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금
하근찬 지음 / 바다출판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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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미자의 <섬 마을 선생님>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책을 읽고 이 노래 한 구절을 흥얼거리면 5,60년대의 풍경이 떠오른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고서점의 구석에 박혀 있다가 어느 운명적인 손에 의해 보물로 탄생하는 값진 고서적처럼 이 작품도 처음 <여제자>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을 때는 별 볼일 없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이 영화 감독의 눈에 띄어 우리 가슴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그런 연유로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을 읽은 몇 안 되는 작품이 되었다.  

첫사랑이란 이렇게 어설픈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엄마가 봤으면 감동했을 얘기네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조금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먼저 읽어서 '이 책 어때 ?'하고 물었더니 '어, 그냥 읽을만해. 하지만 영화로나 만들어질 그런 얘기야.' 영화를 보지 못해서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마치 옛날 무성영화 시절의 검사와 제자라는 영화제목이 생각났다. 신파 같았으니까. 순순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만 작가의 의도를 따라줄 수가 없어 미안하다.

그냥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를 뽐내며 입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예전에 책제목이 "여 제자"였다는데 그 제목이 어울렸을 그 시절에나 어울리는 책이다. 아무리 제목을 내 마음의 풍금으로 바꾸더라도 유행가 같아서 지금 보면 그때 작가가 바라던 감동은 내기 어렵다. 더구나 나는 이 책을 처음에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로 착각을 했었으니, 아마 이것이 이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갭이 아닐 까 생각된다.

그래도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때만해도 이런 일이 가끔 있었다. 선생님을 사랑하던 라일락 꽃내음 가득한 5월의 교정의 설레임이. 선생님 교탁에 꽃을 꽂아 놓고, 연애편지 쓰듯 가장 예쁜 편지지에 편지를 쓰고, 방과후 교문 끝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던 애틋함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고 한심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목숨걸고 하던 일이었다. 첫사랑이었으니까. 그래서 홍련이의 첫사랑이 예쁘게 다가온다. 추억이니까. 어린 날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내용은 사실 별로 없지만 뭐, 그런 것이다. 우리의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일이니까 진짜는 그렇게 낭만적인 일은 아니었듯이 작품 속에서 내 생각이 만나 아름다운 영화를 찍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뿐이다. 

시절이 순수했고, 사람이 순수했고,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할 줄 알았던 시대에 시골 학교에서 아마도 진짜 있었던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경험담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점점 순수라든가, 순진이라든가 하는 단어들이 낯설어 지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선생님과 제자 사이가 멀어지고 사나워지는 사회에서 촌스럽고 바랜 이 작품이 어필하는 것은 그때가 좋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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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공산주의
이원복 외 지음 / 두산동아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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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민주주의고 공산주의는 빨갱이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은 이것뿐이었다. 진짜일까. 절대 아니다. 모든 이념은 죽은 정신이고 실천하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자본주의, 즉 민주주의도 완전한 이상향이 아니고 공산주의 역시 지옥의 표본은 아니다.

물론 지구상의 공산주의의 중심인 러시아는 무너졌다. 하지만 그것은 공산주의의 맹점 때문이지 모든 공산주의 이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서 좋은 점을 배우는 것이다.

북유럽의 잘사는 나라들은 사회보장제도라는 공산주의의 이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공평하게 잘 산다. 다른 서구 선진국들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절충해서 자신들이 잘 살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우리만이 아직도 용공이니, 빨갱이니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느냐다.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면 사실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말은 필요 없다. 좋은 점만 골라서 잘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책을 쓴 작가의 의도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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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극장 에지 23
유마 안도, 아사키 마사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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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는 만화중에 가장 엽기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안 좋은 쪽으로 이 작품을 꼽고 싶다. 에지와 시마가 나오는 장면은 그래도 그런대로 볼만 하지만 변태 시마코(본명 후쿠시마)가 나오는 장면은 역겹기 그지없다.

그는 여경으로도 변장을 하고 나오고 간호사로 변장을 하고 출현하는 여장을 좋아하는 남자다. 이 남자만 나오면 사이코메트리라는 특수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에지의 행동도, 그의 친구 강천의 매력적인 카리스마도 반감되고 단순하게 변태만화처럼 보이고 만다. 아쉬운 점이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을 들자면 번역의 미숙한 점이다. 이제는 라이센스 계약을 하고 번역을 하는 만큼 캐릭터들의 이름은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마치 이름만 보면 한국사람처럼 느껴지게 한 점은 이해할 수 없다. 누가봐도 일본만화라고 알고 있는데, 강천, 갈서, 심해라는 이름은 말이 안된다. 일본 이름을 한자 그대로 우리식으로 읽은 느낌이다. 만약 우리의 작품을 가져다가 일본에서 일본식으로 이름을 표현해 놨다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까. 이제는 이런 작은 부분도 신경을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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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컨 브리프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10
존 그리샴 지음 / 시공사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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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를 먼저 봤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잘 안보는 편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덴젤 워싱턴이 나와서 봤다. 역시 원작을 읽어보니 원작이 영화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변함없이 든다. 존 그리샴의 작품은 재미있다. 독특한 법정 소설, 변호사의 이야기를 쓰는 그의 이 작품 <펠리컨 브리프>도 법대 학생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기자. 그들의 정의는, 아니 존 그리샴이 생각하는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들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 즉 변호사와 기자들인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법대생이 어떤 문제에 대한 추론을 한다. 그것이 펠리컨 브리프다. 그의 연인인 법대교수는 그것을 자신이 아는 친구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는 차를 타려던 순간 차가 폭발해서 죽는다. 그리하여 법대생의 외로운 싸움은 시작된다. 그 외로운 싸움에 기자가 동참하게 되면서 도주와 함께 그들을 쫓는 이들을 역추적하기에 이른다. 스피디한 전재와 스릴과 로맨스가 담긴 소설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영리한 한 대학생의 논리적인 추론, 그러니까 추측에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된 자들이 제발이 저려서 저지른 일이다. 영리한 것이 때론 재앙이 되다니 원... 그냥 그러려니 했다면 좋았을 것을 죄를 지은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지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고 만다. 마치 '주목! 그것이 사실이다.'라고 외치는 격이 아닌가. 범죄자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다지만 그들의 특징은 절대 잡히지 않겠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이라더니 그것을 작가는 환경이라는 문제와 더불어 잘 풀어내고 있다. 마치 다비에게 멸종 위기에 처한 펠리컨이 복수를 대신 해주기를 바란 것 같이 생각되는 작품이다. 

그까짓 펠리컨이 대순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펠리컨도 못 살게 만들면서까지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을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언젠가 모든 생명체는 사라지고 인간만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이곳이 인간이 살 만한 곳으로 남아 있을지 지금도 인간에게 경고는 계속되고 인간은 그것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 언제까지 인간이 자연의 무서움에 버틸 수 있을런지 아마도 펠리컨은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소설이니까 그렇지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영화가 많이 각색되기는 했지만 실화라는 소리를 듣고 <펠리컨 브리프>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어떤 나라에서는 정의가 실현되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 시민의 힘으로 말이다. 우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열 받는다. 그들이 조금 부럽다. 언제 우리의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 런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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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 1
후지사키 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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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 고전의 패러디 작품이다. 작품이 너무 난해해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캐릭터도 무척 많고, 이야기는 마치 SF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계와 인간계의 연결, 주나라를 밀어주는 태공망측의 곤륜과 은나라를 밀고 있는 금오의 한판 피할 수 없는 커다란 전쟁 이야기!

전쟁에 사용되는 각자의 수많은 보패의 이름도 알기 힘들지만 주인공인 태공망을 돕는 곤륜과 적인 금오의 많은 조연들의 성격을 이해하고 알아보는 일도 무척 힘든 일이다. 그리고 신선과 인간의 구분도 모호해서 인간이 신이 되기도 하고 인간도, 신도 아닌 신이 창조한 사이보그같은 묘한 캐릭터도 있다.

어째든 그림이 너무 오밀조밀해서 진도 나가는 것이 무척 더디다. 아마 읽는 사람은 각오하고 읽는 것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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