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 상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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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변의 의자에 카프카는 앉아서


세계를 움직이는 흔들이 추를 생각하네.


마음의 둥근 원이 닫힐 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스핑크스의


그림자가 칼처럼 변해서


그대의 꿈을 꿰뚫었네.

 

 

상실의 시대를 읽고 해변의 카프카 (참, 제목도 잘 지었다)를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던 하루키의 문체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진지하고 본질적인 대화들이 인상깊다. 책의 뒷편에도 나와있다시피 이 책은 '하루키의 중·단편 중 가장 탁월하고 원숙한 작품이라.'고 일컫는다. 이후의 1Q84는 읽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말에는 동의할 정도로 작품을 읽는 내내 신비스럽고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혀 열심히 읽었다. 마음 속 세밀한 곳, 그 깊은 곳까지 내보이는 하루키의 문장들은 <상실의 시대>에서도 느꼈지만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들은 영상미마저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은 다소 현실에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도 나오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두사람,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의 시점이 반복되기 때문에 (대신 구분은 명확하다.) 조금은 어질어질했던게 사실이다. 

평소 나는 소설이든 뭐든 끝맺음이 애매모호한 것들에 대해서는 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아마 <해변의 카프카>도 나에겐 이 애매모호한 것들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이 소설에 대해 뭐라 평하기에는 부담스럽달까. 물론 독해능력에 따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이 책은 책꽃이에 넣어두어 여러번 곱씹어야할 소설이다.

 

 

 

책 소개 : 인간의 근원적 명제인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꿈과 어른들이 만들어낸 현실의 틈에 자리한 미궁 속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고뇌하며 힘겹게 성장해 가는 열다섯 살 소년의 모습을 통해 산다는 것의 의미를 확인하고 있다.
이 소설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예언한 아버지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온 열다섯 살 소년과, 어린 시절의 기묘한 사고 이후에 모든 기억을 잃은 대신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노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현실적인 인물들과, 그들의 내면과 과거를 상징하는 분신 같은 존재들을 등장시켜 현실과 초현실을 함께 그리고 있다. 또한 독특한 말투로 고양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나카타 상, KFC의 상징인 커널 샌더스의 모습을 한 '본래 형태가 없는 추상 관념'의 모습, 여러 가지 기괴한 일들을 벌이는 조니 워커 등 독창적이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들이 돋보인다. 하루키는 미스터리와 스릴러, 판타지를 넘나드는 빠른 전개 속에서도 특유의 문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혹시나 연결되있을지 모르는 시에키 상,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

 

 


 

아직은 미숙한, 또는 어떤면에서 성숙한 15살 소년

터프한 세상을 맛보다. 그리고 까마귀 소년의 외침.

 

 

 

"넌 지금부터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너 자신의 일을 하는 거야. 네게도 마침 그런 시기가 찾아왔어."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던

'나카타'라는 인물의 또다른 이야기

 

 

 

현실과 비현실, 내면적인 것들, 어둠과 밝음속에서 '아마도 방황하고 있을 우리들의 이야기' 해변의 카프카.

 

 

작가는 말한다. "다무라 카프카 군은 곧 나 자신이며, 독자 여러분 자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눈으로 이 작품을 보아줄 수 있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더 소망스러운 일은 없겠습니다." 겨우 한번 읽은 나는 그가 7년을 함께 눌러쓴 이 소설을 그의 눈이 되어가면서까지 느끼지 못했다. 기왕이면 몇번 더 읽어 제대로 느끼고 싶다.

 다시 만날때까지!

 

 


P.S 나또한 애매한 리뷰가 되어버린 듯.. 어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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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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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숫자들의 단서만이 있는 살인사건. 그리고 그 숫자들이 여러개 등장한다.

그리고 다음 살인의 장소는 호텔이다!

 

 참 많은 작품들을 내는 히가시노 게이고, 저한텐 <용의자x의 헌신>이후 두번째 작품이었습니다. 일단 저는 추리소설을 좋아는 하지만 자주 읽지는 않는다는 걸 말씀드리고...    용의자 x의 헌신은 몇년 전에 읽고서 너무 재밌어서 경악을 했던 작품이었어요 ㅋㅋ 살인사건과 사랑이 맛있게 버무려진 느낌? 그래서 일단 다른 것을 제외하고 '재미는 우선 보장할 수 있겠다' 하고 이 작가에 대한 믿음이 생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인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고 싶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운좋게 빌렸어요. 음, 일단 소설은 굉장히 재밌었어요. 사소한 사건들부터 조그만 단서까지 결말과 이리저리 관계되어 있어서, 작가가 정말 치밀하게 신경을 써서 구성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은 작가 2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장소는 '호텔'로 한정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살인사건이 호텔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짐작 하에 경찰들은 호텔 근무자로 잠복수사를 하게 되는데요. 경찰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게 되죠. 소설을 읽고 난 뒤 찾아보니 제목의 매스커레이드는 실제로 '가장 무도회'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였어요. 그리고 호텔이 주 배경이니 실제로 서비스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많이 다루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도 서비스라는 두 대상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받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일단 특별한 장소, 생각지 못한 반전, 뻔하지 않은 결말이 좋았고 특히나 그 뻔하지 않은 것들에 사소한 이야기들이 엉켜있어서 더 긴장감있고 재밌게 추리소설을 즐겼던 것 같아요. 

 

 

 


"한 사회에서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그때그때 적절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임시방편의 가면을 둘러쓰기도 한다. 가족이나 직장에서의 위치에 따라 가면의 모습이 다양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지녀야 할 본래의 얼굴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허상인지도 모른다." - 역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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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대왕 사계절 1318 문고 7
크리스티네 뇌스트링거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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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트레페리덴 왕조의 구미-오리 2세 대왕이다"

갑자기 가족들 앞에 나타난 오이대왕의 첫등장은 이렇습니다ㅋㅋㅋ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청소년 도서인데 말썽꾸러기인 볼프강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볼프강의 가족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누나, 막내동생 이렇게 6명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집에, 흉측하고 물컹하게 생긴 오이대왕이 나타납니다. 이 오이대왕은 자신을 '짐'이라고 높여부르면서 가족들을 시종처럼 부리려고 합니다. 가족들은 모두 이것을 꺼리지만 아버지는 우스꽝스럽게도 이 오이대왕에게 충성을 다해요. 그리고 동정심 많은 막내아들도 후에 그를 도와주게 되고... 또 다른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행동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몇 비밀도 밝혀지면서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부자연스러운 가정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

 

 

 

 

새겨보기

 

나는 현실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이상하게 생겼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내 친구 조 후버는 이런 때 "머리가 서 버렸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다만 아빠가 "안 돼!"라는 말을 연거푸 세 번 외쳤던 것은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빠는 늘 당신이 한번 안된다고 한 것은 끝까지 안되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안 된다는 아빠의 말이 아무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 14p

 

"제 침대에서 편히 주무시지요. 주무시는 동안 제가 전하를 지켜 드리겠나이다" 그 말을 할 때, 아빠는 웃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농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 29p

 

누나는 어머니에게 오이대왕과 아버지에 관한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오이대왕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않은데다, 또 그것은 순전히 아버지 혼자만의 일이라며 매번 누나를 피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당신 앞에서 우리가 아버지에 대해 험담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자식으로서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상에는 우리 아버지보다 안 좋은 아버지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였다. - 82p

 

할아버지는 다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오이대왕이 징그럽긴 하지만, 정상적인 가정에 나타났다면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로 취급받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도 지극히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했다. - 87p

 

 

 

 

 

"모든 것을 다 좋아할 수는 없는 거야. 나쁜 것을 좋아하면 안 돼"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나는 내 말이 과연 옳은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 144p

 

 

오이대왕에 의해 가족들의 문제점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볼프강은 분노하게 되죠. 특히 아버지는 보험회사의 오이황제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ㅎㅎㅎ) 오이대왕에 지나치게 헌신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어쨌든 오이대왕의 문제에 대해서는 마지막 약간의 반전으로 행복한 열린 결말을 만들어냅니다. 가족들이 서로의 모습을 인정해가면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는데요. 어떠한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온 후에 (변신에서는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죠, 조금 더 자극적이긴 하지만.) 변화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그러나 결말에서 둘은 차이가 나죠.  청소년 도서임에도 조금 중요한 문제를 다룬 것 같은데 보시다시피 귀여운 어린아이의 말투에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요즘 동화나 청소년 도서들 중 민감한 문제를 다룬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있어서 참 재밌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보다 쉽고 재밌는 방법으로 다양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이런 동화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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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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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에

 

                       - 이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눈에 띄는 샛노란 표지와 가로로 된 제목이 맘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초반에 나오는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이광섭의 시도 참 좋았습니다. 아마도 이 시에서 제목을 따온 듯 한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라는 구절은 노래와 영화, 책 수많은 곳에서 쓰여진 사랑받는 구절이더군요. 역시 무언가 익숙한듯 했습니다. :-)  책 뒷편에는 '아름답고 담백하고 쓸쓸하다'라는 글귀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이 말처럼, 그리고 '저녁에'라는 아름다운 시처럼 이 책이 어떤 느낌을 줄지 책표지의 노란 색깔처럼 상큼한 느낌을 줄런지 궁금해하면서 읽었습니다.

 

기껏해야 십 초 정도밖에 안 되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이미 주연배우였다. 그 짧은 시간동안 그녀는 자기 존재를 완벽하게 개진했다. -17p  플레이보이지가 눈앞에 계속해서 아른아른 거리던 그날, 주인공은 대학교 음악감상실에서 박은영이란 여자 처음 만납니다. 그리고 첫눈에 반해서, 비밀스럽지만 매력적인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미있는 사이가 되진 못합니다. 그 후 여러번의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되고 그들은 많은 시간동안 서로를 기억속에서만 바라보게 되죠.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70년대의 시간을 넘고 서투르고 흔들리는 젊음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성숙해진 주인공은 어떤 한 청년을 만나 박은영을 진하게 추억하게 됩니다.

 

 

 

 

어둠이 짙으면 밝음에 대한 기대가 망상 수준으로 커진다. 내가 그랬다. 나는 대학을 숭배했다. 대학은 절망한 나를 이끄는 깃발이자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정작 대학생이 되자 그 깃발은 금세 찢겨버렸다. 우주는 여전히 침묵하는 우주였고, 나무들은 그저 저 홀로 잘 자라거나 말라 죽었으며, 세상은 더 많은 모순과 억압으로 나를 위협했다. 그나마 두들겨패는 교수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 40p

 

밤하늘의 별들처럼, 세상은 얼마나 많은 여로의 경연장인가. 지지를 상실한 권력이 헛된 무당춤을 추고,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시민들이 전국의 거리를 가득 채운 그 시절에도, 이방의 여행자 조 후버가 있었고, 나에게 사랑의 신호를 보내는 당차고 귀여운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라고 불리는 별자리에는 한스 뮐러도, 조 후버도, 귀여운 그 여자도, 나도 없다. - 72p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내 종로의 한 레코드가게에서 산 피터, 폴 앤 메리의 테이프를 들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화음 위로 박은영의 목소리가 겹쳤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들을 듣고 있다 사랑과 평화와 행복의 꿈을 호소한 그들의 아름다운 노래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여전히 현실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현실이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그립고 여전히 슬프다. -119p

 

이런 생각이 든다. 별들이 이토록 많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매일 밤 아파트 옥상이나 더 높은 산정이나 혹은 인적 없는 깜깜한 바닷가에서 죽을 때까지 이름을 붙여준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름 없는 별들이 무궁무진할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정말이지 그들이 고맙다. -161p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수도 없이 되뇌었다 나는 그 '언제'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주가 우리를 한 무대에 불러주어서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녀도 나도 무엇인가 되어, 더이상 청춘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 되어, 우리가 결코 알지 못했던 어떤 낯선 무대에서 만나게 될 텐데 말이다. 무엇인가 되어 다시...... -60p

 

 

젊음을 은은하게 추억하는 이 책을 청춘이란 시점에 읽고있는 저는 미래를 상상해보았습니다. 내가 나중에 커서 지금 내 모습을 바라보면 어떨까. 지금 인연들이 나중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어떤 것이 끊어지고 어떤 것이 이어갈까. 우리는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까?

사실 이런 생각들은 평소에도 가끔 드는 생각이고 너무나 궁금한 호기심입니다. 이렇게 평소에 추억하던 것들을 떠올리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를 읽으니  삶의 소중한 한 가지는 추억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를 바라보며 하는 추억.. 그 중 청춘의 기억은 특히나 조금 더 깊기도 하고 더 쓰고 달콤할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그려졌던 70년대 사회, 대학생, 대학로와 마로니에 공원, 우연한 만남, 인연, 플레이보이, 사랑 그리고 이별, 폴앤 메리의 노래, 데미안, 오르페우스와 같은 청춘의 모든 기억들. 그것과는 다르지만 어쩌면 비슷한 감정을 가졌을, 지금 제가 만들고 있는 이 청춘의 기억들이 어디서 무엇인가 되어서 다시 추억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친구.. 가족, 형제, 그리고 사람들, 설레임, 좌절, 실패와 성공, 부끄러움, 새로운 경험들... 그것이 달콤한 추억이든 씁쓸한 추억이든, 그 기억을 곱씹고 추억할 나이가 되거든 아마도 모든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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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10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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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비슷한 어둡고 축축한 그림을 포함해서 99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은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입니다. 용서와 구원의 소름끼치고도 처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죠.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평범하게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던 가족에게 갑자기 불행한 일이 닥칩니다. 바로 얌전하고 착한 그들의 아이 알암이가 유괴를 당하고 시체로 발견되게 되는 것이죠. 이후 범인이 밝혀지고 그 후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아내를 관찰하는 남편의 시선으로 소설이 서술됩니다. (원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 였는데 소재가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

 

혹시 어디서 본 이야기 같으세요?

 

 

 

바로 영화 <밀양>의 원작입니다. 배우 전도연씨가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었죠. 영화를 읽고 책을 읽은 저는 소설을 읽는 내내 전도연의 얼굴을 떠올릴 정도로,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가 말로 할 수 없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와 책이 조금은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관찰하는 대신에 새로운 남자인 송강호가 전도연을 관찰하는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요. 특히 포스터에서는 책과는 다르게 '이런 사랑도 있다' 라는 카피가 들어갔지만 영화와 책 둘다 '용서의 문제와 종교' 에 대해 다루고 있네요.

 


 

"참담한 비극 속에서 견뎌나갈 힘의 원천"

처음에 아이를 잃었을때 아내에게 그것은 희망과 기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시체와 범인이 밝혀지고 그녀는 속절없이 무너져 희망의 끈을 놓고 맙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탱의 도구가 바뀌게 되죠.

희망과 기원에서 '원망과 분노와 복수의 집념'으로. 그리고 그것은 후에 종교의 힘이 한몫했음을 남편은 깨닫게 됩니다.

죽은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펴주리라는 구세주에 대한 믿음, 잠시 그 불꽃은 '파박'하고 튀어 아내는 종교에 빠지게 되죠.

그치만 그것도 순간일 뿐 사무친 원망과 분노가 다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살인마가 감방에 들어가게 된 그날, 아내는 '복수의 표적'마저 잃게 되죠.

여기서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범행을 자백한 그 순간부터 위인은 아내의 보복을 피해 당국의 보호를 받게 된 격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참사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사람들끼리 범행의 목적과 과정을 추궁하고, 재판에서 그의 죽음을 결정지어 튼튼한 벽돌집 속으로 그를 들여보내 버렸다.' 아내의 복수심은 활활 타오르고 또다시 신앙심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극의 선택을 하게됩니다.

 

바로 교도소에 가서 살인마를 만나는 것.

이미 주님을 영접하고 용서를 받았다는 그 살인마를 만나고온 아내는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그를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용서될 수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버리신 거에요....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이 절망의 뿌리가 된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끔찍하네요.

책에서는 위의 그림처럼 갈기갈기 그려져 있는 듯한 스케치로 나름의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 분위기처럼 마지막도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잘 기억은 안나지만 조금 긍정적으로 막을 내렸던 것 같네요. 아동범죄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런 책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사회라니, 안타깝습니다.

 

 이청준 작가가 왜 <벌레 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였는지는 조금 알것 같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내는 정부의 관여와 신의 구원 앞에서 벌레처럼 작아져버렸습니다. 용서의 권리를 빼앗겨버린 채로. 구세주에 대한 배신감은 너무나 컸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죠. 살인마 스스로 신의 구원을 받은 이후 처음의 인내의 끈을 잡을 수 있었던 원인인 복수와 분노로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신앙앞에서 한 낱 벌레로 추락해버린거죠. 인간의 존엄성이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습니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입니다. 거기다 종교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용서의 문제, 개인의 신앙과 종교가 용서에 관여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용서와 구원의 권리에 대해서는 저또한 좀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아, 아내의 그 절망과 고통의 뿌리가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를 차마 짐작이나 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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