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가 DVD로 출시된다면 구입을 할지도. 그만큼 이 드라마는 내가 최근들어 가장 재미있게 (라고 말하기에는 김하늘이 나온 그 드라마도 만만치 않았다만) 본 드라마였다.  

노희경의 드라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폐인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 부터. 분명 노희경 드라마에는 폐인이라 불리울 만한 마니아들이 존재했었다. 물론 드라마 작가로서는 마니아 드라마라는 다소 시청률과는 무관한 인기가 좋을수만은 없겠지만 늘 비슷비슷한 것들의 향연인 TV드라마 속에서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어필하는 드라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 없다.  

일단 예전의 노희경 표민수 표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고 좋았는지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겠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그 콤비의 드라마 중에서 이 드라마가 가장 좋았으니까.  

이 드라마에서는 시작 초 부터 송혜교에 대한 연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녀는 연기력에 비해. 그리고 활동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면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그 과대평가는 정말이지 너무 이뻐버려서인거지) 순풍 산부인과에 나올때만 해도 송혜교는 예쁘장하고 통통하고 말 빨리 하는 신세대 탈렌트 정도였는데 가을동화와 올인 같은 작품 덕택에 갑자기 대스타로 둔갑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애초부터 그녀에게 엄청난 연기력을 기대하지 않았다. 활동 기간은 길었지만. 스스로 조용히 쌓아올리는 시간을 주지 않은건 어쩌면 대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녀에게 연기력 보다는 그 예쁜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만족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서 송혜교가 특별히 드라마에 누가 될 만큼 연기를 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사정들을 이래저래 봐 주지 않아도, 여기에서의 송혜교는 귀여운 구석과 독한 구석. 그리고 냉철했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그러니까 드라마 여주인공으로써는 꽤나 다채로운 내면을 소유하고 있는 여자 역할을 그럭저럭 잘 했다고 본다. 첨부터 끝까지 착하고 지고지순하기만 하면 되는 겨울연가라던지. 그저 곰 세마리 부르면서 귀여움만 떨어도 다들 잘 봐줬던 풀 하우스에 비해. 여기서 그녀가 하게 된 주준영이라는 여자는 현실에서 살고있는 우리들 만큼이나 갈팡질팡하는 여자가 아닌가 말이다.  

연기력 논란이라면 나는 오히려 현빈에게 그 혐의점을 발견했다. 현빈은 알다시피 그리 길지 않은 경력에 비해 연기를 잘 하는 연기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현빈은. 늘 그랬던건 아니지만 때로는 너무 정형화되고 구태의연한 연기를 보여줬다. 캐릭터를 너무 모범적으로 분석해서인지 아니면 연기 좀 했다 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쪼' 가 붙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그는 내내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였었다. 자꾸만 인위적으로 느껴졌고 어쩐지 이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했다. 물론 극중 역할이 송혜교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고, 그걸 겉으로 드러내는 편인 주준영에 비해 그가 맡은 역은 보여지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이 꽤나 다른 캐릭터이긴 하다만. 어쩐지 그것 만으로는 핑계를 대기가 부족해 보인다.  

이왕 연기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조연들의 승리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의 대외적 주인공은 송혜교와 현빈이지만 나머지 인물들에게도 주연 만큼의 무게가 실려있다. 그 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이다.) 말이 조연이지 이들은 전혀 조연스럽지가 않다. 주연을 위해 억지로 짜 맞춰진듯한. 주인공을 위해 한없이 희생하거나 아니면 이유도 없이 주인공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드라마용 성격파탄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배종옥의 경우. 그녀의 재발견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이 드라마에서는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나이들면 갈길이 딱 두 가지이다. 그다지 예쁘지 않고 연기에 치중한 배우인 경우에 맡게 되는 역할은 주인공의 엄마나 아줌마.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스스로는 물론 대중도 인정하지 않을만큼 놀랍도록 젊은 외모를 유지하면서 드라마보다는 CF에 치중하면서, 어쩌다 한번씩 굉장히 비싼 출연료를 받고 자기 나이보다 훨씬 어린 역할을 하는 것. 사실 이 드라마에서 배우 역인 배종옥 역시 후자 까지는 아니지만 지 나이를 망각한채 젊고 이쁜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여자로 주변인들에게 비춰진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이 여자에게는 삶이, 일이, 사랑이 있었고. 또 제일 중요한 진심이 있었다.  

극중에서 멋있다라는 말을 가장 자주 듣는만큼. 이 드라마에서 배종옥은 끝내주게 멋있게 나온다. 보톡스를 맞았는지 자가 지방을 이식했는지 아무튼 주름하나 없이 놀랍도록 젊고 예뻐서가 아닌. 그녀는 정말 말 그대로 멋있는 여자였다. 극중 캐릭터를 위한 과감한 의상과 큼직한 악세사리를 그녀만큼 자기 몸처럼 소화하는 배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다들 장미희의 의상과 악세사리를 갖고 난리던데, 아름다웠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모든게 장미희 일부처럼 녹아들었다고 보여지진 않는다.) 쿨하다는 말을 찌질하다는 말 보다 더 싫어하는 나 이지만. 그래도 쿨한 누군가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 드라마에서의 배종옥 역할을 꼽고 싶다. 그녀는 환상속에 살지도 그렇다고 너무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하지만 두 발은 분명 땅을 디디고 섰고 두 눈은 앞을 똑바로 내다보는 그런 똘똘한 여자이다.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혼자 고고한척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누군가의 눈에 천박 내지는 싼티로 보일 정도이니까. 

또 하나의 조연중 빛났던 사람을 꼽자면 극중 작가로 나왔던 김여진이다. 김여진은 정말 여기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하나도 과장되지 않고. 하나도 가식적이지 않은. 정말 이 여자 실제로 존재하는 작가인것 같다는 느낌을 발휘한건 비단 노희경이 자신의 직업과 똑 같은 캐릭터를 노련하게 탄생시켜주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극중에서 가장 촌철살인의 대사를 내뱉고 (내가 뽑은 베스트의 대사는 거의 이 여자 입에서 나왔다.) 또 극중에서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보다가도 또 연민에 빠지기도 하는. 자기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가장 실제같은 인물이었다. 여느 작가라면 분명 김여진의 역할을 쿨한 여자로 그렸겠지만 여기서의 김여진은 절대 쿨하지 않다. 남의 연애사 얘기에 환장하고 (글을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극중에서 보면 이 작가는 정말 재미있고 듣고싶어서 듣는것 같다.) 울기도 잘 울고. 사는것도 약간은 구질스럽고. 아무튼 내가 만약 작가로 살았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에 비해 온에어의 송윤아는 너무 편협하고 희화된 캐릭터였다. 물론 내가 겁나 재밌게 본 드라마라 씹기는 불편하다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가장 좋았던 장면은 송혜교와 김여진. 그리고 배종옥이 모여서 그냥 노닥거리는 장면이었는데. 아...정말이지 우리들이 노는걸 작가가 어디서 훔쳐본건 아닐까 싶었다. 약간 무심함을 과장하며 괜히 폼 잡다가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면 못 이기는척 하며 청중들을 향해 자신의 얘기를 날려주시는 송혜교. 어디서 어떤 얘기가 흘러나오건 절대 휩쓸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잡으면서도 결코 남들에게 위화감을 심어주지 않는 배종옥. (특히 왕언니랍시고 아가들아 인생이란 말이지 등의 훈계스런 장면이 없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자신의 얘기는 별로 없지만 남의 얘기를 듣고싶어 미치는. 또 그걸 약간은 과장되고 호들갑스럽게 표현하며, 늘 오늘 놀고 죽자의 정신으로 그날의 수다나 술자리에 임하는 김여진. (굳이 나누자면 내가 이 타입인것 같다.) 송혜교의 올망졸망한 얘기. 배종옥의 똑 부러지면서도 느긋한 얘기. 그리고 김여진의 정말 죽음인 추임세까지. 이런 장면들은 너무 소중해서 내 집 한 구석에서 무한재생을 시키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현빈과 송혜교가 연애를 하고 키스를 하고 그러다 헤어지고 만났다를 반복해서가 아닌. 드라마의 등장인물들 모두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본 것 같다. 되게 멋있지도 근사하지도 않지만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그들. 보면 볼수록 자꾸 정이 드는 그들. 정말 드라마를 만드는 일이 그들이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면 나는 왜 애진작 드라마쪽에 하다못해 막내 스텝으로라도 구르지 않았을까 뼈아프게 후회할 것이다.   

쓰다보니 얘기가 너무 길어져서 빠졌지만 여기에 잘 나가는 PD -이름은 모르겠다만 예전에 시트콤에서 이해영 상대역으로 나왔던- 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른 인물들에 비해 조금은 과장된 감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뭐랄까 제대로 된 나쁜 남자는 이런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나쁘다는게 아니라. 나쁜 남자는 여자에게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참 나쁘다는 것을 보여줘서 좋았다. 그리고 원로 여배우 트리오도 만만찮게 좋았고. 그 여배우 하나에게 징징대는 파마머리 -CF에서 인상적이었던- 배우도 좋았다. 신인인것 같은데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발군의 캐릭터 해석력과 연기력을 보였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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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1-1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좋아했는데,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랑스럽죠? 현빈과 송혜교는 또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으흐 보기만 해도 좋더라구요!

마노아 2009-01-1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노희경씨 책을 보면서 드라마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니 또 빠심이 충전되고 있어요. 저도 송혜교 연기가 왜 논란이 되는지 참 이해가 안 갔어요. 김여진씨랑 윤여정씨 참 좋았답니다. 아, 그리고 겨울연가는 최지우가 주연이었고 송혜교는 가을동화 주연이었어요. 전 가을동화는 못 봤지만^^

2009-01-10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선생 2009-01-1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재밌게 본 드라마에요. 일하면서 모니터 화면에 쪼끄맣게 창을 띄우고서라도...
님이 잘 기억못하는 그 PD 손규호 PD로 나온 배우는 엄기준이랍니다. 제가 참 좋아라하는 배우죠. 뮤지컬도 하고 연극도 하고. 요즘 이 배우가 너무 좋다했더니만 남편이 또 바뀌었냐 하더군요. ㅋㅋㅋ

보물선 2009-01-1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서 받아놓은 파일 그대로 소장하고 있지요~ 나중에 또 볼라구요*^^* 뽀글머리 파마한애는 최다니엘입니다. 정말 이드라마의 모든 캐릭터는 하나하나 살아있어요!!!
 
마이클 크라이튼의 여행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신현승 옮김 / 터치아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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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여행기를 읽을 계획 같은건 애초에 없었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는데 이건 뭐랄까. 엎어졌는데 일어나려고 보니 돈 만원이 떨어져 있는 기분이랄까? 이걸 읽어야 할때는 괴로웠다. 왜냐면 대가들이 쓴 여행기 혹은 에세이에 대해 그동안 많은 실망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비록 겸손을 떤다 할지라도 알리지 못해 안달이었고 특히 자신의 직업에 대해 너무 큰 자부심을 갖고들 있었으니까. 그런 책들은. 읽으면서 '그래요 참 대단하시네요' 싶기는 하지만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이클 크라이튼은 그들과 달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기존에 발표한 자신의 작품과 어느 한 구석도 닮은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은 알다시피 온갖 지식들이 다 등장한다. 의학, 공학 가릴것 없이 그야말로 방대한 지식의 양을 자랑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모르긴 해도 이 사람 굉장히 잘난 사람이겠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거기다 학벌이 하버드 의대라지 않는가. 게다가 영화 감독까지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판매부수가 줄거나 했냐면 그런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많은 양의 소설을 내고. 낼때마다 히트치고. 그것도 모자라 영화 판권까지 다 팔렸다.) 그야말로 대단히 잘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매우 잘난 사람임이 분명했다.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전혀 여행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딜가니 뭐가 있더라 뭐를 해서 좋았고 여정이 어떻고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여행기이니 만큼 저런게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에게 약간이라도 자랑을 하거나 뻐기는 느낌 없이. 말 그대로 자기 혼자 보려고 써 놓은 일기 같은 여행기였다. 거기다 그 솔직함이란. 그의 여행기에서 미화는 애초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적날하게 적어도 괜찮은걸까 싶어 오히려 내가 다 걱정이 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책은 총 3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장은 하버드 의대 시절을 회고한 것이고 두번째 장, 그리고 세번째 장이 여행기이다. 그러나 시간적 순서랄지 장소 이동의 유사성에 따라 모아놓은 것은 아니다. 마치 짧은 단편을 읽는것 처럼 글은 전부 제각각이며 어디서 뭘 했는지 보다는 어디서 뭘 느끼고 뭘 생각했는지.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흔히 여행기에 등장하기 마련인 이국에 사는 외국인들에 대한 얘기가 아닌 함께 여행을 한 사람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처음 지루하거나 재미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집어들었던 것과 달리 나는 이 책을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를 작가라고 혹은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냥 인간 마이클 크라이튼을 만날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책이 두껍고 무겁다는거. 내 오랜 독서 습관인 누워서 책보기 (이렇게 하려면 누운 상태에서 팔을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한 다음 책을 들어야 한다. 덕분에 팔뚝만 튼실해지고 있다.) 에는 조금 버거운 책이었다.  

이 재미있는 책을. 나온지가 꽤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내 불찰이다. 그가 여행기를, 에세이를 써봐야 얼마나 재밌겠어? 소설이나 재밌겠지 라고 생각한건 내 오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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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 - 병원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
강주성 지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때부터 하도 병원을 불신하는 책들을 읽어대서인지 (주로 실용서가 아닌 소설이었다만은) 그 영향은 실로 커서 나는 병원에 갈 일이 있을때마다 다음과 같은 생각에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1. 이들이 지금 내 병세를 정확하게 알기는 알고 있는걸까? 혹은 모른다면 파악할 가능성은? 

2. 이들이 내게 시술하는 의료행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3. 이들은 실제로는 매우 가벼운 내 병을 부러 공포스럽게 포장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4. 내가 낸 병원비는 모두 온당한 것일까?   

5. 딴건 다 치우더라도 왜 모든 병원의 의사들은 내가 어떤 병이나 증세로 가던간에 그놈의 빌어먹을 주사를 꼭 놓으려고 하는걸까?

등등등. 병원을 푹 믿고 이용했더라면 그간 나의 병원생활 (이렇게 말하니 내가 환자같다만 실제로는 보통 사람이 병원을 가는 정도로 갔다.) 이 조금은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의심을 갖고 병원을 가기 시작하면 모든걸 다 도끼눈으로 노려보게 된다. 그래도 차라리 의심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내 상태를 사실대로 알려는 시도나 노력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간 병원에 대해 품었던 의심을 이 책은 '니가 옳았어' 라고 말해준다. 무엇보다 책은 병원이 아무리 비영리법인이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이익집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주변에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을 한번 보자. 그들이 과연 인류에게 의술을 펼쳐 도움을...같은 이유로만 의사가 되었을까?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의사의 월 수입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모든 의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는 사람들이 나랏일에 이 한몸 바쳐서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이유보다는 철밥통을 따내기 위함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만약에 의사들의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다면. 그들은 그렇게 고된 과정을 통과해서 의사가 되었을지는 미지수다. 아마 상당수는 공무원이 되려고 도서관에 앉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이 수입에 민감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그 직업을 갖기 위해 훨씬 더 오래 공부했고. 일정양을 넘어서는 피만 봐도 토할것 같은 일반인들에 비해 그들은 사람을 째고 집고 자르고 별별 일을 다 해야 하니까. 그래서 나도 그들이 수입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돈 좀 벌어볼까?' 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직업에 임하면 이 책에서처럼 되어버린다.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처치를 하게 되고. 더 나아가 다국적 제약 회사들은 절대 약값을 떨어뜨리지 않아 환자들에게 그야말로 '돈 없으면 죽을 수 밖에요' 가 되어버린다.  

책의 저자는 실제 백혈병을 앓으면서 오랜 투병 생활을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혹은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아파 죽겠는 환자를 상대로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실들을 목격하거나 겪게 된다. 다만 그는 이때 우리들처럼 '아놔 아픈게 죄지 죄야' 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을 결성해서 적극적으로 대항한다. 그리고 환자를 치료해주고 치료비를 받는것은 당연하지만 환자를 상대로 돈을 벌려고 환장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아주 몹쓸 병에 걸렸는데 그 병 때문에 하루에 몇 십만원씩 약값이 들어가고 병원비가 들어간다면. 그것도 일정 기간이 아닌 평생을 그런 조치 없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집팔고 논팔고 차팔고 소팔고 뭐 그래서 마지막 땡전 한닢까지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걸까? 그런데 이 비싼 약값. 비싼 병원비라는 것이 꼭 그래야만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면 그나마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받아들이겠지만 만약 누군가의 배에 기름이 끼게 하는 목적으로만 그러하다면? 나는 죽어가는 마당에 정말 환장할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알의 약이 돈이겠지만 환자에게는 목숨이다. 그 약이 없으면 정말 죽을 수 있는 백혈병. 에이즈 환자에게 그들은 절대 싼 가격으로. 아니 온당한 가격으로 약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돈 없으면 그냥 죽을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난 후. 안그래도 의사와 병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 같은건 없던 내게 더욱 큰 의심만 생겼다만은 그래도 나는 모르고 속는 편 보다는 알고 속터지는 편을 택하고 싶다. 어제는 장염이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처방전을 약국보관용 한장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환자 보관용을 달라고 했더니 간호사가 매우 띠꺼운 표정으로 '우리 병원은 원래 한개만 주거든요?' 이랬다. 그래서 나는 책에서 배운대로 '병원비 청구료에는 이미 환자 보관용 처방전을 주라고 50원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원래 안주는거 같은건 없는거에요' 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그녀는 순간 뇌의 기능을 정지시키기라도 했는지 '우리 병원은 원래 한장만 줘요' 만 반복하면서 매우 거친 동작으로 또한 매우 큰 인심을 쓴다는듯.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니 요구 때문에 내가 몹시도 귀찮거든? 하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면서 환자 보관용 처방전을 출력해줬다. 빌어먹을 50원은 돈이 아니던가? 환자의 50원은 우습나? 아니 그 보다 내 몸에 어떤 약이 들어가는지 알 권리를 진정 나한테는 없는걸까? 그저 많이 배워 똑똑한 의사 선생님께서 처방해준 약이니 그야말로 몸에 약이다 생각하고 꿀꺽 삼키기나 해야하는 걸까? 병원을 나서면서 이래저래 참 찝찝했다. 비단 이 병원뿐 아니라 나는 최근에는 거의 처방전 2장을 정상적으로 발급하는 병원을 보지 못했다. 의학분업 초창기때를 제외하고는 너무 드문일이 되어버렸는데 정말 다들 왜 그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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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9-01-0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제가 쓴 리뷰와 밑줄긋기도 함께 읽어주시길... 기대합니다.

비로그인 2009-01-0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지르겠어요!
 
넥스트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책에 대해 칭찬을 하기 전에 일단 비판부터 좀 해야겠다. 왜냐면 마이클 크라이튼이니까. 그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나 안좋은 기억이라도 있냐고?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 광적으로 좋아했던 작가였다. 장담하건데 나는 쥬라기 공원을 열번도 더 읽었고 떠오르는 태양이나 코마 같은 작품은 나더러 영화를 찍으래도 씬을 빼먹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는 나의 우상이었으며 소녀적인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던 내게 딱 적당히 터프하고 근사한 작가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쥬라기 공원을 개봉했을때. 그 오래전 ET가 개봉했을때 처럼 나는 극도로 흥분했었다. 그래서 온 가족과 함께 영화관 앞에서 설레여하며 (내 손에는 유치찬란하게도 T렉스 라텍스 모형 공룡인형까지 들려 있었다.) 줄을 섰더랬다.  

그런 그였으니까 아주 오랜만에 읽은 그의 작품에 대해 내가 기대가 부풀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임은 너무 당연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썼고, 영화를 만들었고, 재미있게 봤던 ER 시리즈 까지 만들었으니 그는 나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훌륭한 작품을 썼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늘 그렇듯. 부지불식간에 찍히는 도끼보다 믿었던 도끼에 찍히는 발등이 훨씬 아픈 법. 지금 내 발등은 참으로 아프다.  

다 좋다 치자. 그러나 제발 그 수많은 등장인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무려 61명이 등장한다. 그것도 한 사람이 끝나면 또 한 사람 이런 식이 아니라 들쑥날쑥으로 등장해주신다. 처음 책을 읽을때는 '아하 이 사람이 주인공인가보군' 했었다가 조금 더 읽으면 '어. 이 사람이 아닌가벼' 해야했다. 그리고 한 50페이지를 넘겼을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건 내가 따로 종이를 장만해서 등장인물의 이름과 최소한의 특징이라도 적어서 수시로 참고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허나 불행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제일 마지막에 등장 인물의 이름과 특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다 적었던 나는 그간의 삽질에 참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긴 출판 기획자가 약을 드신게 아니라면 61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빠트릴리가 없지. 허나 이왕 그럴꺼라면 책을 읽기 전 앞 페이지에 그랬다면 좀 좋았을것을. 아마 모르긴 해도 나처럼 뒷장을 미리 살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했던 삽질을 했으리라.  

등장인물이 61명이나 되고. 그들 개개인의 비중이 몇 명을 제외하고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한계는 아마 등장인물이 한 10명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인물이 있으려면 반드시 주인공이라 불리울 만한 핵심적인 인물이 있어야 그나마 집중이 가능하다. 아니면 적어도 61명이나 나오시려면 차례대로 등장하시던가.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나는 넥스트에 그리 많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어떤 책이건간에 가독성이나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요소가 있으면 즐독에 방해가 되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떠했는가. 

물론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이클 크라이튼답게 여러가지 전문 지식들이 들어 가 있었다. 하지만 그 예전 작품들을 볼때 처럼 무언가를 배우거나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된다는 느낌까지는 없었다. 어쩌면 그건 그동안 내가 조금쯤은 뭔가를 더 알게 된 인간으로 자랐기 때문일수도 있고 또 어쩌면 마이클 크라이튼이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그랬을수도 있을 것이다. 황우석의 줄기세포 스캔들까지 등장하건만 책은 상상했던 것 만큼의 재미나 흥분을 주지는 못했다. (가끔 영화나 책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굉장히 기분이 묘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다소 좋지 못한 사건으로 등장해서인지 별 감흥이 없었다.) 

유전자 치료. 그리고 세포에 대한 소유권.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두가지 테마이다. 그리고 이것이 만약 도덕적 헤이 상태에서 진행이 되면 얼마나 끔찍해지는가를 다루고 있다. 물론 책에서 예고하는 암울한 미래는 충분히 공포스럽다. 내 세포의 소유권을 기업이 가지게 된다면 과연 나는 내 몸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닥터모로의 DNA인가 뭔가 하는 영화처럼 인간과 동물의 교배종이 등장하지는 않을지. 그리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안좋은 일들을 다 유전자 탓으로 돌리게 되는 세상이 오거나, 혹은 미리부터 그걸 알아내서 그야말로 아이를 클린한 상태로 태어나도록 조작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주는 그 자체로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의 전작들이 주었던 손에 땀을 쥐게하는 같은건 없었다. 내가 공포스러웠던 것은 내 스스로 생각을 해서였지 결코 책의 문장들이 준 공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영 없지는 않다. 만약 그랬으면 내가 다 읽지도 않았겠지만. 다만 기대가 큰 만큼 아쉬움도 컸던 작품이라고 할까? 만의하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을 단 한개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넥스트를 첫 작품으로 고르지는 말았으면 하는 정도.  

P.S.) 그나저나 마이클 크라이튼은 작년 11월에 6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어릴때의 내 우상이 조용히 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떠들썩하게 졌겠지만) 나이를 먹는다는게 이런건가. 내 우상들이 하나둘씩 노인이 되고 또 죽음을 맞는것.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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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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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나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쓰여진 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뻔하니까. 거기에는 말도 안되는 희생을 하는 엄마와. 그리고 그 희생을 자양분 삼아 살았으면서도 그걸 전혀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 자식과 남편. 생각해보면 이런 글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희생적인 '엄마' 가 되길 당연하게 강요하는가에 대해 치를 떨곤 했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모순이 존재한다. 그 세상 여자들 속에 내 엄마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여자들에게는 엄마로서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부당하다 말 하면서도 내 엄마에게는 엄마니까 라는 룰을 적용시킨 것이다. 왜냐면 엄마니까. 이 한마디에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되고 뻔뻔스럽게도 그 희생의 최대 수요자는 바로 내가 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엄마처럼 내 엄마는 살지 않았다. 엄마는 시골에서 살지도 않으며 치매에 걸리지도 않았고. 더구나 나이가 그렇게 많은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외할머니라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 못지 않게 고생을 하셨으니까.

외할머니는 6.25때 남편. 즉 나의 외할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뱃속에는 아빠의 얼굴도 보지 못한 딸이 있었고 (우리 엄마다) 위로는 두 딸이. 그리고 모셔야 할 시 어른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의 나이는 내 나이쯤 되었을까?

몇 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자주 할머니의 기억이 오락가락 한다며 걱정했다. 그래도 나는 설마 치매 같은건 아닐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주 찾아가지 않았더랬다.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라고 해야 옳겠다. 어린시절에는 그곳에서 그렇게나 많은 날들을 보냈건만. 크고 나니 나는 어느새 내 살 걱정에 할머니는 까맣게 잊고 살았었다.

소설속의 엄마는 어느날 자식들의 집으로 가는도중 남편의 손을 놓치고. 그 간발의 차이 때문에 그만 영영 집을 잃어버린다. 소설은 엄마가 사라지고 부터 시작되고. 엄마의 사라짐을 둔 각자의 시점으로 쓰여져있다. 큰딸. 큰아들. 남편.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엄마가 자신의 비밀과 함께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들을 한다.

정말이지 이건 너무 신파스럽다 싶을 정도로. 소설에서 그려지는 엄마는 온통 희생만 한다.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고. 이러고도 미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참아낸다. 그렇게 너무 참아버린 때문일까? 그래서 엄마는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두통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억을 그리고 자신을 서서히 잃어간다. 하지만 이 소설을 그래도 붙잡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엄마가 우리들의 엄마, 혹은 할머니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울었었다. 소설 속의 엄마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내 할머니와, 엄마와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는 나와.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살아갈 내 딸 때문에 울었다. 이 무슨 모진 운명인가 싶어서 울고. 소설처럼 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많게건 적게건 잃어갈 여자들이 가여워서 울었다.

한 가지 사건을 놓고 자신의 입장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식의 이야기 구조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므로 이 소설도 그런 재미가 상당부분 있었다. 하지만 '재미' 라는 표현을 쓰기조차 이 소설은 마음이 불편하다. 단지 재밌어서 잘 읽혀요 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미안하고 어딘가 마음이 아프다.

이제 더 이상은 이렇게까지 사는 엄마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내 착각인지 모른다. 아직도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혹은 더하게 살아가는 엄마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더이상 가족을 위해 희생되지 않길 바라면서도. 그들이 아니면 또 우리들이 어떻게 세상의 풍파를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어미 된 자는. 그 위치 만으로도 짠해지나보다.

아마 소설을 읽고나면 다들 그때 만큼은 좀 더 엄마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은 수화기를 드는 실천 정도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을때까지 아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음성의 주인공에게 받은 사랑의 절반도 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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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0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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