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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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이다. 저자와 같은 말발을 언제 봤나 싶을 정도로, 리뷰에 보면 '맛깔나는 글' 이란 말이 나오는데, 말대로 맛깔나는 글을 쓰며 일상 이야기를 풀어낸다. '독서', '책'에 관한 '책'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데, 저자의 일상이 '책'과 엄청 밀접하기에, 일상만담이 독서만담이 된 경우가 아닌가 싶다. 헌책계의 큰손인 저자의 희귀 헌책 구입에 대한 이야기들 재미있었다. 500원짜리 희귀본 이야기는 읽다 말고 애인에게 이랬대, 저랬대 얘기해주면서 웃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책이야기로는 좀 아쉬웠던 것은 저자가 추천하는 책들만 보면 시계를 십년- 이십년쯤 거꾸로 돌려야 할 것 같아서이다. 여자 문제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화성에서 온 여자, 금성에서 온 남자> 권하는 식. 뒤로 갈수록 일상 이야기에 그것과 관련된 책 이야기 추천인데, 일상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만큼 책 이야기는 지루했다. 


저자의 글이 재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평이 박한 것은 '독서만담' 에 기대하는 책이야기가 기대에 못 미쳤던 부분, 그리고, 경상도 출신의 50대 저자가 '평범하게' 경상도 출신 50대 남자 저자였던 점.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들 책도 지금 읽으면 신경 쓰이는데, 요즘 나온 책이 이렇게 가부장적이면 읽다가 신경 안 쓰일 수가 없(는데, 남들은 신경 안 쓰이나 봄)다.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다. 라는 이야기들, 아내와 딸에게 늘 지는 공처가인 것 처럼 보이지만, 요즘 남자의 서열이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보다 아래'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게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내와 맞벌이인데, 아내가 밥차려주지 않으면 굶고, 자존심 세우며 김밥천국 가는 것도 한없이 갑갑하다. 집에서 야구 보며 딩굴고 있으면 아내가 뒤늦게 퇴근해 장 보러 가고, 밥 차리는 그런거.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가 그런 타입인 것 같다. 

추천하는 책들로 컨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그 책들이 좀 많이 업데이트 되었으면 좋겠다.  

아내에게 기죽고 못 살고, 밥 못 차렴 먹는 이야기는 요즘 어떻게 이야기해도 재미있을 수 없으니, 책이든 뭐든 다른 재미있는 일상 이야기라면, 다음 책은 기꺼이 구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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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는 무의식까지 너무 깊이 뿌리내린 데다 관련 산업의 발달로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사회주의 혁명이 더 쉬울 것이다. 성형수술 세계 1위 한국사회에서 외모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가장 심각한 정치학이다. 


본인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타인과 사회가 신경 '써준다'. 페미니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날씬해도' 자기 몸에 만족하는 여성은 드물다. 문제는 '살찜' 여부가 아니라 이 물 셀 틈 없는 완벽한 외모 통제 사회에서 여성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나는 이 책의 주제가 "외모지상주의 극복"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살쪄도 건강하기만 하면 돼", "외모는 중요치 않아. 실력이나 품성을 갖춰야 해..." 이런 말은 사기다. 진실도 사실도 아니다. 삶의 체현embodiment 으로서 외모는 중요하다. '관상'이 그것이다. 관상은 과학이다. 삶의 흔적은 몸으로 드러난다. '미'에 대한 강박을 비판한다고 해서 '추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외모지상주의를 극복하는 방식은 미추의 기준을 다양화, 비본질화, 유동화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내 몸이 나 자신이라는 근본적인 인식론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를 포함하여 자신에게 온갖 불만이 있는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다.  


맨 앞에 나온 추천사 잘 안 읽는데, 정희진의 추천사라서 잘 읽었다. 위의 인용은 정희진 추천사 중에 

나온 말들이다.




" 본인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타인과 사회가 신경 '써준다' " 나는 이십대때 비해 훨씬 살쪘지만, 그때에 비해 몸에 신경 쓰지 않는다. 혹은 않는 척 하고 잘 살아왔다. 내 몸에 대해 이야기할만큼 무례하고 무딘 자는 내 주변에 엄마와 아빠밖에 없었다. 엄마의 인신공격성 발언에는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대꾸했지만, 내 맘에는 차곡차곡 남고, 엄마는 개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서 손해이고, 화난다. 아빠의 발언은 무시하고, 지금은 다른 여러가지 이유를 더해서 잘라냈다. 


여튼, 가족으로부터의 무시에 대해서는 열받긴 했지만, 맘에 남거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마음 들지 않았는데, 애인의 말 한두마디는 계속 생각하게 된다. 초창기에 한 번 그랬고, 얼마전에 또 그런 일이 있었다. 애인도 나도 과거에 여성혐오했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고쳐나가고자 하고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페미니스트다. 


애인의 발언은 본인은 좋은 뜻이 었다고 하는데, 받아들이는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못하겠다. 연애 전의 내가 지금의 "예뻐지겠어. 예뻐져서 사랑받아야지" 하는 나를 본다면, 어이구, 한심한 년. 했을꺼다. 사실 지금의 나도.. 

이 책을 읽고, 도저히 끌어 올릴 수 없는 나의 자존감 한 부분이라도 올라와서 '당당한 페미니스트' 가 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20대 초반까지 아주 마른 몸매였다. 30대 초반까지도 평균체중에 훨씬 미달했다. (술살인 줄 알았는데, 술 안 마셔도 계속 찜. 나잇살인가, 부은게 살이 되었나. 뭐 이러고 있음) 단 한번도 몸에 콤플렉스가 없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슴이 너무 작아서, 배가 나와서, 하체 비만이라서 ( 내가 배 안에 장기가 있는데, 그 정도도 안 나오면 운동선수여야 했고, 하체 비만이라고 해봤자, 가장 작은 사이즈의 옷들도 컸던 그 때, 아 옛날이여) 불만이었다. 언젠가부터 포기,체념,신경안씀의 단계를 밟은 것 같은데,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건 건강해지고 싶다. 체력짱에 유연한 몸이고 싶다. 였던 것 같다. 지금의 나의 가장 큰 목표이자 화두는 병 걸리지 말고, 건강하게 '소모품'인 이 몸뚱이 잘 달래고 가꾸기. 이다. 유연하고, 건강할래, 아님, 병약하고 마를래 고를 수 있다면, 나는 전자를 고를 것이다. 건강한 돼지도 괜찮아. 애인이 후자를 고른다면 미워해야지. 뭐, 애인의 로망이야 어쩔 수 없구요. 하지만, 누가 나한테 그런걸 고르라고 하겠어. 내가 해야지. 으으.. 


지난주부터 팔이 너무 아파서 한 번은 아침에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어제는 하루 종일 통증이 있어서 불편했다. 스트레칭으로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고, 병원가서 주사 맞는건 지난번처럼 팔이 아예 안 움직이는 정도는 되어야.. 라는 생각이 강하고, 집 앞에 부위별로? 마사지 해주는 곳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찾아봤는데, 뭔가 그 사이에 미용마사지로 바뀐 것 같고(오늘 가서 다시 알아볼 생각), 요가... 하면 돈들지.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아파하고 있는데, 누가 등근육이 이완되면 통증이 풀리기도 해요. 라며 흉추운동을 권해줬다. 팔을 등뒤로 깍지 끼고, 고개를 들어 턱을 하늘로 향하며 15~20초. 얘기 듣자마자 엊저녁에 하고 잤더니, 어제만치 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새벽에 꽃시장 다녀오면서 무거운 거 들었더니, 또 아팠지만, 좀 자고 나니 나아져서 또 스트레칭 했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하면 좋다고 했다.  


이래도 저래도 상관 없으니, 이왕이면 애인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싫어하는 것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가끔 네일 하고 싶어도, 돈도 들고, 애인이 네일 무섭다고? 했으니 하지 않고, 가끔 충동적으로 머리를 자르고 싶어도 애인이 내가 머리 올리는거 좋아하니 자르지 말아야지. 했었다. 

이 책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나올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첫 챕터부터 충격적이어서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몸에 대한 프로파간다에서 내가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몸이 나다' 라는 명제를 담고, 즐독해야지.  


어제 트위터에서 페미니즘 책 10권쯤 사겠다고 추천해달라고 하셔서 알라딘 여성학/젠더 부문 판매량으로 검색해보세요. 라고 추천드렸다. 판매순위 보니, 추천해야지. 했던 책들 대부분 상위권에 들어가 있다. 










일단 요기까지는 강추. 











페미니즘으로 본 지금까지 한쪽 성별을 지우고 쓰여 왔던'경제학' 이야기, 우에노 치즈코와 미나시타 기류의 비혼 주제 대담집, 호불호 갈리지만, 남자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맨박스, 그래픽 노블들, 페미어 사전 등을 추가 추천하고,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는 20년 전과 후를 비교하는 훌륭한 보고서와 분석글이다. 글도 좋고, 제목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다양한 이슈들이 커버되고 있어서 강추.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들은 장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일단 재미있고, 몇십년 전의 소설이 담고 있는 인사이트가 대단하다. 보면서 계속 소름끼쳤어.


일단 이 정도 읽으면 페미독서 1단계는 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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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2-2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을 다 읽어야 겨우 1단계인가요ㅎㅎ? 봤던 책도 몇 권 보이고 대부분 익숙한 책들이네요ㅎ

하이드 2017-03-02 06:43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서는 특히 그럴 것 같습니다. ^^
좀 더 정리해보고 싶어요. 페미니즘 도서들!
 
작가의 수지 박람강기 프로젝트 8
모리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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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기 한 인간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문장을 엮어 나간다. 오로지 그 작업 하나로 작품이 태어난다. 어떤 직업이든 여러 사람이 협력하며 작업하게 마련이지만 소설만큼은 혼자서 작업한다. 그 작업으로 얼마나 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번역되는 미스터리 소설 열에 아홉은 읽는 편이라 모리 히로시의 책도 읽어봤을법 하긴한데, 표지며, 제목이며, 줄거리며 묘하게 취향 안 맞을 것 같아 밀어두고 있다가, 아마도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읽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긴 했던 것 같고) 처음 접하게 되는 책이 내가 책 써서 돈 이만큼 벌었어. 하는 책이라니. 1억엔(10억원) 벌이의 작가답다. 어떤 독자라도 끌어들인다. 


모리 히로시는 누구? 로 시작되는데, 평범한 이력은 아니다. 전혀 참고가 될 것 같지 않다. 데뷔 19년차에 280여권을 출판했고, 애니 저작권 수입도 크다고 들었고, 원래 공대 조교수 출신, 소설을 부업으로 시작하고 나서도 10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돈을 위해 소설을 쓰고,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평범한 작가는 평범해서, 별난 작가는 별나서 팔리는 것이 책일테니, 작가로서는 평범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라는 것의 바운더리가 그런거겠지. 


10억원을 버는 작가가 아무리 일본이라도 탑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대신, 탑작가가 많겠지) 

소설을 그야말로 돈 버는 일로 이공계 스타일로 환산해서 계산해 놓은걸 보니 어질어질하다. 

예를 들면, 문학잡지 같은 매체에서는 원고지 매당 4천~6천엔의 고료를 받으니 50매짜리 단편이나 연재소설을 쓰면 20만~30만엔, 작품을 쓰는 데 필요한 자재가 따로 필요 없으니 매출이 곧 소득(->이런 말을 하는건 뭔가 아마추어들의 로망. 같은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당 6천~ 15천엔을 받는 만화가에 비교하며, 만화쪽이 시간도 20배 이상은 더 걸리고, 어시들 월급도 줘야 하니, 글작가들의 효율이 얼마나 좋은가? 라는걸 글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위화감 잔뜩 느껴진다. 

신문 연재 소설은 회당 분량이 5만엔 정도, 매일 게재 하므로 연수입이 1,800만엔 정도라고. 신문연재 많이 하셨던 미미여사가 떠오르며, 아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식의 돈계산, 작가의 시급.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데, 시간당 6,000자 정도 된다고 한다. 이 숫자를 내는데도 지극히 이과계스러운 계산방법이 나온다. 여튼, 그렇게 해서 계산한 집필노동의 시급 10만엔. 시급 백만원

여기에 문장손질, 교정쇄 점검 등을 넣어 절반쯤으로 보아 5만엔. 금액만 보면 매우 좋은 조건인데, 누구나 이런 조건으로 작업할 수 있는건 아니지. 라고. 네네.. 

책 한 권에 담는 장편소설은 대개 원고지 400~ 600매 정도, 장편 한 작품을 잡지 연재하면 대강 200만~ 300만엔의 고료 

얼마전 트위터에서 모작가님이 천권 팔아야 백만원인데, 책 좀 달라고 하지 말고, 사라, 사. 하는 글을 봤다. '작가의 수지' 를 읽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물론 일본에서 돈 가장 잘 버는 작가 중의 하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차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에 읽은 새로운 필자가 새로운 독자보다 많아진다는 기사도 생각나고.


저자의 데뷔작 <모든 것이 F가 된다> ... 인쇄 부수 보니, 할 말이 없다. 

작가의 '데뷔작' 초판 인쇄 부수 18,000부. 그로부터 9개월 사이에 6쇄까지 증쇄하여 첫 해에 61,000부를 찍고, 인세로 600만엔. 이 작품은 3개월마다 신작 발간되었고 ( 이미 다섯 작품을 써 둔 상태였음) 문고본의 초쇄는 6만부 였다. 노벨스판이 24쇄까지 나와 누계 139,600부, 문고판이 60쇄까지 나와 누계 639,000부. 합해봐야 78만부니 백만부에는 한참 못 미쳐서 밀리언 셀러 경험은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긴 하지만, 한 작품으로 크게 히트한 적은 없다. 고 말하고 있다. 작가 본인이.

이 책의 시급도 계산해 두었다. 시급 100만엔. 토탈 60시간 정도 걸렸는데(처음 출간이어서 시간 많이 걸렸다고)

다만 한번에 받은건 아니고, 20년을 두고 받은 것. 


작가에게는 증쇄가 곧 불로소득이라고 썼지만, 그보다 먼저 '출판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구나' 하고 안도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만큼 벌 수 있는 것은 다 출판사 덕분이다. 나는 특히 그런 생각이 강하다. 별생각 없이 원고를 보냈다가 운 좋게 편집자 눈에 들었다.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궁합이 잘 맞는 편집자를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그 사람들의 비즈니스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한편, 매정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독자에게는 그다지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내 책을 읽고 재미가 없어도 독자들에게는 얼마든지 다른 선택지가 있다. 재미없는 책을 만나더라도 책 한 권값을 쓴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내 책을 만나는 독자도 많으므로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책 좀 사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이 책이 당신에게 책 구입비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기를' 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대개 궁합의 문제이므로 내가 어떻게 해 주기가 힘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지만, 맞는 말.


소설 집필을 '노동'으로 보는 시각은 아마도 이 세계에서는 소수파일 것이다. 나의 감각이 마이너인지라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읽는 독자가 계속 당황스럽고 있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책시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정확하게 수치를 알지는 못하지만, 많이 날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런 일본에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작가가 일본에도 일상적으로 독서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고, 소설계에서는 수십만명 정도라고 할 정도로 적다고 하고 있다. (문득 생각나는 우리나라 SF 독자 3000명 설) 저자의 책 중 가장 잘 팔린 <모든 것이 F..> 도 20년을 두고 78만부 팔렸으니 일본인의 0.6%가 산 것. 1,270명 중 한 명 꼴. 이 수치가 TV 시청률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되었을테니 소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울트라 마이너한 분야" 인가! 라고.


"실제로 모리 히로시 정도밖에 안 되는 자도 꽤 좋은 조건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혼자서 만들어내고, 경비도 안 들고, 비교적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랑 사정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인세만이 수입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잡지에 웬만한 단편이 하나 게재되면 50만엔 정도 받을 수 있고, 청량음료 제조사에서 소설 집필 의뢰 받았는데, 이 때 원고료는 작품 하나에 1,000만엔이었다고 한다. 단편 하나에 오백만원, 소설 원고료 1억? 


웹다빈치 라는 사이트에 블로그 글을 매일 연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매일 1,000자 정도를 올렸는데, 원고료가 300자에 5,000엔. 하루 원고료 15,000엔, 이때 블로그 올린 글들이 3개월마다 문고본 출판되어 인쇄수입까지 합하면 블로그만으로 해마다 천만엔의 수입. 하루 15분 작업으로 이만큼 벌었다. 


지금, 내가, 리뷰 쓰면서 계속 돈돈 하고 있는것 같은데, 내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이런 책입니다. 

제목, '작가의 수지' 


얼마전 일본의 전자서적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기사 하나 읽고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전자서적 시장이 작고, 돈도 안되고, 미래도 없다. 뭐 이런 기조의 기사였다. 모리 히로시는 전자서적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접치고 있는데, 미래에는 책이라고 하면 '전자서적'을 가리키게 될것이다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기사를 읽을 때도 궁금했는데, 전자서적의 인세는 15~ 30%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인쇄서적의 인세가 8%~12%로 일본과 같으니 전자서적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을 때도 느꼈는데, 모리 히로시도 문단? 에서 상당히 독특한, 마이웨이를 걷는 작가이지 싶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일본에서 터부시 된다는 작가의 '수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편집자의 말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렇게 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은 작가의 책을 본적이 없다는 말에 공감) 놀랍다. 


'수입' 뿐만 아니라 '지출'에 대해서도 쓰고 있고, 출판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 뿐 아니라, 내 직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걸 보면, 작가가 직업이 아닌 사람들도 직업의 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만한 보편적인 '새로운' 인사이트를 보여주고 있다. 


'수입'에서 입이 떡 벌어졌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의 수지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라는 '직업' 에 대해 일부분(아마 꽤/가장 중요한 부분)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니깐, 이런 이야기는 아직 아무도 안 했던 이야기잖아.  


이 책을 사면서 인세 5%를 모리 히로시의 모형정원기차 만드는데 보태는건가. 라는 생각같은 걸 해볼 수 있다. 

자신의 감을 믿을 것.
늘 자유로울 것.
한때라도 좋으니 자기가 가진 논리를 믿고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향해 전진할 것.
그리고, 좌우지간 자신에게 ‘근면함‘을 강제할 것.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 정도가 전부다.
최적의 건투를! (‘스카이 크롤러‘속 대사)

어쨌거나 꾸준히 활약한 작가였다.
올해(2015년) 4월로 데뷔 19년차가 된다.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한 책은 278권, 총 판매 부수는 약 1,400만부, 이 책들로 벌어들인 돈은 약 15억엔이다.

작가로 살다 보면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고 한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해 본 적이 없고 슬럼프를 겪어 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소설 집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벌이니까 마지못해 쓰고 있을 뿐이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남들한테 자랑할 만한 직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좋아하니까 쓴다는 사람은 열정이 식었을 때 슬럼프에 빠진다. 자랑할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판과 비난을 받으면 의욕을 잃는다. 그러니까 그런 감정적 동기만으로 버티면 언젠가 감정 때문에 글을 못 쓰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이니까 쓴다는 사람은 슬럼프를 모른다. 글을 쓰면 쓴 만큼 돈을 벌 수 있다. 마음은 배반하지만 돈은 배반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수전노 같은 말본새로 들리겠지만, 정직하게 하는 말이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수전노가 되게 마련이다. 애초에 이 책의 주제는 정직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이다. 내가 번드르르한 말을 싫어하는 탓에 결과적으로 미움을 받는 캐릭터가 되고 말겠지만, 그것도 일이라는 것의 본질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이외의 직업, 아니 어떤 직업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을 놓고 ‘보람‘이니 ‘꿈‘이니 하는 환상을 품는 젊은이가 많다. 그것은 그런 이미지를 심으려고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인데, 현실 사회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환상일 뿐이다.

오리지널 작품을 만든다(창작한다)는 것은 ‘노동‘만으로 평가받는 행위가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글자만 쓰면 되는 작업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옮기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글을 써도 비난받는다. 새로움이 없으면 안 된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절찬해 주는 사람이 열 명쯤 있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쪽에서는 혹평을 하더라도 수천 명, 수만명의 대중이 지갑을 열 만한 매력이 개개의 작품마다 필요하다. 이는 구체적인 노하우로서 이 책에 소개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재능‘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나는 재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어느 쪽이냐 하면 ‘사고력‘이나 발상력‘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도 재능 아닌가,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재능이 없으면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하며 착상이 떠오를 때까지 오로지 기다리면 된다. 스포츠나 음악이나 연극이라면 이렇게는 안 되겠지만 글쓰기라면 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 자체는 본래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아니므로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하다.

출판이라는 영역의 문턱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지고 있지만, 많이 팔기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잇을 수는 없는 시적이다. 판매 부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늘려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작가 스스로 궁리하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출판사는 거기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주 많은 것 같다. 나도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것을 알았다. 도구도 동료도 필요 없다. 초기 투자도 없다. 게다가 소설가로 살아가는 선배들을 보면 매우 즐거워 보인다(가령 이 책의 내용처럼). 개중에는 아이디어가 말라서 힘들다느니 슬럼프에 빠졌다느니 마감에 쫓겨 밤을 새웠느니 하며 고생하는 척하는 작가도 있는 모양이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노동 조건은 결코 나쁘지 않다.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 이것 말고는 홍보할 길이 없다고 봐도 좋다. 따라서 첫 작업 때는 의뢰한 측이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건네줘야 한다. 가격에 걸맞지 않는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홍보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생산할 것, 그리고 마감을 지킬 것, 1년에 한 작품을 쓰는 식으로 느긋하게 창작해서는 설사 그 한 작품이 히트하더라도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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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선 페미니즘 - 여성 혐오를 멈추기 위한 8시간, 28800초의 기록
고등어 외 41인 지음, 한국여성민우회 엮음, 권김현영 / 궁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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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성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분노하고 슬퍼하고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이유는 남자가 싫어서가 아닙니다. 남녀 싸움을 조장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단지 문제가 있으니까 한번 해결을 해보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있음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논의를 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변화는 잘못됐다는 알아차림 없이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변화는 기존의 것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피해자들, 약자들,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데 기득권자들과 사회 시스템이 알아서 바꾼 경우는 단 한번도 없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신촌에서 있었던 필리버스터 소식을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거리에 선 페미니즘'은 그 때의 이야기들을 '기록'해 둔 것이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계속해서 말해지고, 기록되어지고, 읽혀지고, 다시 말해지기를 바란다. 


광장에서 사람들 앞에 나서 필리버스터를 이어간 사람들 중에는 준비해 온 사람들도 있었고, 길 가다가 즉석에서 나가서 발언한 사람들도 있었고, 주최한 사람들 중에서도 있었고, 남자들도 있었다. 한 번 터진 이야기는 멈출 줄 모르고, 시간 관계상 추려야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야기들은 다 비슷하고, 다 다르다.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인데, 남자들한테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2박3일도 너끈히 이어갈 수 있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와 여자만 그랬구나, 남자들은 겪지 않는 일이구나.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차별, 성추행/성희롱/성폭행 을 겪어서 힘들었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나누고, 앞으로 더 이야기해서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 는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인상 깊었던 남성 발언자의 말 중 : 

지금의 이 끔찍한 상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부 남성의 책임이 아닙니다. 거꾸로, 모든 남성이 책임의 일부입니다.  

한숨 쉬게 만드는 이야기들은 매일같이 일어나고, 내 주변은 정리했다. 미역은 무시하고 떼놓고 갈 것이다.  

집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집에서 혼자 살아도 신경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사회 속에서 여자의 성별로 살아가야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만, 이렇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경험으로 정보를 얻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 주는 것 등을 생각한다.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하나인 Personal is Political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일테니깐. 


오늘 본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지하철에서 험한 일 당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나라면 어떡할까' 생각한다. 얼마전에 옆자리 앉은 여자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며 농을 치는 변태할저씨 이야기가 돌았었다. 이런 경우에 동영상으로 찍고, 열차 가는 방향 다음역을 네이버에 찍으면 전화번호가 나오는데, 글로 전화해서 신고하고, 어느 칸인지 이야기해주면, 지하철방범대? 분들이 나오신다고 한다. 첫번째 본 글에서는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무 도움 안 됐다고 한다. 전혀 놀랍지 않다. 

오늘 당한 사람이 보니 모정치인 영상과 포르노 영상들을 유튜브 리스트에 올려 놓고, 옆자리 여자 반응 봐가면서 포르노 보여주고, 중얼중얼 하는 것이, 얼마전 트위터에서 돌았던 바로 그 변태할저씨였다고. 다음역이 가까워서 신고는 못하고, 큰소리로 개망신만 주고 내렸다고 하는데, 후에 경찰에 신고해도, 이분이 하도 의연하게 대처해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으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지하철에서 이 변태놈 만나면, 개망신도 주고, 신고도 해야지. 라고 시뮬레이션. 이런 것들. 이런 이야기들.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납치당할뻔한 이야기들, 성추행당하는 이야기들. 내가 당하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누가 당하는 거 보면 옆에 가서 도와줘야지. 하는 것들을 계속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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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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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리히가 히믈러와 함께 만들어 가는 팀워크에서 하이드리히는 SS의 두뇌 역할을 한다 (SS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HHhH'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는 듯이다).


하이드리히가 그 잔인한 히틀러의 애정하는 부하였던건 맞는데, 제목의 HHhH의 H는 책소개에서처럼 히틀러가 아니라 히믈러이다.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


요즘 미국발 뉴스를 보면서 얼마전에 읽은 이 책이 계속 생각났다. 지금까지 히틀러와 나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장 극적인 학살 부분에 대해서만 영화나 책으로 접했고, 2차대전은 교과서에서 본 지식이 다라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이 책을 읽고서야 정말 심각하게 '어떻게 이런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트럼프가 이슬람 7개국을 그들이 미국 국적이건 아니건간에, 미국에서 어떻게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미국 비자를 가지고 있던 말던 상관없이 '출신 국가'를 이유로 급작스럽게 입국금지 조치를 취한 것은 나치와 똑같다. 나치가 이렇게 시작했고, 처음부터 가스실에 유대인들을 밀어넣고 학살한 것이 아니었다. 독일인들도, 그리고, 주변국들도(당시 주변국들의 지도자들이 특히 더 한심하긴 했지만) 어, 어, 하는 사이에, 이런 엄청난 비극의 역사를 낳은 것이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소설가가 히틀러의 오른손과 같았던 하이드리히의 암살사건을 소설로 쓰는 이야기이다. 250여개의 단문으로 이루어진 '소설 쓰는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인데, 독특한 형식과 역사적 사실, 중간중간 작가의 소회가 끼어들며 이미 결말을 아는 그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단문이 이렇게 길게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이하다. 잔인한 이야기들이 건조하게 서술되어 그 임팩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책 속의 저자는 책을 쓰며 작가가 겪는 드라마도 함께 쓰고 있어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로 과거가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이드리히가 있고, 하이드리히 암살 임무를 담당한 체코의 낙하병 둘이 있다. 책 속의 저자는 그 둘이 영웅이라고 충분히 칭송하고, 나비효과처럼 그들의 암살 시도가 히틀러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책은 하이드리히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라 어쨌든 하이드리히가 메인이다. 


독일인의 효율성이라는 것이 몇 번인가 나온다. 끔찍하다.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피엔스의 미래' 에서 과학자파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 그리고 인문사회학/저널리스트인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이 각각 인류의 미래는 긍정적일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했다. 참석자들은 '긍정적일 것이다' 라고 주장한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의 손을 들어줬다. 그들이 요즘의 뉴스를 봤다면, 트럼프를 일주일이라도 겪어 봤다면 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 같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독일 제3제국의 정책, 특히 끔찍한 정책이 중심에는 언제나 하이드리히가 있다. 정말 놀라울 뿐이다. 1939년 9월 21일 하이드리히는 직접 서명한 『점령지의 유대인 문제』공문을 관련 부서들에 전달한다. 유대인들을 게토에 몰아넣기로 결정했으며 유대인 평의회 '유덴라트'를 창설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다. 제국보안부 직속 기관인 악명 높은 유덴라트는 아이히만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하이드리히는 이 아이디어가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된 것을 본 적이 있다. 피해자들이 살기 위해 나치에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이디어의 핵심이다. 어제는 약탈, 내일은 파괴.

하이드리히가 자신이 만든 가장 악랄한 부대, 아인자치그루펜을 처음 사용한 곳이 폴란드다. 나치스 친위대 보안방첩부와 게슈타포 대원들로 이루어진 이들 SS 특별 부대는 독일 국방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인간 청소'임무를 담당한다. 팀마다 작은 소책자를 받는다. 얇디얇은 종이로 된 소책자에는 필요한 모든 정보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다. 그 정보란 점령된 지역에서 제거해야 할 모든 사람의 목록이다. 즉, 공산주의자, 교사, 작가, 기자, 사제, 기업가, 금융가, 공무원, 상인, 부유한 농부... 조금 유명하다 싶은 사람은 다 있다. 수천 명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도 적혀 있다. 그리고 이들 불순분자들이 친척이나 친구의 집으로 피신할 경우에 대비해 이들의 주변 인물 목록도 적혀 있다. 이름마다 옆에 인상착의가 적혀 있고 사진이 붙어 있을 때도 있다. 하이드리히의 정보국은 이미 우수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치밀한 준비는 조금 과한 면이 잇는 듯하다. 실제로 현장에 투입된 부대들은 무턱대고 아무나 쏘아 댔다. 폴란드 시골에서 제일 먼저 희생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12~16세의 보이 스카우트들도 있다. 시장 광장에서 벽에 일렬로 선 채 총살을 당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마지막 예배를 한 사제들도 총살된다. 아인자츠그루펜이 상인, 지역 명사 들을 총살시키는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바로 일어난 일이다. 아인자츠그루펜의 활동을 자세히 기록한다면 보고서는 수천 페이지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일 이후로 그들이 처리한 일은 '기타'라는 두 글자로 요약되게 된다. 심지어 무수한 '기타'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소비에트 연방에서까지.

1942년 5월, 아인자츠그루펜이 추진하는 학살 임무에 투입된 병사들은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 학살하는 대신 점차 이동식 가스실을 쓰기로 한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매우 간편하고 기발하다. 유대인들을 태운 트럭에 배기가스 호스를 연결해 일산화탄소로 질식시키는 방법이다. 장점은 두 가지다. 첫째, 학살에 참여하는 병사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지 않고도 유대인들을 한 번에 더 많이 죽일 수 있다. 두 번째, 학살 담당자들이 재미있게 생각하는 특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시신이 핑크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단점은 사람이 가스에 질식되어 죽는 과정에서 변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독가스 사살 후 매번 트럭 바닥에 널린 변을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드리히는 이동식 가스실의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하이드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좀 더 탄탄하고 완벽하며 효율적인 방법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하이드리히는 경청하고 있는 장교들에게 불쑥 한마디를 덧붙인다. "유럽의 유대인들에게는 전부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아인자츠그루펜이 이미 유대인 100만명 이상을 처형했으니 참석자 중 하이드리히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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