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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라노 게이치로의 '분인주의'에 대한 에세이다. '결괴'에서 시작해 국내에는 3월 발매 예정인 '던'에서 더 구체화된 개념인데, 근대 이후 '개인주의' 다음의 개념으로서의 '분인주의' 이다.
개인individual 이란 것은 in + dividual 로 나눌 수 없는 최소한의 존재인 '개인'을 말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여기에서 나눌 수없는 'in'을 빼고 'dividual' 나눌 수 분인을 주장한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독불장군같은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반장을 도맡아 하는 얌전하고 깍쟁이같은 모범생이었다면, 고등학교, 대학교때는 얌전하지만 학교생활에는 별 관심 없는 학생이었다.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못참는 성격인건 같은데, 미취학 아동일때, 초등학교때,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그리고 대학교때,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내 자신을 누르기도 하고, 까칠하게 굴기도 하면서 살았었다. 그러다가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첫 사회생활이었고, 고객서비스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높고,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동시에 미국계여서 자유분방한 면도 있었다. 마케팅팀에 속해서 고객들을 상대하고 접대하면서 내가 아닌 나로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이 전화해도 내 목소리 톤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내가 아니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서 평소보다 더 얌전한 나로 회사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집에 가서는 그 반발로 더욱 성질 나쁜 나로 악지르면서 보냈던 것 같다. 8년여를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내가 그 때 그렇게 내 성질 누르고 가면 쓴 생활 하느라 안 그래도 까칠한 성격이 더 나빠졌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곤 했는데,
이 책을 그 시절의 나에게 보내주고 싶다.
나와 같은 경험과 꼭 같은 경험은 아닐지라도 누구나 비슷한 경험은 있을 것이다.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에 받는 스트레스 말이다.
다양한 모습의 내가 존재한다. 회사에서의 나, 엄마,아빠의 딸로서의 나, 남동생의 누나인 나, 친구들의 친구인 나, 연인으로서의 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나, 동물병원에서 말로와 리처의 보호자인 나, 작업실에서 작업실 식구인 나, 등등
나란 사람은 '한사람'이지만, 각각의 상황에서 상대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 다른 모습들이 비슷한 경우에는 상관없는데, 상충하는 경우에는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밖에서의 나처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가식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먹고 살자고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구나 자괴감 느껴지기도 하고..
히라노 게이치로는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외따로 고독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기보다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한다.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진정한 나'라는 개념은 인간을 격리시키는 감옥이다. '
분인으로서 세상과 나를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정리된다.
저자는 왕따를 예로 들었지만, 나는 내 성격을 만드는데 가장 큰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회사에서의 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회사에서의 나' 라는 분인이 있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나'의 분인이 있다 '친구를 만나는 나' 가 있고, '장난감 모임에 나가는 나' 가 있으며, '와인 모임에 나가는 나' 가 있다.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이 '회사'이므로, '회사에서의 나' 라는 분인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내 분인 때문에 다른 분인들까지 고통받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나.라는 분인에 대한 스트레스로 생겨난 분인들도 그 곳에서의 나를 온건히 즐길 수 없다면 (스트레스를 와인이나 장난감을 모으는 것으로 푼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당시의 나는 '회사에서의 나' 라는 분인에 온통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글 쓰는 나', 혹은 '책 읽는 나', '여행하는 나' 정도가 내 맘에 드는 내 모습이다. 그 외에 내 시간과 돈의 대부분을 차지한 회사, 술모임, 장난감수집은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회사에서의 나'를 떼어놓고 살 수 있었다면, 다른 시간들을 훨씬 충실하게 보내고, 맘에 드는 내 모습을 많이 남겼을꺼라고 생각한다.
맘에 드는 분인에 집중하고 그 분인이 나에게서 차지하는 부분을 크게 하는 것.으로 밸런스를 잡을 수 있다. 는 점이 중요하다.
분인이라는 말은 책 한 권을 다 읽은 지금도 입에 착 달라붙지는 않지만, 책은 가장 쉽게 쓰여져 있고, 다양한 예시를 들어 이해를 돕는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부분에서 자극받을 수 있을꺼라고 생각한다.
분인개념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을 개념화한 정도일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더 나아가 뒷부분에 죽음과 화합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맘이 찡하니 울렸다.
쉽게 쓰여졌지만,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그래서 책을 안 읽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의 고민이 담겨 있고, 그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개념의 도구를 건네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