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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트랙 ㅣ 발란데르 시리즈
헨닝 망켈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 다섯번째 작품으로 발란데르 시리즈 중 최고라고 하는 것이 책소개에 있으니 그닥 믿음직하지는 않다. 사 놓은 것도 몇 권 있지만, 읽기는 처음이다. 미스터리 소설, 시리즈라면 대충 다 읽고 보는데, 유일하게 발란데르 시리즈를 이제야 접한다. 시리즈물은 많이 읽을수록 미우나 좋으나 정이 쌓여 가는데(계속 읽기만 한다면),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보니, 이름만은 너무 익숙하지만, 아직 발란데르의 매력을 느끼기는 좀 부족한 것 같다. 다른 시리즈를 찾아 읽을만큼은 충분.
북유럽 미스터리를 읽는 것은 미,일,영 미스터리를 읽는 것과는 꽤 달라서, 정원에 내다 놓은 유모차의 아기 얼굴이 피범벅이다. 라는 경우 미,일,영은 그게 사건이고, 북유럽 미스터리에서는 피범벅인줄 알고 놀랐는데, 케찹이었다. 라는 것이 큰 사건. 연쇄살인 같은건 미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 라는 분위기.
사이드 트렉은 유채밭 한 가운데 소녀의 분신자살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름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스웨덴은 여름이 정말 아름다워서 하지 행사 같은 것이 유명하고, 하지 행사, 날씨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며 도끼로 죽이고 머릿가죽을 벗겨내는 끔찍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범인은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이미 나와 버리고, 범인이 계속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발란데르와 팀이 범인을 쫓고, 잡는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끝까지 재미 없는 부분 없이 잘 읽혔다.
사건도 범인도 주가 아니고, 발란데르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결을 따라가게 된다. 뭐, 범인에게 이유를 주거나 감정이입 같은건 필요 없지. 그 범인이 어떤 범인이든간에.
미스터리 소설은 사회상을 구석구석 나타내는데, 발란데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지워지는 것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어렴풋이 아는 스웨덴은 복지국가이고, 잘 사는 나라인데, 책을 읽는 내내 지금 여기 내가 사는 나라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혼하고 외로워하다가 만난 사건 공조 했던 형사의 부인 바이바와 사귀게 되는데( 형사는 끔찍하게 죽음. 어딘가 시리즈에 이미 나와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나는 한참 연애의 용암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므로 연쇄살인범 나오는 미스터리 시리즈를 읽으면서도 많이 나오지도 않는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에 눈이 확 가버리고 만다.
"바이바와 이야기하던 중에 발란데르는, 당시 그를 사로잡았던 그 갑작스러운 느낌, 경관답지 않았던 느낌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애썼다. 그건 그의 안에 있던 어떤 댐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는 이제 스웨덴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계가 사라져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대도시의 폭력이 그가 맡고 있는 지역까지 침투했고, 일단 들어온 이상 앞으로 영원히 그럴 것이다. 세상은 수축하면서 동시에 확장되고 있었다. 그런 슬픔에 이어 두려움이 엄습했다. "
" 신호가 세 번 울리고 바이바가 전화를 받았다. 발란데르는 불안했다. 전화를 걸 때마다 그녀가 이제 그만 만나자고 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자신만큼 그녀도 확신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행복하게 들렸고, 그 행복에는 전염성이 있었다. "
"스웨덴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가난에서 벗어났고, 대부분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발란데르가 어릴 때만 해도 답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 비록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가난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 진보가 잠시 멈칫하고 복지 국가의 명성이 서서히 깎이고 있는 시점에, 그동안 잠잠했던 정신적 가난이 표면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
" 그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젊은이들이 분신자살을 하고, 또 이런저런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세상이었다. 그들은 소위 실패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스웨덴 국민들이 믿었던,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세웠던 무언가가 생각보다 견고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곤 이미 잊혀버린 이상을 기념하는 기념비뿐이었다. 이제 그를 둘러싼 사회가 무너지고 있었다. 정치체계가 전복되는 중이었고, 이제 어떤 건축가가 나타나 새로운 건축물을 세울지, 그건 또 어떤 체계가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름날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끔찍했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억하기보다는, 잊어버렸다. 이제 집은 안락한 가정이 아니라 도피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