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꾼 기록 생활 - 삶의 무게와 불안을 덜어주는 스프레드시트 정리법
신미경 지음 / 뜻밖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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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기록에 대한 관심가는 책이 두 권 나왔다. 먼저 읽은 책은 신미경의 <나를 바꾼 기록 생활>

같은 저자의 책으로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와 <혼자만의 가정식> 이 나와 있다.

기록생활 책 읽으니 저자에 관심 가서 저자의 이야기 좀 더 듣고 싶다. 기록생활이든, 뿌리 튼튼이든, 가정식이든 방점은 ‘생활’에 찍혀 있고,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인 것 같다.

저자의 기록은 ‘스프레드 시트’ 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스프레드 시트에 기록한다. 기록의 도구는 효율성도 중요하겠지만,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나는 노트와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이지만, 저자의 기록생활에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돈, 일과, 습관, 사적인 리스트 네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기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회사도 다니고, 프리랜서도 하는 1인가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돈 기록에 대해서는 연간 예산을 정하고, 소비를 기록한다.
가계부 적기 정말 귀찮은데, 저자는 ‘덜 씀’으로써 덜 쓴다.

저자의 돈 모으기 기준은 1. 빚청산 2. 비상금 1단계 (3개월 생활비) 3. 비상금 2단계 (6개월 생활비) 4. 비상금 4단계 (1년 생활비) 5. 투자 시작 이다. 집을 마련했고, 비상금 4단계까지 모으고, 투자도 하고 있어서 가계부가 심플하다.

“책정한 예산이 많지 않지만, 초절약 시절과 비교했을 때 지금은 원하는 것을 적절히 하는 호사를 누린다. 플러스가 되는 생활을 위해 극도로 소비를 줄였을 때에는 생존비용을 제외하곤 문화 암흑기를 보냈다. 국립박물관 무료 전시로 버티며 낭비벽을 치유하고, 예산 새활을 위한 비상금도 마련했던 그 시절은 딱히 그립지 않다.

과소비하던 시절도 마찬가지. 하루 종일 돈 쓸 궁리를 하거나 모을 궁리만 했던 내가 진짜 삶을 즐기는 법을 알 리 없었다. 돈은 어디까지나 삶의 유용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
지금 돈은 스프레드시트를 열어볼 때 떠올리는 문제가 되었다. 살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알고 관리하고 있기에 돈 걱정은 단순해진다. 돈 문제는 스프레드시트에 맡긴 채 나는 돈과 무관한 생각들로 하루를 채운다.”

이전에 가계부 쓰는데 계속 실패 했던 이유는 왜 쓰고 있는지 목적이 불분명했기 때문이고, 지금의 가계부는 예산을 지킨다는 목표가 있으니 중요해졌다고 한다.

집 있는 1인가구 1년 예산은 18,975,000원 이었다. (예비비 2,475,000원 포함) 나도 궁금해져서 적어보니 집 없는 1인 3묘 가구 1년 예산은 예비비 200 포함 2600만원. 집에 들어가는 천만원 +알파 빼면, 나도 진짜 돈 안 쓰고 사는데.

제일 많이 쓰는 돈이 고양이, 식비, 문화비(책)이고. 이 외에는 거의 안 쓴다. 저자가 책정한 카테고리들 중 병원비, 여행비, 교통비, 경조사비, 레슨비, 사교비 이런건 연간 예산에 들어갈 만큼 안 쓴지 오래됐다. 교통비는 1년에 한 번 육지 갈 때 (1년에 한 번 정도는 생기더라고) ktx보다 싼 비행기값, 외식, 배달음식 이런거 없고, 병원비는 애드빌이랑 가끔 챙겨 먹는 영양제? 로 몇 만원 안 하다보니, 연간에 넣기도 뭐하고, 사교비래봤자, 친구 두 명에게 챙겨주는 선물 (이것도 십년 넘게 매년 꼬박꼬박 받기만 하다가 작년부터 챙겨야지. 생각하고 소소하게 챙긴다. ) 정도가 다다. 고양이 비용은 계속 늘어갈테고, 줄일건 식비랑 문화비 정도다. 이번달부터 꼼꼼히 기록해서 1인가구 1년 예산 “잘 썼을 때”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려 한다.

저자는 이전까지 가치관이란게 없었으며, 그래서 매번 흔들렸다고 한다. 지금은 매일이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균형 감각은 가치관이라는 저울 위에서 생긴다고 말한다.

“최고의 작은 생활, 사는 목적은 존재 그 자체, 인정보다 만족, 과욕보다 평온, 소유보다 경험처럼 예전과 다른 가치를 지닌 뒤로 얼굴에 그늘이 걷혔고 전보다 쾌활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런지 삶의 만족점이 낮아졌다.”

삶의 만족점. 좋은 얘기다. 이전에 친구가 나보고 ‘행복점’이 많다고 했는데, 비슷한 결인 것 같다. 나는 다 준비 되었다고. 잘 살 준비가. 잘 살기만 하면 된다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의 순서가 바뀌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많이들 이야기하는 ‘시간’, ‘장소’, ‘사람’. 세가지가 변하지 않으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의지’가 사람을 변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저자는 질병을 계기로 생활규모를 줄였고, 스프레드시트에 모든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규모로 살게 되었다. 물건이 짓누르는 기분을 참을 수 없어 생활을 간소화시켰고 언제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몸집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300개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거 정말 대단한거 아닌가? 4계절이 혹독한 나라에서 300개의 물건이라니. 여기서 더 줄이고 싶다고 하니, 정말 진심으로 존경한다.

책에서 좋았던 것 중 저자의 ‘해내기’ 목록
ㅇ 본업 : 회사원 또는 독립근무자로서 생계를 책임지는 일
ㅇ 부업 : 혼자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 하나, 내게는 글작업
ㅇ 미래업 : 경제적 자유가 생기면 돈과 상관없이 삶의 재미를 위해 하고 싶은 일

‘미래업’ 이라는 말이 좋다. 백세 시대에 한 가지 일만 하지 못하고, 계속 배우고, 새로운 것 시도해야 하는 것.

그리고 저자가 자신만의 아포리즘 만들어 적어두는 것. 이것도 엄청 끌렸다. 나만의 아포리즘. 나의, 내 생활의 ‘신념’ , ‘중심’ ‘기준’

이런것들 있다.
5. “하루에 안 되면 1년을, 1년에 안 되면 10년을 할 거야. 재능이 부족하면 노력으로 채워야지.” (드라마 <연희공략>에서)
12. 타인에게 환상을 갖지 말자. 구원은 셀프다.
22. 나이 타령하는 사람과 가급적 교류하지 않는다.

등등

책의 서문에 저자의 기록의 시작이 나온다.

<<문제점 적어보기>>
ㅁ 목표 상실로 사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ㅁ 끈기 부족, 내겐 작심삼일도 길다.
ㅁ 견고하게 들러붙어 있는 건강을 해치는 습관.
ㅁ 낭비벽으로 늘 돈 걱정에 시달린다.
ㅁ 남과 비교하고, 자기검열이 심해서 괴롭다.
ㅁ 나를 잡아주는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다.

문제점을 적어보는 것으로 기록 시작하기.
올해 1월 1일에 올 한해의 목표가 ‘기록’이라고 적었는데, 다들 생각하는게 비슷한지 ‘기록’에 대한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기록하고 -> 실행하기!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적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 통장에 돈이 쌓인다. 자고 일어나면 필요한 것이 생기는 세상에서 내 것이 아닌 욕망을 억누르는 일이야말로 일상 수행이다.

온갖 불안을 돋우는 세상의 목소리가 말하는 필요한 물건, 조금 더 편리하고자 사서 들이지만 삶이 더 복잡해지는 획기적인 상품, 실상 아무것도 아닌 내가 뭐라도 된 듯한 느낌을 주는 사치품, 경쟁자가 앞서 달려나갈 때의 박탈감과 초조함을 쓸데없는 물건으로 잠시 달래는 순간처럼 위험 요소는 널려 있다.

이런 모든 경우의 수 혹은 불필요한 소비에 대한 변명을 인생에서 빼는 확실한 방법은 더 높은 가치를 떠올리는 것이다. 내 경우에 많은 짐을 관리해야 하는 귀찮음, 더 크게는 나의 무분별한 소비가 환경에 얼마큼 악영향을 미칠지 생각한다. (..)

쇼핑 리스트는 ‘필요한 것’, ‘구입한 것’, ‘반복 구매’ 총 세 가지로 나눠 정리한다. 이로운 삶에 필요한 느리게 물건 사기. 어쩌면 돈을 아낀다는 작은 이득보다 지구를 아끼는 더 큰 이득 때문에 계속하는 쇼핑 기술인지도 모른다. - P42

재미란 설렘을 주는 새로운 것, 기분 좋음, 계속 생각나는 모든 걸 통칭하는 한 단어였다.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신선한 단어가 ‘재미’였다. 재미있는 일을 택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새로운 일을 찾았다. 그동안 다양함이 주는 재미는 충분히 맛보았고, 이제 깊이를 원한다.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행복이란 "어떤 하나에 깊게 관심이 잇어 장시간 노력하며 계단적으로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라 정의 내린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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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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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이라고 누군가가 이 책을 이야기해줘서, 담아뒀다 읽기 시작했다. 남들 다 좋다는데, 별로다! 감정 과잉이다. 투덜거리면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책을 왜 읽나. 이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답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만 읽고, 무력해 하는 것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뒤로 갈수록, 아, ‘책’이 라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대단하구나. 매일 책을 읽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책을 왜 읽나? 자문했고, 약간의 답을 얻었다.

저자는 대학 졸업후 임용 준비하다 노들장애야학에서 장애인들을 가르치고, 기록했던 활동가다. 이 책에는 저자가 만난 세월호 유가족들부터 장애인들, 중증 화상 환자들, 노숙자들 등의 이 사회 가장 바닥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각각의 이름과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호명된다. 후반부에는 고양이 카라와 홍시를 들이고, 또 한바탕 뒤집어진 세상에 뛰어들어 이번에는 이름 없는 돼지와 소와 닭, 반달곰 들이 나온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어떤 운동인지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지 않았다.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승태 작가가 “내가 축사 안에서 본 것들 가운데 모르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닭장이 있었고 닭이 있었고 똥이 있었고 알이 있었다. 하지만 축사 속에 내가 예상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 하고,

저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저자가 우연히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되어 “장애인들은 듣던 대로 차별받았고 멸시당했다. 하지만 내가 예상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 라며, 장애인의 삶에 충격 받고, 그것을 온통 ‘문제’라고 하는 것에서 더 큰 충격을 받는다.

“내가 자라온 세상에선 누구도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문제를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현실을 바꾸거나 최소한 직면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거기가 최전선이었다. 나는 그런 이들의 저항이 세상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믿는다.”

사람은 다 다르고, 사회에 어떤 ‘운동’으로 보탬이 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일도 다 다르다. 책을 읽으면서, 갑갑함과 무력함이 많이 느껴졌다. 처음 생각했던 책을 왜 읽나에 대한 나의 답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이 나의 어떤 감각들을 일깨워줬다. 일상에 매몰되어 주변으로 협소해진 시야의 균형감각을 조금이나마 찾아주었고, 절대 놓으면 안 될 공감의식을 일깨워주었다. 복잡한 사회의 결들, 책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찾지 못했다. 답이 없는거 같아. 조금씩 변한다고 해도, 더 크게 나쁜 일들이 더해지면,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고, 현재를 유지하기도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세상은 나아질 수 있는거 아닐까. 내가 당장 뭔가 변하지 못하더라도, 시작은 ‘앎’이고, 그 부채가 남아, 그 다음을 기약할 것이다.

좋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옮기기에 길다.
세월호 유족들 중 어머니 이야기가 좋았고, 순례길에 만난 피아노 치는 청년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고양이 카라 이야기도, ‘버스를 타자’ 라는 구호를 들었던 이야기도 좋았다. 힘든 이야기는 있지만, 좋지 않은 이야기는 없었다.

타인의 이야기는 타인의 것이다. 나의 것이 아니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하고 싶어지는 일렁임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공감은 감정의 전염이나 이입과는 다르다.

누군가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기란 차라리 쉽다. 흔들리는 마음을 단속할 더 쉬운 이유들이 많을 뿐이다. 타인의 곤란함은 대체로 사소한 것이거나, 조금 심각하지만 스스로 불러온 것이거나, 어쩔 수 없었더라도 내게는 닥치지 않을 일이다. (..) 공감에는 복잡한 능력이 필요하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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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4-03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제 친구가 노들야학을 다녔는데~~ 시설에 있을 때 만났지만 지금은 자립해서 잘 살고 있거든요. 그곳 이야기라니 흥미 돋네요!!

하이드 2021-04-03 21:32   좋아요 0 | URL
노들야학 이야기 많이 나와요. 책 정말 좋아서 계속 곱씹게 됩니다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
조애나 러스 지음, 박이은실 옮김 / 낮은산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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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가 번역하기 어려워 머리가 하얘지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식은땀 난 얘기를 왜 맨 앞에 실은 건지 모르겠다. 눈물이 울컥나고, 그런 감상문을 왜 맨 앞에! 번역에 대한 불신 가지고 읽어야 했다. 조애나 러스의 글은 위트 넘치고, 여성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패턴과 풍부한 예시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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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3-2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시선을 확 잡아끄네요~ 이 책 읽으면 글을 쓸 수 있을까요?ㅎㅎ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엮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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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렇게 귀엽고 따뜻한 책인지 몰랐다. 

내 책상 위에 스누피를 세어보면, 스누피 필통, 스누피 알람, 스누피 스티키노트, 스누피 머그컵, 스누피 일력마스킹테이프, 스누피 탁상달력! 까지. 스누피로 한살림이다. 책장에 스누피 북엔드들은 또 어떻고. 


그동안 스누피를 굿즈와 음악으로만 소비해왔었는데, 이 책 읽고나니, 다시 한 번 스누피 책읽기에 도전해봐야겠다. 그동안은 번역본 1권 사두고, 원서 사야지. 멈추고 있었다. 


기대가 전혀 없긴 했다. 그냥 요즘 많이 나오는, 인기 캐릭터랑, 인기 주제(글쓰기 조언) 합한거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아니었다! 


스누피가 개집 위에서 타자기 치는 그림과 굿즈 많이 보긴 했는데, 뭘 의미하는지 별 생각 없었다. 

스누피는 작가지망생이었던 것이다!


찰스 슐츠의 자식인 몬티 슐츠가 쓴 머리말, 첫문장부터 나는 이 책이 매우 좋아졌다. 


"아버지는 독서를 좋아했고 문학을 숭배했다. 아버지의 사무실 벽에는 다양한 주제에 관한 책 3천여권이 꽂혀 있었고, 늘 앉아서 책을 읽으시던 의자 옆 작은 탁자 위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항상 쌓여 있었다. 아버지는 가장 아끼는 책들의 구절들을 거론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거북이 장면처럼 유명한 구절이나,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쓴 토마스 울프의 유명한 소설들에 등장하는 절절한 구절들 말이다. 


아버지가 40년 동안 만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자기를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만화는 그저 상업적인 것이라고 여기면서, 작가들을 엄청 좋아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해지고 나서도 말이다. 이 책은 피넛츠를 보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유명 작가들이 스누피에게 글쓰기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피너츠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작가지망생으로서의 스누피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 스누피는 멘탈이 아주 강하고, 개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수십수만 거절편지에 굴하지 않는, 찐 작가지망생이었던 것이다. 


스누피의 글을 매번 구박하는 역할은 90%가 루시이고, 가끔 거절 편지를 전해주는 찰리 브라운이나 ㅣㅣㅣㅣㅣㅣㅣㅣ 이렇게 의사소통하는 우드스톡이 있다. 다른 캐릭터들도 굉장히 궁금해졌다. 


" 아버지는 작가 지망생 스누피를 통해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을 표현하고,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동시에, 문학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작가들이 날마나 벌이는 투쟁이 얼마나 역동적인지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삶을 설명한다. " 


슐츠 자서전 급구! 40여년 넘게 꾸준히 인기 만화를 연재하면서,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학과 작가들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슐츠가 그리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간극 등등. 슐츠는 첫 달에 만화 연재하고 90 달러 받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원고료 수입은 한 달에 천 달러. 20년 뒤에는 원고료 수입이 하루 천 달러가 됐다고 한다. 


이런 에피도 재미있다. 만화 잡지에서 만화에 글씨 쓰는 일을 하다가 '따라 그리면 받을 수 있는 학위' 라는 제목의 통신강좌에서 강의를 했다고. 그때 강사 중에 '찰리 브라운' 이 있었고, '조이스 해버슨' 이라는 강사가 있었는데, 찰리 브라운은 찰리 브라운이 되었고, 조이스 해버슨이랑은 결혼했다. 인생을 크게 바꿔준 강의였군!


책의 판형도 스누피처럼 길쭉한 판형이다. 처음에는 특이한 판형이군 생각했는데, 스누피 완역본 판형이 이렇게 옆으로 길쭉하더라고. 어떤 독자를 상대로 하냐에 따라 글쓰기 조언이 달라지고, 글쓰기 조언 수십수백번 해봤을 작가들이 '스누피야' 하고 얘기해준다는 컨셉이 굉장히 마음 몽글몽글해지는 책이다. 


아, 리뷰 쓰려고 들어왔다가 알았는데, 옮긴이가 김연수 작가다. 

마음이 풀리는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아버지의 마음은 대중문화의 통속 예술과 문학, 회화, 고전음악 등의 심오한 미학이라는 두 진영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피너츠>는 이 두 진영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상식적인 독자들의 세계에 아버지가 생각하는 고급 예술을 끌어들이려는 독특한 시도였다. - P8

깨끗하게 정리된 작업실에서 슐츠는 화판 앞에 앉아서 연필로 연습장에다 낙서를 하면서 이야기 소재를 찾곤 한다. 그는 일주일치 연재분을 통째로 생각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매일 여섯 편의 만화를 그리지만, 이 모두가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셈이다. (..) 한 시간 정도면 하루치의 만화를 그릴 수 있다. 일요일판에 실리는 만화는 하루 종일 걸린다. " 그 칸들을 다 채워 넣기만 하면 되는 일이죠. 월요일에 실리면 좋을 그림을 그리죠. 그 다음에는 화요일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또 수요일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누가 배달해 주는 건 아니니까."
- P37

글쓰기는 예술가적 유희가 아니다. 새벽 3시에 내게 찾아오는 영감을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아침 9시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펜과 공책을 들고 책상에 앉아서 몇 시간씩 글감을 찾기 위해 일한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밀어붙이고 이리저리 휘갈겨 쓰다 보면 뭔가가 온다. 그래서 이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타자기 앞에 앉아서 일어설 수도 없을 정도로 온몸이 아파올때까지 타자를 친다. - 다니엘 스틸 - - P42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완고한 사람이기 때문에 물론 그렇긴 해도 내 말이 더 옳을 때가 많다) 나는 아직도 작가라면 모름지기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글을 충분히 써보면 좋은 문장과 설익은 문장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단편소설을 스물다섯 편만 써보면 되는 소설과 안 되는 소설의 차이를 알아낼 수 있다. - 수 그래프턴- - P130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일과 비슷하다. 발을 떼기가 어렵지. 일단 뛰어내리고 나면 중력에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 - 제이 콘라드 레빈슨 - - P134

시작하는 문장을 갈고 닦으렴.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쓰는 거야. 그러니까 도입부는 고치고 또 고쳐야 해. 첫 문장을 보면서 이렇게 자문해봐. "내가 독자라면 이런 문장을 보고 계속 읽을 마음이 생길까?" 그리고 기억해. 독자의 마음을 겨눠야 한다는걸! - P140

이 만화에 나오는 장면과 생각이 내게는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세월을 나느 ㄴ원고를 보냈다가 거절 편지를, 특히 편집자를 대신해 수위가 보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일반적인 내용의 거절 편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들지 이해가 된다. 스누피야.)
그렇다. 나는 여전히 그런 편지를 받는다. 또한 그런 편지를 보면 여전히 괴롭다. 하지만 몇 십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나는 스누피가 배우지 못한 점들을 배웠다. 거절편지는 내가 작품을 보냈고, 누군가는 내 작품을 읽었으며, 내가 운을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그 편지들 덕택에 나는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셀리 로웬코프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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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16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누피 이곳저곳에 있지요ㅋㅋ음악은 뭔지 찾아봐야겠네요. 이 책도 궁금하고 오홋 빨간 만년필도 눈에 들어옵니다. 딸기우유까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사진이예요ㅋㅋ 😊

하이드 2021-03-16 12:39   좋아요 1 | URL
찰리브라운 크리스마스 재즈가 정말 좋아요. 크리스마스마다 꺼내 듣지요.

새파랑 2021-03-16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누피는 책갈피 아닌가요? ^^ 작가지망생 이라는건 첨 알았네요 ㅋ

하이드 2021-03-16 12:39   좋아요 2 | URL
책갈피! 책갈피도 있군요. 저도 처음 알았어요. 작가지망생이라니. 이 책 정말 귀여운 컨셉이에요. 만화 내용은 귀엽기만하지는 않지만요 ㅎㅎ

2021-03-16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6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 하루를 두 배로 사는 단 하나의 습관
김유진 지음 / 토네이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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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이 책을 읽으면서 시작했다. 

자전거 타면서, 아침 간단히 먹으면서, 모닝 커피 마시면서 책을 읽었고, 재활용 버리고 왔고, 짧은 산책하며 해바라기도 했다. 챕터마다 최고의 아침습관이 있는데, 그 중 낸시 펠로시의 아침은 


아침 5시에 일어나 45분 정도 파워 워킹을 하며 그날을 계획한다. 이때 비서와 연락을 하거나 후원자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거나 간밤에 있어던 소식들을 따라잡기도 한다. 운동이 끝나고 오전 9시 정도까지 신문 서너 개를 읽는다. 이때가 나에게는 이미 정오와 같다. 


어제 11시 32분에 자서 오늘 5시 10분에 일어났다. SNS 보고, 핸드폰으로 앱들 열어서 딩굴거리다가 일어나 물 마시고, 자전거 타며 책 읽었는데, 일어나자마자 핸드폰 보고 딩굴거리는 시간 없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침 9시에 이미 많은 걸 해 놓은 사람 되었고, 정오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 비슷하게, 시간에 끌려가지 않고, 시간을 컨트롤한다. 아침 아홉시가 이미 정오와 같다는 그 여유로운 느낌, 뭔지 알아. 


김유진 변호사의 유튜브는 한 두 번 보긴 했는데, 책으로 읽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잖아!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책으로 만날 수 있어 정말 유익한 독서였다. 책 좋아. 책 최고. 


미라클 모닝에 대한 책들은 꽤 읽어봤지만, 역시, 각자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있고, 이 책에서도 역시 나에게 적용할만한 저자의 마인드셋과 방법들을 얻을 수 있었다. 


아침형 인간이 나은건 팩트다. 수 많은 연구결과를 차치하고라도,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자신을 컨트롤하고, 그 날 하루의 항해에 대한 키를 잡고 시작하는 것이 잠 조금 더 자고, 시간에 밀려 하루를 시작하는 것보다 당연히 나을 수밖에 없다. 


미라클 모닝에 대해 최근 들은 좋은 이야기는 '밤 아홉시에 자도 아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것' 이다. 

밤에 자기 아쉽고, 아까워서 취침시간이 자꾸 늦춰지는데, 이건 그럭저럭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 자신이 아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그 하루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보낸 하루라면, 아, 오늘 하루 잘했다. 잘 자자. 하고 잘 수 있는 것. 


저자는 퇴근하고 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취침 시간이 빨라졌다고 한다. 보통 퇴근하고, 지쳐서 생산적인 일은 못하니, 하루가 아깝고, 남은 에너지로 할 수 있는게, 먹거나, 핸드폰 보거나 유튜브나 티비 보거나 정도여서 악순환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퇴근하고 지치니깐, 그냥 자는 거. 좋은 마인드셋이다. 나는 오늘부터 바로 적용해볼까 한다. 


미라클 모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라클 모닝의 전제는 '취침시간' 이다. 언제 자느냐가 중요하다. 최소 수면시간 7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한 마인드셋이 필요하고, 취침루틴이 필요하다. 아침루틴만큼이나 중요. 

자야 하는데, 생각 때문에 잠 못 자는 경우에는 오디오북을 들어서 생각을 돌린다고 한다. 요즘 내가 오더블 슬립 타이머 30분 맞춰두고 자는데, 좋은 생각인 것 같다. 낮에 활동량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고, 불면이 병증이라면 논외일 것이다. 


좋은지 알지만 못하는 것들이 있다. 타이밍이 맞고, 내가 납득하고, 설득되면, 언제든 시작해야지 생각하는 것들로는 명상과 운동과 감사가 있었다. 운동 좋은건 알겠는데, 진짜 하기 싫지. 실내자전거라도 타기 시작했고, 독보적 하면서 오천걸음 걷기도 하고 있다. 쉬워지면, 다른거 시도해볼 수 있겠지. 감사는 최근에 설득 되어서 시도하고 있다. 그건 좀, 그게 뭐, 싶었는데, '감사하는 것' 은 마인드를 긍정적으로 만들고, 억울함을 줄인다. 그건 분명 도움될 것.


요즘 책 읽으며 계속 비슷한 결론을 내게 되는데, '내가 행복한 것은 무엇인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먼저 알고, 그걸 좇으면 된다. 어렴풋하게 아는거 말고, 확신이 생길 때까지, 확실한 모양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적어보는 거 좋은 것 같다.  


스스로 '행복하다' 혹은 '감사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리스트로 만들어보고 그 순간이 자주 일어날 수 있도록 플래너에 계획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순간의 행복을 수동적으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직접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 얘기 좋지? 행복한 순간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 순간이 일어날 수 있도록 계획해 보는거! 

 

내가 생각하기에 새벽 기상에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을 보상으로 해석하는가‘ 다. 새벽 기상을 수월하게 성공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생긴 여유 시간에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또는 추가 자유 시간을 확보했다는 것을 큰 보상으로 여긴다. 이를 통해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지금보다 발전한 미래를 상상하며 새벽 기상을 계속하고 싶다는 열정과 의욕을 키운다.

반면 새벽 기상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딱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의 장점을 느끼지 못한다. 그 시간에 푹 자는 것이 일어나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 P74

이유 없이 잠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된다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단계를 만들어보자. 나는 저녁에 오일 버너나 향초를 켜고 반신욕을 하거나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이거나 눈을 소독한 뒤 편하게 자리에 눕는다. 아침에 따뜻한 차를 마시고 노래를 들으며 하루가 시작됐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알리듯 나만의 취침 루틴으로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때로는 오디오북이나 ASMR 영상을 켜놓기도 한다. 빨리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 위해 무언가를 듣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 이렇게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하는 취침 루틴을 만들면 마음이 저절로 안정돼 수월하게 잠들 수 있다. - P87

부모님이 사업으로 한국과 뉴질랜드를 왕래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는 혼자 홈스테이를 하게 됐다. 부모님은 내가 뉴질랜드에서 영어를 배우고 적응해 독립적으로 살아남길 바랐다. 나의 삶은 항상 사랑받는 삶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내 인생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나에게 외로움이란 뵤족한 바늘 같은 존재였다. 바늘로 나를 찌르면 아프고 피가 나겠지만 그 바늘로 찢어진 옷을 꿰매면 구멍이 채워진다. 그렇게 외로움을 그저 일종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여기고 자기계발로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을 체득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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