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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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노 후유미의 책은 최근 십이국기 시리즈를 보는 정도인데, 정말 재미있다. <시귀>는 아직 안 읽어봤고, <흑사의 섬>을 읽ㅇㅆ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교고쿠 나츠히코나 미야베 미유키를 떠올리게 하는데, 오바나라는 목수가 집을 고쳐주는 단편집이다. 오노 후유미는 <십이국기>로 유명하지만, 그 외에는 호러 작가로 알려져 있다. <흑사의 섬>도 무섭게 읽었던 기억.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도 단편들인데, 새벽에 읽으며 섬찟섬찟했다. 단편 모두 옛집이 배경이다.  부모, 또는 친척으로부터 물려 받아 옛집에 정착하게 되고, 무언가를 고치거나 고치지 않음으로써 집에 있는 무언가를 불러내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따뜻한 이야기. 라고 하기는 좀 그런데, 한을 가지고 집을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어떤 '존재'들을 인정하게 되는, 인정하게 만든다. 귀신(?)이 목말라 한다면 물을 주는 것이 어떤가. 하면서 말이다. 그 과정이 점점점점 무서워지지만, 집을 떠날 수는 없어 집을 고치게 되는데, 목수나 정원사가 집이 이상하다며 연결해주는 사람이 목수 오바나. 오바나는 집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고, 이렇게 이렇게 하자. 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 무서워하던 사람들의 마음에 오바나가 묘사하는 자연 경관과 집에 펼쳐지며 덜 무서워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는 이야기다. 기승전결.에서 결 부분에 그렇게 자연경관이 늘 펼쳐지는 것이 좀 뭐랄까, 재미를 해칠 정도의 억지스러움은 아닌데, 세일러문 주문같은 그런 기분으로 오바나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어떤 이유들이 늘 있어서 오바나가 늘 싸게 해주는 것도 재미있다.

 

다 읽어서 오바나의 세례를 받아서 이렇게 재미있게 되새기긴 하는데, 읽는 동안 기승전.까지는 정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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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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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중편소설이지만,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스기무라가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말미에서 예고했듯이, 드디어 '탐정'으로 나오고, <솔로몬의 위증>의 후지노 료코가 <솔로몬의 위증> 이후 이십년만에 변호사가 되어 등장한다.

 

도쿄 사립중학교의 재해 대비 1박2일 캠프 행사 중에 우열반으로 나뉘는 반 중 D 반의 남자 아이 한명이 무단이탈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담당교사의 부적절한 언행이 밝혀지면서 담당교사가 해고 당하게 되는데, 당시 캠프에 참가했던 D반의 쇼타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자실 시도를 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쇼타의 부모가 스기무라에게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줄 것을 의뢰한다. 해고당한 교사는 학생들의 주장을 부인하며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그 변호사가 후지노 료코로 스기무라가 사건 조사를 위해 연락하게 되어 함께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솔로몬의 위증>과 같이 읽었으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후지노 료코의 20년후 모습이 20년 전 중3때의 모습보다 더 감정적인 모습만 나온 것 같아서 좀 아쉽다. 사건을 끌어나가는건 스기무라이고,스기무라는 기대했던대로 탐정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출판사 편집장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스기무라의 소시민적인 모습의 어두움이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 나왔었고, 그 이후에 스기무라가 가진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떠나 탐정으로 돌아온다는 스토리가 멋지다. 편집장으로서의 스기무라, 탐정으로서의 스기무라가 각각 평범한데, 둘을 연결하는 스토리로 인해 둘 다 더 멋진 것. 그것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음의 방정식>은 놓치지 말아야 할 이야기인 것이다.

 

내용 자체는 미야베 미유키스럽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피해자, 가해자와 주변인물들을 따뜻하면서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솔로몬의 위증>의 후지노 료코가 다시 학교로! 와 같은 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교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예상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앞에 말했듯이 탐정 스기무라를 처음으로 볼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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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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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하실 때까지 마음껏 수사해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건 죄가 없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나카오카는 그렇게 확신했다.

 

온천마을에서 젊은 신부와(삼십대) 함께 방문한 늙은 남편이(육십대) 황화수소 중독으로 죽는다. 사고로 처리되고, 지역은 봉쇄된다. 조사를 위해 지구과학을 전공하는 아오에 교수가 방문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제 이십이나 되었을까 싶은 마도카를 멀리 떨어진 온천 마을의 두 번째 사고에서 다시 보고 사고사로 처리된 각각의 죽음이 미심쩍어 보이게 된다. 그렇게 두 사건의 연결점을 조사하는 아오에 교수와 첫번째 사건에서 아내가 보험을 목적으로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형사 나카오카 역시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을 조사하다 아오에 교수를 만나 사건성을 확신하고 파고 들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그래도 늘 일정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 사회파 추리소설가 답게 '의미'도 찾기 쉽게 보여준다. 어느쪽이냐하면, 재미가 우선이겠지만, 그리고, 사건을 진행시키기 위해 우연적이고 작위적인 설정들이 들어가긴 하지만,  캐릭터나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오백페이지가 넘는 책도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미래'와 '기후' 이야기가 소재인 것도 요새 시류이긴 하나, 이전에 읽었던 '몽환화'의 주제가 더 쎄하게 다가오긴 했다.

 

읽는 동안 다카즈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도 생각나고, '백야행'의 커플도 생각나고,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의 범인까지..이런저런 책과 인물들이 떠올랐다.

 

'진실' 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위선과 위악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과 같은 시대라면, 차라리 '위선'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위선은 '시스템'이기도 한데, 그건 크게는 국가, 사회, 작게는 가족, 친구, 연인간에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윽고 아마카스 씨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 눈에 보였던 것이 모든 것.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어요. 속사정이니 진실이니 그런 건 아무런 힘도 없다.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많이 누리지 않았느냐, 그거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요.

'내 눈에 보였던 것이 모든 것' 이라고 형사는 노트에 메모했다. 아마카스의 사정을 읽는 동안, 아, 그것이 현명한 일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카스와 '상대방'은 그 '진실' 에 대해 핑퐁처럼 왔다갔다 설전을 나누게 된다. 읽다보니 위선, 위악의 문제가 아니라 숨겨진 진실. 에 대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흥, 진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렇다면 좀 물어보겠는데, 진실이란 게 뭐지? 그걸 누가 판정하는 건데? 결국은 기록된 것만이 진실이야. 기록되어서 사람들이 인식해주었을 때, 그게 바로 진실이야. 이 폐허를 봐. 이 건물에는 어떤 진실이 있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것은 진실이라고 할 수 없어. 그런 의미에서 대다수의 범용한 인간들은 아무런 진실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는 거야. 인터넷을 봐. 타인의 험담과 하소연만 가득하지? 공격의 창끝을 겨눌 곳을 찾아내면 앞다투어 비난을 퍼붓고 있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그러면서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마냥 불평만 늘어놓는 인간들이 어떤 진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진실이라는 단어로는 알아듣기 힘들다면 역사라고 말을 바꿔도 좋아. 그런 인간들은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았든 이 세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해.

과연 그럴까?

 

예전이라면 와닿았을 이야기들이 지금은 술술 넘어간다. '존재의미가 없는 개체따위는 이 세상에 없어' 라는 말이 맞는건 알겠는데, 와닿지가 않는다고. '라플라스의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의미가 없는 개체들이 늘어만 가고 있는 것 같은 밝지 않은 기분이라서 말이다. 이건 라플라스의 마녀나 악마가 아니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자 라플라스를 아십니까? 풀네임은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프랑스 인이에요.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내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물리학을 활용해 그러한 원자의 시간적 변화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지가 가능하다.

라플라스는그런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 존재에는 나중에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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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2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크스의 산 리뷰를 보고 오게되었습니다.
저도 경찰소설을 좋아하는데요. [마크스의 산]과 [야성의 증명]중에 어느쪽이 경찰물 장르소설로서 장르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시는지 알고싶습니다~ 둘의 차이점도 알고싶구요. 리뷰글을 보니까 경찰물 소설에서 두 소설을 극찬하셨더라구요. 혹시 제 말투나 태도가 실례되지 않는다면 가르쳐주실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__) 대뜸 댓글 올리는게 실례가 될까 죄송합니다.

하이드 2016-03-26 10:06   좋아요 0 | URL
제가 다카무라 가오루를 워낙 좋아해서요. < 마크스의 산> 이 매니아들의 평가가 높고, <야성의 증명>은 작가 인지도와 `증명 시리즈`로 유명하죠. 경찰소설을 쓰는 작가마다 각각의 스타일이 있는데, 다카무라 가오루는 경찰이란 조직내의 계급, 사람 들을 잘 그리고, 모리무라 세이치의 작품에서는 사회내의 인간이고, 조직내의 인간인건 변함없지만, 범인과 형사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이 부각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으로 좋아하는건 마크스의 산이고, 야성의 증명, 인간의 증명의 강렬한 메세지를 좋아합니다.

. 2016-03-2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비밀댓글로 달지 않은것은 다른 분들도 두 책의 차이를 궁금하셨을수도 있고 나중에 댓글을 보고 독서에 도움이 됐으면 해서요. 감사합니다~
 
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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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의 원제는 'THE GROWNUP' 이다. 변역본의 바뀐 제목이 원제만큼이나 마음에 들기는 오랜만이다.

시만 읽고, 꽃만 잡고(->는 일이지만), 연애만 하고 있는건 아니고, 책도 부지런히 사고 있고, 읽고 있다.

 

맘에 안 내키는 책들은 끝까지 안 읽고 덮는 경우도 많고, 읽다 만 책들도 많은데, 이 책 올긴이의 말에 나온 스티븐 킹 인용처럼 "추운밤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창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멋진 이야기를 접하는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스티븐 킹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中)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단편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독서였다. 길리안 폴린의 책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는 <나를 찾아줘>에서 부터 <몸을 긋는 소녀>, <다크  플레이스>와 같은 장편은 물론 <나는 언제나 옳다>에서까지 강렬하다.

 

이 책은 얼불노의 조지 R.R. 마틴이 미스터리, 호러, 순문학 등 장르를 막론하고 뛰어난 작가들에게 단편을 의뢰해 <사기꾼Rogues>라는 선집을 내면서 한 의뢰로 시작, 길리언 플린은<What do you do?>를 기고했다가 2015년 에드가 상을 수상한다. 이 책은 작가가 에드가상 수상작을 수정하여 다시 출간한 것이다.

 

책이 양장인데, 정말 얇아서 소설로는 1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실망은 날아가버릴 것이다. 이야기는 남자들의 자위를 도와주는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내가 손으로 해주는 그 일을  그만둔 건 실력이 달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그만둔 거지."

 

라는 첫문장. 3개주에서 손놀림이 가장 좋았던 그녀가 일을 그만두게 된건 손목 터널 증후군이 왔기 때문이다.

화자는 애꾸눈엄마의 손에서 앵벌이 도구로 자랐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항상 '정직하게'임한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임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쪽방은 자위를 돕는 방, 다른 방은 가짜 점성술사를 둔 방이었는데, 자위를 돕는 방에서 은퇴한 '나'는 '점성술사'의 방으로 가서 어릴적부터 갈고 닦아온 '사람을 읽는' 기술을 발휘한다. 그러던 어느날 중산층의 똑똑해 보이는 수잔을 만난다.

 

화자의 배경이 생활감 있게 묘사되고, '그러던 어느날' '수잔'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하층민이었던 화자의 애환을 묘사하는 드라마에서 느닷없이 고딕풍의 호러로 넘어간다. 그녀에게 속을 것 같지 않던 수잔은 계속 찾아오면서 이사간 집과 기묘한 의붓아들, 그리고 늘 출장중인 남편에 대해 하소연을 하는데, 이야기는 점점 이사간 집과 아들에 대한 공포로 흘러간다.

 

'자위 돕기', '점성술사'에서 다음 직업으로 트랜드를 보고, '집 정화'를 계획하고 있었던 화자는 수잔의 집으로 가서 이상한 집의 기운이 느껴진다며 일주일에 두번씩 방문해 집을 정화시켜주기로 한다.

 

화자, 수잔, 의붓아들인 마일즈, 그리고 출장중인 남편의 존재감. 이렇게 넷이 비등한 강한 에너지를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이야기의 특별한 점은 뒤에 나타난다. 옮긴이는 이 책에서 4개의 플롯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뒤쪽에서 나타나는 플롯에서는 독자까지 포함되어 다섯꼭지점의 이야기가 된다. 천재적인 작가인지, 타고난 이야기꾼인지, 지금까지는 철저한 계산에 의해 쓰는 천재적인 작가로 보여지지만, 저자가 그리는 여성캐릭터는 정말이지 현실에 있을법하게 강력하다. 그 여성캐릭터의 맞은편에 있는 남자 캐릭터는 그 강력한 여성캐릭터의 상대방 역할을 잘 해낸다.

 

그런 작가의 개성을 잘 드러낸 번역본의 제목이지 않은가.

 

나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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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6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6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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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읽기 좋은 책이다. 두시간 정도면 졸다 깨다 하면서 읽을 수 있다. 집에도 읽을 책들이 많고, 새로 주문하는 책들도 있다. 그 와중에 한권씩, 두권씩 빌려보기 좋은 책이다.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에 이어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을 읽었다.

 

다섯가지의 단편 연작인데, 각각의 눈으로 공부도, 사랑도 너무 열심히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에게 버림받은 부인, 그를 따르던 부교수, 그가 부인을 버리고 떠나 함께 사는 여자의 딸, 그의 친딸을 만나는 남자 등등

 

미우라 시온의 이야기는 뭔가 쎄한 부분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이지 않아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기에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들도 아니고, 각각의 '사랑' 에 관한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닌다. 한동안 책을 재미있게 못 읽었는데, 그래도 미우라 시온 책들을 읽으면서 숨쉬듯 책을 읽게 되는 그런 독서의 호흡을 찾았다.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에서 잡은 사랑과 삶에 관한 글들 :

 

 격렬한 감정은 책과 같다. 아무리 두꺼워도, 언젠가 끝이 나온다. 나는 이미 격렬함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저 시작도 끝도 없는 생활을 계속해나갈 뿐이다.

아무리 고민과 괴로움이 있어도 뒤로 미뤄둔 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잔다. 뒤로 미뤄놓을 수 있는 구조로 생겼다니 마음이란 의외로 잔혹하다.

아직 끝내고 싶지 않다고 희망하는한 우리는 떨어진 꽃잎들을 계속 그러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한데 모아서 어떤 꽃의 일부였는지를 상상한다. 식탁에 둘러앉으면서 생각했다. 뻔뻔하지만 착실한 이런 형태의 제스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가 없는 곳에는사랑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사랑이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나중에 이해할 수 없는 공백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공백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더 깊이 사랑해야 하는가?

사실은 하나이지만, 진실이란건 사람의 머릿수만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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