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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에는 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위에 있을 법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주위 사람들과 결코 어울리지 않고 혼자의 세상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그렇게 사는 것이 이해가 되고 그 삶을 존중하게 된다.
어떻게 비둘기에게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했다고 집을 나가냐고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 비둘기가 단순한 비둘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 가지고 있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집 앞에 죽은 쥐가 있다. 그런데 쥐를 무척 싫어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아무도 그 쥐를 치우지 않는다. 그럼 그 쥐는 비둘기처럼 자신을 내쫓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보잘것없는 한 평의 영역도 지켜 나가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인지 그런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느꼈다.
자신을 스핑크스 같은 경비원이라고 생각하고, 거지보다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조나단 노엘. 사람이 산다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일임을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둘기에게도 빼앗길 수 있는 것을 소유하고 있고, 거지보다 자유롭지 못한 소시민의 삶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다시 한번 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간단하고 명료하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그의 작품은 독보다 더 빠르게 나를 질식시키고 있다.
누군가는 원하는 대로 삶을 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바라는 것이 아주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빼앗기며 살아가기도 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풍요로운 사람은 그 풍요로움을 주체할 수 없어 그 풍요로움에 감사할 줄 모르고, 빈곤한 사람은 자신이 누울 한 평 짜리 조차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조나단 노엘은 자신이 평생을 이뤄놓은 한 평 짜리 방을 잃게 생겼다. 누군가는 그까짓 비둘기 때문에? 하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왜 비둘기가 그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하긴 조나단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어느 날 비둘기가 위협한 것도 아닌데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그의 부모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걸까. 군대간 동안 이민을 간 여동생은,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 잃어버린 그의 자존심은...
유태인 조나단 노엘의 선택! 어려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빼앗기고 살아온 남자인 조나단 노엘. 나치에게 부모를 빼앗기고 군대에서 청춘을 빼앗기고, 여동생을 캐나다로 빼앗기고, 그의 순결한 결혼을 강요에 의해 임신한 처녀의 눈가림으로 빼앗기고, 자존심을 이웃에게 빼앗기고 결국 파리로 탈출한 그에게 그가 파리에서 이십여 년 동안 이룬 작은 방 하나를 이제 작고, 무섭고, 지저분한 비둘기에게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그러니 그깟 비둘기라고 말하지 말자. 잃기만 하고 살아온 사람은 또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이 그런 것인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조나단이 세상에서 가장 가지고 싶고 가장 지키고 싶은 그의 작은 방은 비둘기에게 빼앗겨도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평화와 행복과 자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방이었으니까. 그러니 돌아갈 수밖에 없다 비둘기가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