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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평점 :
연핑크색 표지에 청박이다. 표지 그림은 사노 요코의 일러스트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핑크+블루라니 예사롭지 않은 색감의 책은 흔한듯 예사롭지 않은 작가의 노년생활 일기다.
빵이 떨어져 커피숍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다른 할머니들을 보고 생각한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잘 죽어가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내 나이가 아직 삼십대에 걸쳐 있는데, 잘 죽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장수 사회에 노년으로 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결코 이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의 노화는 진즉에 시작되어 어렸을 적에는 낭만적인 병이라고 생각했던 (왜?) 안구건조증에 눈이 뻑뻑하고, 술을 진탕 마셔도 반나절이면, 해지고 또 '술로 해장하자' 고 호기롭게 외칠때도 있었는데, 하루종일 퍼질러 있어도 다음날 여전히 피곤한 몸이 되어 버렸다.
몸도 마음도 한계 이상으로 과하게 써대며 관리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을 외면하며 내키는대로 살아버렸던 것 같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맞이하는 사노 요코의 세대에는 롤모델이 없었지만, 사노 요코는 내게는 훌륭한 롤모델이다. 이 책에 나오는 것만 봐도 치매를 걱정하고, 유방암으로 수술을 했으며 우울증이 있다.
장갑 한짝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을때에 장갑을 사던 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고, '내일은 장갑을 사러 가야겠다' 고 생각한다.그리고 '치매에는 돈이 든다' 고 덧붙인다
이런 부분들.유방암도, 치매도, 우울증도. 노년에 찾아오는 '병'들에 대해 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에 관조적일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일일텐데, 읽으면서는 키득거리며 읽게 된다.웃기라고 쓴 글이니 웃지만, 남일에도 웃다가 웃음이 싹 가시는 일인데, 내 일이 되었을때 이렇게 농담거리로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은거다.
요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나는 평생 요리가 취미였던 적이 없고, 이번 생에는 요리는 포기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급사하지 않는한 살아온 날보다 분명 살 날이 많으니 그런 입빠른 소리도 하지 않을 일이다. 올해 처음으로 '콩국물'의 맛을 알아 일일 일콩국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튼, 요리가 취미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익숙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될테지만 말이다.
그녀가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지내는 모습은 잘 상상되지 않는데, 이혼을 두번했다. 아들이 하나 있다. 노년이고 치매를 걱정하고 유방암 수술을 했고, 우울증까지 있지만,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의뢰 받으면 그일이 무엇이든 간에 아, 싫다.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살질 못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마감 직전 혹은 마감 넘어서까지 양심의 가책과 싸워가며 버틴다. 그 전에는 아무리 한가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는 내내 위장이 뒤집힐듯 배배 꼬여서 이따금씩 위산이 역류하기도 한다. 몇십 년을 매일같이, 공휴일 명절 할 것 없이 뒤틀리는 위장의 재촉을 받으며 내 인생은 끝나리라. (...) 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필요할 때는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 없다. 필요한 건 에너지다. 운전을 하면서 일보다는 절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을 한다는 것이 더 건강하고 활력있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젊으나 늙으나 마찬가지인데.단, '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 말이다. 한국에 태어난 우린 모두 틀렸어..
이 책에서, 그러니깐 사노 요코의 노년 일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요리'와 '먹기' 이다. 그리고, '한류'
한류 이야기는 예상도 못했는데, 꽤 재미있다. 한류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낯익은 드라마 제목 설명하는거 보는데, 어찌나 낯익으면서도 낯설던지.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덕질'을 한다는거 말이다. 사노 요코의 경우에는 '한류'였다.
요즘 들어 더 느끼는데, '덕질'이 최고로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다.
결혼 생각 없다고 하면, '나이 들면 외로워' 라고 하는데, 엄마한테는 '그럼 나이 들어 아빠 같은 남편하고 나같은 새끼 있으면 안 외롭고 좋아?' 라고 하면 엄마 말문 막힘.
나이 들어 중요한건 건강과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보통 더 들어가는게 '친구'. 여기에 하나 더 넣어서 '좋은 취미'보다 좀 더 열심히 하는 '덕질' 인 것이 아닌가. 라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