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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의 사각 2 ㅣ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3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정신없이 읽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에(추리소설) 가장 좋아하는 시대 이야기에 (일본 전후 5-60년대) 옴므파탈과 같은 악당이 나온다. 금융 소재라 사실 가볍게 볼 생각이었는데, 시대상과 겹쳐지며 그야말로 취향저격이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의 첫번째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는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데, 리뷰를 보면 좋았다!!고 하고 있지만; '대낮의 사각'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파계재판'을 건너뛰고 읽었는데, 아직 이 작가 책 읽을 것들이 남아서 새삼 행복.
도쿄대 법학부 스미다는 도쿄대가 생긴 이래로도 드문 천재이다. 그가 친구들 셋을 모아 사금융회사를 만들어 승승장구한다.
스미다에 대한 쓰루오카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천재였습니다. 적어도 두뇌 호전, 착상, 예견, 그런 몇가지 점에서는 저같은 사람은 발밑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그는 너무 나약했습니다. 머리만 맹렬히 앞서나가고 발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거나,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성격으로 어딘가 따라갈 수 없는 면이 있었습니다.
스미다가 여자나 사람들을 대하고 이용하는 방법은 예민하고 광적이다. 책 내내 '쓰루오카'가 진정한 '악'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스미다의 '악'이 광기를 동반한다면, 쓰루오카의 '악'은 감정을 배제하고 있어서 그런건가 싶기는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쓰루오카의 모습보다 훨씬 더 악마같은 놈들을 매일 뉴스에서 보느라 사기꾼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정의로운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게 작가의 의도에는 벗어나지 않을까싶다. 작가의 말에는 작가가 만들어낸 최고 악당이라 이 이후로 더이상의 악당 소설을 쓸 수 없었다. 고 하는데, 마지막까지 쓰루오카가 악마로 묘사되는 것에는 좀 공감이 안갔다. 진짜 나쁜놈. 이런 느낌이라기보다 감정 죽인 하드보일드 느낌. 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이런 느낌은 또 아니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선행을 베풀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서라며 친구를 구하지만, 위악까지는 아니라도 전혀 악당의 모습이 아니다.
치열하게 '악'을 행한 쓰루오카의 변명이라면 변명이고, 이유라면 이유인 것이 전범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일본사회의 '법'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는거고,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와의 갈등 같은 것이 잠깐씩 나오기는 하지만, 억지스럽다가도 당시의 사회상과 그 사회상에 던져진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촘촘해서 다시 생각하면 이해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이야기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작가는 인물을 묘사할때 단면적인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그의 과거와 성품을 엮어내는 점이 인상깊다. 기지마의 첫번째 실수에서 동업한 친구들 중에 유일하게 전쟁에 참여한 그의 현재라던가 사기치며 만나게 되어 대항하고, 경멸하는 메이지시대를 대표하는 우메마쓰의 기질, 그리고 크게 봐서 일본의 기질까지도 과거의 경험을 아래 두고 쌓아나가는 것을 보면 캐릭터들의 생생함은 물론이고, 더욱 있을법한 이야기와 인물들로 만들어준다.
태양클럽 동지 네 명 가운데, 실제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기지마 료스케 한 명 뿐이다. (...) 복학한 뒤로는 그런 참혹한 기억은 과거의악몽으로 정리한 듯 거의 입에 담지않았지만, 역시 생사의 기로에서 몸에 밴 교훈은 여차할 때 두번째 본능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이다.
어딘가 몹시 씁쓸한 한국전쟁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참패했지만 미국과 영국 양국을 적으로 돌려 몇 년이나 대치할 수있었던 힘은 일본 어딘가에 잠재적으로 남아 있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의 국력은 눈부신 기세로 부활의 길을 걸었다.
시대상과 (우리와 결코 멀지 않은) 쓰루오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사기 기법들, 속수무책 당하는 피해자들, 그리고, 그를 쫓는 열혈검사 이야기까지도 정신없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광기를 지닌 스미다 이야기로 시작하고, 스미다와 스미다 주변의 여자들, 쓰루오카의 여자들 이야기는 이 소설의 대단한 양념이다.
쓰루오카가 어떻게 생을 마감할지, 마지막에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작가의 이름보다 주인공과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을만큼 생생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