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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윌리엄!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소설의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책의 표지를 먼저 확인하고, 책을 사고 싶은 구매 의혹을 느끼곤 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습관을 깨는 작가들 몇몇이 있는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가의 책이 그에 속한다. 그래도 이 소설은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소설을 읽기 전엔 ‘굳이?‘ 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너무 평범하여 김이 샜다는 뜻이다.) 그러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아! 이 제목이 최선일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고 생각이 바뀐 소설인데,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늘 그랬던 것 같다. 특히 <오, 윌리엄!>은 더더욱 탁월한 제목이지 않을까, 싶다.
제목처럼 소설에서는 윌리엄이 등장한다. 윌리엄은 소설 속 화자인 나(루시)의 전남편이다. 그러니까 루시와 윌리엄은 이혼한 부부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소설을 미리 읽어 본다면, 루시와 윌리엄의 이혼 사유를 알게 될 것이다. 앞서의 소설에서 윌리엄의 외도로 인한 이혼이었기에, 그런 윌리엄을 용서할 수 없었던 나였던지라, 굳이 전남편 윌리엄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소설에서 느낄만한 깊이의 폭은 전작들에 비해 내겐 그리 크지 않겠구나! 살짝 삐딱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천하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스트라우트는 스트라우트였다.
스트라우트는 늘 스트라우트를 넘어서는 것 같다.
읽으면 읽을 수록 루시의 눈을 통해, 그런 윌리엄의 공허한 마음을 차츰 이해하게 되었고, 공감하게 되었고, 때론 결핍으로 인한 그가 마음 아프게도 느껴졌었다. 내가 느꼈다기보다 루시가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 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루시는 윌리엄에게 미안한 감정도 생겼지만, 미운 감정도 다시 되살아 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함께 살며 이해할 수 없었던 윌리엄의 행동과 생각들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나름 깨닫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심리적 변화 요인들은 아마도 현재 이혼을 해서 서로 한 발짝 물러 서서 바라보고 있기에, 가능한 시선일 수도 있겠다.
루시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아이였다. 너무 가난하여 가족끼리 느껴야 할 유대감이란 것이 결핍된 아이였다. 부모와 형제와는 사랑과 애정이 부족했던 것이다. 궁핍한 삶이다 보니, 추운 집보다는 따뜻한 학교가 더 안전하고, 아늑하여 혼자 남아, 숙제도 하고, 잠도 자고 오기도 했다. 루시는 학교에서 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다 보니 성적이 우수하여 대도시로 대학을 가게 될 기회로 인해, 가난한 집에서 벗어난 것에 안도하기도 하지만, 모종의 슬픔을 가슴에 숨겨 두고 살아간다.
그러다, 도시에서 윌리엄을 만나게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윌리엄과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윌리엄은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여성과 불륜을 저지렀고, 루시는 예리한 촉으로 그것을 감지하게 된다.
이 가정은 더 이상 안전하게 유지되기엔 힘들겠다라고 생각한 루시는 집을 나갔고, 이혼을 하게 되었다. 루시는 이혼을 했다고 해서 그리 궁상맞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루시는 자신이 원했던 작가가 되었는데, 여기저기 싸인회를 다닐 정도로 꽤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재혼도 했다.
윌리엄과 루시는 각자의 삶을 찾아 나름 만족하며 살아 온 것이다.
이 소설은 그로부터 한참지난, 세 번째 부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예순아홉 살의 윌리엄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당연히 루시도 나이를 먹었고, 재혼했었던 남편 데이비드는 지병으로 죽은지 몇 년이 지난 상태다.
소설은 줄곧 루시의 자기 고백적인 글이라,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다. 루시의 말은 아주 덤덤하게 글로 표현되어 있어, 어쩌면 쉽게 읽힐 수 있지만, 때때로 놓치면 아까울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내가 당시의 남편과 그의 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그 날밤, 그 아늑한 기억이 강하게 떠올랐던 것은 그 옛날에는 윌리엄과 내가 서로의 세상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51 쪽)
‘나도 울지만 울면서 아주 많이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윌리엄은 그걸 잘 받아주었다. 내가 정말로 서럽게 울면, 데이비드라면 겁을 먹겠지만 윌리엄은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살 때는 한 번도 첫 결혼에서처럼 그렇게 울지는 않았다. 아이처럼 서럽게 흐느끼지는 않았다.‘ (64 쪽)
‘내 안에서 튤립 줄기가 툭 꺾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튤립은 꺾인 채로 내 안에 남았고, 결코 다시 자라지 않았다.
나는 그 후로 좀 더 진실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98 쪽)
‘이것을 깨달았다. 이 권위가 바로 내가 윌리엄을 사랑하게 된 이유임을, 우리는 권위를 갈망한다. 진실로 그렇다. 누가 뭐라고 말하건 우리는 권위라는 감각을 갈망한다. 혹은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는다.‘ (168 쪽)
˝나는 사람이 뭔가를 실제로 선택하는 건 -기껏해야- 아주 가끔이다라고 생각해. 그런 경우가 아니면 우린 그저 뭔가를 쫓아갈 뿐이야 - 심지어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걸 따라가, 루시. 그러니 아니야. 나는 당신이 떠나기로 선택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194~195 쪽)
‘그것이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너무 늦을 때까지 모른다는 것.‘ (257 쪽)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298 쪽)
문장은 평범하게 읽으면, 그냥 무난하게 읽힌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을 공감하며 읽는다면 그 느낌은 너무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책을 다 읽고 그 속에서 빠져 나온 내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그 느낌일 것이다. 때론 스트라우트의 문장 속에서 특별한 느낌을 전해 받으려면, 나는 몇 해를 더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싶은 마음도 든다. 지금은 내가 살아온 만큼의 경험을 통해 이 책의 문장을 읽고, 딱 요만큼의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 본다면,
어린시절의 가난 때문에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형제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우애와 애정의 결핍을 윌리엄에게서 보상받으려 했던 루시!
하지만, 실은 그런 윌리엄 자신도 어린시절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결핍을 안고 살아 온 불안한 존재에 불과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루시의 부모님도 전쟁의 피해와 트라우마에 시달려 살아 왔었고, 완벽해 보였던 윌리엄의 어머니인 캐서린 조차도 어린 시절 루시보다 더 가난했었던 집에서 성장했었지만, 그 결핍을 스스로 가리고 살아왔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그 누구라도 약간의 결핍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사람과 그것을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눠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 모두가 신화이고, 신비롭고, 미스터리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루시는 매사에 신중하고 섬세하다. 그런 성격적인 요소가 사람들하고의 대화 속에서 툭툭 튀어 나오곤 하여, 상대를 외롭게 한다. 윌리엄은 그런 루시더러, ‘자기 몰두적‘ 이라고 비난한다. 루시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서 윌리엄이 받았을 섭섭함과 외로움이 이제사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윌리엄에게 당신의 어머니와 내가 어딘가 비슷했기에 나와 결혼을 한 것이라고, 당신은 당신 어머니와 결혼한 것과 다름없단 루시의 말에, 윌리엄은 조용히 말한다.
당신은 기쁨이 가득한 사람이었노라고, 어린 시절의 집을 방문하여 깜짝 놀랐지만 그럼에도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루시를 사랑했었고, 당신은 특별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것이란 윌리엄의 말에 루시는 행복함을 느낀다.
루시는 윌리엄이 권위가 있는 사람이어 안전함을 느껴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된 윌리엄은 이제 그 권위가 서서히 옅어짐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어 두 사람은 연륜이 생긴 탓에 서로를 좀 더 관대하게 바라보게 되어,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좀 더 젊었던 시절 이렇게 따뜻한 말들을 솔직하게 말 했더라면, 이혼은 하지 않았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긴 하지만, 현재 이혼을 했기 때문에 상대를 더 안쓰러운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먹먹하게 읽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오, 윌리엄!
윌리엄을 호명하는 말 속에 수많은 감정이 묻어 있는 제목인 것이다.
이런 소설은 나이 먹어 가면서 계속 더 읽어보고 싶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