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리얼리스트 X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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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시작한지 10년임을 기념하는 사토리얼리스트 X'

라는 첫문장을 보고 책을 다시 덮었다. 내가 맨날 알라딘 서재 십년을 입에 달고 다녔는데, 가끔 좋은글, 대부분 잡글로 버무리되고, 뭔가 하나 정리된 것이 없이, 온갖 책들이 점령한 내 방 꼬락서니마냥 갈 곳 잃은 이야기들을 쑤셔 넣었을 뿐인데 말이다.

 

어떤 주제로든 모았으면, 집중했으면, 10년동안 강산도 변하고, 뭔가 이거다 싶은 것도 있었을텐데, 지금은..

 

다시 책으로 돌아와 찬찬히 그 옛날 '사토리얼리스트'를 처음 봤을때를 떠올리며 책을 봤다. 예나 지금이나 글이 많은 책은 아니므로 사진을 찬찬히 보고, 포스트잇 붙이며 다시 보고, 포스트잇 떼며 또 한 번 봤다.

 

일단 좀 실망이다. 블로그 십년이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책이 나온건 5년이다.

이전의 리뷰를 봤다. http://blog.aladin.co.kr/misshide/3831380  이전 책을 보고 다시 보니, 역시 이전 책이 지금봐도 좋다 싶다.

 

일단 책 만듦새가 별로다. 떡제본 풀이 다 보이고, 책이 잘 펼쳐지지 않거나 펴면 짜개질 것 같은 불안불안한 만듦새에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종이다. 사진집인데 종이가 맘에 안 들면 일단 그건 그냥 글책보다 크다. 이번 책의 원서를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사토리얼리스트' 는 원서에 비해 번역본도 훌륭한 퀄이였다. (개정판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가 샀던 구판은 좋았다)

 

예전에는 포스트잇 빼곡했는데, 이번에는 별로 맘에 와닿는 사진도 없었다.

사토리얼리스트가 변하고, 내가 변하고, 찍히는 사람들이 변했겠지.

사진은 그렇다치고, 글은 확실히 눈에 들어오는 글이 없다. 이것도 크다. 왜냐하면, 잘 쓰는 글은 아니라도 뭔가 저자의 철학 같은 것이 들어와 얼마 안 되는 글이 좋았던 것이 플러스 알파였는데, 이번엔 그도 아니니 말이다. 이 경우에 '변함없음'은 퇴보일지도 모르겠다. 재탕의 느낌에 창작자로서 더 이상 보여줄 것도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 부분에서는 내 자신도 돌아본다. 창작자가 아니라도 십년 전에 비해 나는 얼마만큼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를 생각해볼법하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 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어제'가 쌓이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어제들'의 나보다 '지금'의 나가 낫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지난번 리뷰보다 이번 사진이 구린건, 카메라가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짜개질까봐, 그리고 종이질이 다 반사반사 시키는거라 그렇다.

 

 

맘에 드는 사진들을 추려 보았다.

보면서 흠.. 이 남자분 쿨톤. 이라고 절로 생각이 들만크 하늘색 수트 정장이 제 피부인냥 잘 어울린다.

 

 

글을 읽으며, 사진을 보며 뭐가 다른건지 못 찾았다. 사진을 처음 봤을때도 인상적인 사진이었는데, 다른점을 찾고 난 후에도 당연히 가장 인상적인 사진들 중 하나다.

 

가장  맘에 들었던 사진이다. 여자가 손에 든건 아이폰과 립스틱이다.

배경의 그린도 여자의 아름다운 피부톤과 새까만 올린머리, 뉴트롤톤의 드레스에 계단에 앉은 포즈까지 너무 아름답다.

 

 

이번의 베스트컷 남자 부분은 위의 하늘색 수트와  이 분. 자유롭고 활동적으로 보이고, 조끼와 에코백이 특히 멋진데,

그 아이템들이 없어도 멋질 것 같다는 점이 더 멋지다.

 

 파리지안같은 차림새도 맘에 들지만, 그 뒤에 지나가는 여자분까지 포착되어 사진으로는 가장 맘에 드는 사진.

앞에 모델이 된 여자의 모습도 좋다.

 

 

이 모습도 좋아한다. 다만 신발. 건강에 안 좋고, 불편할 것 같고, 차림에도 그닥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뭐 이 정도.

 

스콧 슈만이 '사토리얼리스트' 블로그로 유명해지고, 책을 내고 나서 비슷한류의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사토리얼리스트만의 스타일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해진 선구자격이 된만큼 , 좀 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기를 바라게 된다. 최초에 최고이고, 시간이 흐르고, 그 흐르는 시간, 멈춘 시간까지 잡아내는 그의 작업 특성상, 뭔가 더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돌이켜보니 글도 별로였지만, 편집이 더 별로였던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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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15-10-07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그런대로 만족해서 팔았던 사토리얼리스트 두권도 다시 샀어 ㅎㅎ
1권부터 조금씩 나이든 모델들을 보니 아는 사람이 나이든 거 같은 기분도 들고 그렇더라.
이번 3권에서는 나이든 사람의 패션에 집중하면서 본 거 같아.

하이드 2015-10-07 22:52   좋아요 0 | URL
니 트윗보고 생각나서 샀는데 ㅎㅎ 1권에서 나이든 사람 패션 인상적이었는데, 그뒤에 비슷한 책 많이 나오고 노년 스타일 책도 한 번 사봤는데 별로였고, 뭐 그랬당
 
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나무연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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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저자의 이전 책들을 읽었던 것이. 그것이 어떤 주제이건,얼마나 시간이 지났건, 한 권의 책같다는 느낌이다. 늘 그렇게 계속 책을 내주셨으면. 좋은책들 많이 소개받고, 역시, `나만의 고전`을 서재에 채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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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 - 상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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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시리즈라고 하는데, 악녀 이전에 주인공이 쌍놈이지 않은가.

등장인물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매력도 어떤 미덕도 찾아볼 수 없는데, 주인공인 도야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내내 돈 많은 여자 속여서 결혼하려고 강간 시도하는 스토커 성폭행범 논리를 전개하는지라 짜증난다. 보는 내내 거부하고 있지만 사실은 좋아하고 있어. 한번 자빠트리면 넘어올꺼야. 스토커질하면 결국은 다 넘어오게 되있어. 라는걸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구구절절 이야기하다보니, 이 놈이 나쁜놈이라는 걸 아는 것과는 별개로 (악녀  시리즈라며) 기분 나쁘다.

 

남편을 죽이고 싶어하며 도야가 준 독약으로 남편을 조금씩 죽이고 있다는 환상에 성적으로 흥분하는 여자 다쓰코.

도야 아버지의 첩이었다가 도야의 첩이 되고, 도야만을 바라보며 도야를 위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수간호사 도요.

 

이들을 악녀로 만드는건 병원장인 도야다. 그 외에 도야가 돈 때문에 자는 고급 부티크 실세 지세라던가,

도야가 홀려서 결국 그 자신을 끝까지 몰고가게 된 다카코가 딱히 악녀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네여자중 누군가를 '악녀'로 만들어 '악녀' 시리즈라고 하기에는 '악놈'이 있잖아.

 

아버지는 이름난 의사이자 병원장이었으나 의사로서의 실력도 모럴도 없는 도야는 그 명예만을 즐기며 일은 하지 않고, 돈 많은 여자들을 물색해 돈 뜯어내며 병원의 적자를 근근히 메우는 생활을 하다가, 돈도 많고, 매력 있는 여자(다카코)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올인하기로 하며 스토커질과 성추행을 하며 가까이(?) 다가가다 급기야 친구 변호사를 통해 청혼하기에 이르는데(전부인 위자료 주기 싫어서 이혼도 하지 않은채. 이 전부인의 위자료는 또 다른 만나는 여자,지세에게 삥뜯을 생각. 이전에 삥 뜯었지만, 딴 여자 만나는데 다 써버리고) , 긴자의 고급 패션샵 사장인 다카코정도 되는 여자와 결혼하려면 적어도 다카코 재산의 반 정도는 보여줘야 돈 때문에 결혼한다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변호사 친구의 조언, 다카코가 허술하지 않게 도야의 신변을 확인하자 무일푼에 여자들 삥이나 뜯고 적자투성이 병원을 안고 있는 도야는 '돈'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를 하기 시작한다.

 

원래도 나빴지만, 더 나빠지는 도야.에게 당한 여자들의 복수가 시작된다.

 

책 보는 내내 기분 별로였는데, 딱 하나 이부분 좀 웃겼다. 이런 천하의 나쁜놈을 괴롭히는게, 기차로 뺑이치게 하는거냐며. 일본에서의 기차란.. 싶었다.

 

연재물인지 모르고 읽었는데, 읽다보면 연재물이라는 것이 딱 보인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설명해준다거나 (요새 일본소설의 연재물, 미야베 미유키 등, 을 보면 연재물 티 안 나던데) 내용과 별 상관없는 이야기가 길게 설명된다거나 한다. 뒷부분에 중소병원 원장인 도야가, 일은 전혀 하지도 않고, 병원도 잘 안 나가는 도야가, 의사로서의 윤리도 바닥인 그 도야가 '의료보험'에 대해 몇 장에 걸쳐 병원 망하게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작가가 이 한심한 악인의 입을 통해 뭘 얘기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 중에 좋아하는 작품들도 분명 있었는데, '나쁜놈들'은 보지 않기를 추천한다. 나도 앞으로 '악녀 시리즈'는 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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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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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이히, 괜찮지, 나쁘지 않지. 좋아.

정도에서 '이 작은 책'을 읽고 오오,  줌파 라이히시여!!! 가 되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늘 마음 뿐이고, 올해도 지키지 못한 계획으로만 남기며 한 해, 한 해를 보내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나에게, 남에게 말하고 다니고, 이것저것 직접대기도 많이 했으며, 지치지도 않고, 새해의 계획을 세울때면 , 계획을 세우고 지키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것이 몇십번이나 반복되어, 계획을 세우는 내 자신도 민망할법도 하지만. 내가 아직 습득하지 못한 외국어를 꼭 계획에 넣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외국어를 배워본 사람, 배우고 있는 사람,배울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외국어 공부 책이 여기 있다. 그러니깐, 학교를 다닌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간 줌파 라이히의 부모님, 그녀는 부모님처럼 뱅갈어를 썼고, 집에서는 뱅갈어만을 쓰도록 강요받는다. 서툰 영어로 유치원에 다니게 되고, 영어를 완벽하게 하게 되고, 영어로 글을 써 퓰리처상까지 받게 된 그녀가 새롭게 배우게 되는 언어는 이탈리아어이다.

 

작가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배운 가족의 언어 뱅갈어, 그녀가 자라면서 그녀의 언어가 된 영어, 그리고 그녀가 어른이 되어 새로이 선택한 언어인 이탈리아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기존의 언어들을 새로이 이해하고 화합하고, 그리고 새로운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책을 냈는데, 그 과정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간 읽어왔던 줌파 라이히의 소설들 중에 설레는 로맨스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로맨스에는 계속 설레였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작가중 하나가 된 안토니오 타부키의 글로 시작한다.

 

    나는 다른 언어가 필요했다.

정감 있고 성찰이 담긴 언어를 원했다.

           

            안토니오 타부키

 

 

어떤이들은 책을 읽을때 목차를 꼭 읽으라고 목차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냥 흘리는 편이다. 이 책에서는 목차 또한 아름다워서 그냥 흘릴 수 없다.

 

'건너기' - '사전' - '번개에 맞은 것처럼' - '추방'- '대화' - '거부'- '사전을 가지고 읽기'- '단어줍기'- '일기' -'단편'- (단편) '변화' -'부서지기 쉬운 피난처'- '불가능'- '베네치아' - '불완료과거' -'털이 부승부승한 청소년' - 두 번째 추방' - '벽'- '삼각형'- '변신'-'탐색하다' - '공사 가설물' - (단편) '어스름'

 

차례의 제목들을 옮겨 적으며, 책을 다시 읽는것처럼 그 내용들이 사르르 떠오른다.

 

처음 책소개와 작가 이름을 보고, 영어권 작가가 이탈리아어 공부하고 이탈리아로 글썼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작가도 언급하지만, 러시아 작가가 완벽하게 영어로도 글을 썼던 나보코프나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베케트 등의 예를 들고, 유럽권 작가들이 번역도 많이 하고, 두 언어 이상을 하는 것이 새로운 광경도 아닌지라 줌파 라이히도 비슷한 경우인가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이탈리아를 배우는 과정' 에 있고, 그녀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열렬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었고, 이 책은 그 사랑의 첫번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으며, 상상해본 적도 없다.

 

이탈리아에서 일년 정도 살면서 이탈리아어만을 듣고, 말하고, 읽던 중에 문학 축제에 초대받고 '승자와 패자' 라는 주제에 대해 짤막한 글을 써 줄 것을 요청 받는다. 영어권 작가들과 이탈리아권 작가들이 만나는 자리이고, 영어와 이탈리아어 두 가지 언어로 글이 소개된다. 줌파 라이히는 여기서 이탈리아어로 글을 써보기로 결심하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의 충고에 따라 자신이 자신의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번역하게 되는데, 새로운 언어로 써 낸 글을 기존의 언어로 번역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을 받게 된다.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책상 위에서 서로 맞붙었지만 승자는 벌써 명백하다. 번역 글이 본래 텍스트를 잡아먹고 그 위에 올라서고 있다. 이 치열한 싸움이 축제의 테마, 내 글 자체의 주제를 예시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탈리아어를 지키고 싶다. 그래서 갓난아기처럼 이탈리아어를 품에 안았다. 품에 안고 쓰다듬고 싶다. 아기처럼 이탈리아어도 잠자고 먹고 커야 한다. 이탈리아어에 비해 영어는 다 큰 청소년, 털이 부숭부숭하고 냄새나는 청소년같다 저리 가, 난 영어에게 말하고 싶다. 네 동생을 귀찮게 하지 마, 자고 있잖아. 네 동생은 뛰어놀지 못해. 너처럼 독립적이고 아무 근심 없이 활기차게 뛰어놀 수 있는 소년이 아니라고.

 

이제 이탈리아어와 내 관계를 다른 식으로 설명해야겠다고, 새로운 은유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와 이탈리아어의 관계는 늘 낭만적인 것이었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사랑에 빠진 관계였다. 이제 나 자신을 번역하면서 나는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내 태도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연애소설'이라고 해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다 읽고 덮자마자, 내가 그 동안 직접거리기만 했던, 언어들. 가까이 가고 싶어 정말 몇십년째 매 해 다가가 문을 두드리지만, 날씨 인사 정도밖에 못하는 일본어, 사랑보다는 의무로 만나 가까워졌지만, 그 이상 깊어지지 못했던 영어, 한때는 친했지만, 소원해진지 오래인 독어,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만나는 동안 좋았고, 늘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그들 중 어느 하나라도 당장 꺼내어 이번에야말로 꼭 붙들어 내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책장에서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을 아무거나 꺼내어 단어줍기라도 해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책에는 이탈리아어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지만, 이탈리아어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십대의 마지막 생일에 맞춰 조르바를 보러 크레타 섬에 갔고, 크레타섬에서 이탈리아의 바리로 가는 지중해를 건너는 페리를 탔다. 바리 공항에서 런던으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는데, 바리에서 하루를 묶게 되었다. 공내 인생에 단 하루, 그렇게 이탈리아땅에 발을 디뎠는데, 그 때 기억나는건, 묵었던 호텔앞 광장, 그리고 공항에서 본 모델같은 이탈리아 남자, 그리고, 바리 공항의 서점이었는데, 그 서점에 있는 책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책들을 쓰다듬어보며 읽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쓰인 칼비노의 책을 한 권 사서 왔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텐데. 그 짧은 순간 아름답다 감탄만 하지 않고, 사랑에 빠졌다면, 이탈리아어도 만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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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에게 고한다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0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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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내용인지, 아니면 원작을 드라마화한건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범인에게 고한다' 이 부분을 일드에서 보고 엄청 오글거렸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에서도 책에서도 클라이막스라면 클라이막스인데, 책에서는 좋은 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부분들이 너무 좋았어서 클라이막스가 별로 클라이막스로 느껴지지 않았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고, 과거에는 두 권으로 나누어서 나왔던 책이다.  주인공 경찰의 외모는 별로 상상 안 하려고 하는 편인데, 마키시마는 좀 궁금하다.와시 사건 전의 마키시마와 와시 사건 후의 마키시카 둘 다.

 

첫문장부터 재미있겠다! 싶은 경우가 있는데, 그 느낌이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김이 새버리는 경우도 있고. 이 경우는 전자였다.

 

형사 일을 하다 보면 문득, 자신이 쫓는 범인에게 왠지 모를 공포를 느낄 때가 있다.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주인공인 마키시마도 좋지만, 주변 캐릭터 중에서 쓰다 경위가 나는 정말 좋았다.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건 아닌데, 쓰다가 나오는 모든 장면이 좋았고, 비정한 미스테리에서 보기 힘든 신선같은 형사였고, 별로 나오지 않지만, 딱 처음 나올때부터 이놈 뭔가 하겠구나 싶은 어리버리 오가와도 좋았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캐릭터들 다 등장하는 시리즈물 나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한 권으로 끝내기 너무 아깝다.

 

겐지라는 아이가 유괴된다. 경찰신고 없이 몸값을 전달하려다 막판에야 경찰에 연락하게 되고, 마키시마의 팀이 사건을 맡게 된다.

 

마키시마는 거실로 돌아가 가족에게 겐지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납치하다니 용서할 수 없군... 그런 감정을 북돋우고 사진을 돌려줬다. 그것이 작위적인 감정인지 본심인지는 스스로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저 절차의 하나로 기계적으로 한다는 인식이 없지만은 않았다.

 

이부분부터 좋았다. 대부분의 형사,경찰, 탐정 주인공들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보다 일을 우선하거나 하지만, 가족이 있는 경우, 누군가의 아들보다 자신의 가족이 소중하고, 매일같이 보는 험한 사건들에 가족들처럼 감정이입이 되기 힘들고, 감정이입해서는 안 되고 직업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마키시마는 비포 앤 애프터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다른 캐릭터가 되어 나타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조직에 잘 적응하고(위에 아부하고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로 상부의 지시를 잘 따르고), 그러면서도 건조하고, 좀 더 현실적인, 현실에 있을법한 캐릭터이다.

 

 유괴범과의 줄다리기 끝에 몸값 전달은 실패, 범인 검거도 실패하고, 아이는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다. 그 과정에서 책임을 떠맡게 된 상사 대신 마키시마는 기자회견을 하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을 해버리고 만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아이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다섯살에서 일곱살 사이의 남자 아이들이 죽는 사건이 일년여간 네 번이나 일어나게 되고, 경찰은 사건 해결의 실마리 없이 압박을 받게 된다. 새로온 출세지향주의자 소네 본부장은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검거율이 가장 높은 곳에서 수사관을 빼오는데, 6년전 겐지 사건때 실패했던 마키시마다.

 

6년여간 마키시마는 좌천되었으나 계속 형사로 일했다.

 

사건 이후의 처신이 타당했는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좌천된 시점에 일을 그만두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은 일종의 도망이었고, 연연하며 달라붙는 것 또한 나름의 각오가 필요했다. 어차피 마음속에 그 사건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자신은 그런 방식으로밖에 살아가지 못한다는 심경이었다.

 

굴욕적으로 좌천당했지만, 보기 좋게 사표를 내지도 못하고, 달라붙어 있지만, 그 역시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 말한다. 폐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패배했지만, 어쨌든 계속 직업으로 수사관으로서의 일상을 이어간다는 것.

 

육 년 전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은 변해 버렸다. 그만큼 크나큰 업보를 떠안고 말았다. 가족이 행복할수록 죄악감이 스멀스멀 고개를들었다. 그럼에도 이 행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그런 삶밖에 모를뿐더러 그러는 편이 자학적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좌천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주어진 임무에 몰두해 온 것도 그안에서 일종의 자학성을 느끼고,그것이 간신히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임무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에 잡아먹혔던 자신이 다시 텔레비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학 행위 이이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아동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특별본부로 불려온 마키시마는 살인범을 인간쓰레기라고 했다가 살인범의 편지를 받은 방송국아나운서가 이끄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공개수사를 하게 된다. 이부분이 중심 이야기. 일년이나 끌어온 사건을 티비에서 설명하고 제보를 받고, 범인을 자극해 실수를 유도한다. 는 계획이다. 너무 드라마틱해보일 수 있는데, 아무리 경찰들이 발품을 팔아 목격자 제보를 받는다고 해도 두 번 가서 못 받은 걸 세번째 받기도 하고, (그말은 두 번 가면 못 받았을),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싫어 이야기 안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꺼림칙하게 남아 기억은 잘하는 그런 목격자들을 찾기 위해.라는 등의 디테일이 잘 설정되어 있고, 마키시마가 처음에는 사람들한테 인기를 끌다가 애초 계획에 따라 '범인을 잡기 위한 것'에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갈수록 욕 먹는 부분도 드라마틱하면서도 현실적인 전개라고 생각된다.

 

조직과 미디어, 대중을 견디며, 받아들이며 자신의 일을 하고, 죄책감은 자학으로 갚아나간다. 찌질한 범인도, 내부의 적도 다 있을법한데, 오직 쓰다만이 신선처럼 중간중간 나와서 독자도 마키시마도 유가족들도 힐링해준다.

 

범죄나 희생자보다는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특별한 사명감이 필요한 직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고민은 보통 사람들의 고민과도 닿아있다.  쓰다의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나왔다면, 이 책에서는 좀 제일 허접해보이는 범인에 대한 어떤 '이해' 에까지 다다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옳고 그름의 답도 내리지못한 채 이번 일을 하고 있어."

쓰다는 딱히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마키시마를 바라봤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몰두해도 속에 품은 마음 자체가 그러하니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약한 모습을 그대로 내비치자 쓰다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섬세하시군요."

"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섬세해질 만도 해.'

"글쎄요.....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의외로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사회 속에서 다들 자신만의 결론을 찾기 마련입니다."

"달관인지..... 무책임인지....."

"양쪽 다겠죠. 뭐든 다 제 갈 길을 찾아간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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