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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평점 :
미우라 시온의 글들을 좋아한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주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사실 받은 상들이나 나온 책들이나 주류라면 주류인데, 주류가 아닌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좀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해줘서 좋다. 그렇다고 막 반하고, 좋아죽겠고 그런건 아니고, 언젠가 작가의 책들을 다 읽어야지. 정도의 마음. 그런 의미에서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은 별로긴 했지만, 계속해서 미우라 시온의 책을 읽어나갈 것이다. 오늘 정말 좋아하는 <배를 엮다> 에 대한 페이퍼를 보고 나니 <배를 엮다>도 다시 읽고 싶다.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의 주인공들은 취업전선에 뛰어든 학생들이다.
'순서'는 응모, 회의, 필기, 면접, 진로, 합격. 이렇게. 목차가. 되게 예쁘게 내지에 나와 있다.
이 책에는 작가 미우라 시온이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어 면접볼때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고 한다. K담샤와의 안 좋은 에피소드들이 나와 있어서 작가가 이후 그 출판사에서 책을 잘 안 낸다는 이야기도 나와 있다.
만화를 진지하게 좋아하고,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가나코는 미우라 시온 책들의 다른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대단한 가문의 후계자로 금수저라면 금수저인 가나코가 취업준비를 하는 모습에 그닥 감정이입이 되지 않기도 했다. 다리 패티쉬가 있는 일흔살의 서예가와 사귀고 있는 것도 바로 와닿지 않았고. 하지만, 리뷰를 쓰며 다시 돌이켜보니 내 처지도 여름방학과도 같은 처지.
출판사 합격을 기다리는 스물 몇의 주인공이 '매일이 여름방학' 이라도 '자신을 믿고 살아갈 거' 라고 말하는 가나코가 그녀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세상이 뭐라든,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에 '금수저'라는 헬조선의 용어를 들이대는 것이 좀 부끄러워졌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격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 오케이를. 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늦여름, 스물셋 같은 그런 순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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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코, 여름방학이구나"
"네. 그리고 전에 말했지만, '매일이 여름방학'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상점가 아케이드 아래에서 사이온지 씨가 웃었다.
"전에 말했지만."
장난스럽게 말을 반복하며 사이온지 씨는 말한다.
"그것도 나쁘진 않네."
사이온지 씨의 눈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자신을, 그리고 이제부터 떠나는 여정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게요."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내 입을 뚫고 나왔다.
"설령 '매일이 여름방학'이 된다 해도, 내 자신을 믿고 살아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