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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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걸스의 주인공들은 제목처럼 '샤이닝 걸스' 빛나는 소녀들.이다.

이 책은 곱씹어볼수록 맘에 드는 여자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책인데, 저자는 이런 반짝반짝 빛나는 소녀들과 그들이 매력적인 여성으로 자라 사회생활에 막 발을 디디는 모습을 상당히 공들여 묘사하고, 시간을 넘나드는 연쇄살인범 하퍼를 통해 가장 잔인하게 그들을 죽인다.

 

이보다 더 잔인한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이야기들도 많이 읽었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기가 유독 힘들었던건,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소녀들은 각각 매카시 열풍이 부는 시대에 건축가의 꿈을 가지고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공동주택의 꿈을 꾸지만,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하는 미래의 멋진 건축가이기도 하고, 전쟁에서 남편이 죽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가장 돈을 많이 주는 용접공 시험을 보고 용접공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엄마이기도 하며, 방사능 라둠을 몸에 발라 반짝이며 돈을 버는 당당한 쇼걸이기도 하다. 험한 지역으로 이사가 어려운 이들을 돌보며 사회복지사로서 사랑을 받는 소녀이기도 하고, 식물학자의 꿈을 키워 연구소에서 식물밖에 모르는 과학자가 된 그녀이기도 하다.

 

각각의 여성 캐릭터들을 잘 살렸다면, 그녀들을 살해하고 다니는 연쇄살인범 하퍼에 대한 묘사는 무미건조하다. 그는 이 세계의 '악'을 담당하는 시스템처럼 '하우스'가 바라는대로 '빛나는 여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다닌다.

노숙자였던 하퍼가 '하우스'라는 정체 모를 폐가같은 곳에 들어가 시간을 오고가는 열쇠를 손에 얻게 되고,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오가며 여자들을 죽이는데, 유일한 생존자가 있다.

 

개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커비 마즈라치. ( 이 부분은 정말 읽기 힘들어서 빨리 빨리 페이지를 넘겨야 했다.) 그녀는 신문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자신의 사건을 가시로 썼던 범죄사건 기자였다가 스포츠 기자로 밀려난 댄 벨라스케스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와 댄이 만나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댄은 정의롭고 집요한 범죄기자였지만, 경찰의 부패와 맞서다가 협박 받고, 스포츠로 밀려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작가가 캐릭터 묘사도 좋고, 문장들도 좋으며, 읽고 또 읽게 만드는 '씬'을 만드는 능력도 좋다. (주로 댄과 커비가 엮였을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퍼를 그렇게 드라이하게 표현한 것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시카고의 20년대에서 90년대까지가 나와 있는 것들도 참 좋았는데, 건축가가 나왔던 부분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나 반 데 로에가 언급되는 장면들은 '맞아, 여기,시카고지'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다. 건축의 도시. 수많은 건축가를 배출한 시카고.

댄이 야구 기자다보니 시카고컵스 얘기도 빠지지 않고, 사회복지사가 일했던 악명높던 시카고건축사업 같은 것 등의, '시카고'라는 도시 역사의 한 부분도 캐릭터와 함께 잘 녹아나고 있다.

 

댄은 커비를 좋아하게 되는데, 댄의 어수룩하고 농담따먹기 하면서 커비를 도와주는 캐릭터도 참 좋다. 하퍼를 찾아 쳐들어가기 직전의 '베트맨과 로빈' 장면도 내가 꼽는 명장면.

 

커비는 생존자다. 엄마도, 경찰도, 댄도 모두 말리지만, 끝까지 4년여에 걸쳐 모든 관련 자료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뒤지고, 찾는다. 죽었다고 오보가 날정도로 심하게 당했지만, 살아남아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진짜 멋진 캐릭터다. 그렇게 생존자인 커비가 모든 빛나는 소녀들과 함께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끝까지 맞서고, 끝을 맺는 것도 커비이다.

 

dog people 들에게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는 읽기 힘든 장면이 나온다. 그런 장면들에서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긴한데,커비를 생각하며 읽었다. 책을 읽고나서 곱씹을수록 '커비'는 훌륭하다.

 

근데, 모두가 피해야할 이 책의 한 부분은 바로 '옮긴이의 말'이다.

이런 소설에서 옮긴이는 왜 반짝이는 소녀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다니는 하퍼를  '21세기 최고로 매력적인 살인자' 라고 하는건지 궁금하다. 한장  조금 더 되는 옮긴이의 말이 온통 하퍼 얘기인걸 보면, 하퍼에 제대로 감정이입한건 알겠다.

 

리뷰에서 계속 썼듯이 이 책은 '덱스터'도 아니고 '한니발'도 아닌, '샤이닝 걸스', 반짝반짝 빛나는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어째서 소녀들 목 따고, 내장 꺼내서 전시하는 연쇄살인범을 '최고로 매력적'으로 느끼는건지. 궁금증을 유발해서 책선전 하려고 한거라면 역겨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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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5-09-24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terribleminds.com/ramble/2013/06/06/ten-questions-about-the-shining-girls-by-lauren-beukes/

와, 작가 인터뷰 찾아보니깐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위에 적은 `베트맨과 로빈`이다. 역시!

WHAT DO YOU LOVE ABOUT THE SHINING GIRLS?

The women. All of them, how they’re sharp and bright and curious and ready to set the world alight in some small way, and if they’re scared, they find a way to push through that. Especially Kirby. And I love her relationship with Dan. The love unfolding, if only she’d let it, if only she hadn’t let her whole life be derailed by her obsessive quest to find the man who did this to her.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고 시카고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다 잘 읽었어요. 작가님!

하이드 2015-09-24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장면이 댄과 만나는 장면, 그리고 댄하고 같이 차에 앉아서 베트맨 로빈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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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말 진심으로 토나온다. ` 21세기들어 가장 매력적인 살인범` 이라니. 책 잘 읽고, 옮긴이말 읽고 홀딱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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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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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개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주로 분노)가 주여서 저자에게는 쓰는 과정이 도움이 되었길 바라지만, 책에 나오듯 `남의 가족 이야기`는 재미 없다. 저자의 케이스를 통해 `가족이라는 병`을 돌아볼 수 있지만, 기대했던 분석글을 찾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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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3 1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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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3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3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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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3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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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TV 방송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이런 본질적인, 그래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종종 듣는다.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왠지 줄거리만 보아도 엄청 슬플 것 같고, 보고 나면 그만큼 우울할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안 봤었다. 이런 영화가 나온다. 이런 드라마를 했다 라는 소식들만 듣고 한번도 보지 않았다. 에세이라고 해서 가볍게 집었는데, 표지의 톤도 한몫했다. 하늘과 바다와 땅의 경계가 흐트러져 공기처럼 가벼워 보인다.

 

공기처럼 가벼운건 맞다. 내가 무겁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여백과 디테일이 있어서 가볍고, 무겁다.

책 제목처럼 '걷는 듯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큐작업을 했었고, 방송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영화를 찍게 되었다. 그 모든 작업들을 하게 되는 직업적 고민과 철학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엄청 무거운 이야기들인줄 알았는데, 희망도 절망도 아닌, 기쁨도 슬픔도 아닌, 기대도 좌절도 아닌, 복합적인 감정을 관객, 혹은 시청자에게 넘기는 작가구나 싶다.

 

나는 누군가가 죽어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등장인물과 관객의 슬픔을 부추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죽음으 편에서 더없이 소중한 삶을 그리려했고, <아무도 모른다>에서도 초대한 그 과정과 슬픔은 떼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훗날>도 돌아온 죽은 아이와 부모가 다시 헤어지는 과정을 그렸지만, 주제는 물론 슬픔이 아니다. 반대로 죽은 아이와 함께 할때만 이 부부는 '삶'을 회복하고 즐거워한다.

 

줄거리는 내가 영화소개에서 보는 그 줄거리가 맞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챕터를 통째로 옮기고 싶은 부분들이 많다. 영화나 티비는 사람들이 좋아할법한, 혹은 사람들을 자극할만한, 혹은 예전부터 해왔던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열심히 해', '열심히 해', 긍정과 인정의 미덕. 해피앤딩...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인간의 결핍을 애정하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인간이 자신의 결점을 노력으로 메우려고 하고, 그런 노력을 영화에서 미덕으로 그리고, 현실에서도 미덕으로 칭송하는데, 그러나, 과연. '인간이 혼자만의 힘으로 그런 극복을 이뤄낼 수 있을까?' 묻는다. 해낸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일일까?' 묻는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원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게 아닐까.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이부분을 처음 읽을때는 약해. 나약해. 하는 마음이었는데, 세번쯤 반복해서 읽고 나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소소한 행복을 찾아라. 뭐 그런 이야기랑은 달라. 현실은 구질구질해. 그런 이야기도 아니야.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는데, 어려움에 타인에 쉽게 의지하고, 구원을 찾는데, 그건 전적인 의존과는 또 다르고, 그건 '나약함' 이라고 불리지만, 우리가 반복해서 반복해서 학습되어온것처럼 '나약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혼자의 힘으로 극복' 하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일'인지도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전에 감독의 최근 영화를 하나 봤다. 후쿠야마 마사히로가 나오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라는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고, 영화를 떠올리며 책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지하지만, 의존은아니고, 혼자만의 힘으로 이를 악물고 노력하려다가 놓치는 것들, 결국 부러지게 되는 것. 다시 붙이고 구부러지게 만드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이다.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이지만,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이 나온다는 건 알고 있다.딱 한 편 본 영화에서도 그렇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외할머니로 나오는 기키 기린씨와의 일화에서 기키 기린이 크랭크인 전날 감독을 데리고 초밥을 먹으러 간다. 각본을 펼치고 말한다. "감독도 알겠지만... 어른 장면이 조금 많은 것 같아. 이 이야기, 어른은 배경이니까. 다들 배경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니까. 클로즈업 촬영같은 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그리고 그 한마디로 감독은 연출방향과 자세를 정한다.

 

지금까지의 리뷰가 지루했다면, 그건 그냥 내탓이고, 글은 상당히 재미있다. 어떤 글을 써도 재미있게 쓰는 저자 부류에 넣어도 좋을만큼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위의 일화는 '배우'편에 나온다. 감독이 접해왔던 배우들에 대한 에피소드들만 묶어 놓았는데, 오다기리 조나 아베 히로시 정도를 빼고는 아마도 낯익은 할머니역 배우,할아버지역 배우, 혹은 이름 모를 아이들 이야기일테지만, 잠깐 나오던, 주인공으로 계속 나오던간에 그들 각각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서도 와닿는다.

 

'품성보다는 분노,라는 박력'에서는 참석했던 칸느 영화제 이야기를 하는데, 글의 전개와 결론이 너무나 훌륭하다. 글을 보는 내내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글을 못 봤을까 생각하게 된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저자의 성격상 직설적인 '분노'와 그에 직접적인 야유와 비웃음으로 반응하는 관객이 거북하다. ,<아무도 모른다> 를 찍고  "당신은 영화의 등장인물을 도덕적으로 심판하지 않는다. 아이를버린 어머니도 단죄하지  않는다."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받는다고 한다. "영화는 남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감독은 신도 판사도 아니다. 악인을 설정하는 것으로 이야기(세계)는 알기 쉬워질지 모르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에까지 끌고 들어가도록 할 수 있지 않나 싶다"라고 대답하는 저자인 것이다.

 

예로 들어 고이즈미 총리를 공격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그 순간은 후련하다고 해도 제작자의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존재를 허용하고 지지한 이 나라의 6할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고이즈미적인 것'이 문제이고, 그 병소를 공

격하지 않고 안전지대에서 고름(고이즈미)만을찔러 짜낸대도 병세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렇게 단순한 악인이 아니고, 개인과 단체와 사회의 다양한 부분들이 엮여서 복잡성을 가지고 있는 '악'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쉬운 길, 눈에 보이는 길을 택해 '고름'을 비판하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전작인 <볼링 포 컬럼바인>에 비해 깊이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하고, 이어서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이 작품의 제작도, 세계의 현상황도, 그에게는 긴급사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순수하게 작품으로서 뛰어난가? 과연 다큐멘터리인가? 그런건 아마도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적어도 그에게는!) 무엇보다 거기에 표명된 그의 분노의 절실함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여기에 덧붙여 자신만의 해석을 해내는데, 그의 가치관과 시대에 대한 그의 일에 대한 고민과 철학과 공부가 읽혀서 대단하다 싶었다.

 

영화제가 올림픽이 아닐진대, '일본', '일본' 하면서 취재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이야기도 재미있고, 영화제의 다섯가지 평가방식 이야기, 영화의국적 이야기도 재미있다.

 

후쿠시마 원전, 동일본 대지진 이야기는 근래 내가 읽는 일본 저자 에세이에 빠지지 않고, 여기에도 나온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과 '원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에 나온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책에서 또 좋았던 부분은 '애도'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가 인연을 맺어왔던 영화계,방송계 사람들을 애도하는 글들을 모아 놓았는데, 책 쓴다고 다시 썼을리는 없고, 그 때 그 때 어딘가 발표했건, 어딘가 적어두었던, 애도 이야기들이 꽤 많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나라에서 부고에 이런 애도글들을 본 적이 있었던가.

 

다시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돌아가서.

 

개인으로서는 '일상'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진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런 내게 "잊지 마"라고 오늘 지진이 경고한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일상 같은건 이제 더는 돌아오지 않아"라고 말이다. 재해지의 부흥은 고사하고 복굳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사기꾼 같은 방식으로 원전을 재가동하려는 무리가 이미  등장했다. 원전 내구성 진단은 간이 검사로 때운다? 그런 발언은 그 지진을 경험하기 이전의 인간만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지진으로 인해 교통이 마비되어 집에 돌아가지 못해 곤란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역 구내에서 몰아낸 철도 회사에 욕을 퍼붓던 도지사는, 그에 대한 대책이나 자신의 책임을 말하기보다 도쿄 올림픽으로 힘을 보여주자고 말한다. 그의 아들은,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불안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상황을 집단 히스테리라고 부른다.

 

"빨리 잊자." 그들은 모두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4개월 전에 경험한 것은, 일본 어느 곳에 사는지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잊은 척하며 내달려온 문명을 근본부터 되묻는 사건이었다. 그 풍경을 앞에 두고,'미래'나 '안전'보다는 '경제'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경멸스럽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눈을 흐리는 큰 원인 중하나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미디어가 벌써 망각 쪽으로 방향키를 돌렸다는 사실이다. 그들 대부분도 역시 기득권층의 이익 안에서 눈이 흐려져버린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문화로 성숙된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이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치와 언론이 행할 수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치졸한 폭력이다.

 

 

길었지만,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 않아서 길게 옮겨 보았다.

 

재미있었는데, 무거운 이야기만 옮긴 것 같기도 하다. 어릴때부터 고레에다 집안은  바깥에서 사진 찍을때면 꼭 남의 집 차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던가 하는 이야기. 바닷가에서 죽은 게를 지키며 덤비던 게 이야기 같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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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09-2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레에다 감독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그의 글에서도 그의 영화애서 보여지던 그가 느껴지더군요. 이 사람 정말 진솔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하이드 2015-09-20 12:38   좋아요 0 | URL
에세이는 유독 그 사람이 드러나지요? 사람이 매력적이니 글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어요. 덕분에 의식적으로 피했던 그의 영화와 드라마를 찾아보는 중인데, 한 번 보고, 또 봐야지하는 마음 들게 하네요. 아마 억지로라도 영화나 드라마 먼저 접했다면 그러지 않았을꺼에요. 그러고보면 저는 영상인간보다는 활자인간인가봐요. ㅎㅎ

 
프래니와 주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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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니와 주이는 글래스가 일곱명 중 여섯째와 일곱째이다. 프래니와 주이는 앞쪽에 '프래니'파트 짧게, 그리고 '주이' 파트에 주이와 프래니 이야기가 길게 나와 있다.

 

샐린저가 애착을 느끼고 이야기하기 좋아한 글래스가 이야기는 '프래니와 주이' 이외에도 다른 단편집들에서 두 편 더 볼 수 있다고 하니, 아마 이미 읽었겠지만, 음..

 

신경증적인 프래니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쉽지 않고, 이어지는 주이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특히 그들 남매의 엄마인 배시와 주이의 욕실 대화에서는 주이에 엄청 감정 이입해서, 나가라고! 나가라고! 짜증 잔뜩 내면서 읽었다 .

 

이 이야기 먼저 해야지. '프래니와 주이' 하면 나는 주이 드샤넬이란 배우가 먼저 떠오른다. '프래니와 주이'를 좋아한 부모가 주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근데 왜 여자인 프래니가 아니라 남자인 주이 이름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주이인데, 주이 드샤넬 혼자만 자기 조이라고 불러달라고, 자기 이름은 조이라고 읽는거라고 한다고 했던 거. 자존감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우기는데, 그게 본인 이름이니깐 또 뭐라고 하기도 그런 애매하지만, 왠지 주이 드샤넬 멋짐 포인트.

 

사실 엄청 마르고 왜소한 느낌의 엄청 잘생긴 주이의 첫 묘사에서부터 계속 벤 휘쇼를 떠올렸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벤 휘쇼와 주이 드샤넬이 자연스레 주이와 프래니로 상상되며 독서.

 

미리 알려드리자면, 주이에게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콤플렉스, 중첩,분열이며, 그러므로 바로 이 지점에서 신상 보고서 형식의 단락이 적어도 두 개 정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는 자그마한 젊은이로 몸이극도로 여위었다. 뒤에서 보면 - 특히 척추뼈가 드러난 부위를 보면 - 그는 거의,살을 찌우고 햇볕을 쪼라고 매년 여름 재단 주최 캠프들에 보내지는 도시 지역 저소득층 아동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클로즈업을 해서 보면, 정면이든 측면이든 그의 얼굴은 빼어나게, 심지어 굉장하다 싶을 정도로 잘생겼다. 그의 큰누나는(겸손하게도 그녀는 여기에서는 그저 터커호의가정주부로 불리길 원한다) 내게 그를 "몬테카를로의 룰렛 테이블에서 당신 품에 안겨 죽은 푸른 눈의 유태계 아일랜드인 모히칸 척후병"처럼 생겼다고 묘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연기자인 주이, 대학생인 프래니.

주이는 욕실에서 이미 몇 번이나 읽었던 형인 '버디'의 편지를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읽는다.

이들 남매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둘은 시모어와 버드인데 시모어는 자살, 버드는 월든의 소로우처럼 은둔.

버디의 편지에서 버디가 주이에게 말한다.

 

이쯤 하자. 연기를 해라. 재커리 마틴 글래스, 언제든 어디서든 네가 원하는 대로. 넌 네가 그일을꼭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전력을 다해서 해라. 네가 무대에서 뭔가 아름다운 것을 한다면, 이름 없는 무엇이나 기쁨을 만드는 일을한다면, 연극적 재간의 요청을 뛰어넘는 무엇을 한다면, S와 나,우리 둘은 턱시도와 인조 보석이 달린 모자를 빌리고 금어초 꽃다발을 들고서 엄숙하게 극장 뒷문으로 갈 것이다. 아무튼, 도움이 거의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떨어져 있더라도 나의 애정과 지원을 믿어주기 바란다.

 

이들 형제자매들을 이루는 이미지가 또 있다. '지혜로운 아이들'이라는 유명한 쇼가 있었는데, 그 쇼에 이들 형제자매가 다 출연하는 기록. 이십여년동안 그들 중 하나가 안 나온 쇼가 없었다는 기록. 외부의 주목을 받은 잘생기고 예쁘며 영재처럼 똑똑한 형제자매들인 것이다.

 

 

프래니와 주이는 자신들이 주변을 불행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신들도 불행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고뇌한다.

 

"그애는 아직 대학 졸업도 안 한 어린아이다. 게다가 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곤 하지."

 

"넌 마음에 들어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하나다. 마음에 들면 혼자 계속 얘기를 하고그러면 아무도 단 한마디도 끼어들 수 없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 마치 죽음 그자체처럼 앉아서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파게 하지."

 

"너는 늘 그런 식이다."

"너도 그렇고 버디도 그렇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모르지."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가 맞겠구나."

 

주이는 글래스 부인에게, 그리고 언젠가 프래니에게 말한다.

 

"우린 괴물이에요. 우리 둘, 프래니와 나." 그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스물다섯 살 괴물이고 프래니는 스무 살 괴물. 그리고 이건 그 두 인간 책임이에요."

 

프래니와 레인

 

주이와 배시

주이와 프래니

프래니와 버디(주이)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된다.

예술과 종교와 타인과 에고에 대한 남매의 고민.에 쉽게 공감되지는 않지만, 그 것이 어떤 장면일지는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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