 시가 D.’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대가 아닌 21세기에도 과거의 역사는 사라질 수 없으니까. 현재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음부가르까지도.


참기 어려운, 추잡스러운, 부르주아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게 바로 우리 삶이야. 문학을 하려고 애쓰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학에 대해 말하는 것. 말하는 것 역시 살아 있게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이니까. 문학이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아무리 무용하고 아무리 비극적인 희극이고 무의미할지언정 그래도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닐 수 있지. 우리는 문학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듯 굴 수밖에 없어. 이따금, 아주 드물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끔 정말로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우리가 바로 그 증인이야, 파이. (76쪽)


음부가르는 문학이 결코 무용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의 식민지가 아닌 세네갈의 역사나 그들의 전통과 영혼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것이까. 아니면 제국주의와 전쟁의 잔혹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엘리만의 목소리를 빌려 대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엘리만을 만나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편집하고 만든 샤를과 엘리만의 다툼에서 엘리만은 ‘문학은 원래 약탈의 유희라고, 자기 책은 바로 그걸 보여준다고 대답했고요. 독창적이지 않으면서 독창적이기, 엘리만은 그게 바로 자기의 목표 중 하나라고, 문학은, 심지어 예술은 그렇게 정의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의 또 다른 목표는 창작의 이상을 위해 모든 게 희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271쪽)


프랑스가 세네갈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엘리만 같은 인물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문명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옳은 방법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새로운 문화로 태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반드시 식민지화가 진행되어야만 할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와 고통은 제목 그대로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으로 남았다. 소설 속 프랑스와 세네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과 우리의 역사도 그러하다. 역사가 문학으로 재탄생되는 일이 의미를 지니면서도 아픈 이유다.


어쩌면 문학 속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문학은 시커멓게 반짝이는,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관과 같다. (526쪽)


그러니 문학은 삶의 일부이면서 전체가 될 수도 있다.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속 인물들에게 문학이 그러했듯. 문학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도구이자 역사를 재조명하는 통로가 된다. 삶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운 모두에게 글을 쓴다는 건 내면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직시할 수 있는 길은 아닐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다른 것을, 또 다른 것을, 다시 또 다른 것을 요구한다고. 마침내 그 목소리가 조용해지면 당신은 다른 것, 굴러다니고 달아나는 다른 것, 당신 앞에 놓인 다른 것의 반향과 함께 길 위에, 고독 속에 남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새벽을 기약할 수 없는 밤 속에서 언제나 다른 것을 요구한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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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행성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 네오픽션 ON시리즈 4
곽재식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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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설렘과 동시에 어떤 공포가 함께 한다. 막연하게 우주여행을 하거나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편리함을 생각하던 때와 다르게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미래의 일상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편하고 좋은 것들만이 아니라 공존, 존재, 존엄에 대한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쉽지 않은 고민들.


활발한 작품과 방송 활동을 통해 그의 책보다도 이름을 먼저 알게 된 곽재식 작가의 연작 소설집 『은하행성 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에서 말하는 것들도 그렇다.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하고 각기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도 이런 미래가 도래하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이 책은 잡지 『독서평설』에 1년간 연재하며 사랑을 받은 단편 12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집이다. 그러니까 잡지의 특성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굳이 독자층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은하행성 서비스센터’의 사장 미영과 이사 영식은 다양한 의뢰를 받아 행성을 방문한다. 우주선을 타고 행성을 찾아다니는 미영과 영식의 눈에 비친 12행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게는 미영과 영식의 모습이 맥락은 다르지만 여러 행성을 다니며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는 어린 왕자처럼 느껴졌다. 철통 행성부터 파동 행성, 정지 행성, 양육 행성, 의미 행성, 생명 행성, 영원 행성, 재생 행성, 기억 행성, 통제 행성, 진공 행성, 매매 행성까지 12개의 행성은 어떤 행성인지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


「철통 행성」은 말 그대로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하는 행성으로 은하연합계열 단체와는 교류를 하지 않은 행성이다. 그러니 외부의 소식을 들을 수 없고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소행성이 철통 행성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러 간 미영과 영식은 그들을 외계인이라 부르는 응대관을 만났다. 외부와 교류가 단절된 상태라 은하교통연합에서 보낸 연락 사항을 보는 일조차 어려웠다. 어떤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소행성이 철통 행성에 떨어졌고 행성의 중요한 조각 작품이 무너졌다. 그런 와중에도 행성 사람들은 행정처리는 답답 그 상태였다. 자신들의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는 이유를 내세운 소통 단절로 재앙으로부터 행성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외면하는 것이다. 


「파동 행성」에서는 농업 행성으로 좋은 말을 해주면 잘 자라고 나쁜 말을 해주면 잘 자라지 못한다는 걸 증명하는 행성이다. 그러기 위해서 식물을 개조해야 했고 그런 식물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직원이 필요했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먹거리와는 차원이 다른 괴상한 식물들이 가득한 행성이라고 할까. 그 안에는 진짜는 없는 게 아닐까. 어쩌면 파동 행성은 위선과 가짜로 진심을 포장한 행성은 아닐는지. 


「양육 행성」에서는 누구를 양육하는 것일까? 식물, 로봇, 동물을 떠올리지 않을까. 놀라지 말길, 행성에서 양육하는 건 바로 사람이다. 혹여 그 사람이 그 행성을 탈출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미영과 영식은 그를 찾았다. 그런데 원하는 모든 걸 로봇이 다 해준다며 사람은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로봇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로봇이 사람을 기르는 거라는 생각은 미영과 영식만의 것일까. 양육 행성을 읽으면 그려지는 미래가 내게는 섬뜩했으니까.


그런가 하면 「의미 행성」에서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동 자리 공동에 살고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 한복판에 있는 은하계에 살고 있어서 그 은하계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은하계도 많다는 걸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것이다. 사실, 그 행성은 은하계의 부유한 사람들의 재미로 만든 행성이었다. 누군가에는 너무고 간절한 궁금증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재미에 불과하다니.


“저희는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왜 우주라는 것이 생겨났는지, 왜 세상에 중력과 전자기력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냥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세상에 이렇게 있는 것인지, 별이 빛나고 해가 뜨고, 계절이 바뀌고 그에 맞춰서 생명체가 태어나 죽고, 이런 게 다 뭐하자는 것인지, (…) 이 우주에서 우리가 왜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저희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의미 행성」, 84쪽)


뇌 수술 상품권이 생긴 김에 뇌 수술을 받겠다는 미영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기억 행성」에서는 뇌 속에 컴퓨터를 심고 난 후에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뇌 속에 컴퓨터가 있다고 상상하면 모든 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지식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뇌 속의 지식에 대한 저작권은 누구의 것일까? 내 뇌에 있으니 내 것이 아닐까. 소설 속 저작권 분쟁은 먼 미래의 우리의 일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저는 뇌에 컴퓨터를 설치하면 항상 뭐든 정확히 기억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뇌 컴퓨터용 백과사전 구독권을 구입하시면 됩니다. 한 달 사용료는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프리미엄판을 설치하시면 단순 기억 이외에도 감각 연동도 가능합니다.” (「기억 행성」, 151쪽)


곽재식이 초대하는 상상의 미래는 흥미진진하고 기발하다. SF 소설의 재미를 맘껏 느낄 수 있다. 12행성 방문 기록지는 이게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다양한 행성들을 방문하게 될까 궁금하다. 그 안에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은 얼마나 놀랍고 신기할까. 


아무 행성이나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호기심이 닿는 대로 끌리는 대로 행성에 발을 내딛기를 바란다. 우주여행이 현실이 된 지금, 우주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행성에서는 소설보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인을 기다리는 우주인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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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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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고 좋아하는 동생은 공부하는 아이다.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그녀는 항상 공부를 했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더 많이 알기 위함이고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함이다. 관심을 갖는 분야는 다양해서 만나면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이쯤 되면 예상했겠지만 글도 쓴다. 독립출판으로 곧 자신만의 책이 나올 예정이다. 정희진의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를 읽으면서 줄곧 그 동생이 생각났다. 이 책을 보면 좋아하겠구나, 어쩌면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정희진의 책을 몇 권 읽다 말았다. 그러니까 어떤 책은 끝까지 읽지 못했고 어떤 책은 읽기만 했다. 읽으면서 좋았지만 그 좋다는 걸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 훌륭함을 내가 망치는 글을 쓸까 봐 두려웠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그러니 이 책에 대한 리뷰 또는 감상을 쓰는 일은 한 편으로는 용기가 필요했고 한 편으로는 어떻게든 이 책이 너무 좋아서, 당신이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어서다. 아무튼 그렇다.‘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란 제목만 보며 글쓰기에 대한 안내서 같지만 이 책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공부 좀 하라는 내용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적더라도 최선을 다해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싶다. 자본에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많은 글 쓰는 이들의 고민일 것이다. (13~4쪽)


글쓰기는 결국 가치관의 문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돈이든 명예든 자기실현이든 고통의 승화든 추구하는 바가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글쓰기는 왜 쓰는가에 ‘따른’ 어떻게 쓰는가의 문제다. (15쪽)


글을 쓴다는 건 가치관의 문제라는 것, 이 말을 오래 생각했다.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고 원하는 건 뭐든지 쓰고 발표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 주저하고 어렵다. 무엇을 쓰는가, 무엇 때문에 쓰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럼 결국 쓰기 위해 나를 알아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게 뭔가를 알아야 하니까. 지금 내가 쓰는 건 이 책이 좋아서 그걸 알리고 싶은 거니까.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라는 부제가 있지만 내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쓰기와 공부다. 내가 모르는 걸 안다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모르는 데 어떻게 알겠는가. 그게 가능한가?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나에 대한 공부.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읽은 『한나 아렌트 평전』 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공부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란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이런 문장에서 그랬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란 결국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말. 정확하고 뻔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인간은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존재이다. 본질적인 상태는 없다. (33쪽)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한 다음에 가능하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다. (56쪽)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138쪽)


정체성을 찾는 사춘기도 아닌데 우리는 여전히 나는 누군인지 사는 게 뭔지 알지 못해 힘들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는 집중했던 적이 없다. 내가 있는 동네를 시작으로 점차 확장하면 지역사회, 국가, 세계까지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있는 이 작은 사회는 누가 살고 있는가,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돌아볼 수 있다. 말하기와 듣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나가 크게 정치 참여나 학교나 공공기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무슨 주의, 사상, 페미니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모든 개개인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사회를 이루고 구성하니까. 개별성의 존중도 그만큼 필요하다. 그러니 융합이라는 것도 저자의 설명처럼 먼저 내 몸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가 경험하고 그것이 퍼져 공동체나 함께 공부하는 도반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당파성의 지속적인 생산이라고 하는데 가치관의 충돌과 재생산이 없다면 공동체나 도반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건 이런 문장과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융합에서 중요한 건 갈등과 공명인 것이다. 새로운 것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필수과정이니까. 


나는 내 몸의 역사다. 개인의 몸은 그 개별성 때문에 앎의 내용과 가치관에 따라 현실과 합쳐지는 범위가 다르며 만들어지는 지식도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101쪽)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는 누구나 지녀야 할 가치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또 경우에 따라 갈등하거나 공명한다. (117쪽)


물론 지나친 갈등은 문제를 불러온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세대 간 간극은 어떻게 봐야 할까. 각자 경험한 시간이, 앞서 말한 것처럼 역사이므로 서로가 살아온 시대가 비교의 대상과 기준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하나의 일자리를 두고도 중년이나 노년이 청년의 그것을 빼앗는다고 말하는 분노하는 시대. 선거철이 되면 더욱 커지는 목소리들. 어떤 세대를 살든 그 세대에 한정된 삶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역시 공부일 것이다. 돈이 되고 취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앎이라는 공부. 현재의 나이를 감당하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는 공부 말이다. 


우리는 각자 나이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가난하고 나이 든 이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간주되는 이들을 존중하자. 이것이 공정이다. (177쪽)


강자의 주관성은 객관성처럼 여겨져서 투쟁해서 쟁취할 필요가 없는 반면 약자의 삶은 그렇지 않아 고달프다. 약자에게 객관성은 쟁취해서 확보해야만 가능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생, 사회 운동이다. (221쪽)


굳이 정치적인 이슈를 들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융합이다. 서로의 이익에 따라 절충하는 게 편협한 태도의 융합이 아니라. 어떤 위치에 있든 공부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고위 계층에 있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현재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우리 사회는 어려움에 처했다. 그러니 공부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일은 공부의 방법 가운데 하나이고 자신만의 언어,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일이다. 이 책으로 정희진의 글쓰기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책으로 시작하는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마침내 쓰는 일은 중요하다. 나를 알고 나에 대해 쓰는 일, 모르는 나를 천천히 아는 나로 바꾸어 가는 과정, 그게 융합은 아닐는지. 진짜 글쓰기가 폭발하는 순간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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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1-18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공부를 응원합니다💪

자목련 2022-11-21 09:05   좋아요 1 | URL
쟝쟝 님의 응원을 받아 행복합니다!!
 
서핑하는 정신 소설, 향
한은형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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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나쁘면, 하나가 좋다. 세상은 그렇게 시소처럼 양쪽으로 기울게 만들어져 있다고,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려는 게 나라고. 가벼워졌다 무거워졌다, 다시 가벼워졌다가 하면서. 발이 땅에 닿았다 떨어졌다 다시 닿았다가 하면서, 또 한 번 날아오를 시간을 기다리면 되었다. (11~12쪽)


살다 보면 나만의 탈출구가 필요한 순간을 만난다. 삶이 주는 온갖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문 말이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문을 우리는 너무 늦게 발견하거나 끝내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직 나로 존재하는 순간, 내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한은형의 장편소설 『서핑하는 정신』은 얼핏 제목만 봐서는 서핑에 대한 소설이 아닐까 싶지만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열고 나갈 수 있는 그 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서핑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고도 말하긴 어렵다. 누군가에게 서핑은 그런 문이니까. 


주인공 제이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열 살까지 살았지만 서핑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살고 있다. 직계가족이 없는 큰 이모의 유산으로 아파트가 하나 생겼다. 양양이 아파트.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아파트를 처분할까 싶은 마음에 양양의 아파트를 찾았다. 그때까지 제이에게 서핑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모두가 분주하고 약속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시즌에 누가 서핑을 하겠는가.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옆자리의 대화를 듣다가 ‘와이키키 하우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서핑 강습을 신청하게 된다.


놀랍게도 강습을 신청한 사람들은 또 있었다. 제이까지 다섯 명이 모였다. 어제 술집에서 만난 양미가 가게를 운영하고 서핑을 강습했다. 모두 서핑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 그러니까 한 번도 서핑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양미의 강습은 이론부터 시작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서핑 소설일까 기대할 수도 있다. 그렇긴 하다. 양양 바다를 앞에 두고 서핑에 대해서, 서핑의 용어에 대해 설명한다. 고요해 보이지만 무서운 양양의 바다에 대해, 파도에 대해. 차가운 겨울 바다 위에 보드에 올라타려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제이를 포함한 수강생의 면면도 흥미롭다. 닉네임으로 대화를 나눈다. 양양 맥주를 만들고 싶은 남자 돌고래, 시간 강사로 서핑을 연구하는 남자 해파리, 금테 안경을 쓴 남자 상어, 쇼핑몰을 하다 망한 우뭇가사리, 제이는 미역. 무엇이 그들을 이 바다로 불러 모았을까. 그들은 서핑을 배우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고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서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소설을 통해 서핑에 대해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다. 특히 어른들의 캠프파이어라고 설명하는 에고서핑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아를 서핑하는 시간, 뭔가 숙연해진다고 할까. 양미의 말처럼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 알아보고 나 스스로 알아보는 시간, 우리는 그런 시간을 갖은 적이 있었던가.


화자인 제이는 속엣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다. 직장에서도 누군가 만나는 관계에서도 그저 듣기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에고서핑을 하는 동안에도 제이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쪽이다. 서핑이 아니라면 만나지 않을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 서로를 가만히 위로하는 시간, 혼자인 동시에 함께인 시간. 서핑을 통해 모였지만 정작 중요한 서핑이 아니라 가만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를 들여다보는 게 행복했다. 


보통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면서 보통의 서핑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므로.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보통 이상으로 애쓰고 보통 이상으로 힘들어하고 보통 이상으로 출근하기 싫어하는 보통의 사람. 보통으로 단순하고 보통으로 고뇌하고 보통으로 기뻐하고 보통 이하로 슬퍼하고 보통 이상으로 사랑을 느끼는. (233쪽)


소설은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혼자 다스리던 제이의 내면이 서핑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섬세하게 보여준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서핑에 대한 책을 읽고 직장과 일상에서도 서핑을 생각하는 제이. 제이의 가슴속으로 서핑이 들어왔다고 할까. 파도를 잡고 타는 일은 바닷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도시의 서핑, 우리 인생에서 파도는 어디서든 만나고 자신 있게 타고 일어설 용기가 필요하니까. 


위대한 게 뭔데?

지지 않는 거.

뭐에 지지 않는?

자기에게 지지 않는 거.

내일의 해가 뜨면 내일이 서핑을 하는 거지.

오늘의 파도에서는 오늘의 서핑을 하고. (274쪽)


누군가 이 책을 시작으로 서핑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서핑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양양 바다를 찾을 않을까. 서핑을 몰랐던 나도 무섭고 차가운 파도가 아니라 따뜻하고 다정한 파도를 타는 근사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서핑을 소재로 한 따뜻하고 포근한 소설이다. 조금이나마 내 안의 나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서핑을 통해서만 나를 알고, 나를 알아가는 건 아니다. 제이에게 서핑이 그러했듯 저마다의 서핑이 있을 것이다. 서핑하는 정신은 ‘자유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몸부림’( 307쪽)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자유를 찾으려는 행동만 있다면 삶은 매 순간 벅찰 것이다. 나만의 문을 열고 언제든 자유롭게 나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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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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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거나 먼 훗날 알게 되는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그런 확신이 들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사느라 돌아보지 못한 어떤 기억들, 어떤 과거 속에 우리는 스치듯 지나쳐왔을지도 모르고 미래의 시간에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따지면 모든 일에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과 연결돼있다고 믿고 싶다.


김연수의 단편은 오랜만에 읽었다. 내가 좋아했던 그의 소설이 이런 것이었지 생각했다. 그러니까 존재에 대한 의미와 확신, 따로 또 같이 이어진 관계, 심연에 닿으려는 끊임없는 이해와 노력 같은 것들. ‘나’와 ‘지민’의 과거와 현재를 들려주는 표제작「이토록 평범한 미래」부터 그랬다. 1999년 여름 스물한 살의 ‘나’와 ‘지민’은 외삼촌이 일하는 출판사에 찾아간다. 지민이 엄마가 자살하기 전 쓴 소설 『재와 먼지』를 찾기 위해서다. 외삼촌에게 들은 소설의 내용은 동반자살을 선택한 연인이 과거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SF 적 내용이었다.


놀라운 건 나와 지민이 동반자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와 먼지』 속 연인은 과거 처음 서로가 서로를 만났을 때부터 차근차근 살아간다. 미래로부터 과거의 삶을 사는 것이다. 외삼촌은 어린 연인에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 아닌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29쪽)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른 뒤 소설가가 된 나는 지민과 결혼했고 『재와 먼지』를 읽게 된다. 그리고 지민과 서로가 기억하는 그 시절을 돌아본다. 간절하게 바랐던 미래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는 외삼촌의 말처럼 미래를 기억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 미래의 소중함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연수가 표현한 미래를 기억하는 일은 희망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울림을 전한다. 삶의 신비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제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34~35쪽)


그러니까 불행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삶이라도 우리는 과거 아닌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난주의 바다 앞에서」,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로 이어진다. 남해의 한 섬의 강연을 온 ‘정현’이 대학 동창 ‘손유미’를 만나는 「난주의 바다 앞에서」에서 과거 손은정이었던 유미가 어떻게 섬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들려준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아이를 잃는 고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과거 복싱을 했던 정현이 들려준 ‘두 번째 바람’이란 말에 일어나게 되었다고. 유미가 그 이야기와 함께 떠올린 ‘정난주’의 삶도 그랬다. 200년 전 가족을 잃고 아이와 유배를 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끝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난주의 바다 앞에서」, 60쪽)


누구나 인생에서 수없이 넘어지겠지만 그다음이 있다는 걸 생각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두 번째 바람’은 어쩌면 불행과 슬픔을 인정하는 일이며 삶이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걸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는 세 번째 바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삶이란 고독하고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라 해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속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가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일도 그러하다. 손자인 ‘나’는 할아버지의 대화에 등장하는 세례명 ‘바르바라’가 오래전 할아버지의 구술 녹음을 떠올리고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녹음을 통해 ‘바르바라’가 과거 1949년 할아버지가 북한의 수도원에 있을 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동생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바르바라’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그것은 전설적 성녀인 동시에 할아버지를 지탱해 주는 존재였다. 이 단편을 읽는 동안 나는 엄마를 생각했는데 현재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싶은 것이었다.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은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과 고모에 들은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모습이다. 내가 조카나 주변인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통해 엄마는 미래에도 기억될 것이니까. 할아버지를 통해 ‘나’가 알게 된 바르바라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 이렇게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으로 미래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신이 되어 이 모든 세계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며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나갈 수는 있어. 우리의 기억은 시공간적으로 겹쳐져 있으니까.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235쪽)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가 곁에 있지 않더라도 그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에서 확인한다. 단편 2014년 4월 ‘나’는 옛 연인 ‘희진’에게 메일을 받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희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데 한국의 인디 대표로 초대받아 일본에서 공연하다 자작곡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부르다 울게 된 사연과 뒤풀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자신이 어떻게 초대가 되었는지 듣게 된다. 나와 희진이 과거 연인 시절 일본 여행에서 한 카페에 갔던 시점에 희진을 초대한 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 희진과 나가 신청한 음악이 당시 절망에 빠졌던 그를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진이 남긴 사인을 통해 내내 찾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181쪽)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란 마음은 ‘지훈’이 헤어진 연인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며 검색한 ‘사랑해’라는 말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들려주는 「사랑의 단상 2014」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아이들의 친구와 부모라는 것. 현재 우리가 겪은 이태원 사고로 떠난 이들의 친구와 가족의 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어떤 경로와 어떤 형태든 우리는 누군가와 닿고 있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비록 곁에 있이 않더라도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은 기억하는 일로 시작되고 간직된다는걸.


한번 시작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 「사랑의 단상 2014」, 211쪽)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통해 미래를 기억하는 일을 마음에 새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일, 어떤 절망과 슬픔에서도 희망의 방향으로 나가는 일, 두 번째 바람을 맞이하며 그다음을 살아가는 일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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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1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기억하고 잊지 않는것, 현재를 잘 살아내고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느낀 작품이었어요.

자목련 2022-11-14 10:08   좋아요 0 | URL
네, 결국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어요. 이 계절에 만나서 그런지 더욱 깊게 와 닿은 문장도 많았고요. 화가 님, 따뜻하고 포근한 한 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