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제인 오스틴 - 최초의 문학이 된 여자들
홍수민 지음 / 들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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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여성들이 물려준 업적을 현대의 여성 작가와 독자들이 계승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여성 문학의 연속성이 만들어졌습니다. 여성 문학의 이러한 면은 고전이라는 “수세기 너머에 가 닿을 너른 바다” 앞에서 우리가 즐겁게 유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2쪽

저자의 제인 오스틴의 여성 문학의 시작점인 줄 알았으나 문학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그 이전의 이미 여성 문학 서사를 발견한다. 덕분에 나와 같은 독자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고전 문학속 여성 작가들의 작품의 주요 내용과 집필 배경 등을 흥미롭고 유쾌한 문체로 만날 수 있었다. 과거의 여성 작가들은 생계를 위해 집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학은 물론 일반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것도 흔하지 않아 ‘독학으로 글을 배워(10쪽)’ 오히려 주제나 문체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보다는 편지형식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성의 편지쓰기는 남성의 편지쓰기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기 때문에 감정을 어루만지고 탐구하는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형식이었다고 한다. 책은 총 6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무방하다. 특히 12세기, 엘로이즈의 이야기는 범죄소설에 등장할 법한 내용이라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당대 석학이자 유명인사였던 서른아홉의 아벨라르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22살이나 어린 엘로이즈에게 저지른 것은 범죄라고 밖엔 보이지 않는다.

교육을 한다는 이유로 사랑이 요망하는 별실, 떨어진 방이 제공되었네. 책이 펼쳐져 있었지만, 철학 공부보다는 사랑의 이야기가 더 많았고, 학문의 설명보다는 입맞춤이 더 빈번했으며, 내 손은 나의 책으로 가는 일보다 더 자주 그녀의 가슴으로 갔던 것이네. (…) 의혹을 보다 잘 피하기 위하여 때로 나는 매질을 가하기 까지 했다네, 그것은 분노의 매질이 아닌 사랑의 매질이었으며…63쪽

그녀가 아벨라르에게 당한 것은 엄연히 폭력이었다. 결과적으로 엘로이즈는 결혼이 아닌 여성 수도자가 되어 자신이 바라던 ‘아스파스아’와 같은 삶을 살았고 무엇보다 여성철학자로서 공적인 문서에도 그 기록이 남았을 만큼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신을 향한 그녀의 열정과 철학에 대한 학구적 열망이 그녀 자신 뿐 아니라 여성들의 삶을 남성과 사회로 인해 강제당하고 억압으로 끝맺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셈이다. 특히 여성의 교육적 기회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부족할 뿐 아니라 금기에 가까웠던 상황을 적확하게 보았을 뿐 아니라 ‘1405년 <여성들의 도시>를 집필’(101쪽) 하였다. 다만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라 비포 제인 오스틴을 계기로 재출간 소식이 들려오길 개인적으로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 가장 부흥했던 14세기~16세기는 어땠을지 궁금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르네상스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심지어 오히려 이전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떨어지고 통제는 더 심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여성의 공적활동은 금기였지만 그럼에도 벤의 작품이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혐오는 여전했기 때문에 남성이 아닌 여성이 쓴 성적 표현에 대해 비난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돌파했을 뿐 아니라 당당하게 펜으로 대응했다.

남성 작가들은 가장 문란한 생활을 하고 가장 음란한 작품을 쓰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려고 몰려들지만 단지 여성이 썼다는 이유로 부도덕한 것으로 여긴다. (…) 내가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나의 남성적 부분 내 안의 시인에 대한 특권이다. (149-150쪽)

여성 작가들이 남긴 문학들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독학으로 익혀 생계를 위해 소명처럼 쓴 글들이 대부분이라서 형식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고 다채롭게 넘나든다. 여성혐오나 차별적 사회체재는 그녀들의 신념을 지속적으로 무너뜨리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지만 책을 읽는 내내 탄성이 나올 만큼 여성 스스로가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고전 문학에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새로이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바람을 넘어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성별을 넘어 ‘쓰고자 하는 열의’에 차올랐다는 사실일 것이다. #비포제인오스틴 #홍수민 @dulnyouk_pub #여성작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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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오랫동안
루스 베네딕트 지음, 정미나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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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국화, 둘 다 일본이라는 그림의 일면이다. 11쪽

일본을 떠올렸을 때 ‘모순’이라는 단어와의 연결성이 어렵지 만은 않다. 타인에게 실례가 되는 일은 극도로 조심하면서도 가장 잔혹하고 난폭한 방법으로 영혼을 무너뜨리는 인물들이 정반대의 귀여운 작화로 표현하는 애니를 볼 때마다 느낀다. 겉으로는 상냥하게 미소조차 삼가하면서도 속으로는 벼린 칼을 품고 있을 지 모른다. 이런 추측뿐인 개인적 의심을 넘어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바라본 일본의 모습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연구가 시작된 배경은 전쟁 중 일본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군사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에서는 수백년에 걸쳐 불평등이 조직화된 생활 원리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그 원리가 가장 일상적이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활 원리로 굳어져 있었다. 계층적 위계질서를 인정하는 행동은 그들에겐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65쪽

계층적으로 억압된 삶을 살아온 일본은 평민에게는 성씨 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이런 불평등이 자국 내의 항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체화되어 주변국을 포함 해 전세계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내야 하는 명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저자는 일본이 중국과는 달리 씨족사회에 대한 위계보다는 가족구성원 특히 장자에게 주어지는 기대와 책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런 부분은 한국에서도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해도 유사한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살아온 세대가 존재하는 한 완벽하게 벗어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얼마전 읽었던 성석제의 <투명 인간>의 만수만 하더라도 장자라는 역할에 부응하다보니 어느새 자신은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것도 깨닫지 못한다.

일본어의 황실 명칭은 ‘구름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 황족들만이 일왕이 될 수 있다. (…)
일왕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77쪽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믿음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중국으로 부터 관직 제도와 법령등을 도입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반란과 내란으로 왕위가 바뀐 중국과 일본은 큰 차이점을 가진다. 일본에서도 당연 농민들이 지주의 부당함에 대응하긴 하였지만 어찌되었든 법의 심판으로 처형을 받는 것 자체에는 결코 항의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긴 했다. 그런점에서 쇄국에서 벗어나 서양 영역권의 나라들과 협상하고 그 어느 나라보다 문물을 개방하게 된 훗날의 일본의 모습을 예상하기란 어려웠다.

메이지 정부의 정치가들은 종교 분야에서도 정부 형태와 마찬가지로 무척 괴이한 공식 체계를 만들었다.(..)
국민의 결속과 우월성의 상징을 받드는 종교를 국가 관할로 삼고, 그 외의 모든 종교 숭배는 개인적 자유로 내버려두었다. 국가의 관활로 삼은 종교가 바로 국가신토이다. 110쪽

국가신토는 짐작한 것처럼 일왕의 숭배와 이에 대한 가르침이다. 종교가 아니라고 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국가신토만이 일본의 유일한 종교라고 느껴졌다.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타국과의 협정에서 위배될 만한 것도 없었고 제재할 명분도 없었다.

그들에게 ‘일왕’이 존재한다는 것, 그로인해 당연히 발생하는 계층적 위계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래로 이어지는 가족 관계와 개인 관계에서의 역할과 행동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위급상황에서 그 어떤 것보다 유대관계를 깊어졌다. 일본의 바람대로 전 세계가 ‘적절한 자리’에  놓였다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일본의 진정한 국민적 서사극은 <47인의 사무라이>다. 이것은 세계 문학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향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49쪽

책을 읽으면서 일본이 어떻게 전세계를 계층화 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 그 근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에 대한 신의와 사무라이가 가지는 특권의 당연함을 넘어 그들이 가진 의무와 바람 사이에서 그들이 결국 선택하게되는 강인함이 서양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또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어느 한 나라를 그리고 그 나라의 국민성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당연히 무리고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파고들지 못했던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책이 왜 오래도록 기억되고 이어져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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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호르몬이 만든다 - 호르몬으로 시작하는 저속노화 건강법
안철우 지음 / FIKALIFE(피카라이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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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호르몬이 만든다

지난 3주간 이 책을 중심으로 한 호르몬리셋챌린지 에 참가했었다. 처음에는 좋은 습관 생기려나 싶었는데 1주차만 했는데도 가장 큰 이점을 발견했다. ‘기록하기’.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수준이 아니라 어떤 순서대로 먹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특히 수면시간과 양을 기록하는 것은 주변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부분이었다. 잠을 확실히 잘 챙겨서 자던 날은 다음날 두통도 없고 무엇보다 덜 피곤하고 매사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사고가 되는 반면 잠이 부족한 다음날에는 아이나 남편 그리고 불편한 상황에서 크게 분노를 품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게 모두 호르몬과 관련되어 있었는데 머리로만 알던 것을 챌린지를 통해 제대로 느낀 것이다.

호르몬은 오케스트라 연주와도 같다. 몸속의 많은 호르몬들이 각자 제 역할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상관관계가 높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균형이 잘 맞춰져 있어야 천천히 나이 들고 사는 동안 건강하다. 51쪽

수면과 함께 운동도 정말 중요한데 체중감량 혹은 근육량 증가를 위해 무리하게 운동하느라 몸이 오히려 힘들어했다면 가볍지만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도 제안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늘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도 좋지만 횟수나 방식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발생하는 성장호르몬이 우리를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게 젊음을 유지하게 해준다. 식단이 인슐린을 건강하게 조절해주고 멜라토닌이 수면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우리가 노화를 떠올렸을 때 가장 염려하는 치매는 물론 다음의 내용을 보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옥시토신은 사회적 · 정신적 노화뿐 아니라 신체적 노화를 개선하는 데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옥시토신은 발달, 성장, 치유, 생식 등 사회적 행동 적응을 촉진하고 외상, 질병,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 정서적 손상을 예방한다. 또한 혈압을 정상 범위로 유지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조절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높은 수치의 옥시토신은 근육세포를 포함하여 노화된 줄기세포 재생 촉진과 노화를 예방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46쪽

이처럼 호르몬은 단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식단, 수면, 운동은 물론 적당한 사회생활이 이뤄져야 느리게 노화를 맞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점검할 수 있는 표는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운동과 관련된 정보 등 실질적이고 바로 적용가능 한 호르몬 관리법이 담겨져 있다. 나를 포함해 책과 함께 3주간 챌린지에 도전한 사람들의 후기도 SNS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의 후기를 함께 보면서 저속노화의 길을 찾아가는 데 적극 추천한다.

#젊음은나이가아니라호르몬이만든다 #호르몬리셋챌린지 #3주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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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 소란한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는 가장 고귀한 방법
나태주 지음, 보담 삽화 / 북로그컴퍼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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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어른이되는시간 #나태주 #필사 #시 #시집 #필사시집

나태주 시인의 <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지난 한 주간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 SNS 피드에 올라온 한 편 한 편을 필사했었다. 영화도 그렇듯 개봉 전 뿌리는 예고편이 전부인 작품들도 있듯, 필사하면서도 좋은 작품은 벌써 다 나온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완성된 책을 펼치면서 느긋하게 읽지 못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저절로 필사가 되었다. 부제가 ‘소란한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는 가장 고귀한 방법’을 읽기도 전에 체험했던 것이다.
시인이 60대 무렵의 소감을 적었다는 ‘놓아라’의 일부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우선 네 손에 쥐고 있는 것부터 놓아라
네가 보고 있는 것을 놓고
네가 듣고 있는 것을 놓아라 - 나태주 시인의 <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중에서

마음이 어지러운 이유는 놓지 못해서다. 어느 한 쪽을 포기하지 못하거나, 해야하는 줄 알면서도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놓지 못해서인 줄 알면서도 며칠 동안 속이 시끄러웠던 참에 저 시를 마주했으니 절로 필사가 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흠집’이란 작품도 정말 좋았는데 평소에 가구나 가방처럼 약간의 스크래치가 있어도 사용에 큰 지장이 없거나 시간의 차일 뿐 결국 상처가 날 것 같은 경우에는 흠집을 발견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시인처럼 세월의 흔적이 쌓여 ‘나와 정이 들게 되’어서가 아니라 흠집 날까봐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하니 자주 사용하게 되어 익숙해진다.

이렇듯 작품을 읽는 것 자체도 좋지만 시인의 코멘트도 놓치면 아쉬울 정도로 좋은데 ‘기념일’ 작품의 산문에는 ‘하루하루를 기념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보면 어떨까? 라는 제안이 참 따뜻했다. 오늘은 시인의 멋진 시를 필사한 기념일이 될 수도 있고, 또 내일은 모처럼 알람없이 눈을 뜬 기념일이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기념일이기도 하고.

시인의 시집이 벌써 여러 권 있는데도 계속 계속 읽고 싶고 신간을 보면 반가운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기 보다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서 자꾸 읽고 싶고 쓰고 싶었나보다. 좋은 사람, 좋은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픈 사람이 많은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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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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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우린 비명을 지릅니다.” (...)
그들은 하나같이 삼백 년 전 일본이 침략해 온 일을, 그리고 사찰들과 선교사들과 유럽에서 온 배들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유령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요, 우린 비명을 지릅니다.” 199-200

<벌집과 꿀>편에서 등장하는 고려인들의 저 이야기는 이주민들의 삶의 고단함의 정도를 바로 느끼게 해준다. 잠도 못잘 만큼 괴롭지만 유령 따위로 자신의 ‘터’를 떠날 순 없다. 그 터란 나고자란 터이기도 하지만 강제로 떠나와 자리잡은 터도 마찬가지다. 헌데 벌집과 꿀에서 유령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을 허락없이 범하는 남편을 죽인 아내의 죽음에 동조하거나 묵인했던 사람들이다. 유령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러시아 공사관과 죽은 여인의 딸 뿐이다. 타이틀에서 등장하는 꿀과 벌집은 대등하거나 종속관계라기 보단 벌집을 찾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꿀이 쓰이는 것을 뜻한다. 공사관은 자신의 아버지를 전쟁으로 잃었고, 자신도 삼촌에 의해 불모지에 파견되어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고려인들은 벌집을 얻으려는 누군가에 의해 이용된 ‘벌’인 듯 보인다. 표제작 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런 고단함이 느껴진다. 코마로프와 크로머는 탈북인들의 부모와 자녀들의 삶이 간접적으로 비쳐진다.

“두 분 다 반쯤 죽은 듯이 사셨잖아.” 그레이스가 말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여기 도착하셨을 때는 더 그러셨고. 살아 있다는 걸 제대로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으셨을 거야. 그게 그분들의 삶이었어. 항상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거. 당신도 그 정도는 알잖아, 해리.” 169쪽

발췌문에 등장하는 해리와 그레이스는 탈북한 두 남자가 각각의 가정을 꾸리고 낳은 아이들로 어릴 때 부터 같이 놀고 다투며 어른이 되어 자연스레 부부가 되었다. 해리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고 때때로 가족이라곤 둘 뿐 이라는 삶의 유한성에 외로움을 느끼며 자녀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지 생각하며 그레이스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독자인 내겐 발췌문에서 그레이스가 이야기한 그들 아버지의 삶만 보더라도 왜 그녀가 아이를 원할 수 없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분쟁으로 발생한 폭력에 두 블럭을 날아가 해리 품에 안겼던 그녀에게는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신과 남편의 아이가 안전하다고 안심할 순 없었을 것이다. <코마로프>에서처럼 죽은 아이의 시신도 거두지 못하고 탈북해야 했던 주연 만큼 급박하고 처절하진 않았더라도 ‘항상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삶은 좀 더 나았다고 할 수 있을까.

매일 밤 여기서 달이 뜨고, 기울고, 부서졌단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냈지. 250쪽

전쟁이나 침략 혹은 이주의 아픔을 직접 겪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아픔이란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완전하게 소멸하진 못할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잊고 살다가도 갑자기 떠올릴 수도 있고, 갈 곳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누군가는 어쩌다 만난 이의 흘리듯 했던 말에도 마음을 움직인다. 그렇게 마치 계속 기울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살아가는 모습이 소설집 <벌집과 꿀> 안의 마치 벌집처럼, 여러 개의 방이 칸칸이 모여 있었다. 결말이 모호해서 답답한 것이 아니라 그 모호함 속에서 희망이 보이고, 잊힌 아픔이 떠오르다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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