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이사를 생각 중이라면, 당신이 고려 대상에 넣지도 않았던 어느 아파트에 당신을 입주시켜 줄 수도 있어요. 당신은 그 지역범죄율이 엄청나게 높다고 가정만 했을 뿐 직접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사실 그 지역은 꽤 안전한 곳이거든요.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기술을 실제로 사용할 직업을 찾아줄 수도 있고,
공통점이 많은 사람과 당신을 데이트하게 해줄 수도 있어요. 

내가 요구하는 대가라곤 고양이 사진뿐이에요. 그리고 때로는 자기 이익에 따라행동하라는 것이고요.

베서니 이후, 나는 인간의 삶에 참견하는 걸 그만두기로 했어요. 물론 고양이 사진은 계속 볼 거예요. 모든 고양이 사진이요.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으려고요. 사람들을 도우려고 안달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들이 자기 자신을 해치는 걸 막으려 노력하지 않겠다.는 거죠. 그들이 요구하는 건(고양이 사진을 포함해서) 줄 거예요. 하지만 훨씬 더 쾌적한 목적지에 도착하는 길을 알려주는 유용한 지도를 손에들고도 굳이 벼랑 끝으로 차를 몰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건 더이상 내 문제가 아니에요.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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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파는 법 -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 땅콩문고
조선영 지음 / 유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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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더 팔린 책과 덜 팔린 책. 


알라딘, 인터파크도서를 거쳐 예스24 도서팀에서 일하고 있는 조선영 MD의 책. 

작고 얇은데, 내용이 꽉꽉이고, 온라인 서점 이용하는 사람들, 거기, 네, 거기 당신이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첫 챕터부터 전쟁같은 문화 '상품'으로서의 책을 사고 파는 현장을 제대로 보여줘서 책 많아서 좋겠다, 도서 MD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그래도 내가 안 할거니깐, 여전히 부럽기는 함. 


나도 온라인서점 처음 생겼을 때부터의 프리미엄, 플래티넘 회원으로 온라인 서점의 변천사를 읽으며 감회가 새로웠다. 

굿즈 1.0 에서 굿즈 3.5 시대까지의 이야기는 보면서 진짜 웃었네. 온라인 서점으로 책 더 많이 읽게 된 사람들이 분명 있다. 

나는 늘 대형서점 주위에서 일하면서 출근하다시피 했어서 대형서점도 이용하고, 온라인 서점도 이용했지만, 지금 사는 곳에서는 온라인 서점 없었다면, 절대 지금까지처럼 책을 사고, 읽고,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 인데, 

알라딘의 많은 서재 지인들이 많은 굿즈와 책에 둘러쌓여 있다는 걸 나는 알지. 우리도, 나도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 한 건 아니겠지만, 꽤 많은 걸 하면서 기쁘고 슬펐지.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파는 이야기를 읽으며,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행위에 대한 사고가 확장되는 독서 경험이었다. 



"독자들이여, 부디 많은 고민 끝에 그 자리에 진열한 책을 발견해서 바로 지금 장바구니에 담고 계시기를! 아, 장바구니에 넣기만 하면 안 된다. 장바구니에서 바로 결제로 이어지기를! 장바구니는 그저 위시리스트에 불과할 뿐이니까." - 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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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웰 주식회사 욜로욜로 시리즈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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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출판사의 욜로욜로 시리즈 

남유하 작가의 '다이웰 주식회사' 는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단편 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이고, 글 너무 잘 쓰고, 재미있어서 놀랐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같은 책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재의 책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다 있다. 내가 몰랐지. 미래는 SF에 있다!   


'국립존엄보장센터' 는 존엄사와 생존세에 대한 단편이다. 빈부격차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초인종이 울린 건 새벽 네 시였다. 현관 앞에는 두 남자 서 있었다. 주름 하나 없이 반들반들한 회색 유니폼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었다. .." 로 시작하는 이 단편의 이 남자들은 국립존엄보장센터의 직원, 아니, 어쩌면 센터에서 하청 준 회사의 직원인데, 옛 이야기의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노인은 생존세를 지불하게 되고, 생존세를 낼 돈이 없으면, 국립존엄보장센터에 신고하여 존엄사를 하게 된다. 생존세를 안 내고, 신고도 안 하고 버티면, 센터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죽게 된다. 센터에 가면 24시간 타이머를 손목에 채워준다. 


두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다이웰 주식회사' 역시 존엄사에 대한 단편이다. 

이쪽은 노령화 아니고, ACAS, 후천성 심정지 증후군, 즉 좀비 바이러스에 감연된 자들을 위한 안락사 기관이다. 


모두가 꺼리는 안락사 버튼을 누르는 일을 하는 다이웰 주식회사의 비정규직 회사원인 화자.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의 책들을 다 버리지 못하고, 남은 돈을 품위 유지비로 써 버린 엄마. 돈이 다 떨어져 60평 아파트를 팔고 나왔을 때도, 책만은 버릴 수 없다며, 오피스텔과 반지하를 얻어 책은 습기차니깐 오피스텔에, 그리고, 사형집행인이라 불리며 일하는 딸과 본인은 반지하에 살아야 한다고 우긴다. 


+++

"아, 정말 용케 오래 다니네. 나 같으면 징그러워서 하루도 못 견딜 거 같다." 

엄마는 못하겠지. 엄마는 고상하고 우아한 것만 보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해야 해. 우리 회사 직원들조차 사형집행인이라고 꺼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엄마의 품위를 유지하려면, 아니 당신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려면 다이웰 주식회사에서 주는 월급 270만원이 필요하니까. 물론 당신한테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겠지만 말이야.


+++


매일 책을 한 권씩 챙겨 나와서 사무실에서 한 장씩 찢는다. 엄마를 찢을 수는 없으니, 책을 찢는다. 


복선도, 결말도, 짧은 단편이 정말 무시무시하다. 


'하나의 미래' 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이렇게 짧은 단편에 다양한 주제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고 있을까. 남편이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 난 장면을 목격하고, 이혼하고, 낙태하러 수술대에 눕는데, 마취만 하게 되면, 다른 세계로 끌려가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오하나라는 여자에 의해 구조된다. 끌려간 세계는 미세먼지 때문에 특수 헬멧을 쓰지 않으면 질식해 죽는 그런 세계다. 


'미래의 여자' 는 시간여행자의 이야기이다.는 자신이 죽은 후의 미래로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배경이다. 한 시간에 한 명의 두 자아가 존재할 수 없어서 한 자아는 소멸하기에, 자신의 예상 수명을 넉넉하게 지난 미래로만 여행할 수 있다. 부모님은 외딴 곳에 살고,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임신한 아내와 부모님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생일 촛불을 부는 순간 어머니가 사라지고, 쇠약해진 아버지도 손주도 못 보고 세상을 떠난다. 집을 정리하러 내려가 아버지의 서랍에서 발견한 소설, 독자가 자신으로 지정된 이 소설 속 소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a의 b가 c인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님, 대단하다. 


뭐 하나, 이게 제일 재미있었다 고를 수 없이 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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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력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 1
AJS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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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을 주제로 만화 앤솔로지

여자력의 자가 아들자 아니고, 한문 '스스로 자' 이다. 

여자력 하면, 일본에서 "여성스러운" 어쩌구 저쩌구에서 나온 말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의 여자력은 '자' 의 한문도 다르고, '초능력' 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평범한 초능력자가 아닐까." 


" 여자력, 이 힘의 규칙은 반드시 자신을 넘어설 것, 그리하여 비로소 '내'가 될 것!" 


가슴 뛰는 컨셉트다. 


ASJ, 골왕&자룡, 김이랑, 뼈와피와살 님이 참여했다. 


여성작가 앤솔로지에서 눈이 제일 시원한 부분은 다양한 여자 캐릭터이다. 판에 박힌 캐릭터가 아닌, 다양한 연령과 외모와 체형의 캐릭터가 나오는 것이 재미있다. 우리는, 아니, 나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남성 서사에 익숙해서, 아니, 찌들어서, 비슷한 이야기들을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여자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들이 신선하다. 


첫 단편 '함안군 가야리 땅문서 실종사건' 부터 임팩트가 크다. 

90살은 먹은거 같은 증조할머니가 남겨준 땅문서를 찾기 위해 기억을 찾아주는 초능력자들이 운영하는 흥신소에 간다. 

기억을 더듬으며, 할머니를 떠올린다. 짠하고, 보고 싶은 할머니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널뛰는 감정이 박력있다.


'야사'는 격투 활극 느낌이다. 진실과 거짓을 알아채는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기억만은 주변에 의해, 그리고,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한다. 자신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흉수를 찾는다. 


'조용한 세상의 미소'는 어느날 갑자기 모두에게 초능력이 생긴 이야기이다.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삐끗하니, 빠르게 뒤쳐져 방에 틀어박힌 미소가 아이를 데리고 아포칼립스의 세상을 헤쳐나가다 만난 시스터즈들의 이야기. 하하하하 웃고 싶은 굉장히 멋있는 이야기이다.


'바람이 불면'은 학원물. 바람을 일으키는 초능력자 (크리스퍼) 이선형과 반장 송민아의 산들바람부터 폭풍우까지 넘나드는 우정 이야기. 


'죽음으로부터' 는 우화. '이치를 따르는 자' 루비와 '이치를 거스르는 자' 다야의 우정. 바다를 보러, 바다를 찾아가는 이치를 따르는 루비와 이치를 거스르는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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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언니 - 언니들 앞에서라면 나는 마냥 철부지가 되어도 괜찮다 아무튼 시리즈 32
원도 지음 / 제철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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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언니밖에 없네' 단편집을 읽었는데, 이번 달에는 '아무튼 언니'를 읽었다. 

읽다 보니 낯 익은 이야기에 작가 이름을 보니 '경찰관 속으로'의 완도 작가이다. 내용은 겹치면서도 겹치지 않는다. 

'경찰관 속으로'도 읽었는데, 이 책도 그렇고, 작가의 아우라가 강한 이야기이다. 


갑갑한.. 아니, 암울한 가족들에서 벗어나서 경찰이 되고, 자신이 만들어가는 가족들( 언니들) 의 이야기. 여기서 오빠면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초반에 이런 이야기 나온다. 저자의 오빠는 뇌병변 1급 영구 장애인인데,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오빠 때문에 너를 낳았다." 그 말은 마치 '오빠의 간병을 시킬 목적으로 낳았다'처럼 들렸고, 또 그게 사실이었다. 실제로 엄마는 당시 오빠의 재활치료를 위해 다니던 재활원에서 임신 계획을 세웠다. 재활원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엄마들 사이에 '장애를 가진 아이만 바라보고 살기엔 너무 힘들다. 동생을 하나 만들자'는 의견이 모아졌는데, (..) 그렇게 태어난 나는 기계처럼 살았다. 오빠의 수발을 들라고 하면 들었고, 대소변을 치우라고 하면 치웠다. (..) 오빠와 다투기라도 하면 부모님은 오빠 덕분에 태어난 주제에 왜 대드냐고.." 


에세이는 저자에 대한 호감으로 읽는다고 하는데, 저자의 환경이 어땠든, 동생은 불편하고, 언니한테 징징거리고 싶어하는 저자는 난 좀 별로였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더 별로. 이모, 엄마의 언니와 엄마의 상황도 갑갑하고, 가족 중에 한 사람에게, 주로 딸, 장녀에게 고난 몰빵 하는 이야기 진짜 질색이다. 하지만, 글 잘 쓰니깐, 호불호 상관없이 이 저자의 책을 아마 계속 읽을 것 같다. 좋은 글들이 많다. 경찰이라는 본업이 있는 저자지만, 또 좋은 주제로 좋은 이야기 들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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