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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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실질'을 키우고 싶다. 두둑한 배짱으로 나약함과 불안감 따위를 다 몰아내고 어디까지나 밝고 적극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누구라도 이러한 것들을 바록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그러한 작은희망조차 손에 넣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요? 세간에는 밝게 살고 오래 사는 비결,미용이나 바디 케어,안티에이징이나 마음 수련법뿐만 아니라, 학원 선택법, 자산 운용법, 손해 없이 상속하는 법,무덤을 고르는 법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들이 마음의 실질을 키우는 데 얼마나 도움이될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불안할 뿐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나 토마스 만이 그려 낸 것은 이른바 '마음을 상실하기 시작한 시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이미 '마음 없는 시대'의 마음을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음습한 집단 괴롭힘이나 무차별적인 폭력, 자신들의 울분을 풀기 위한 인터넷상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 나아가 예전의 국수주의를 방불케 하는 혐오 발언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글로벌 자본주의의 패배자들 혹은 몰락의 불안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외주의나 사회의 '이물질'에 대한 공격에서 배출구를 찾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황폐한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까지 이르지 않았을까요.  


강상중 교수의 책은 꽤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주제는 '마음', '고민' 뭐 이런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그 의미가 퇴색된 단어들인데, 그 흔하지만 중요한 단어들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주게 한다. '마음'을 이야기하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들, 읽고 나서 뒤돌아보면 잊혀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왜 늘 강상중 교수의 책은 와닿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재일교포로 살았고,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였고, 칼 맞는걸 대비해 옷에 종이뭉치를 끼우고 다녔다는 그런 과거의 경험들과 그 과정에서의  치열한 고민과 선택과 실천이 있었어서이지 않을까. 


그가 항상 인생의 멘토처럼 드는 '나쓰메 소세키' 에 대한 이야기들, 소세키 자신의 이야기와 소세키 소설 속의 인물들 이야기들을 늘 현실에 접해 이야기해주니, 소세키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 와닿고, 소세키 소설은 더 좋아지고. 그런 개인적 선순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마음'이다. 이 책에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가 꺼낸 멘토는 나쓰메 소세키 '마음' 의 '나'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오는 한스 카스트로프이다. 


'마의 산'은 재미없는 책.완독하기 힘든 책.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는데, (아마 다시 읽어도 그럴 공산이 높긴 하지만) 강상중 교수의 안내로 따라 한스 마음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재미있었다. 이전의 책에서와 달리 이 책에는 언급된 두권의 책이 인용되기도 하지만,열린 결말과도 같았던 결말의 뒷부분을 창작한 것이 나온다.거기에선 한스와 '나'가 만나기도 하는데, 이야기가 무척 자연스러워서 정말로 두 권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마음', '행복', '사랑','고민'등등은 이전 책들과 비슷하다. 늘 나오던 소세키도 나오니 말이다. 다만, 그 중에 '마음'에 더 방점을 둔 책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 말할 수 있으랴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않을까. 단단한 마음. 서문에서의 표현을 따면 '마음의 실질'을 고민하는 두 주인공을 내세우고, 당시에는 마음의 '상실''을 고민했다면, 요즘은 상실을 고민할 '마음'마저 없음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한다. 그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고, '시대'의 탓이기도 한데, 시대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마음의 실질'이라는 것을 찾아 기르자고 한다. 


여기서 마음은 '외유내강' 할 때의 내면의 '강함'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마음의 강함과 자존감을 높이는 것의 답을 책 속에서(소설 속에서) 찾는데, 강상중은 개개인 각각이 그 답을 탐구하게 해주는데 훌륭한 가이드임에 틀림없다. 


사회에 희망이 없으면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인생에도 희망이 없어지고, 사회가 풍요롭고 활력이 있으면 인간의 인생도 풍요로워집니다. 시대가 병들어 있는데 인간에게 건강하게 살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더욱이 사람은 그 사회가 작동하는 이상으로 작동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사람은 개인으로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시대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시대에 모순이 있으면 개인의 정신도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아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꿈도 희망도 없고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데 개인이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세상에서 말하는 하나의 방정식을 좇아 단 하나의 높은 이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끝장이라며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일단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 보고 그게 잘 안 되면 몇 번이고 뻔뻔하게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마음의ㅣ 풍요라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얼마나 넓은 선택의 폭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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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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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 대법원 등의 합의체 재판부에서 판결을 도출하는 다수 법관의 의견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


원작이 있고, 영화가 있는 경우, 나는 글자를 먼저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소수의견'의 경우에는 원작이 있는지도 몰랐고,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던 경우다. 원작을 영화로 만들때 꽤 높은 확률로 실망스럽고, 아주 좋아야 본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이건 내가 책읽기를 영화보기에 비해 월등히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수의견'의 경우는 영화를 먼저 본 것도 괜찮지 않았나 싶다. 영화 자체로도  굉장히 좋았고, 윤계상이란 배우가 처음으로 정말 멋진 배우로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계상과 윤변호사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없었고,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이 문제였던 대석의 역을 유해진이 맡은 것도 괜찮았다고 본다. 김옥빈이 맡은 기자 역도 괜찮았는데, 여기에 법학과 교수 이민주가 빠진 것은 너무 아쉽다! 책에서도 영화에서처럼 몇 번인가의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그 중에 야당 의원이 얼렁뚱땅 하고 지나간것이 알고보니 이주민이 나오는 꽤나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 외에도 이주민은 등장하는 윤계상,유해진,야당의원,이준형기자,염교수 등등에 녹아 있다. 박재호역은 이경영이 맡아서 더 인상적으로 나왔던 것 같다. 책에 나온 부분이 거의 빠지지 않고 다 나왔다. 


영화 '소수의견'이 정말 좋았던건 내게 변호사가 주인공인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혔기 때문인데, 책으로 읽으면 법정물에 더 가깝다. 영화의 마지막 법정씬이 좀 오버스러웠던 점이 유일하게 거슬린 점이었는데, 책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다 좋았어서 영화는 이 점이 좋았고, 책은 이 점이 좋았다. 는 정도의 비교만 계속 된다. 


내용을 다 알고 읽는데도 정말 재미있게 밤을 꼴딱 새며 읽었다. 영화는 원작에 굉장히 충실해서 재미있는 부분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다 담았고, 책에서는 윤변의 과거와 배경에 대해,그리고 변호사로서의 고민에 대해 더 디테일하게 나와 있어 좋았다. 


'소수의견'이라는 것이 단순히 소수의 의견이 아니라 전문용어인건가 하고 찾아보지 못했는데, 법정용어로 맨앞에 썼듯이 '다수 법관에 반하는 법관의 의견' 이다. 그러고보니 간간히 뉴스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철거현장에서 아이가 죽었고, 아이의 아빠가 경찰을 죽였다. 아이 아빠, 박재호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 윤변호사는 박재호의 아들 박신우를 죽인 것이 철거용역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학벌도 인맥도 없고 집도 가난하고 의욕도 없는 평범한(?) 국선변호사에게 떨어진 사건 중에 하나였던 그는 사건을 맡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알게 되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에서 '정당방위'로,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함께 진행하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보통 국선변호인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왜 국선변호인을 그만두지 못하는가. 국가가 나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내가 국선변호인인 한 국가는 나에게 돈을 준다. 그건 의지와 생계 사이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런 기로에 봉착하면 양자택일을 하는 대신, 그냥 현재를 택한다. 나머지 문제는 미래라는 관성에 내맡긴 채 삶을 굴려 내보내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곧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사람들은 그런 때를 맞는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평범한 직업은 아니지만, 그들 세계에서 윤변호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우연히 맡게 된 사건, 그리고 그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 그는 인생 사건이 될 박재호 사건을 맡아 이름을 알리게 된다. 평범한 누군가도 언제든지 이렇게 시험에 들 수 있다. 그럴 때의 선택이 항상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울 수 없지만, 계속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자만하더라도 반성할 줄 알고, 인생에 큰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계속 밟히는건 거부하는 그런 '작은 인간' 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윤계상이 윤변 그 자체인듯 너무나 잘 표현해주었고, 책에서 그 디테일을 채울 수 있었다. 


"만약, 만약에 내가 국선전담변호사를 그만둔다면." 

대석은 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 넌 국가소송이 끝나기 전에 굶어죽어. 이기지도 못할 재판과 정의에 대한 알량한 환상 때문에. 넌 평범한 민사소송을 해본 전력도 없잖아." 


나도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다.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삶의 국면마다 비슷한 질문들이 있었다. 법대를 졸업하는 날부터,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국선변호인이 된 지금까지. 기척 없이뿌려진 무수히 많은 질문들. 기억은 시간 속으로 제각기 흩어졌지만 질문들의 몸통은 결국 하나였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 




"올리버 홈즈 전 미국 연방대법관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 사람은 재직기간 동안 연방대법원 자료실에 파격적인 소수의견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놨습니다. 한때는 그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자 그가 내놓은 소수의견들의 대부분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주류적 입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형사 법정에서도 모자라 이제 민사 법정에서까지 검사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누군가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투견처럼 용맹한 검사 군단으로 우리의 목을 물어 뜯어버리겠다는 의지를. 그들은 두려워하길 바랐겠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사실 쾌감에 가까웠다. 이 나라 모든 검사의 적이 된다 한들,우리는 여전히 단 한 사람의 변호사일 뿐이다. 낭만적이었다.

서랍 안에는 별게 없다. 통장은 하나다. 거래내역도 잔고도 짧다. 숫자는 일곱 자리다. 642만 7847, 당연히 달라는 아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죽도록 세상을 달린 결과가 그거였다. 세상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종종 커다란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나는 세상을 향해 투덜걸지 않는다. 다행히 변호사가 됐기 때문이다.

청구금액이 11억 원이라면 소송인세 비용만 해도 상당했을 것이다. 원고들은 재개발이 필요한 낙후지역의 부동산 소유자들이었으니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터다. 나는 적어도 이들이 가진 피해의식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단지 한 세기 전의 사고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지지정당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 자기 아들이, 또 자기 손자가 희생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세계의 실제 모습을 회의해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 사람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피해자였다.

세상의 주어진 하루마다 많은 생물들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상들이, 많은 문화들이 도태된다. 그것은 멸종이고 멸종은 적자생존의 법이다. 연민은 자연의 법을 거스르는 허위인가. 나는 진화론자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연민은 왜 진화했는가. 그렇다면 연민은 왜 도태되지 않았는가.

나는 걸어나갔다. 4번 배심원이 남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다. 저 개새끼. 법정을 나설 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으스대는 얼굴. 이 법정에서 자신만이 정의롭고, 자신만이 솔직하고, 자신만이 실천주의자라고 공표하는 확신에 찬 얼굴.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역사를 통틀어 그래 왔다.

우리는 개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역사를 사는 것이다.

노무현 (前 대한민국 대통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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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5-08-1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계상의 연기에 대해 말들이 오고 가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윤계상 연기 좋아요. 80%만 힘 준 연기.
슈트 뒤로 슬쩍 내비치는 쓸쓸함..또는 처연함 같은 아우라도 좋고 90년대 일본 드라마 주인공 같은
길게 기른 뒷머리 스타일도 좋고...ㅎ 기대없이 본 영화인데 아주 좋았습니다. 묻히기 아까운 영화.
(연기의 밀도로 치면 권해효 아저씨..톤 좋더군요)

하이드 2015-08-11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완전 너무 좋아요. 제가 최고 좋아하는 탐정들 다 가져다 붙이고 싶을만큼요. 뭔가 연기안하는듯, 드라이하고, 무표정하고, 드럽게 피곤해보이는거. 진짜 잘하더라구요.

푸른희망 2015-08-1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속 윤계상이 딱이다 싶었어요 그가 아니면 누가 할까~~ 후줄근한 수트도 피곤과 갈등에 쩐 어정쩡ㅎᆢㄴ 표정도 좋았네요 약간의 사심도 함께^^;;
요즘 책을 빌려읽는 .중인데 이 책도 끌리네요 확 사버릴까요?
 
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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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핑크색 표지에 청박이다. 표지 그림은 사노 요코의 일러스트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핑크+블루라니 예사롭지 않은 색감의 책은 흔한듯 예사롭지 않은 작가의 노년생활 일기다. 


빵이 떨어져 커피숍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다른 할머니들을 보고 생각한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잘 죽어가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내 나이가 아직 삼십대에 걸쳐 있는데, 잘 죽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장수 사회에 노년으로 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결코 이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의 노화는 진즉에 시작되어 어렸을 적에는 낭만적인 병이라고 생각했던 (왜?) 안구건조증에 눈이 뻑뻑하고, 술을 진탕 마셔도 반나절이면, 해지고 또 '술로 해장하자' 고 호기롭게 외칠때도 있었는데, 하루종일 퍼질러 있어도 다음날 여전히 피곤한 몸이 되어 버렸다. 


몸도 마음도 한계 이상으로 과하게 써대며 관리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을 외면하며 내키는대로 살아버렸던 것 같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맞이하는 사노 요코의 세대에는 롤모델이 없었지만, 사노 요코는 내게는 훌륭한 롤모델이다. 이 책에 나오는 것만 봐도 치매를 걱정하고, 유방암으로 수술을 했으며 우울증이 있다. 


장갑 한짝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을때에 장갑을 사던 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고, '내일은 장갑을 사러 가야겠다' 고 생각한다.그리고 '치매에는 돈이 든다' 고 덧붙인다 


이런 부분들.유방암도, 치매도, 우울증도. 노년에 찾아오는 '병'들에 대해 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에 관조적일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일일텐데, 읽으면서는 키득거리며 읽게 된다.웃기라고 쓴 글이니 웃지만, 남일에도 웃다가 웃음이 싹 가시는 일인데, 내 일이 되었을때 이렇게 농담거리로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은거다. 


요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나는 평생 요리가 취미였던 적이 없고, 이번 생에는 요리는 포기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급사하지 않는한 살아온 날보다 분명 살 날이 많으니 그런 입빠른 소리도 하지 않을 일이다. 올해 처음으로 '콩국물'의 맛을 알아 일일 일콩국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튼, 요리가 취미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익숙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될테지만 말이다. 


그녀가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지내는 모습은 잘 상상되지 않는데, 이혼을 두번했다. 아들이 하나 있다. 노년이고 치매를 걱정하고 유방암 수술을 했고, 우울증까지 있지만,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의뢰 받으면 그일이 무엇이든 간에 아, 싫다.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살질 못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마감 직전 혹은 마감 넘어서까지 양심의 가책과 싸워가며 버틴다. 그 전에는 아무리 한가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는 내내 위장이 뒤집힐듯 배배 꼬여서 이따금씩 위산이 역류하기도 한다. 몇십 년을 매일같이, 공휴일 명절 할 것 없이 뒤틀리는 위장의 재촉을 받으며 내 인생은 끝나리라. (...) 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필요할 때는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 없다. 필요한 건 에너지다. 운전을 하면서 일보다는 절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을 한다는 것이 더 건강하고 활력있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젊으나 늙으나 마찬가지인데.단, '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 말이다. 한국에 태어난 우린 모두 틀렸어..


이 책에서, 그러니깐 사노 요코의 노년 일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요리'와 '먹기' 이다. 그리고, '한류' 

한류 이야기는 예상도 못했는데, 꽤 재미있다. 한류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낯익은 드라마 제목 설명하는거 보는데, 어찌나 낯익으면서도 낯설던지.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덕질'을 한다는거 말이다. 사노 요코의 경우에는 '한류'였다. 

요즘 들어 더 느끼는데, '덕질'이 최고로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다. 


결혼 생각 없다고 하면, '나이 들면 외로워' 라고 하는데, 엄마한테는 '그럼 나이 들어 아빠 같은 남편하고 나같은 새끼 있으면 안 외롭고 좋아?' 라고 하면 엄마 말문 막힘. 


나이 들어 중요한건 건강과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보통 더 들어가는게 '친구'. 여기에 하나 더 넣어서 '좋은 취미'보다 좀 더 열심히 하는 '덕질' 인 것이 아닌가. 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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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0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질에 다섯표요~ ㅎㅎ

하이드 2015-08-06 01:41   좋아요 0 | URL
엊그제 `미션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을 봤는데, 지금까지중 가장 재미있더라구요. 책도 영화도 나이들수록 무뎌질것 같은데, 왜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걸까?? 자문하고 있어요. ㅎ

숲노래 2015-08-06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번역된 <나의 엄마 시즈코상>을 읽어 보면, 어머니와 딸(사노 요코)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아주 낱낱이 적었습니다. 사노 요코 님네 형제들이 하나같이 `어머니를 미워할` 수밖에 없기도 하겠구나 싶으면서도 여러모로 짠한 이야기가 많아요.

사노 요코 님이 빚은 <백만 번 산 고양이>라든지 <아빠가 좋아>라든지 <산타클로스 할머니>라든지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라든지 <세상에 태어난 아이> 같은 그림책은 모두, 이분이 어릴 적에 보낸 숱한 삶이 바탕이 되었구나 하고 이분 산문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느끼곤 했습니다.

저도 요새 이 책을 읽는데, 애틋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참으로 사랑스럽더군요.

하이드 2015-08-06 01:39   좋아요 0 | URL
저는 `아저씨 우산`만 읽어봤어요.

치매에 걸린 엄마와의 에피소드들도 나오는데, 여러 사정이 있군요. `나의 엄마 시즈코상`도 읽어봐야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15-08-0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삶의 에너지가 전반적으로 낮아져서 덕질 수위도 낮아져버렸습니다.. 저는 튼튼한 이와 같이 먹을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점점 `편하게` 같이 먹을 사람이 줄어드네요. 아마도 관계를 잘 유지할 에너지 마저 줄어들어서 그런건지. 사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우리나라에 태어난 저는 사노 요코씨처럼 되긴 글렀을까요?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탐아저씨 저도 어서 만나러 가야겠어요 ♡.♡
 
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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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를 좋아하던 사람이 2편인 '시크릿 에이전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한다고 해도 이해간다. 

이 작가의 책은 읽는게 너무 괴롭다. 근데, 막판되면, 모든 갈등을 어떻게든 다 풀어 버려서 찜찜한 부분을 남기지 않고,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엄청나게 높여 버리는 것이다. 


오랜만에 차일드 44를 다시 읽고, 이번에는 2편,3편까지 있다고 생각하고 읽으니 마지막에 예사롭지 않은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라리사와의 관계 및 레오의 각성, 새로운 살인전문 전담반 개설, 조야와 엘레나 입양 등


차일드 44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1편의 이야기들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풀어나간다. 

시작부터 긴장감 넘치게 레오의 젊은 시절, 스파이로 교회에 침투해서 배신하는 장면이다. 1편에서 주인공인 레오에 감정이입하며 읽어나갔다면 2편은 시작부터 무참하게 박살내는 거다. 


그러고보니, 차일드 44 시리즈에는 착한놈이 없다. 레오가 주인공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일에 회의하고, 반성하지만, 어쩔 수 없는 존재. 하긴, 그 시절에 착한놈은 다 죽고 없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오 주변 인물들도 죄다 선악을 품고 있다. 더 나쁜 놈이 있고, 덜 나쁜 놈이 있지만, 대부분은 수용소장처럼 약한 사람일 수도 있겠고. 그래서 스탈린이 죽은 후에 후루쇼프라 스탈린의 범죄를 인정하는 비밀 아닌 비밀연설문을 작성하자 대혼란이 온 것이다.


그런 혼란이 스탈린 시절보다 더욱 격동적으로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레오는 근래 읽은 그 어떤 소설 속의 주인공보다 더 개고생이다. (내가 읽는 소설이 주로 미스터리/스릴러임을 감안할때 정말..) 언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죽을 고비들을 넘기며 '조야'를 찾기 위해 자신의 젊은날의 행위를 보상하고 그 당시 배신했던 사람을 구해내기 위해 죄수인척 수용소로 잠입하게 된다. 


역시.. 읽을 때는 정말 짜증나는데, 읽고 나면 다 꼭 필요했던 장면들이었나 싶다. 그래서 또 나는 3편을 읽으러 가겠지. 

주인공인 레오 외의 캐릭터들이 대단히 인상 깊다. 라리사는 물론이고, 조야와 엘레나. (조야는 이번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티무르(1편부터 2편까지 나오는 인물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로운 캐릭터이지 않을까.) 프레이라, 말리샤, 그리고,파닌은 물론이고, 빵집주인, 통역사도 그 비중에 비해 진한 여운을 남긴다. 


무려 톰 하디랑 누미 라파스가 부부로 레오랑 라리사로 나오는데, 영화가 망작이란 것이 아쉬워 죽겠다. 잘 빠졌으면 2편,3편까지 쭉쭉 기대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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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8-0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오와 라리사는 원작에서 절세의 미남미녀로 묘사되는데..캐스팅에 좀 놀란 일인 (속물-_-;)
 
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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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다. 톰 하디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억양들이 개판이고, 영화에서 라이사를 지워버렸고, 바슬리가 아름다웠다는 것도 들었다. 기대했던 영화였지만 보지 않기로 했다. 


차일드 44가 이번에 시리즈로 3권 나오기 전의 판본 전의 판본을 읽었으니 읽은지 꽤 오래 되었고, 그 이후로 읽었던, 비교적 최근의 '얼음속의 소녀들'이 떠오른다. 비슷한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 다른 주제다. 


차일드44의 '44'는 처음 발견하게 되는 소련 전역에 걸쳐 '살해'당한 아이들의 숫자이다. 

이것이 실화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실제도 책에서도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난다) 시간대가 다른 것은 이번에 처음 인지했다. 실제 사건이 일어난건 70-90년대이고, 소설은 30년대에서 시작해 5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대를 냉전시대 엄혹했던 스탈린 시대로 옮기면서. 그리고 스탈린이 죽으면서 또 다른 전개를 보인다는 점에서 정말 기발하다. (이렇게 꼬는 작가 엄청 좋아한다.) 


잊고 있었던건,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얼마나 불편했던가. 하는거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장까지 읽었을때, 꼭 인과응보여서가 아니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로 남았다는 거. 나는 하나 싫은점이 있으면, 다 싫어하는 경향이 강한데, 예외적인 경우다. 그만큼 좋은(?) , 이야기가 풍부한 미스터리라는 것이겠지.


그리고, 라이사를 지워버렸다고 했을때, 책 속에서 라이사가 얼마나 큰 비중이었는지 잊고 있었는데, 라이사 같은 잘 만들어진 여성캐릭터를 지워버리다니, 영화가 나빴네. 


이전에 차일드44를 읽었을때에는 '아동살해'에 대한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이래서 리뷰를 꼭 써두어야 한다. 다시 읽으니 기근에서 시작되는 인간성 말살, 그리고, 냉전시대의 비인간적인 상황, 고문 등의 이야기가 너무나 답답하고 무서웠다. 


이야기의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숨은 스토리라고 해야 하나 했던 부분은 반전(?)이라는 부분을 빼고는 전체적인 스토리 중 사소하지만(?)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반영되었다고 하는 '얼음속의 소녀들'을 읽고 나니,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애증이 느껴져서 좋았다. 


차일드44 2부작,3부작은 첫 시리즈인 이 책에 비해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레오'에 대한 애착도가 올라갔으므로 나는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이미 읽은 톰 롭 스미스의 책 두 권이( 그 중에 한 권은 두 번 읽었는데도) 재미있었으니 당연히 기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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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15-07-2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영화하기 좋은 소설도 없는데 영화는... ㅠㅠ

하이드 2015-07-28 20:44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면.. 나는 영화를 많이 안 봐서 그렇기도 하지만, 시대상을 책처럼 잘 드러낼 수 있는 영화가 뭐가 있나 싶어. 나는 주로 시대상이 잘 드러나는 미스터리에 환장하니깐(->차일드 44도 그렇고, 얼마전 13.67도 그렇고) 책만큼 실감나고 깊이있게 담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