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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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딴지일보와의 인연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좀 가물거린다. 아마 그 시작점은 알라딘이었던 것 같다. 알라딘에서 한참 말도 안되는 신변잡기적인 글을 써대고 있었는데 알라디너 중 한 분이 (이건 뭐 숨길것도 없으니 밝히겠다. 마태우스님이다.) 딴지일보에 다리를 놔 주셨다. 그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뜻 칼럼 자리를 내어주신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가졌다기 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너무 뭘 몰랐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있었다. 허나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이 모든 시발점이 되어준 딴지일보에게 참으로 고마운, 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나 고백할 것은 나는 딴지 일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과격한 용어 때문이었던것 같다. 어지간히 고운척 좀 작작해라 라고 말 하고 싶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는데 좀 망설였더랬다. 내가 일하는 곳의 총수이시니 당연히 구입해서 당연히 읽어야 하겠지만. 솔직히 나는 일 하면서 봤던 그 과격한 단어들을 책에서까지 또 볼 생각을 하니 머리가 좀 아팠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 하자면 괜찮았다. 그런 단어들이 있어도 괜찮은게 아닌. 그런 단어들이 전혀는 아니지만 그다지 많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심장 약한 일반인들이 읽어도 전혀 무리 없으시겠다. (내가 성질이 더러워 그렇지 심장은 겁나게 약하다. 그네도 못한다. 오죽하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참 남한테는 관심이 많은데 자신한테는 관심이 없구나 하는.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봐야 희망이고 꿈이고 목표고간에 생길텐데 어쩌면 우리는 그냥 남들이 보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익숙한건 아닌가 하는. 나도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내 모습이란 진짜 내 자신이라기 보다는.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이 투영된 그림자에 불과했다.  

책의 내용은 주로 고민 상담이다. 어찌나 고민의 내용들도 다양해주시는지 어쩌다 한 두 케이스 정도는 내가 보낸게 아닐까 의심이 들 지경이다. 이 많은, 또 내용 다양한 고민에 막히지 않고 답변을 하는걸 보니 새삼 총수가 대단해 보인다. 그저 막말 하고 야하고 그래서 뜬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은 적어도 인생을 허투루 살지는 않았다. (그런 인간들은 상담할때 보면 지 주장만 관철시키려고 한다. 더구나 중요한건 지 주장에 어떤 논리적 근거도 대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도 연애상담 코너를 한 적이 있었다. 편집장이 늘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원했었는데 그 한마디를 못해 결국은 1년동안 질질 끌다가 짤렸다. 그때 나는 속으로 촌철살인은 무슨 촌철살인이냐 했더랬는데 아니다. 이 책 읽어보니 알겠다. 이게 촌철살인의 한마디 라는걸 말이다. 문제는 화려한 문체 혹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글 솜씨가 아니라 그 안의 내용의 진정성에 있다는걸 말이다. 지금 만약 그런 코너를 하나 떡하니 맡겨 주시면 매우 잘, 혹은 열심히 할 의향이 있는데 아깝다. 언제나 기회는 알고 나면 지나가두만. 

글 쓰지 않는자로 살때는 책을 읽는게 온전히 즐겁기만 했다. 이렇게 잘난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단돈 몇푼에 (책값이 푼돈이란 소리가 아니라 내용에 비하자면 푼돈이란 소리다.) 내게 넘겨주는게 너무 좋았다. 그러나 되도않은 글이라도 쓰고 나니 읽는게 영 괴롭다. 이씨. 다들 너무 잘쓰는거다. 다 너무 잘났고 말이지. 요즘들어 특히 이런 작가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날 괴롭히려는 건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주제파악을 할 수 있는게 행운인지 모르겠다만.  

건투를 빈다를 읽으면 제목 그래도 정말 누군가가 내게 건투를 빌어주는 것 같다. 좀 못났지만 니 자신을 사랑하라고. 니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막말로 너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 해주는것 같다. 안그래도 약간은 이기적인 인간인 나에게 더더욱 이기적인걸 부채질하면 어쩌라고 같은 생각이 안드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맞는 말들이다. 어떨때 우릴 보면 바보같다. 관계와 남들의 눈 때문에 정작 제일 중요한 자기 자신이라는 큰 과제는 그냥저냥 넘겨버린다. 명상이라도 해야 들을 줄 알았던 내면의 소리를 이렇게 들을 줄은 몰랐다. 책 한권 읽으면서 말이다. 이건 절대 내가 거기 원고를 기고하고 빌붙어 살기 때문에 하는 얘기는 아니다. 나 김어준 총수한테 서운한거 많다. (내가 책 낼때 책에 들어갈 서평 써주십사 부탁했는데 그러마 해놓구선 인쇄되는 그날까지 답 없으셨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서운한건 서운한거고. 책이 좋은건 좋은거다. 적어도 그건 알 정도의 시근이 들 나이가 된 것이다.  

단 한번도 나는 총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내 담당 기자들도 본 적 없으니 감히 어찌 총수를 보았겠는가. 솔직히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대빵으로, 나는 그냥 칼럼이나 끄적이고 원고료 받는 작자로 각자 잘 살면 그만이었으니까. 근데 이거 읽고나니 시일 욕심이 생긴다. 이 사람과 술 한잔 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디다 압력을 넣어야 술한잔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 맞다 마태우스님이 있었지. 움홧홧홧) 아무튼 그러고 싶은 욕심이 들 만큼 책이 재밌다.  

상담보다 더 즐거운건. 상담 뒤에 그가 적어놓은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중에 상담 빼고 이런 것들만 모아서 책을 내어줘도 감사하겠다. 아무튼지간에 책 재밌고 더불어 유익하기까지 하다. 혹시라도 난 왜 이렇게 못난 인간인걸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면 진짜 누군가가 건투를 빌어주는, 내 편이 되어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건 내가 내 편이 되어야 한다는거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일단 내 편일때 남들이고 뭐고고 다 있는거 아니겠는가? 자신에게 냉정한것과 가혹한것을 구분 못하는 이 유아적 사회에서 살다보면 이런 책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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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5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어트라고는 정말 안해봤었다. 내가 좀 무식하게 먹어도 살이 안찌는 재수없는 타입인지라(왕년에 별명 쓰레기통이었다.) 그런걸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내 몸무게는 언제나 44kg. 밤 좀 새서 술을 푸면 43kg까지 내려갔으니 다이어트를 하면 그게 미친거지.  

한 3일 정도 다이어트는 해 봤다.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 있을때나 방송 출연 있을때. 그때는 얼굴이 좀 작아보이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해 본거였다. 벗뜨 그러나. 작아지라는 얼굴은 그대로고 몸에 살만 줄어서는 안그래도 좁은 어깨. 더 좁아 보였다.  

그런데 작년 10월부터 슬슬 살이 붙기 시작했다. 이야 얼굴 좋아졌구나 하는 인사는 11월 말까지만 유효했다. 그 이후로는 너무한거 아니냐, 인생 포기한거냐, 세상에 살 안찌는 체질 같은건 없구나 등등. 허나 이런 말들 보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이건 뭐. 맞는 옷이 있어야 말이지. 내가 미쳤다고 44 사이즈만 샀던가 겁나게 후회했다. 집구석에 있는 추리닝까지 XS (스몰보다 한 단계 더 아래) 뿐이니 정말 입을 옷이라고는 한여름 월남 치마밖에 없었다. 심지어 속옷들까지 다 작아졌다. 몸이 불고나니 딱 맞았던 캐미솔의 경우. 배가 훌렁 드러나 버렸고. 팬티는...에이 말을 말자. 

12월 말에는 급기야 눈물을 머금고 옷을 다시 사기 시작했다. 늘 외출할 일이 있는건 아니지만 어쨌건 일주일에 한번 있는 라디오는 하러 가야되었으므로 (한동안 모자쓰고 괴상한 옷 입고 갔더니 PD가 집에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근데 옷을 사러 가니까 예전 라인이 전혀 나오지 않는거였다. 무조건 그 집에서 제일 작은걸 입으면 됐었는데, 불고 나니 내 사이즈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입어보니 55였다. (단 44가 존재하는 집에서의 55. 요새 55만 있는 곳은 거의 44라고 보면 된다.) 망가진 라인을 어떻게건 감추려니 옷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비싼 옷을 걸친다고 해서 죽은 라인이 살아나는건 아니지만 내 심리가 그랬다. 이제 더 이상 후줄근한 옷을 이 몸에 플러스 시키면 마흔처럼 보이고 말거라는.  

그러다가 12월 31일. 아주 독하게 마음먹었다. 곧 새해도 밝아오는데 이 몸이 웬말이냐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살이 찌니까 매사가 짜증스러웠다. 밥을 먹어도 짜증나고, 굶어도 짜증나고. 그래서 좀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해 보기로 했다. 이래가지고선 내가 못살겠구나 싶어서.  

우선 늘어진 체육복 대신. 미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거의 엉덩이 골이 다 보일듯한 트레이닝 바지를 다시 꺼내 입었다. 정말이지 이건 스키니진보다 더 붙어주셨다. 입고나니 무심코 앉았다가는 재봉선들이 터질것 같았다. 더 골때리는건 바지 라인 위로 축 쳐진 배였다. 배가... 참 뭐라 할 말도 없이 튀어나와 있는데. 아. 난 이제 다 된건가 싶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그 옷만 입었다. (덕분에 지금은 살짝 떨어졌다. 빨고는 바로 말려서 또 입고 또 입었다.)  

그리고 외출할때는 작년에 산 프리미엄진을 입었다. 그게 약간 날씬해 보이는 효과도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날씬할 당시에도 흐읍 하고 호흡을 해야 할 정도로 딱 붙는 바지였다. 스키니진이 아닌 부츠컷이긴 했지만 윗부분이 장난 아니었다. 거기다 그 바지의 골반 사이즈는 26이었다. 난 허리도 26은 더 나갈것 같은데 말이지. 그야말로 골반이 뽀개지는것 같았다. 골반이 뽀개지던지 살을 빼던지 사생결단을 내지 않으면 조만간 휠체어를 타야할것 같았다.  

살을 빼느라 밥을 굶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피부와 머릿결이 상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세안 후에 쌀뜨물과 우유(라고 하니 몹시 그런데. 어디까지나 유통기한 지난 우유로 아주 조금만 쓴다.) 로 다시 한번 헹궈주고 머리도 감을때마다 헤어팩을 열심히 해 줬다. 그 결과. 피부도 살이 쪘을 때 보다 훨씬 좋아졌고 (솔직히 그때는 만사가 귀찮아 세수 자체를 잘 안했더랬다.) 머리에도 윤이 나기 시작했다.  

특별히 뭔가를 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밥 공기를 바꿨을 뿐이다. 대게의 한국인은 탄수화물 때문에 살이 찐다. (미쿡 아해들은 고기 되시겠다.) 따라서 밥 반찬은 그냥 먹더라도 밥의 양을 줄이면 놀랍도록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기름진 음식은 한번 기름을 닦고 먹었다. (과거에는 접시에 흐르는 기름조차 핥았었다.) 야채도 많이, 과일도 많이, 물도 많이 먹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달달한 다방 커피 대신 여러가지 차를 구비해놓고 시시때때로 마셨다. (녹차, 루이보스티, 계피차, 귤피차, 모과차, 페파민트차를 번갈아 마심)  

마지막으로 거울을 자주 봤다. 그리고 주문을 걸었다. 나는 원래 날씬하다. 날씬하다. 날씬하다. 그리고 집에만 있으면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하루 4~5끼를 먹어대서는 자주 외출 할 일을 만들었다. 외출을 해야 그 망할 프리미엄진 (내가 진짜 이거 입고, 죽어도 그 안에서 죽는다 라는 각오로 입었더랬다.) 을 입으니까. 그랬더니 새해가 밝고 얼마 안되고부터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러 저울에 달아보지는 않았다. 중요한건 근수가 아니라 실제 보여지는 내 몸이니까. (그거 보면 화딱지 날 것 같았다. 이썅. 이렇게 굶었는데 숫자 그대론거지 지금? 우이쒸) 

그렇게 미친듯이 뺀 다음. 지난 설 연휴에 미친듯이 나가 놀았다. 선배도 보고 후배도 보고 친구도 보고 그들이 불러댄 모르는 사람도 또 보고. 그리고 드디어 쾌거를 이뤘다. 누군가가 나 보고 최소 26에. 최대 29살로 본 것이다. 움홧홧홧. 그러니까 제일 나이 많게 봐도 난 내 나이보다 무려 5살이나 어려 보인것이다. (물론 그들은 새해 덕담이라는 말을 해서 내 손에 죽을뻔했다만)  

살이 쪘을때는 말도 못하게 나이가 들어보이더니만 (거울만 보면 웬 중년 여성이 째려보더군) 살을 빼고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젊어보인 것이다. 뭐. 나이 들면 나이 든대로 자연스럽게들 살라고 하지만 개뿔! 이 사회는 젊고 어린것들을 원한다. 더구나 연애칼럼을 쓰는 여자가 중늙은이 라는건 아무도 용서 안해준다.  

아무튼지간에 살이 쫙쫙 빠져서 이제는 더 이상 그 바지를 입어도 골반이 뽀개질것 같지도 않고. 그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배가 솟아오르지 않는다. 이제 여기서 조금만 더 덜어내면 과거 전성기때 부럽잖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랬다. 살찐 이들이 살이 안빠져 고민할때. 속으로 그랬다. 아니 왜 살을 못 빼? 없는 키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심은하처럼 얼굴이 예뻐지는 것도 아닌 단지 살이잖아? 그거 좀 덜 먹고 움직이면 되는거 아니야? 아...지금은 실로 깊이 반성한다. 그게 꼭 그런게 아니더라고. 정말 살을 빼는건 담배를 끊는 것, 술을 끊는 것, 남자를 끊..이건 아니구나. 아무튼 그런것들 못지 않게 의지력을 그리고 꾸준함을 요하는 일이었다. 나는 단 한달을 했을 뿐이지만. 살이 좀 과하여 몇 개월을 그래야 한다면 과연 해 낼 수 있었을까?  

문득. 일평생 다이어트중인 우리 고모가 떠오른다. 고모는 볼때마다 '살 좀 빠진것 같지 않냐?' 라고 말했다. 적어도 내가 철 난 이후. 우리 고모의 첫 마디는 항상 저 말이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우리 고모. 굶으면 오히려 부어버린다는 우리 고모. 새해에는 고모에게 살빠지는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고모 나 이제 완전 고모 이해하잖아. 그동안 입으로 안다고 했던거 뻥이었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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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1-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55가 되셨다고 살을 빼시다니.. 이기적인 몸매의 소유자시군요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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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약. 내가 배우였다면. 그랬다면 나는 열흘이고 보름이고 노희경의 집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건 아니면 눈물콧물을 다 짜건간에 여하튼 나는 그녀의 드라마에 행인1이라도 반드시 출연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을 것이다. 적당한 트렌디 드라마를 찍고, CF로 왕창 돈을 버는 연예인이 아닌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면. 나는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장담컨데 꼭 그리 했을 것이다.   

거의 신으로 불리우는 한 방송 작가는. 자신이 쓰는 드라마 대본에 말투며 토시 하나까지 일일이 짚어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매번 대본 리딩때마다 참석해서 배우의 연기를 체크하고 지적한다고 한다. 그 드라마에 출연한 신인들은 놀랍게 연기력이 향상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 그 무서운 호랑이같은 대작가님 앞에서 지적받지 않으려면, 그리고 어지간한 드라마 3편 분량에 해당하는 수많은 대사를 외우다 보면 절로 연기력이 늘 것이다. 그러나 여기. 신인 배우들의 연기력을 향상시키는 또 한명의 작가가 있다. 하지만 전자와 전혀 다른 타입으로 그는 배우에게 자기가 알아서 연기를 하게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역할은 대본을 쓰는 딱 거기까지만으로 선을 긋고. 배우가 할 몫은 배우에게, 감독이 할 몫은 감독에게, 또 스탭몫은 그들에게 온전하게 돌려준다. 물론 그들이 도와달라고 말하면 흔쾌히 돕지만. 자기 쪽에서 '내 작품이니 절대 망칠 수 없어. 그게 누구라도' 하는 건 없다. 그러니까 노희경은 드라마라는 공동작업이. 정말 공동작업이 될 수 있게 하는 작가이다. 어지간히 파워를 가진 그녀가 이렇게 되기까지 참 마음을 많이 비웠겠구나 짐작이 간다. 당장 내가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라면. 나는 내 작품을 지킨다는 이유로 오만 간섭을 다해대서 사람들에게 진상으로 불리거나 화상으로 불리웠을께 분명하니까.

노희경의 드라마는 일명 마니아 드라마로 불리운다. 그 말은 소수의 열광하는 팬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시청률에서는 좀 아쉬운. 그러니까 매우 대중적 코드를 갖고 있는 드라마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래서 얼마나 더 반가운지 모른다. 물론 나는 마니아적 취향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 여동생이 '너도 별 수 없구나' 라고 말할 정도로, 그야말로 개나소나 다 보되 내용 면에 있어서는 유치뽕짝이 하늘을 찌르는 드라마도 꽤 열심히 시청하니까. 그러나 아주 가끔은 닥본사 (닥치고 본방 사수라는 말이라는군) 를 못하면 잠이 안 올. 그런 드라마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노희경은 내게 있어 아주 소중한 드라마 작가이다. 만약 그녀의 드라마가 없었다면. 나는 그녀에 대한 연정으로 점철된 원고 하나를 못 썼을지도 모르며, 내 삶에 아주 큰 즐거움 하나를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노희경의 드라마란 드라마는 다 챙겨봤을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아주 작정하고 챙겨 본 것은 '그들이 사는 세상' 이 전부이다. 나머지 주옥같은 드라마들은 그러지 못했다. 1회부터 최종회까지 다 본 것은 그세사가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 작가를 사랑한다고 말 하면서도 어딘가 2%. 아니 한 20%쯤 모자라는 팬이다.  

예전에 드라마 작가, 혹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낸 소설이나 산문집을 열심히 보던때가 있었다. 그들의 영화와 드라마가 내게 감동 혹은 재미를 주었기에. 나는 주저없이 그들이 종이위에 펼친 작품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너무 오만방자했다. 마치 내가 수천 수백만의 시청자들을 들었다놨다 하는 작가인데 이깐 소설책 하나 산문집 하나 어려울까. 하는게 느껴졌다. 그들은 한 장르에 있어서는 대가였을지 모르나 다른 장르에서는 초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까먹은듯 했다.   

그러나 노희경에게는 그런것이 보이지 않는다. 머릿말에 있기 마련인. 내가 비록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지만 책은 처음인지라 예쁘게 봐 주십사 하는 그 흔한 아부말도 없다. (근데 대부분 저렇게 적은 사람들은 본심과는 반대로 적었더군.) 그리고 책을 낼까 말까 망설였다는, 진짜 책을 통해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누가 될까봐 고민을 많이 했었다는 아무도 믿지 않을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냥 묵묵히 글을 써놨다. 자신의 드라마와는 좀 다른. 하지만 어딘가 배다른 형제 쯤으로 보이는 닮은 구석을 내보이면서.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무척 세련되고 감각적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났다. 단 한번도 그녀의 드라마가 그런적도 없었는데. 어쩌면 나는 온에어를 너무 열심히 봤는지도. 아무튼 그녀의 글은 세련된 도회지의 냄새라기 보다는. 약간은 촌스러운 시골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당연하지만 그런 냄새가 훨씬 더 그윽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드라마 화두가 인간. 혹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어느 드라마나 인간을 다루지 않겠느냐만은. 그녀의 드라마에는 이건 드라마니까 하는 억지스런 갈등이 없다. 꽈배기 꼬이듯 온갖 역경과 시련을 겪는 주인공은 애초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그녀의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보다보면 다들 너무 사랑스러워서 주연이니 조연이니, 혹은 인기 배우니 신인이니 하고 나뉘어지지가 않는다. 모든 배우들에게 골고루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것. 그것 또한 노희경의 힘이자 그녀의 인간에 대한 철학인것 같다.  

이 책에서 단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그들이 사는 세상의 독백을 옮겨놓은 부분이다. 물론 그 드라마의 팬이었던 나는 그들의 주옥같은 독백을 글로 만나 반갑기는 했다. 하지만 이 얇은 책에서 이것마저 끼워넣어버리면 그녀의 글이 더 줄어들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리고 조금만 그녀가 더 친절하게 더 길게 얘기 해 주었으면 (글이 친절하지 않은건 아닌데 짧은게 나는 불만이었으므로) 싶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고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무죄 판결을 받아 낼 자신이 있다. 왜냐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다면, 그랬다면 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 말마따나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들은 모두 유죄다. 얼른 그들이 사랑을 하여 무죄 판결을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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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 스타일 - 시크한 여자들의 스타일링 & 쇼핑 노하우
이선배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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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캐리 브레드쇼에게 미쳐 있을때, 나는 비교적 비싸게 주고 산 곱창 밴드를 뜨악한 눈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극중에서 작가와 사귀게 된 캐리가 그의 책에서 뉴욕 출신의 여자가 곱창 밴드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데. 결론은 뉴욕 출신의 여자들은 절대 곱창 밴드 따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정하지 않는 남자에게 캐리는 함께 간 식당에서 곱창밴드를 한 여자에게 뉴욕 출신이냐고 묻고, 관광차 뉴욕에 온 그 여자는 남편에게 '여보 나 보고 뉴욕 출신이냐고 물어요' 라며 기뻐한다. 뉴욕 출신이라는 것은 그만큼 세련되었다는 것을 뜻하므로. 한참 열광해서 보고 있는 드라마에서 최악의 아이템으로 지적한 곱창밴드. 긴 생머리로 올림머리를 할때나 일명 X머리를 할때 얼마나 편리하고 유용했던가 따위는 한 순간에 박살이 났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곱창 밴드를 화장대 서랍 깁숙한 곳에 쑤셔박아뒀었다. (과감하게 버리기에는, 곱창밴드라는 것만 빼면 너무 예뻤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그 곱창 밴드를 아무 생각없이 하기 시작했다. 바나나 핀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곱창 밴드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꼴사납다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셔너블하지도 시크하지도 않은 나는 같은 연애칼럼니스트지만 캐리처럼 패션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솔직히 그녀에게서 가장 궁금한것은 대체 어디다가 원고를 기고하길래 집구석에 마놀라 블라닉과 디자이너 브랜드 옷들, 그리고 잇백이 넘쳐 흐르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캐리의 통장 잔고는 놀라 나자빠질 정도로 빈약하지만, 그리하야 아파트를 사는데 결혼에 실패한 친구의 티파니 다이아몬드 반지가 필요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런걸 다 사대면서 카드값 돌려막기나 카드깡을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지 않는건 신기하다. 이게 뉴욕과 서울의 차이인건가?  아니면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인걸까?

패션에 대해 예리한 심미안을 가진것도, 그렇다고 패션은 내 삶의 이유. 이지도 않으면서 이런 패션 관련 책들을 보는 이유는 딱 한가지 이다. 나 역시 더 예뻐지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진 여자이기 떄문이다. 아무리 엉망인 행색을 하고 있는 여자라 하더라도 스스로 못나 보이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자는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그게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건 아니면 옷차림도 전략이라는 일 때문이건, 그도저도 아니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건. 우리는 날마다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이 없다고 한숨을 쉬고 어디선가 50%를 넘어 70% 세일을 한다면 마그네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카드를 긁어대게 된다. 좀 더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미용실에서 엉덩이에 욕창이 날 만큼 앉아있고, 피부과에서 아파 기절할 것 같은 레이저 시술을 참아내며, 심지어 몸에 영양 공급을 중단하기도 한다. 허나 이런것에 비해 패션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우리를 아름답게 해 준다. 단지 다음달 카드값에 기절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은 2007년에 나왔고, 지금은 대망의 2009년이다. 3년이나 지난 패션은 이제 한물 간 유행이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저자 역시 글을 쓰는 그 동안에도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했으며 자신이 잇백이라고 써 놓은 것이 지금은 '한때 유행했던 백' 이 되어버렸다고 고백한다. 패션의 주기가 얼마나 빠른지 안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것이 패션 혹은 유행이라고 말하는데 아무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읽을만한 이유는 잇백이나 핫 아이템만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패션에 대한 고전. 그리고 유행을 타지 않는 베이직 아이템들이 나열되어 있다. 각종 패션 잡지에 글은 기고할 망정. 날아오는 패션 잡지들을 탐독하며 패션 감각의 끝을 날카롭게 다듬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뭐야? 한물 간 얘기들만 하고 있잖아?' 하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책에서 주장하는 잇백이나 모스트 해브 아이템 같은것들 중에는 대부분 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수두룩했다.) 

나도 기고했던 잡지의 기자 출신인 저자는 패션 잡지 기자답게 온 대한민국을 휩쓴 유행은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몰랐던 제 3의 백이나 패션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대단히 발빠른 패셔니스트가 아니라면 3년이 지난 책이라 무용지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앞서서도 말했듯 이 책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패션들을,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아울렛에서 괜찮은 아이템을 고를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 해 준다. 하나 마음에 드는것은 흔히 여자들에게 패션이나 사랑이나 일이나 암튼 뭐나 가르쳐주겠다는 책들 처럼 '너 어쩔래?' 하고 다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과 함께 읽었던 택도아닌 여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충고서를 미련없이 집어던졌다.) 곱창밴드나 바나나핀을 한다고 촌년 취급을 하지 않으며, 패션에 수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넌 여자도 아니야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다.  

책의 목적은 분명하다.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스타일에 변화를 주거나 남들에게 세련되게 보이고 싶다면 지갑을 열어라. 다만 일~이 년 쓰고 마는 아이템에 지갑을 열지 말고 십년이 지나도 이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아이템에 집중 투자를 하라 이다. 그렇게되면 매 시즌마다 새 옷을 사댈 필요도, 옷장에 옷 뿐이건만 입을 옷은 하나도 없는 괴이한 현상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린제이 로한이나 올슨 자매. 혹은 저 유명한 쇼핑 광에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이 많은 페리스 힐튼이 아니라면 귀담아 들을 만 하다. 책은 오히려 자신만의 견고한 스타일을 가진 지젤 번천이나 시에나 밀러처럼 패션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질 것을, 그리고 오직 자신에게만 드러나는 분위기를 내라고 말한다. 제아무리 잇백이건 핫 아이템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으면 그런걸 들고 걸쳤다고 해서 절대 패션 아이콘처럼 보이지 않는다. 책에는 많은 패셔니스트 스타들이 등장하지만 결코 그들을 따라하라고 말 하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는 것. 그래서 평범한 소품과 싼 물건도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한다. 

굉장히 유용한 팁은 아마도 싸게 살 수 있는 쇼핑 정보일 것이다. 책은 비싸더라도 하나쯤은 장만해서 내내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과, 그때 그때 싸게 사서 단품용으로 그칠 것들을 구분 해 두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만 휘감을 수 있는 돈이 있다면야 싸게 살 필요가 뭐가 있겠냐만. 알다시피 우린 호텔을 상속받지도 않았고 (심지어 상속 받은 그녀도 세일기간이나 아울렛을 좋아한단다.) 한도가 끝이 없다는 골드 카드를 발급받을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왕 살 거. 싸게 살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것은 없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마 쓸데없는 아이템에 고가의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용 빈도도 높지 않고 주변에서 '저거 뭥미?' 할 정도의 패션 소품들을 비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다면, 그러면서 정작 어떤 옷에도 매치 가능하거나, 혹은 모든 옷의 기본이 되는 매우 베이직한 아이템은 지독스런 싸구려나 카피 제품을 산다면 그야말로 헛돈을 쓰게 되는 경우인 것이다.  

책에 나온 말 중에 백번 공감한 말이 드레스룸을 마치 연예인의 그것처럼 꾸미라는 말이었다. 비싼 돈을 들여서 드레스룸을 비까번쩍하게 만들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만큼 눈에 딱 보이는 곳에 모든 옷, 모든 소품을 배치하라는 것이다. 나만 해도 빌어먹을 깊은 서랍장 안에는 대체 무슨 옷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제일 아래 깔려있는 옷은 1년 365일중 단 하루도 내 눈에 띄지 않고, 따라서 그건 없는 옷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짐만 되는 경우이다.) 돈을 벌어서 작업실을 환장하게 아름답게 꾸미겠다는 목표 외에, 드레스 룸 제대로 만들기라는 목표가 또 하나 생성되는 순간이었다. 옷만 잘 정리해도 우리는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건데' 하며 집에 있는 비슷한 아이템을 또 사들이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다 옷장 앞에서 당췌 나갈래도 걸칠 옷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나는 일단 우리네 서랍장부터 좀 없애든가 아니면 정 사겠다면 깊이가 얕아서 옷 위에 옷이 겹쳐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짓말 같다면 지금 당장 집에있는 우물처럼 깊은 서랍장을 한번 열어보길 바란다. 아마 나처럼 거기에는 '어? 이것도 있었네?' 싶은 옷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물론 니트 같은건 옷걸이에 걸기 보다는 서랍장을 이용하는게 더 올바른 보관법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개 옆에 한개. 이런식이여야지 한개 위에 또 한개. 그 위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 이쯤 되어버리면 옷의 활용도는 최악이 될 것이다. 

이런 책 한권 읽었다고 해서 당장 걸어다니는 패션이 되거나 런어웨이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시크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책 한 권에서 단 몇 가지의 팁만 얻는다 하더라도 (책에 나와있는 아울렛 주소나 싸게 살 수 있는 인터넷 쇼핑 주소만 찢어서 코르크판에 붙여놔도) 본전은 뽑는 셈이다. (책 값에 대한 본전이 아닌 읽는 노력에 대한 본전이다.) 패션? 시크? 개나 물어가세요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것도 저렴하게, 혹은 돈 아깝지 않게) 있다면 이 책은 적극적으로 읽어 볼 만 하다. 더구나 저자의 글 솜씨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목욕 중에도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패션 잡지는 안보더라도 패션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읽은 내가 장담하건데 이 책은 상위에 랭크될 만 하다. 실용적인 면과 재미. 그리고 주장하는 바가 모두 합리적이다. 제일 뒷 장에는 내 남자친구를 위한 팁도 있는데,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의 스타일을 확 바꿔주고 싶은 여성이라면 참고할 만 하다. 

끝으로 내 주변에는 브랜드 알러지가 있어서 옷부터 소품까지 모든걸 보세만 사는 이가 있다. 그녀는 싸다는 이유로, 또 브랜드는 턱없이 비싸기만 하다는 이유로 그러는데 글쎄다. 그녀는 70%에서 최고 90%까지 저렴하게 파는 브랜드 아울렛을 가 보지 않은게 틀림없다. 그리고 알다시피 요즘에는 보세라고 해서 결코 싸지 않다. 브랜드 아울렛에서 싸게 건진 옷은 그 어떤 보세들 보다 저렴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소재나 바느질이 보세보다 월등하게 더 훌륭하다. 보세는 아무리 예뻐도 저런 면에 소흘해서 해를 넘기면 후줄근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싸다는 이유로 보세를 입었건만 다음해에는 역시 그 이유로 그 옷을 활용하지 못하고 또 다시 싼 제품을 사야 한다면? 제대로 된 브랜드를 싸게 잘 사서 오래 입는 것과 경제적인 측면만 봐도 어느쪽이 이익인지는 자명하다. 브랜드만 걸친다고 해서 브랜드에 미친 인간 취급을 하기 전에 자신이 산 보세가 진짜 싸게 잘 산건지 부터 체크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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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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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돌이킬 수 없는'이 그랬었다. 그 영화를 보기 이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모니카 벨루치가 정말이지 그녀의 영화들 가운데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연기를 보여주었었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보기 이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로드는 광고 문구를 빌리자면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작품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책은 재미와 작품성 면에서 양쪽 다 별 다섯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별 하나를 덜어낸것은 내 마음 때문이었다. 읽고 나서 얼마나 불편했던지. 그리고 읽으면서 내내 얼마나 울었었던지. 물론 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때라면 그런 이유로 별 다섯에 추가 다섯! 이렇게 호기롭게 외쳤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나이가 들면서 소심해져 버렸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만큼은 아니지만 불편한 허구 혹은 상상의 세계는 그만 모르고 살고 싶어져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훌륭하다. 읽는동안 끊임없이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고 또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은 그 옛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옆에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딸을 보면서.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도 자꾸만 나는 소설속의 남자와 소년의 이야기가. 나와 내 딸의 이야기가 된다면? 하는 괴로운 상상을 멈출수가 없었다. 

사실 암울한 미래에 몇 남지 않은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 만큼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다 못해 소금과 과산화수소를 들이붓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래 저건 허구야' 혹은 '저렇게까지야 되겠어? 영화니 (혹은 책이니) 그렇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허구고 사실이고간에, 그리고 허구가 사실로 둔갑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이건 간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이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점점 말라가는 모습. 그리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모습,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죽을 정도의 추위를 견디며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그 어린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모르긴 해도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질만큼 아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는 갈 곳이 없으며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놀랍도록 담담하게 던진다. 하지만 그 담담이 독자들에게는 더욱 견딜 수 없는 심적 고통을 느끼게 한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임산부나 어린이 혹은 노약자에게 금해야 하는건 아닌지 하고 생각해본다. 그만큼 읽고나면 너무 마음이 아프며 그 마음을 다칠 확률이 높다. 서른 넷이나 먹었고 세상 풍파를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하는 나도 이렇게나 다쳤으니까. 

사전 지식없이. 그저 재밌겠네?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밤을 샌 다음 여행을 떠난것도 후회한다. 결국 여행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공포로 점철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 여행과 함께 책의 내용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서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굉장히 훌륭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 많은 독자들이 선택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접해보면 '아 이래서 그렇구나' 하고 수긍을 하게 된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이렇게 된다면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을까? 내 스스로 나와 내 아이를 포기해버리지 않을 만큼 모질 수 있을까? 마음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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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9-01-1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댐시 사보고 싶네요..

비로그인 2009-01-13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다른 정보가 없는 와중에 이 책을 옮기고 펴내면서, 출판사나 편집자나 옮긴이나 다들 `과연 이 책이 잘 팔릴까' 생각을 했다지요. 굉장히 러프한 번역이라고, 하지만 원문을 살린 번역다운 번역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무서운 책일텐데, 그래도 읽고 싶어집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1-13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마음이 무거울거 같아서 못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