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 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
배영익 지음 / 스크린셀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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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출판사 스크린셀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스크린셀러란 영화의 스크린과 베스트셀러의 셀러를 합성한 영화의 원작소설을 말한다. 고로 지나치게 지루하고 덤덤한 소설읽기가 맘에 들지 않았던 영화광들도 마치 장르소설을 보듯 머릿속에 활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피어나는 영상을 떠올리며 볼 수 있는 소설이라 리뷰에 연연하기 보다는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영웅이 사라진 사회.
전염병에 등장하는 인물은 '영웅'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는 순간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뇌기관이 손상되어 이기적이며 상대를 향한 방어기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를 그렸지만 어쩌면 그것은 바이러스가 없는 지금 우리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과 같다. 차라리 바이러스에라도 걸린거라면 동정이라도 받고 그들을 처단함에 있어 죄책감이라도 들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씁쓸하다. 영웅이 없기에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체 입국, 이 모든 사고의 원인이 된 어기영 역시 충분히 영웅이 될만한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유롭고 싶었다. 남들 다가는 군대를 가지 못한 댓가로 배라도 타겠다고 나갔을 만큼 그는 '보통사람'이고 싶었다. 때문에 처음부터 그는 영웅과 어울리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영웅이 되고 싶었던 '최수철 교수'는 영웅이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기억에 남는 악당이 되고자 했고 '성과'를 이뤘다. 마치 최신 개봉작 메가마인드에서 초능력대신 비상한 머리로 악당되어 관심을 받으려고 했던 메가마인드처럼. 순수한 의미로 영웅을 원했던 사람도, 영웅이 된 사람도 없었다. 얼핏 보면 바이러스의 백신(어떤 의미에서는 백신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을 투병상태에서 개발한 윤규진이 영웅 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이미 최수철의 농간으로 영웅의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나라의 안녕보다는 일단 내 아이의 생명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초현실적인 힘을 발휘하며 딸아이의 생명을 구해보려 했던 그에게 장한 아버지상은 수여할 수 있을진 몰라도 영웅에서는 한참 멀어져 버린거다.

그렇다면 가족은 존재하는 사회인가.
바이러스에 걸린 큰아이의 생명을 며칠 연장하기 위해 인공호흡을 하면 바로 간염될줄 알면서도 구조대원을 말리지 않았던 박주희. 죄책감으로 자신의 백신을 구조대원에게 전달, 그를 살리진 못했어도 국민을 살리는 데 기여했기에 영웅은 아니더라도 윤규진이 국민전체와 딸아이를 맞바꾼 것 처럼 부모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족애는 살아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가족애라고 보자니 이건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으로 보여진다. 당장 내가족만 보호하려고 한다면 세상은 가족이 남는 다기 보다는 '나'혼자 살아남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결국 영웅도 가족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비극적인 모습만이 들어왔다. 결말이야 운좋게 백신을 발견, 나라를 살리고 동시에 전세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희망적이지만 그속에 이유도 모른체 죽어간 사람과 그의 가정, 사회는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이 되어버린거다.
작품을 읽으면서 자문하게 되는 가장 많은 질문이 '나라면 어떻게 할까?'일 것이다. 내가 어기영이었다면, 윤규진이었다면, 혹은 박주희? 최수철이었다면 이란 질문에 어떤 대답도 그들과 다르게 한 적이 없었다. 가정으로 판단한 것이니 난 지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내가 이기적이기 때문인거다. 이기적인 인류, 그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작품이 바로 전염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앓는 건 지구가 아니라 인류였다. 전 인류가 남김없이 쓰러지더라도 행성은 변함없이 빛나리라.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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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 바닷마을 다이어리 1 바닷마을 다이어리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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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전에도 말했지만 난 시리즈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도 완결되지 않은 시리즈.

언제고 계속계속 후속편이 기다리는 연재물은 기다림을 싫어하는 내게는 그저 먹기좋은 과실에 지나지 않았던거다.

그런 쓸데없는 고집을 연말에 들어 점차 버리고 있는 것 같다.

보기만 하기에는 좋은 작품들, 만화라고 덮어두기에는 너무 아쉬운 작품을 만났기 때문이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은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리즈 중 첫권이다.

제 각각의 개성이 너무 강해 과연 이게 일반사람들, 보통사람들의 공감을 얻을까 싶었던 우려와는 달리

읽다보면 나의 모난 모습이 한명 한명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카마쿠라 바닷가 마을(실제 있네요^^ 지도 까지 자세하게!)네 자매의 이야기다.

앞에는 세자매 였다가 네자매라고 달라진 것은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집을 떠나 살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또 다른 딸, 스즈와 함께 동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사람의 성격을 만드는 것처럼 쉽지 않은 삶에 스즈는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도 어른과 다름 없는 사고를 한다.

그런 의젓함에 감춰진 어린아이의 슬픔과 고통을 비슷한 또래에 역시나 비슷한 경험을 했던 첫째 사치는

첫눈에 알아보고 그녀를 거둔다. 살면서 느끼는게 첫째는 아무리 철이 없어도 결코 막내의 철없음과 같지 않다는거다.

반대로 막내가 아무리 의젓해도 첫째가 갖는 천성적인 의젓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와 셋째 요시노와 치카는 동생의 기질이 좀 더 두드러져보이긴 특히 치카의 엉뚱함은 극의 재미를 주는 주요 요소이다.

 

이 작품은 아주 로맨틱한 연애관계라던가 놀라운 천재성을 가진 소년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인생여정을 사는 인물들도 없다. 그저 독특해 보이긴 해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매의 이야기다.

벌레를 보며 놀라뒤집히는가 하면 우애좋을 것 같아 보이는 자매에게도 서로 못된것이라면

아웅다웅 다툼을 하는 멀지 않게 딱 언니와 나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때문에 작품을 한권 읽고나면

미친듯이 후편이 읽고 싶어진다기 보다는 또 다가올 어느 휴일에 망설임없이 덥석 집어 읽게 만드는 그런 묘한 힘을 가진 책이다.

말은 이렇게 해도 조만간 2~3권을 곧 집에 들이지 않을까, 그리고 언니와 배경이 된 카마쿠라 마을을 여름즘 가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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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랄라! 1 - Yami 먹고 그리다
얌이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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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를 주제로 얼마나 많은 만화가 있는지 미처 헤아려본 적은 없지만...
요즘 들어 부쩍...먹는 만화에 사로잡혀 있다. 반갑게도 이번에는 국내 웹툰  코알랄라~!

솔직히 처묵처묵을 남발하는 작가를 평소에 좋아하진 않았지만(읽어본 사람들은 안다. 다이어트 완전 방해꾼!)

그래도 단행본이 나왔는데 모른척 할 순 없지않는가~! 당당하게 이번에는 절대 코알랄라 따윈

책으로만 보고 외치면서 먹진 않을테야~라고 했지만...

 


역시나 등장하신 소시지. 정말 강력하다.

한개 먹고 두개 먹고 세개 먹어도 쉽사리 배부르지 않는다.

치즈는 물론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옥수수맛!은 비싸서 일단 패쑤 하고

가장 저렴한 천하장사 소시지를 기어이 마트가서 구입~ 먹기전에 보고 사와서 당당하게 먹음서 또 보고;;;

지출증대, 체중 증가를 아주 가뿐하게 일궈내는 무서운 저력의 코알랄라;;;;


소시지에 이은 막강 유혹은 바로 딸기~

딸딸딸~딸기야~라는 건모형님위 노래는 나도 자주 생각한다. 딸기를 볼 때마다..어쩜 이리 맛있는걸까.

 

코알랄라의 핵심은 다른게 아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먹거리가 얼마나 맛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다는 거다.

비싼 초밥이나 굳이 어느 시장이나 어느 고을등을 힘들게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주변에 마트에만 가면

우리가 평소에 제대로 맛의 평가를 내려주지 않던 '귀한 녀석'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곁에 있어서 소홀하게 대했던 음식이 작가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바로 이점이 코알라라의 강점~

그치만 수많은 네티즌들은 오늘도 악플을 단다.

당췌~ 혼자서 처묵처묵 하시지 왜 우리는 끌어들인거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렇게 단행본이 나오고 작가와의 먹거리 미팅이벤트라도 생기면 무조건 신청해보는

열혈 팬층이 생겨버린 코알라라~ 앞으로도 익숙하지만 대접 제대로 못받은 우리 먹거리를 알려주소서~

코알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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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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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잔인하죠. p.272


길위의 시대는 1980년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인 망허와 그와 관련된 인물의 이야기이다. 망허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이들이 있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전혀 관계없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무엇보다 지나친 미사여구를 섞지 않은 담담한 필체가 머릿속에서 무한히 퍼져가는 상상을 독자가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한 힘있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정도다. 그뿐인가. 설마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고 나중에서야 이상하게 연도가 맞지 않는다는 의심이 밀려들 즘, 찾아오는 소설의 반전은 왠지 허망해지기 까지한다. 그동안 천샹의 고생과 샤오첸의 이야기에 몰입했던 사람이라면 내가 느꼈던 배신(?)감을 분명 느꼈으리라 확신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두 여인 예러우와 천샹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여인은 아니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거나 전부를 던지는 사람은 물론 아직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랑을 현명하고 강인하게 지켜가는 것과 사랑하는 이에게 의지하거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과는 다르다. 천샹과 예러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에 목숨을 건 여성들이다. 그리고 사랑을 지켜가기 위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자기만의 시대를 펼쳐갈 줄 아는 능력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놀라운 것은 그녀들의 선택이 반드시 일반인들에게 호응을 얻어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는데 있다. 단적인 예로 하룻밤의 관계로 생겨난 아이를 상대가 '시인'이었다는 이유로 낳아 기르겠다고 결심하는 천샹의 모습, 그리고 그 사람이 차후에 누군지도 모르는 나그네란 사실에 아이를 죽이려고 까지 하는 모습에서는 솔직히 친구 밍추이의 입장이었다면 망허를 저주하고 미워하기 보다는 친구인 천샹이 겁나고 무섭게만 느껴질 것 같았다. 
시를 사랑한다라기 보다는 자신의 운명이 시와 연결지어졌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길을 떠난 망허의 모습은 '시'라는 화두를 던지고서라도 지금의 우리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예러우와의 인연으로 그에게 목적이 생기긴 했어도 그것은 연인의 대한 사랑이지 그가 처음부터 얻고자 했던 깨달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하듯 길 위의 시대 역시 작가의 경험이 많이 묻어난다. 예러우가 떠났던 그길은 작가 장윈이 연구를 위해 떠났던 길이기 때문이다. '저우시커우'. 지금 우리는 어디로 이주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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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체스터 이야기 -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곳
신인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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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란 무얼까.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악화된 상태를 나아지게 하는 것? 보통의 날을 행복의 날로 바꿔주는 것?

사전적인 의미를 몰라 자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게 있어 치유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치유에 관한 서적에 목메는지 자답해야 할 시점이 왔기 때문이다.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곳이란 부제는 그야말로 지나치게 자화자찬이라고 느꼈다. 세상에 그 많은 상처를 어떻게 다 치유시키겠다는 것인지 그야말로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중요한 것. 세상의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순 없을지 몰라도 레이체스터 병원으로 온 이상, 그곳의 환자가 된 누구라도 치유를 받게되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지금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동네에는 왜 레이체스터 병원이 없는가 둘러보며 아쉬워할 필욘 없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도 그곳에 입원한 환자와 다를바 없이 똑같이 치유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총 7개의 처방전으로 나뉜다. 처음부터 끝까지 레이체스터, 즉 이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치유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명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이 책을 읽을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이 책이 필요한 것이다. 타인이 나의 상처를 치유한다고? 의학박사도 아닌 그저 우리의 이웃일 뿐인그가? 혹은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싶어했던 가난에서 완벽하게 해방되어 있지 않은 그 사람이? 라는 의문을 작가는 레이체스터 병원을 통해 독자에게 깨달음을 전달한다. 흔히 우리는 무언가 완벽한 사람만이 우리에게 충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주변인이 충고하면 '너나 잘해!'라고 소리치며 화부터 낸다. 그의 인생이 현재 이뤄놓은 물질적인 지위와 명예로 판단되어 그가 느끼는 행복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받을만한 처방전이 없다거나 전혀 아픈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역시 특별하게 치유를 받아야 한다라기 보다는 좀 더 나아지기 위한 내 행복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어리석은 이유로 책을 읽었으니까. 레이체스터 이야기는 어찌보면 단순한 우화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인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그래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상대를 평가하려고 하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인맥관리'를 하려는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하고픈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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